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24)화 (124/194)

나무

많은 중소집단은 자그마한 소망이 있었다.

통제되고, 위험이나 대가가 감당 가능하고, 우리 집단의 컨셉에 맞는 위험레벨 6의 이상개체를 가지고 싶다!

그런 점에서, 녹색협회는 운이 좋았다.

조건에 맞는 위대한 나무의 씨앗을 구했으니까. 그 위대한 나무를 싹 틔울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녹색협회는 운이 없었다.

그 기회란 것이 이연우라서.

‘완전히 구속했어. 이연우가 쓴 판정은 전부 대비했어. 목숨도 우리 손아귀에 있고. 그런데….’

김포도가 꿀꺽 침을 삼켰다. 그는 이연우를 보았다.

이상개체와 아날로그와 전자기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꽁꽁 묶이고, 목숨을 위협받고, 감시당하고 있는 이연우는 얼굴만이 빼꼼 나왔다.

그 무력한 상황에서, 이연우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되찾았다.

기세나 논리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쩌면 애초에 죽지 않을지도 모르지.”

이연우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감각이 육신의 한계를 벗어났다. 벌레의 더듬이 같이 삐죽 솟아, 성공하기 쉬운 판정을 찾는다.

‘주사위.’

이연우의 어두운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는 듯했다.

확률이었다. 가능성이었다. 이연우가 판정을 굴릴 때마다 주사위를 중심으로 꿈틀거리는 확률. 머릿속에서 주사위가 굴렀다.

데구르르-

한순간에 꿈틀거리는 확률이 멈췄다. 하나의 가능성이 현실로 끌어내려졌다.

성공!

폭탄처럼 생긴 과일이 갑자기 말라붙었다. 과일 건조기에 한참 돌린 것처럼 수분과 생기를 잃고, 숨이 죽었다.

‘남은 부비트랩은 둘.’

하나는 폭발물이고, 하나는 이상한 액체가 담긴 양동이다. 이연우가 구속에서 벗어나는 순간, 연결된 끈이 끊어지는 순간, 화약이 폭발하고 독극물이 쏟아지는 구조.

‘어떻게 처리할까. 이동? 아냐, 실패할 거 같아. 양동이 파괴? 이것도 실패할 느낌이야.’

이연우의 감각이 바쁘게 까딱이는 그쯤에서 김포도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안 돼! 이대로 끌려가면 안 된다!’

하나의 나무로 이어진 정신들이 그를 돕는다. 그가 손을 모으며, 무슨 단추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그만! 헛짓거리하면 바로 터트리겠습니다!”

“터트려봐.”

“당신 몸에 심은 씨앗도 동시에 자랄 겁니다! 당신은 못 막아요! 목숨이 아깝다면-”

“터트리라고.”

이연우는 입가에 비웃음을 걸었다.

위대한 나무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키울 기회를 이렇게 포기할까?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무를 키우지 못하면 망하는 미래밖에 안 남는데?

‘못 터트리지.’

생각과 감각이 이끌어낸 묘한 확신.

과연 김포도는 돌아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든 이연우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가 두 손을 꽉 모았다.

으득, 으지직-

이연우를 묶은 나무뿌리 중 일부분이 꽈아악 조여들었다. 그 압박감. 뼈가 구부러지다 못해 균열이 생기는 감각.

김포도는 살벌하게 말했다.

“부활. 주사위겠죠. 실패할 확률이, 죽을 확률이 높은 일을 당신이 저지를 리가 없어요.”

생존주의자가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리가 없다. 허세다. 주도권을 가져가고, 살길을 찾는 허세다.

둘 다 공멸하는 끝으로 달려 나갈 리가 없다.

“주사위 더는 굴리지 마세요. 폭발물, 양동이, 나무뿌리, 씨앗, 이 중 하나라도 더 건드리면 같이 죽는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강 대 강으로 부딪치면 살짝 불리한 것도 사실이라, 김포도가 뒤로 물러났다. 꽉 잡았던 손이 떨어지고, 뿌리가 압박을 멈췄다.

