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이연우의 동공이 확장되며 빛을 잔뜩 받아들이고, 의식적으로 시야를 넓게 두어 세 명을 한눈에 담았다.
세 명 모두 같은 눈빛, 같은 낯빛, 같은 분위기로 이연우만을 주시했다.
이상한 긴장이 흐르는 초가집. 문득 세찬 바람이 불며 창문이 덜컹거렸고, 꿈에서 깨듯 그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특수조사원님. 아직 조사한 것도 없지 않으십니까. 이대로 돌아가시면 저희들은 불안해서 못 삽니다.”
“맞습니다. 저희는 결백합니다. 며칠 머물며 감사하시죠.”
김포도와 제임스 박은 언제 다퉜냐는 듯 한 목소리를 내었고.
이채린은 다시 엉엉 울며 이연우에게 다가왔다. 이연우의 발을 붙잡고 빌기 위해 쭉 뻗은 손과 절박한 목소리.
“살려주세요! 저희 진짜 아무 잘못도-”
그리고, 이연우는 순식간에 반응했다.
벌떡 일어서 벽에 등이 붙을 정도로 물러나는 것과 에코백에서 권총을 꺼내 이채린의 머리를 겨누는 것이 찰나에 이루어졌다.
철컥-
거무튀튀한 권총이 엎드린 이채린의 뒤통수를 정확히 겨눴다.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
“….”
“….”
“….”
침묵.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김포도와 제임스의 입술이, 이채린의 울먹임이.
오직 이연우만이 눈도 깜빡이지 않으며, 긴장된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 돌아가야겠다면요?”
긴장과 의심과 조금의 희망이 어지럽게 섞인 목소리. 이연우는 마음속으로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지? 아니지? 또 터지는 거 아니지?’
이상세계의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이상할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본능은 이미 망했다며 경종을 땡땡 울리고 있었고, 이연우 또한 상황이 좋게 풀리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과연, 세 사람이 연기를 집어치웠다.
“역시 회사에서 경고하러 나온 사람답습니다. 잔수작은 안 통해요.”
“그래도 당신과 싸울 준비는 했으니.”
“당신 못 나가요.”
돌아가면서 말을 내뱉은 사람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김포도의 녹색 머리가 잔디처럼 흔들리더니 머리에서 꽃이 피고 피부가 나무껍질로 변하였다. 제임스 박은 품에서 민들레를 꺼냈다.
이채린은 느긋하게 일어나, 머리를 쫓아오는 총구를 똑바로 보며 옷자락을 잡았다.
“저희는 세 파벌의 대표로 나온 사람이 아니에요.”
이채린이 윗옷을 거칠게 벗었다. 옷 아래의 복부에는, 얇은 폭발물들이 있었다. 언뜻 보면 두꺼운 내복으로 보이는 폭발물.
김포도가 화사하게 웃었다.
“대표는 맞는데, 협상이 아니라 당신을 상대하러 나온 사람들이지.”
“…돌겠네.”
작정하고 싸우러 온 인간이 셋. 하나하나가 위험하다. 폭탄도 그렇고, 정체 모를 이상異常의 효과도 그렇고.
탈출하자니, 등 뒤는 벽이고 앞은 세 사람이 막았고.
그래도 아직 극한까지 몰리지는 않았다. 협상을 하든, 주사위로 도박을 하든, 지폐를 태우든, 살길은 있다.
이연우는 마른 입술을 한 번 핥았다.
“목적이 뭡니까? 회사한테 등 돌리면서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건 말이죠.”
김포도는 손을 모았다. 그에 따라 초가집의 기둥이, 대들보가, 마루가 뒤틀리며 끼이익 비명을 내질렀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이연우는 주춤 몸을 웅크렸다.
집이 무너질 지경인데도 제임스 박은 평온하게 민들레를 입 앞에 가져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 입김에 날아오르는 민들레 씨앗.
그리고, 세상이 붉게 물들며 이연우의 시간 감각이 늘어지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섬뜩한 한기가 솟구친다.
‘아니, 잠-’
느닷없이 공격이 터져 나온다.
이채린이 입은 폭탄이 불꽃을 일으키며 터지고, 집이 와르르 무너지고, 민들레 씨앗이 증식하며 좁아지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본능이 달아오르기 전에, 상대를 파악하기도 전에, 폭력이 폭발했다.
