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의료 헬기는 금방 왔다. 이연우의 머리 위에서 멈춘 헬기가 들것과 사람 하나를 내렸고, 이연우는 들것에 실려 천천히 날아갔다.
산이 멀어질 때까지 이연우는 멍하니 산을 보았다.
투명한 역장에 격리된 산. 근처의 군부대와 경찰이 개미처럼 움직여 산 주변의 통행을 통제했다.
또한 안전문자가 날아왔다. 무슨 우주 쓰레기가 추락했다고.
이연우는 눈을 깜빡였다.
‘우주 쓰레기는 아닌데. 위성무기? 궤도폭격? 공간격리?’
회사라면 쓸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위대한 나무도 뒤로 미루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고작 총탄 하나 때문에?
‘그게 뭐길래.’
신기하고 대단하긴 하지만, 저렇게까지 회수할 무기는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탈출했으면 됐지.’
이제 안전해졌다는 느낌에 머리가 둔하게 느려졌고, 아드레날린을 비롯한 호르몬이 멎어가며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연우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렸다. 입이 벌어지고 침이 흘렀다.
“아, 아악!”
“움직이지 마십시오! 부상 심해집니다!”
“끄윽, 아프, 아프다고요! 살려주세요! 아아악!”
“안 죽-”
구급대원이 뭐라고 말하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뱃속은 꿀렁거렸고, 온몸에서 고통의 번개가 날뛰며 전신을 지지고 있고, 머리는 고통으로 꽉 차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다가, 까맣게 꺼졌다. 의식이 어둠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1인용 병실 안이었다.
무슨 진통제를 맞았는지, 감각이 둔하고 의식이 흐릿하다. 이연우는 멍하니 천장을 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몸을 뒤척였다.
붕대와 깁스 같은 것으로 둘둘 말린 몸이 갑갑하게 움직인다.
그때, 타다다닥, 키보드를 연타하는 소리가 멈췄다. 또한 작게 대화하던 목소리들도 멈추고, 시선 두 개가 느껴졌다.
“연우야, 일어났냐.”
반장이다. 그리고 마크 정이다.
반장은 평소 같은 표정이었고, 마크 정은 한참을 시달린 사람처럼 초췌한 얼굴이었다. 반장이 말했다.
“너 이번에 죽을 뻔했다.”
“아니,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진짜 치명상이었으면 녹색협회가 치료했을 겁니다. 어쨌든 주사위를 바로 쓰려면 이연우 씨가-”
마크 정은 변명하듯 말하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연우가 데굴 굴린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연우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회사원에게 이런 일은 일상이니, 뭐라 따지거나 불평할 생각은 없다. 또한 다소의 위험은 입사하는 날부터 각오했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만드는 것.
이연우가 말했다.
“제 정보가 유출됐습니다. 그 정보를 분석해서 제 약점을 노렸습니다.”
“전담부대처럼 말입니까? 하지만 이연우 씨의 정보는 보안처리가 됐는데.”
식물이나 키우는 녹색협회가 얻을 정보가 아니라고, 마크 정이 눈살을 찌푸린다. 거기에 이연우는 설명을 더했다.
“골드버그 클럽에 황금을 내고 정보를 샀다고 합니다.”
이연우의 목소리에 끈적한 열기가 타올랐다. 돈을 빼간 클럽, 정보를 유출한 클럽. 돈이야 적당히 기회가 되면 되찾을 생각이어도, 정보는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그의 정보는 당장 목숨을 위협하는 칼로 벼려지니까.
“클럽.”
“염병할 놈들. 그놈들은 돈이라면 가리는 게 없어.”
두 사람의 반응은 무시하고, 이연우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클럽이든 뭐든, 제 정보를 완전히 감출 수 있습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단호한 대답.
이연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가 생각해도 이건 불가능해 보였다.
‘세상에 이상개체가 몇 개인데.’
서로 다른 현상을 일으키는 이상개체로 이루어지는 정보공격을 어떻게 모조리 막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이연우는 다른 방법을 떠올렸다.
“그러면 클럽한테 가장 중요한 자원이 뭡니까? 그놈들한테 뭐가 중요합니까?”