“순순히 협력한다면 당연히 살려드리겠습니다. 씨앗은 빼낼 것이고, 부상도 다 치료해드릴 겁니다.”

나무만 키운다면 뭐가 두려울까. 이연우의 주사위는 위험하지만 양날의 칼이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자신을 위험에 던지는 일은 없을-

그때 침묵하고 있던 이연우가 웃었다.

“나한테 시간을 너무 많이 줬어.”

주사위를 충분히 굴릴 시간을 주었다. 남들의 말뿐인 약속을 믿지 않고, 스스로 살길을 찾아 걸을 시간을.

대화하는 동안 주사위가 구르고 구르고 굴렀다.

폭발물의 신관이 고장 났고, 양동이를 밀어낼 용수철은 녹슬어서 망가졌고, 몸에 심어진 씨앗은 불량품이 되었다.

이제 그를 위협하는 것은 나무뿌리뿐.

그리고, 마지막 나무뿌리마저 갑자기 제멋대로 움직이며 흙바닥 아래로 돌아갔다.

“안 돼!”

김포도는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확실하게 위협해야 한다. 그가 합장하자 이연우의 몸에 심은 씨앗이 꿈틀거렸다.

이연우가 기절한 사이 삼킨 씨앗은 뿌리를 뻗었다. 위장의 벽으로, 내장으로. 사람을 양분 삼아 자라기 위해. 그리하여 사람 안에서 자라나는 꽃은.

‘…뭐지? 왜 안 자라지?’

꽃이 자라지 않는다. 결함품이었다. 뿌리 조금 뻗고 힘이 다했다. 이대로는 그냥 이연우의 뱃속에서 소화된다.

“빌어먹을 연금술사!”

분명 가장 확실한 물건을 준비하라고 했는데!

이럴 시간이 없다. 이연우를 묶어둔 쇠사슬의 고리 하나가 부서지더니, 철컹철컹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저것의 구속이 풀리고 있다. 저것을 협박할 수 없다. 저것을 이용할 수 없다.

‘계획은 망했어. 저것이라도 죽여야 해! 그리고 다들 도주해야 해!’

희미하게 연결된 정신으로 경보를 보내고, 김포도는 곧장 버튼을 눌렀다. 폭발물을 격발하는 버튼이 꾹 눌리고.

틱.

힘없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도 망가졌다고? 언제?”

김포도는 폭발물을 망연히 보다가, 깨달았다. 망가진 게 아니다. 씨앗이 결함품이 아니다.

이연우가 한 것이다. 주사위가 구른 것이다.

김포도는 멍하니 양동이를 보았다. 이연우가 구속에서 풀려나며 끈이 당겨졌는데도, 양동이를 쏘아 보내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김포도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향했다.

한 번 몸수색을 마쳤는데도, 이연우가 옷 어딘가에 숨긴 라이터와 지폐가 나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행운이 그를 축복하는 듯했다.

우연히 삼킨 씨앗이 결함품이고, 폭발물이며 기관장치가 망가지고, 쇠사슬이 부서진 것을 말하는 것을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지? 오염? 짧은 시간에 이 정도 수준까지 오염될 리가 없는데?”

여러 판정을 굴리면 몇 개는 실패하기 마련인데. 성공할 때까지 굴릴 정도로 긴 시간을 준 것도 아닌데.

하지만 이연우는 답하지 않았다.

‘성공할 거 같은 판정이 느껴져. 정보가 유출되면 진짜 불리해.’

전담부대의 쓴맛을 보았다. 솔직히 이들이 자신을 생포할 생각이 아니었으면, 오로지 죽일 생각이었으면 그 초가집에서 죽었다.

화르륵, 지폐가 불타고, 저들이 압수한 에코백과 핸드폰과 권총이 발 앞에 놓였다.

이연우는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챙기며 눈살을 찌푸렸다. 권총의 무게가 가볍다. 평범한 총탄이 빠졌다.

‘지폐도 이상개체라 평범한 총탄은 못 가져왔나.’

아깝지만 그걸 찾을 시간은 없다.

