나무
초가집에 들어가 모두가 둘러앉았는데도, 대화는 쉽게 시작되지 않았다. 세 파벌의 대표는 서로를 견제하며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이연우가 자그마한 상에 손을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회사의 입장을 말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녹색 협회에서, 아니, 어떤 파벌들에서 딴마음을 먹었다는 첩보가 들어왔는데-”
그 순간이었다.
언제 입을 다물었냐는 듯, 세 사람이 동시에 우다다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이놈들이-!”
“다 이간질입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진짜!”
벌집을 건드리면 이럴까. 세 명 모두 얼굴을 붉히며 격하게 소음을 터트렸다. 손을 휘적이고, 남을 삿대질하고, 울먹이고.
이연우는 순간 머리가 멈췄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어쨌든 같은 집단 아닌가.
‘뭐지, 진짜. 개판인데.’
머리가 아파 온다. 중구난방인 소리들 때문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저들은 이제 이연우는 안중에도 없고, 서로의 멱살을 잡을 기세로 말싸움을 시작했다.
“하, 우리가 모를 줄 알고! 식물께서 속삭여주셨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회사 손을 빌려 우리를 쳐내려는 속셈이 뻔한데!”
“저놈들한테 속지 마세요!”
이연우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상을 쾅쾅 내리쳤다.
세 사람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언쟁을 멈췄다. 그들은 가만히 이연우를 보았고, 이연우는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 내부 사정은 관심 없습니다. 저는 경고하러 온 겁니다. 전쟁을 틈타 헛짓하지 말라고요.”
우호 집단의 내부 조율이나 협조는 그의 업무가 아니다. 애초에 하고 싶어도 할 줄 모른다. 차라리 다 터트리는 일이면 몰라도.
‘아, 벌써 피곤해.’
짜증 조금, 귀찮음 많이 섞인 표정.
녹색협회의 세 사람은 그런 이연우를 보고는, 흠칫 놀라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는 눈빛만으로 무슨 협의에 이른 듯, 제임스 박과 이채린이 일어났다.
“우리가 한자리에 있으면 아무래도 진행이 안 되겠죠. 한 사람씩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예, 그렇게 합시다.”
이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나가고, 초가집 안에는 김포도와 이연우만 남았다. 김포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엉망이죠? 말이 협회지, 어쩌다가 하나로 묶인 사람들이라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보다, 연금술사랑 환경운동가가 딴마음을 품었다면서요. 그거부터 설명해주시죠.”
이연우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포도가 얼굴을 붉혔다. 언성이 높아졌다.
“저, 저 못된 놈들! 식물을 모독하는 연금술사와 식물을 모실 인간을 죽이겠다는 환경운동가! 그놈들이 결국-”
“짧게. 본론만 말해주세요.”
“아. 예.”
김포도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천장을 올려보며 잠깐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식물 연금술사들은 사후세계에 위대한 나무를 심고, 전쟁을 양분 삼아 나무를 키우겠다는 계획입니다.”
“환경운동가는요?”
이연우는 의욕 없이 짧게 물었다. 어차피 경고만 하고 대강 조사하는 척만 하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으니까.
“사람이 죽어야 환경이 산다고, 멸망주의자 같은 행동을 할 계획이라는데. 자세한 내용은 교단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김포도는 열의를 가지고, 이연우를 꼭 설득하겠다는 기세로 말을 이어갔다.
“두 파벌 모두 회사의 정책을 거스를 준비를 하는 건 분명합니다. 특수조사원님이 꼭 매콤한 맛을 보여주십시오.”
“아, 예. 알았습니다. 다음 사람 불러주세요.”
이연우는 손을 내저었고, 김포도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제임스 박이 들어왔다. 무슨 과일 바구니를 끌어안고.
“저 정신 나간 놈을 상대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세상에, 식물이 신이고 인간은 노예라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서로 헐뜯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들도 익숙해졌다. 이연우는 흘려들으며 과일 바구니에 담긴 아름다운 과일을 보았다.
고운 빛을 뽐내는 포도며 사과며 딸기 따위. 눈으로 봤을 뿐인데도 맛있어 보인다.
“이 과일은 뭡니까?”
“우리들의 주요 수입원이죠. 드셔보시죠. 이상개체 아니고, 맛있게 개량한 과일들입니다. 명품으로 비싸게 소량만 파는데도 인기가 좋습니다.”
제임스 박은 직접 포도알 하나를 따서 입에 넣어가며 과일이 무해함을 보여줬지만, 이연우는 고민하다가 과일 바구니를 슬쩍 밀었다.
진짜 달고 과즙도 많고 신선해 보이지만, 어쨌든 뭔가 음모를 꾸미는 상대 아닌가.
‘안심하고 먹기는 조금 그렇지.’
밀려난 과일을 본 제임스 박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연우는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쪽 연금술사 파벌이 전쟁을 비료 삼아 무슨 위험한 나무를 키우겠다는데. 설명해보세요.”
그 순간, 자리에 앉으려던 제임스 박이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아닙니다! 교단, 그 미치광이의 말은 듣지 마십시오!”
그 고함과 요란한 몸짓.
저도 모르게 움찔 놀라며 에코백의 권총에 손을 가져간 이연우가 제임스 박을 빤히 노려보았다.
제임스 박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앉았다.
“물론 사후세계에서 식물 조금 키울 생각입니다. 만드라고라 아십니까?”
“그냥, 이름만 들어본 정도?”
“사형장에서 자란다는 전설의 식물인데 비슷한 식물이 있습니다. 마침 사후세계가 전장이겠다, 조금만 재배할 계획일 뿐입니다.”
이연우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위험한 겁니까?”
“위험하긴 한데, 총이나 수류탄과 비슷한 급입니다. 회사가 걱정할 만한 그런 건 진짜 아닙니다. 위험한 나무는 말도 안 됩니다!”