이연우가 그토록 걱정했던 암살에 가까운 자폭공격.
‘주사위 한 번 구를 시간도 부족-’
죽음이 선명하다. 이연우는 핏발 선 눈을 번들거리며, 느려진 시간 속에서 가까스로 움직였다.
에코백의 입구를 펼쳐 얼굴 앞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를 감싸며 웅크린다.
그뿐이었다.
콰콰콰쾅!
충격파가 내장까지 두드렸다. 무너진 건물의 대들보며 지붕 파편이 머리를 후려쳤다. 민들레 씨앗이 드러난 피부 위에 뿌리를 내렸다.
이연우는 흐려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고.
‘주사위, 죽으면 부활 돌려!’
그대로 까무룩 기절했다.
***
온몸이 아프다. 내장이 울렁거린다. 답답하다. 죽을 것 같다. 이연우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다가, 기억을 떠올렸다.
미친 녹색협회 인간들이 자폭 공격하던 장면. 무너지는 집과 터지는 폭발과 피부에 뿌리내린 민들레 씨앗.
‘살았, 나.’
진짜 아파서 죽을 것 같지만, 일단 살아 있다. 확률을 헤아리는 감각이 없는 걸 보아, 애초에 안 죽은 모양이다.
어질어질한 혼란과 흐릿한 의식이 생존본능에 밀려났다. 사고가 흐른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는 거지. 답답한 게 묶여 있는 것 같긴 한데.’
이연우가 눈을 살짝 떴다. 겉에서 보면 여전히 감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가늘게 뜬 눈. 좁은 시야는 새로운 장소를 흐릿하게 비추었다.
지하의 토굴.
태양을 닮은 노란 조명이 환하게 들어온 지하. 딱 봐도 회사는 아니다.
이연우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니, 몸을 꽁꽁 묶은 나무뿌리와 쇠사슬과 철선에 연결된 부비트랩 따위가 보였다.
심지어 부비트랩이 하나도 아니고, 종류도 다 다르다. 정석적인 폭발물부터 폭탄처럼 생긴 과일까지.
‘진짜 미친 인간들, 내가 진짜, 아냐. 아냐. 우선 빠져나가야지. 살아야지.’
이연우는 솟구치는 분노를 애써 억눌렀다. 당장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다 터트리고 싶지만, 일단은 탈출부터 해야지.
‘도박이지만, 주사위로 이동을 굴려야겠어.’
대실패가 떠봤자, 위험한 이차원으로 이동될 뿐이다. 지금처럼 강제로 잡힌 상황보다는 낫다는 말이다.
그렇게 이연우가 주사위를 부르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김포도의 지친 목소리가.
“도망칠 생각은 마시죠. 당신 몸에 씨앗을 심었거든요. 어디든 이동하는 순간 씨앗이 당신을 비료 삼아 자라날 겁니다. 당신 죽는다고요.”
깨어난 걸 들켰다. 이동도 사전에 차단됐다. 엄중하게 격리된 이상개체에 가까운 취급이다.
이연우는 더는 연기하지 않고 눈을 떴다. 질척하게 가라앉은 눈동자가 김포도를 보았다.
몸이 엉망인 김포도가 이연우 앞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이렇게 빨리 깨어날 줄은 몰랐는데. 몸도 평범한 인간 수준이 아니네요?”
“….”
“아, 그렇다고 저한테 뭘 굴릴 생각은 마시고요. 저한테 무슨 일 생기면 그 부비트랩 터집니다. 제가 잠들거나 설득되더라도요.”
완전히 파악당해서 약점만 찔린 느낌. 습격당했고, 몸은 묶였고, 지금껏 썼던 주사위 판정은 상대가 대비했다.
하지만 무력감이나 절망을 느끼기에는, 이연우는 그런 인간이 아니었다.
‘상관없어.’
어떻게든 살길을 찾는다.
생존본능이 꿈틀대고, 기이한 감각이 곤두선다. 머리가 맑아졌으며, 사고가 확장되고 고속으로 흘렀다.
이연우가 문득 말했다.
“내 정보. 지나칠 정도로 잘 아는데.”