이연우는 재빠르게 에코백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다시 불을 붙였다. 목표는 도주.

“나는 갑니다. 어디 회사가 얼마나 화낼지 기대하세요.”

이놈들하고는 더 엮이기도 싫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건 또 처음인데.

복수? 회사에 이르면 알아서 해줄 것이다.

“잠깐! 협상! 협상합시다! 돈이든, 이상개체든 협상-”

김포도가 다급하고 절실하게 이연우에게 다가오지만, 지폐 다발이 전부 탔다. 이연우가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사라졌다.

김포도는 절망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뒤늦게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다가온 가족들을 향해 소리친다.

“도주한다! 바로 도주해!”

***

사라진 이연우는 산자락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어디지? 아니, 그보다는 먼저.’

마크 정에게 전화를 건다. 마크 정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이연우 님? 무슨 일입니까? 운전한 친구랑 당신이랑 다 연락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녹색협회가-”

이연우는 따박따박 중점만 요약해 말했다. 그들이 위험레벨 6의 나무를 키우려고 한다고. 전쟁터 대신 자신을 선택해서 습격받았다고.

이연우는 기대했다. 이렇게 말했으니, 본사든 한국지사든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자그마치 위험레벨 6 아닌가.

하지만 마크 정은 담담하게 말했다.

- 그럼 일단 나무는 망했군요. 전쟁터에서 키우는 방법만 남았을 텐데,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없애버리겠습니다. 다 자라게 둘 수는 없죠.

“…지금 바로 보복 안 하십니까?”

이연우의 실망한 목소리에 마크 정은 난처한 듯 말을 끌었다.

- 그게, 지금 전쟁 준비가 한창이라 본사는 여력을 낭비하기가 좀.

“한국지사는요? 특전대 있지 않습니까?”

- 출동하고 도착하는 시간 생각하면 이미 다 도망치지 않았을까요. 일단 출동 요청은 해보겠습니다.

실망스럽다. 다 때려 부숴줄 줄 알았는데.

하지만 회사의 상황이 상황이라, 이연우는 이해하며 복수심을 누르고, 이야기를 돌렸다.

“어쨌든 저 부상이 심각합니다. 폭탄 맞고, 집 무너져서 깔리고, 뼈 부러지고. 의료지원이든 뭐든 보내주십시오.”

고통이 슬슬 올라오는 느낌. 그 목소리에 마크 정이 깜짝 놀랐다.

- 그 정도로 다치셨다고요? 아니, 어떻게. 현재위치는 어디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산이긴 한데, 지폐 태워서 도망쳐서.”

- 그러면 핸드폰 위치추적해서 보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십시오. 헬기가 갈 겁니다.

슬슬 연락을 끊을 즈음.

이연우가 문득 생각난 것을 말했다. 그가 유일하게 회수하지 못한 것.

“맞다. 저 평범한 총탄 잃어버렸습니다. 지폐로 못 찾아서 그냥 빼앗긴 채로 도망-”

- 뭐, 뭘 잃어버렸다고요?

마크 정의 목소리가 뒤집어졌다. 우당탕, 뭐가 넘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연우는 의아한 표정으로 답했다.

“평범한 총탄이요. 이놈들이 저 기절한 사이에 압수했습니다.”

그냥 회사의 이상장비 중 하나 아닌가?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하지만 마크 정은 숨이 넘어가려고 했다.

- 그거 넘어가면, 아니, 거기 어디, 어디입니까!

“저 모른다고 방금-”

- 아! 그러면 이게, 일단! 거기 산에서 빨리 내려오십시오!

그리고는 전화를 휙 끊었다.

이연우는 돌연 엄습하는 불안한 느낌에 다시 지폐 다발을 태워 산에서 멀리 도망쳤고.

몇 분 후, 하늘 끝에서 유성이 떨어졌다.

위성이다. 인공위성에서 떨어진 것이다. 작은 별처럼 빛나며 추락한 그것은 충격파 없이 산을 둘러싸듯 내리꽂히더니, 투명한 역장을 만들어 산을 격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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