이어, 제임스 박은 손을 휘적대며 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보다는 녹색교단과 환경운동가가 정신이 나갔습니다!”
“녹색교단이요?”
이건 회사가 파악하지 못한 정보인데? 이연우는 무심코 물었고, 제임스 박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녹색교단은 회사의 손으로 다른 파벌을 숙청할 계획입니다! 거짓말로 트집 잡아서요!”
“환경운동가는 인간을 학살할 생각이고?”
“네! 둘 다 미쳤다니까요!”
이연우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거 처음부터 내가 뭐 조사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은데.’
문득 이연우가 손을 내렸다. 맑은 눈이 드러났다. 생각해보면 이런 걸로 머리 아플 필요가 없다.
‘일부러 실패하지 않아도 되겠네. 그냥 이야기만 듣고 돌아가자.’
해결하지 못 할 일, 내 담당이 아닌 일. 빨리 적절한 담당자한테 넘기는 게 맞다.
이연우가 손을 휘적였다.
“그 환경운동가 불러주세요.”
“예! 꼭 좀 지혜로운 판단 부탁드립니다. 기어오르는 녹색교단은 짓뭉개고, 환경운동가는 날려버리고-”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임스 박이 과일 바구니를 상에 두고는 후다닥 달려 나갔다.
잠시 후, 환경운동가 이채린이 창호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그녀는 이연우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무릎부터 꿇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살려주세요! 저희는 진짜 딴마음 안 품었어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네?”
이연우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들어오자마자 눈물 콧물 흘려가며 엎드렸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 본의 아닌 침묵에, 이채린은 아예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번에 멸망주의자 팔 뜯어간 정예요원이시잖아요! 경고 삼아 한국지부 정리하러 온 거잖아요! 저희 진짜-”
“아니. 일단 진정하세요.”
이연우는 진짜 당황해 손을 허우적거렸다.
‘아니, 얼마 전 일을. 알 수도 있긴 한데.’
딱히 보안조치 당할 작전도 아니었고, 녹색협회 입장에서는 감찰 나온 회사원 신상을 파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반응 때문에, 앞의 두 사람이 매콤한 맛을 보여주라느니, 짓뭉개라느니 하던 소리 때문에 이연우는 어리둥절했다.
‘이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보이는 거지? 물론 내가 저지른 일이긴 한데, 나도 피해자고 살아남기 급급했는데.’
그쯤에서 이채린은 고개를 살짝 들어 이연우의 눈치를 살폈다가,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이연우는 한숨을 내쉬며 짧게 물었다.
“환경운동가가 사람들을 학살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리던데. 그건 무슨 소리입니까?”
“아니에요! 저희가 미쳤다고!”
이채린이 몸을 벌벌 떨어가며 간신히 머리를 들었다. 퉁퉁 부은 눈이 이연우를 보았고, 절실한 목소리가 나왔다.
“극단적인 사람이 조금 있긴 해요. 그런데 차마 진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해요. 그런 짓하면.”
침을 꿀꺽 삼킨다. 눈동자가 아래로 굴러 방바닥을 내려봤다.
“회사 손에 다 죽잖아요. 적대 등급 올라가고, 전담부대 편성되고, 온갖 공작을 당하고.”
“확실합니까?”
“진짜요. 우리는 나약한 집단이잖아요. 위험레벨 6? 그런 것도 없는데, 저희는 진짜 회사랑 등 돌릴 생각 없어요.”
환경운동가 파벌만이 아니라, 녹색협회 자체가 중소집단이다.
정상급 집단으로 인정받으려면, 핵폭탄과 비견되는 위험레벨 6의 이상개체를 지녀야 했으니까.
골드버그 클럽의 황금만능주의나 자유예술가협회의 협회장 같이.
‘위험레벨 6이 없으면 집단을 걸고 이상한 도박은 안 할 거 같긴 한데. 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상황은 어지럽게 돌아갔고, 이연우는 생각을 포기했다. 대충 일하고 빨리 돌아갈 생각뿐.
“녹색교단이나 식물 연금술사는요?”
“그놈들은 진짜 음모를 꾸미고 있어요!”
이채린이 돌연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교단은 녹색협회를 장악-”
“그리고 식물 연금술사는 위험한 나무를 키우고요? 다 들었으니까 이만 나가시고, 다른 사람까지 다 불러주십시오.”
“네. 제발 살려만 주세요. 저희는 진짜, 진짜, 적대집단이 될 만한 짓은 안 해요.”
이채린은 끝까지 울먹이다가, 도망치다시피 방을 벗어났다.
홀로 남은 방에서 이연우는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고는 떠날 준비를 했다.
“들어가겠습니다.”
세 명이 들어왔다. 김포도는 바로 자리에 앉았고, 제임스 박은 한 입도 먹지 않은 과일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며, 이채린은 최대한 이연우에게서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입을 열었다.
“이야기는 다 들으셨을 겁니다. 아마 이놈들 때문에 혼란스러우실 텐데, 감찰을 원하시면 특수조사원님이 지목하는 사람을 데려오고, 공간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럼요. 얼마든지 협조하겠습니다. 뭐 양심에 찔릴 짓을 했어야지. 거짓말이나 일삼는-”
“공정한 판단 부탁드려요!”
귀가 아플 정도로 떠드는 소리들.
이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이야기는 잘 들었고. 제가 할 말은 하나뿐입니다.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이걸로 끝입니까? 바로 가시려고요?”
김포도가 문득 어두운 안색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다른 두 명 또한 그랬다.
그들의 똑 닮은 시선 속에서 이연우는 에코백을 고쳐매며 떠날 의향을 확고하게 보여줬고.
“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세 명이 동시에 말했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안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