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26)화 (126/194)

입원

잘 먹고 잘 쉬다 보니 몸이 꽤나 회복됐다. 이연우는 병상에서 내려와 슬슬 몸을 풀었다. 굳은 관절을 빙빙 돌리고, 팔과 다리를 쭉쭉 펴고.

병실로 들어오는 햇빛에 이연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제 슬슬 클럽을 건드려도 될 것 같아.’

진통제의 부작용도 없다. 졸음에 취하던 머리는 맑아졌고, 사고는 부드럽게 흘렀다.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어도, 상당히 돌아왔다.

계획 또한 나름대로 세웠다.

‘내 정보를 판 인간. 그 인간만 건든다.’

아마 자기만의 사업을 운영하는 고위회원일 것이다. 그 인간의 모든 사업을 주사위로 건드린다. 정확히는 주사위의 실험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이연우가 힐긋 병실 문을 보았다.

‘이제 마크 정이 정보만 가져오면 되는데.’

그동안 통화로 계획을 말하고, 서로 머리를 모아 그럴듯하게 다듬었으며, 필요한 정보를 마크 정이 수집해서 온다고 했다.

“올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접니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평소에는 벌컥 들어오던 마크 정이 문밖에서 불편한 목소리를 내었다.

“손님 한 분 계시는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손님이요?”

이연우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다가, 직접 움직여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마크 정과, 웬 노인 하나가 있었다.

마크 정은 피곤에 절은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고, 노인은 고급스러운 지팡이로 딱딱 바닥을 짚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이연우는 얼떨결에 물러났다가, 마크 정을 보았다. 저게 누구냐고.

“골드버그 클럽. 한국을 담당하는 클럽장입니다. 선생님, 이쪽이 그 특수조사원 이연우입니다.”

“음, 그래. 정보로 본 그대로군.”

마크 정이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

이연우는 기겁했다. 갑자기 클럽장이?

행동은 빨랐다. 에코백에서 돌을 꺼내 쥐고, 권총을 꺼낸다. 그 찰나가 지나간 후에도 이연우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손에 권총을 쥐고, 언제든 지폐를 태울 준비를 갖춘다.

‘선공 당하면 답이 없다!’

녹색협회한테 뼈저리게 배운 교훈.

마크 정도 뭔가에 당했다고 가정하는 그때였다. 이연우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리기 무섭게, 노인이 한 손을 치켜들었다.

“항복. 싸우러 온 게 아니야.”

“못 믿습니다.”

“음.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데.”

노인은 사람 보기를 돌같이 하는 돌을 쥔 이연우를 찾아 허공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는 정확히 이연우를 찾았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눈이 이연우를 본다.

“정말로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애초에 클럽의 공격은 이렇게 이루어지지 않아.”

“이연우 님. 협상을 위해 온 사람입니다. 그 정보를 판 인간의 대리인이자 클럽의 대표로서요.”

마크 정은 이연우를 찾아 고개를 휙휙 돌렸고.

이연우는 노인과 눈싸움을 하다가, 천천히 물러났다. 병실의 문밖으로.

“통화로 합시다.”

“안 되지. 계약서에 서명하려면 본인이 있어야 해.”

“계약이 뭔지는 몰라도-”

“자네 정보 안 팔겠다는 계약이야.”

이연우의 걸음이 멈췄다. 이연우는 고민했다.

‘한국지부 클럽장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뭔가 수상하고,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무리 유혹적인 제안이어도, 상대는 그 클럽이 아닌가. 자본주의의 화신 같은 것.

철컥-

이연우가 총을 고쳐잡았다.

“그래서 클럽이 얻는 이익은 뭡니까?”

“주사위에 제약을 걸려고 하네.”

노인은 태연하게 말했고, 이연우와 마크 정이 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본사의 조율자로 말하는데 협상은 없던 일로-”

그 순간이었다. 노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꽝, 내리찍었다. 그 쩌렁쩌렁한 소리.

마크 정과 이연우가 입을 다물었고, 노인은 평온하게 말했다.

“젊은 친구들. 계약 내용은 듣고 말하지? 성격이 급해도 너무 급한 것 아닌가.”

이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상대가 노인이고 또 클럽장이라 존중했지만, 이 이상은 끌려갈 생각이 없다.

주사위의 유용함을 제약한다?

“계약이 뭐든 제약은 말이 안 됩니다.”

“1조를 줘도? 달러로 말이야.”

이연우의 머리가 순간 멈췄다. 1조 달러? 원으로 환산하면 얼마지? 어마어마할 텐데? 이 정도면 이야기는 당연히 들어야….

노인은 갑자기 껄껄 웃으며, 이연우의 병상에 앉았다. 무릎을 툭툭 두드린다.

“농담이야.”

“아니, 선생님. 본사와 클럽이 협상하는 자리인데.”

이연우와 마크 정은 황당한 눈초리로 노인을 보았다. 명성 높은 한국의 클럽장이라는 인간이.

노인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이 여유가 없어. 그래, 이야기를 들을 준비는 됐나? 어쨌든 제약과 같은 값을 지불할 생각이거든.”

진심으로 협상할 생각으로 온 모양이다.

이연우가 조심스럽게 에코백에 손을 넣었다. 돌은 놓았지만 여차하면 바로 쥘 수 있게끔.

“계약 내용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솔직하게 말하지. 클럽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주기적으로 위기를 감지하네. 미래를 엿본다고 해도 상관없어.”

노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이연우가 받은 병문안 선물인 포도를 뚝 따먹었다.

뺏어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면서.