존대는 때려치웠다. 예의를 차릴 기분이 아니다.
“그렇죠. 골드버그 클럽에 황금을 잔뜩 지불해가며 샀으니까요. 당신이 쓴 보고서, 회사가 보관하는 영상자료, 잠도 안 자고 뜯어보면서 준비했습니다.”
주사위가 너무 만능이라 어려운 일이었다고, 이연우가 오기로 정해진 날부터 짧은 시간 동안 힘들었다고, 김포도가 탄식했다.
이연우 또한 상황을 파악했다.
‘전담부대….’
이들은 오직 이연우만을 위해 준비된 전담부대였다. 주사위의 딜레이를 노리는 동시공격, 이상할 정도로 예민한 생존본능을 경계한 기습, 이연우를 상대하기 위한 함정.
이들은 이연우 자신보다 이연우의 위험성을 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죽이지 않고 살려둔 이유는.
‘나한테, 혹은 주사위한테 원하는 게 있어.’
그러면 이용할 수 있다.
“일단 이채린과 제임스 박이 다시 열릴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대화나 합시다. 저기 나무 보이시나요?”
김포도의 손짓에 따라 이연우가 빡빡하게 묶인 목을 간신히 돌렸다.
조명이 따스한 그곳에는 사람이 열리는 나무가 있었다. 폭탄을 터트린 이채린과 제임스 박이 열매처럼 몸을 웅크리고 매달려 있다.
“녹색협회의 핵심개체인 하나의 나무입니다. 지부마다 하나씩 있죠. 우리가 파벌끼리 그렇게 싸워도 갈라지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는 가족. 하나의 나무로 이어진 정신.
김포도가 답답하게 묶인 이연우를 보았다.
“당신도 저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회사는 그만두고 우리 쪽으로 넘어오세요. 우리 가족이 되면,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이제 와서 설득이다. 이연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못 믿지.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연우는 가만히 주사위를 불렀다. 차라리 정보를 얻자.
‘뭘 굴릴까. 그래, 저 나무에 자연발화가 좋겠어.’
데구르르-
성공!
그때였다.
김포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나의 나무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 불이 날 이유가 전혀 없는데. 하나의 나무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의 귀에 이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이 났네?”
“당신!”
김포도가 벌떡 일어나 이연우를 노려봤다. 이연우의 주사위가 아니고서는 불이 날 리가 없으니까.
분노 섞인 시선에도 이연우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김포도의 얼굴을 주시했다.
김포도의 감정, 표정을 인지한다.
“안 가봐도 괜찮을까?”
“…내가 자리를 비우면 당신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어차피 다른 가족들이 끌 겁니다!”
나무 바로 옆에 소화기가 널려 있는데도, 김포도는 이연우를 감시하는 쪽을 택했다.
‘핵심개체의 피해보다 나를 감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그렇다면, 핵심개체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바란다는 뜻이리라.
이연우의 두뇌 속에서 번개가 스쳤다. 번개가 구불구불하게 내리쳤다. 지금껏 듣고 보았던 정보와 단편적인 단서를 꿰뚫으며.
‘핵심개체보다 중요한 무언가. 회사를 적대할 만한 무언가. 나에게 바라는 무언가. 회사가 내게 조사하라고 말한 나무.’
모든 것이 이어진다. 이연우가 문득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위대한 나무? 위험레벨 6이겠지. 주사위로 그걸 키울 생각이구나?”
위험레벨 6.
핵폭탄의 존재와 비견되는, 핵폭탄 하나가 아니라 핵폭탄으로 인해 초래되는 핵전쟁의 위험성을 내포하는 개체.
회사와 대등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
‘이건 도대체.’
김포도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려서가 아니라, 이연우 때문에. 엄중하게 속박되고, 씨앗까지 심어진 이연우 때문에.
전쟁터에서 나무를 키우면 죽을 게 뻔해, 이연우 하나를 이용하는 게, 주사위의 확률에 기대는 게 더 가능성 높다고 생각했는데.
이연우가 웃었다.
“내가 당신들 협박할 수 있어 보이는데.”
이연우는 속삭이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죽어도 부활할 수 있지만, 당신들은 이번 기회로 끝이잖아.”
나무를 키우지 못하면 회사가 녹색협회를 해체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