정보를 팔 수 없게 만들면 된다. 정보를 팔아서 얻을 이득보다 손해가 크면, 누가 감히 정보를 팔까?
마크 정이 대답했다.
“사회에 통용되는 모든 종류의 자산입니다. 화폐, 주식, 부동산, 인적 자산, 노동. 가장 중요한 건 황금이지만요.”
이연우가 눈을 감았다. 정신 한편의 주사위가 느껴진다. 그조차도 한계를 모르는 주사위.
‘골드버그 클럽을 건드리는 김에 한계를 시험해봐야겠어.’
주사위의 범위는 어디까지 가능한가. 어느 정도 판정까지 가능한가. 어느 정도의 원거리에서 사업장을 건드릴 수 있나 같은 것.
그쯤에서 반장이 손을 내저었다.
“그게 지금 생각할 문제냐. 일단 푹 쉬어라, 어. 몸부터 회복해야지.”
“아. 알겠습니다.”
“밥 잘 먹고. 잘 자고. 아무튼 나는 이제 간다. 다음에 지유랑 재민이랑 오마.”
살았으면 됐다는 듯, 반장이 훌쩍 떠났다.
마크 정은 그가 떠나자 한숨을 내쉬고는, 이연우를 보았다.
“이연우 님이 기절한 사이, 녹색협회에 조치를 취했습니다. 위대한 나무의 씨앗을 압수했고, 그들은 전쟁에 전부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총탄을 잃어버렸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숨 가쁘게 행동한 결과.
이연우가 납치됐던 산을 격리하고 녹색협회를 잡아들인 후, 수색하고 수색하고 수색했다. 가장 중요한 평범한 총탄을 회수하기 위해.
“총탄도 간신히 회수했습니다.”
그 목소리에 고생이 절절하게 묻었다. 그도 나가서 총알 찾기에 동참했다.
녹색협회가 치를 대가에 만족하던 이연우가 의아한 감정을 품었다.
“평범한 총탄이 뭐길래 위성무기? 그런 거까지 쓸 정도로 반응한 겁니까?”
이상무시가 대단하지만, 방탄복만 입어도 막을 수 있는데.
“그건,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마크 정은 말을 골랐다. 감출 정보는 없다. 이미 평범한 총탄을 넘겨줬는데.
오히려 정보를 다 주지 않아 일이 이렇게 됐다.
곰곰이 생각하던 마크 정이 말했다.
“회사가 말입니다. 오직 이상異常만 배제하는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이상異常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겠다는 회사가요. 이게 다른 집단에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그리고,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마크 정의 질문에 이연우는 탁한 머리를 힘겹게 굴렸고, 고심 끝에 대답을 돌려줬다.
“회사가 또 이상한 무기를 만들었구나?”
“아닙니다. 회사가 꿈꾸는 세상에는, 회사가 목표로 하는 세상에는 이상異常이 없구나. 저들은 끝내 우리를 모두 지울 생각이구나. 그럴 힘을 계속 연구해 만들어냈구나.”
이연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슬슬 뭔가 위험하겠구나, 직감이 든다.
“그때는 규칙도, 최후의 선도 없는 전쟁입니다. 세상이 회사와 회사가 아닌 자들로 나뉘어, 한쪽이 멸망할 때까지 싸울 겁니다.”
지금 예정된 전쟁과는 다르다.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지구는 건드리지 않았으며, 서로 정정당당하게 전면에서 싸우는 전쟁. 차라리 구시대적인 결투에 가까운 것.
그것이 생사를 건 멸망전이 된다면.
“큰일 날 뻔했네요.”
이연우가 손끝을 떨었다.
일이 잘못됐으면, 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같던 사라예보의 총성을 자신이 울릴 뻔했던 것 아닌가.
마크 정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진짜 이건 잃어버리면 안 됐습니다. 반드시 회수했어야 해요. 처음부터 경고하지 않았던 제 잘못이 크지만요….”
설마 이연우가 잃어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대충 넘겨준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 때문에 이사님한테, 아….”
마크 정은 지친 눈으로 허공을 보았다. 예전에 신입 시절에 큰 사고를 친 적을 제외하면, 이렇게 탈탈 털린 적이 없는데.
이연우가 슬며시 눈치를 살폈다. 일의 심각성은 깨달았다.