그냥 돈 받고 대리인으로 나온 자리인지라,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경제적 위기를 감지했어. 대공황이었지. 세계 경제가 주저앉고, 모든 값어치 있는 것들이 지푸라기처럼 변했지. 그 이유가 뭔지 아나?”

“설마….”

마크 정이 의심스럽게 이연우를 본다.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알아챘다.

‘나 때문이라고? 대공황이 왜 나 때문. 아, 대실패나 대성공 뜨면….’

주사위로 공격하다가 결과가 잘못 나오면, 그게 겹치면 가능해 보이기는 하는데.

노인이 지팡이로 이연우를 가리켰고, 이연우는 지팡이 끝을 피해 슬며시 옆으로 움직였다.

“경계심 한 번 참. 좋군. 어쨌든, 우리는 황금을 소모해가며 알아봤고, 상황을 파악했네. 그 정보상 놈하고 자네. 그래서 내가 온 거지.”

노인이 지팡이를 내렸다. 병상에 비스듬히 걸친 지팡이.

대신 품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계약은 간단해. 그쪽 특수조사원은 세계적 경제 문제를 야기할 목적으로 주사위를 굴리지 않는다. 골드버그 클럽은 특수조사원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어떤가?”

계약서를 본 이연우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썩 나쁜 제안은 아니다. 그가 대공황을 일으켜달라고 굴릴 일은 없다. 대공황은 그도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하지 않을 행동의 대가로 클럽의 정보유출을 막으면 이득 아닐까.

거기에, 노인이 말을 더했다.

“우리는 적이 아니지. 적을 만들면 손해만 보지 않나. 클럽은 공존을 원해. 생각해보게.”

이연우가 슬쩍 눈을 굴리니, 노인이 지팡이 끝으로 선을 마구 긋는 행동이 보였다.

“모든 집단이 이익으로 얽히면. 공존이 이익이라면. 누가 싸우려고 하겠나? 그런 평화야말로 클럽의 목표야.”

이연우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평화? 공존? 말은 좋다.

“그건 관심 없습니다. 클럽에서 유출한 정보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정보상 놈은 개인이야. 클럽의 의지를 대표하지는 못하지. 그러니 그 정보상은 클럽의 규칙에 따라 징계를 받을 거야.”

클럽에 크나큰 손해를 입힐 뻔한 회원을 가만히 둘 리가 없다.

“바이러스로 빼앗긴 돈은, 그냥 제값 치렀다고 생각하고. 자네가 탐사팀한테 강탈한 자원만 중고로 팔아도 그만한 값은 나오니까.”

하긴, 절도를 먼저 시작한 사람은 이연우라 딱히 할 말은 없긴 하다.

솔직히 괜찮은 계약인데.

‘그래도 이쪽 방면에서 전문가인 클럽이잖아. 속임수가 있으면 나는 몰라.’

이연우는 계약서를 슬쩍 마크 정에게 넘겼고, 마크 정은 계약서를 다시 이연우에게 돌려줬다.

“계약하실 겁니까? 계약하실 거면 특수법률사무소에서 검토할 겁니다.”

“고민 중인데….”

이연우의 얼굴에 고심의 빛이 서렸다.

노인은 그런 이연우를 보다가 지팡이를 콱 쥐었다. 지팡이가 바닥을 짚고, 노인이 일어났다.

“천천히 생각하게. 시간은 많지 않나. 나도 하루 만에 체결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노인이 마지막으로 이연우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으며, 딱딱, 병실 바깥으로 나갔다.

“과일 잘 먹었네. 결론 내리면 연락하시게.”

그렇게 클럽장이라는 노인이 떠난다.

마크 정과 이연우는 가만히 그의 기척을 살피다가, 그가 떠났음을 확인한 뒤, 토론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의심이-”

“조항부터 확인해야-”

그리고, 한창 대화하던 이연우는 문득 벽을 느꼈다.

‘이게 정상급 집단인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수를 주고받는 자들. 미래를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리는 자들. 미래의 이연우나 되어야 그들의 게임에 참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루하루 살기 바쁜 이연우는 살짝 침울해졌다.

***

노인은 안전성으로 이름 높은 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사가 물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글쎄. 이 도시나 한번 돌아보지.”

정신이 다른 곳에 집중된 듯한 반응. 운전사는 눈치껏 액셀을 부드럽게 밟았고, 차는 도시를 배회했다.

노인은 가만히 풍경을 보았다.

‘회사가 발작하길래 안심했더니만….’

미지의 위험으로서 존재하던 회사의 발작이 현실로 찾아온 뒤, 클럽은 자본 관리에 집중했다.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도 이익을 얻기 위해.

영원한 호황도 불황도 없으나, 어떤 상황에서도 이익을 보는 사람은 있었고, 그건 클럽이었으니까.

그를 위해 주기적으로 황금을 투자하던 황금만능주의가 끔찍한 손실을 예견했다.

‘주사위라. 회사식으로 말하면 위험레벨 5는 되나? 보여준 게 부족해서 6은 잘 모르겠고.’

솔직히 노인도 짐작이 안 갔다. 그것의 한계가 어디에 있는지. 지나치게 거대한 판정은 이연우가 지레 겁먹고 굴린 적이 없어서, 애초에 가능하기는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미지야말로 이상개체가 가득한 이 세계에서 경계해야 할 것인데.

‘넉넉하게 6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데.’

노인은 혀를 쯧 찼다.

“정보상 놈. 팔 정보, 못 팔 정보 분간 못 하더니.”

운전사는 능숙하게 못 들은 척 핸들을 돌렸고, 노인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저 회사 좀 보라고. 젊은데 능력 있는 친구 많잖아. 그런데 우리는 왜-”

운전사가 식은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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