“그, 저는 어떤 징계를 받는지…?”
“퇴원한 뒤에 시말서 하나만 쓰십시오. 회복력이 굉장히 좋으셔서 몇 주면 털고 일어나실 겁니다.”
빗물에 대해 캐묻지 않는다. 징계도 굉장히 가볍다.
안도하는 이연우를 뒤로하고 마크 정이 노트북을 닫았다.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아, 회수한 평범한 총탄은-”
“됐습니다. 저는 그런 거 책임지기 싫어서. 그보다는.”
평범한 총탄은 돌려준다. 이연우는 진심으로 그런 멸망전의 시발점 같은 것과 엮이기 싫었고, 지금은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이연우가 마크 정을 보았다.
“골드버그 클럽 정보 주십시오. 주식이나 작업장과 창고 위치로요. 그리고, 주사위에 대해 추측한 보고서도요.”
아무리 이연우가 회사원이더라도 회사는 이연우의 주사위를 분석했을 것이다. 이연우가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마크 정이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자료 모아오려면 며칠 걸릴 겁니다. 쉬십시오.”
***
입원하니 시간이 남아돈다.
1인용 병실은 밖에서 돌아다니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적막하고, 허여멀건한 색감과 맛없는 병원 밥 때문에 시간이 지독하게 안 갔다.
이연우는 병문안을 온 유지유와 최재민을 맞이할 때를 빼면 혼자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냈지만, 그마저도 질렸다.
이연우는 핸드폰을 매만졌다.
‘할 게 없네. 엄마랑 아빠한테 연락하긴 좀 그런데.’
일하다가 죽을 뻔한 사고를 겪었다고 연락하자니, 마음에 걸린다. 안 그래도 눈치가 빠른 엄마라면 바로 문제를 알아차릴 것이다.
이연우는 통화는 포기하고, 노트북을 꺼냈다.
“오랜만에 게임이나 할까.”
시간을 잘 보낼만한 게임을 찾다가, 눈을 끄는 게임 하나를 찾았다.
[아카데미 서바이벌]
- 멸망이 다가오는 세상의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매력적인 조연들과 멸망을 막아보세요!
- 최후의 플레이어 한 분은 게임 속 세상으로 빙의시켜 드립니다!
빙의시켜주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멘트.
이연우는 흘려넘겼고, 마우스가 바쁘게 움직였다. 홍보 영상을 보니, 게임성은 몰라도 일러스트가 굉장히 아름답다.
‘해볼까?’
이연우는 마지막으로 플레이어의 평가를 찾았다. 망겜, 이게 게임이냐, 클리어한 사람이 없다, 절대 하지 말라는 평가들.
이연우가 고민하는 순간.
게임이 사라졌다.
애초에 없었다는 것처럼 페이지 자체가 사라졌다. 대신 떠오르는 것은 짧은 공지와 전화번호.
[게임에 문제가 발견되어 임시로 내렸습니다. 플레이하신 게이머 여러분은 이곳으로 전화해주십시오.]
기묘한 게임과 비정상적인 차단.
이연우는 미묘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 예, 아카데미 서바이벌입니다. 혹시 게임을 플레이하셨나요?
“아뇨. 다운로드하려다가 페이지가 사라져서요.”
- 그러셨군요. 지금 오류를 수정 중인데, 언제 끝날지 몰라서, 구입하셨다면 우선 환불을….
그때였다. 타닥타닥, 타자를 치는 소리가 멎었다.
상대는 전화를 걸어온 플레이어의 번호를 추적하다가 그 신상을 보았다.
- 어. 조사원이셨네요. 조사 안 하셔도 됩니다. 저희 부서에서 움직였습니다.
“역시. 이게 이상개체였습니까?”
- 예, 뭐. 플레이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최후의 플레이어는 빙의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들고, 자기가 최후의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다른 플레이어 찾아서 죽이게 만드는 개체입니다.
이 게임을 담당한 회사원은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잠적한 몇 빼면 다 찾아서. 수고하세요.
“예.”
이연우는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과 노트북을 애매한 표정으로 보았다.
‘진짜 세상이 뭔….’
게임 하나도 마음 놓고 못 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