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31)화 (131/194)

전쟁

녹색협회와 신스 다이나믹스가 맞붙었다. 식물과 기계 인간이 한데 엉켜 누가 더 생명력이 질긴지 겨루기 시작했고, 다른 곳에서도 온갖 이상개체가 파괴하고 파괴되기를 반복했다.

정신 나간 마법사가 열어젖힌 문 앞에서 사후세계가 고깃덩이의 세계로 변하기도 하고, 기이한 벌레의 무리가 고깃덩이를 먹어 치우고, 콘서트장처럼 노랫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마크 정의 상관이자 이번 전쟁의 담당자인 이사는 벽을 꽉 채운 화면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 잘 부서지는군.”

“예, 검은 강도 순조롭게 파괴되는 중이고, 마법사들도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비서들은 끊임없이 수치와 시간을 확인하고, 때로는 통화하며 상황을 파악했다.

계획대로, 목표에 가깝게 진행되는 전황.

하지만 이사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이 불안했지만 그걸 드러낼 수는 없어서, 수상한 표정을 짓는다.

‘적대집단 놈들. 이렇게 끝날 놈들이 아닌데.’

협약을 맺었다지만, 다른 속내를 품을 수도 있고, 집단 구성원이 딴생각을 할 수도 있고, 갑자기 폭주할 수도 있고.

그리고, 전황은 회사의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사가 눈을 깜빡였다. 그는 사후세계의 상공을 비추는 화면을 보았다.

어두침침한 사후세계의 하늘에 도시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새까맣고, 통일된 규격 없이 아무렇게나 건물이 세워진 도시.

박쥐가 날아다니고, 검은 기운이 풀풀 풍긴다. 이상한 조각상 같은 것이 붉은 안광을 빛내고, 서로 다른 개성을 뽐내는 괴이한 인간들이 당황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거 악마자치구 아닌가? 저게 왜 저기 있지?”

저기는 악마숭배자의 본진인데? 이번 전쟁에 집단의 본부나 위험레벨 6의 이상개체는 쓰지 않기로 했는데?

아니, 그보다 저게 지금 사후세계에 강하하면, 사후세계가 무거워질 텐데?

비서들도 당황하며 전화를 돌렸지만, 통화가 연결되기 전에 화면에서 실상이 드러났다.

온갖 악마가 아우성친다.

- 여기, 전장인데?

-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가 악마자치구를 여기로 끌고 왔어!

- 새끼…. 칭찬!

- 범인 빨리 찾아! 아니, 돌아가자! 이걸 돌려보낼 만한 친구가….

- 혼자서는 못해!

그때, 악마자치구의 가장 높은 건물 위에서 몇몇 악마가 낄낄 웃었다.

- 아아. 그래. 내가 했다. 나, 배신의 악마가.

- 나, 비극의 악마.

- 나….

아무튼 깽판 치기를 좋아하는 악마들이 손을 잡아, 모두의 뒤통수를 쳤다. 이게 재밌으니까.

쿠구궁-

악마자치구가 강하하기 시작했다. 반투명했던 도시의 그림자가 실체를 가졌다. 그 질량. 그 압도적인 존재의 무게.

사후세계가 기우뚱 기우는 듯했다. 대지가 쿠구궁 울었고, 전장이 흔들렸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갈 때처럼 미묘하게 추락하는 느낌이 엄습한다.

이사는 침착하게 말했다.

“지금 준비된 추방마법으로 감당 가능한가?”

아무리 악마들이 나사 빠진 놈들이어도 악마자치구를 강하시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당황할 때가 아니었다.

사후세계를 도로 내보내기 위해 준비된 마법진은 미사일의 추진체와 비슷해, 사후세계가 무거워지면 문제가 생긴다.

마법을 익힌 비서가 눈꺼풀을 떨며 무언가 계산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당장 추방마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지금도 사후세계가 우리 세계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추방마법 사용 시 문제는 없나?”

“사후세계가 폭발할 겁니다.”

그러니까, 사후세계가 운석처럼 낙하하고 있고, 추방마법으로 요격하라는 말이다.

그러면 사후세계가 산산이 부서져 파편을 흩뿌리겠지만, 통째로 낙하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사는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추락 완료까지 남은 시간을 계산하게. 전쟁 중지 요청을 돌리고, 사후세계를 비울 준비를 해. 마법사는 준비하라고 하고.”

전쟁을 중지하고 사후세계를 가볍게 만들면, 시간을 벌고 어쩌면 추락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전화가 왔다.

이사는 번호를 보더니 곧바로 받았다.

“이사요. 전쟁 중지를 요청하오.”

- 클럽 회장입니다. 상황은 파악했습니다. 우선 사후세계부터 비우겠습니다.

클럽 회장의 목소리다.

이사가 화면을 보니,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없던 클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확성기를 들고 외친다.

- 1+2, 1+2. 방금 공장에서 나온 싱싱한 그래픽카드가 지금 사면 하나 값에 3개!

- 90퍼센트 할인 오픈까지 10, 9, 8, 7!

- 황금만능주의가 예지한 1주일 후의 코인 가격! 30초 후에 알려드립니다!

클럽이 만든 문으로 이상개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신조작에 당한 것이다.

이사는 조금 안도했다. 긴급조치가 빠르게 이루어졌다.

“협조 고맙소.”

- 저것들을 파괴할 건데, 거기에 들어갈 황금값만 챙겨주시면 됩니다.

그걸로 통화는 끝-

이사의 동공이 확장됐다. 예술가 협회를 관측하는 카메라가 일렁이는 공간을 잡았다. 단순한 공간 이동 같은 게 아니다.

공간이 스스로 연결되었다. 거기에 그 너머의 존재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사후세계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어스름한 사후세계.

어둠과 흐릿한 하늘과 미약한 빛만이 존재하는 사후세계가 공간 너머의 존재를 느끼고, 변화했다.

어둠이 황급하게 물러갔다. 희미한 빛이 조명이 되기 위해 모여들었다. 바람이 불어와 그 공간으로 뿌려지던 전투의 파편을 밀어냈고, 척박한 땅에서 푸른 잔디가 레드카펫처럼 피어나며 그것을 기다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를 맞이하기 위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

이사가 절규하듯이 외쳤다.

“연결 당장 끊어! 예술가 협회장이다!”

늦었다.

그것의 맨발이 나온다. 푹신한 잔디를 디딘다. 필터가 꺼졌다. 보안 시스템이 멈췄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려서는 안 되니까.

모두의 눈이, 얼굴이 화면을 향해 돌아갔다. 눈물이 흘렀다.

한순간에, 초월한 아름다움이 영혼을 사로잡았다. 관전하던 지휘부가 마비되었다. 사후세계에서는 전쟁이 멈추었다.

***

마크 정과 이연우는 이런저런 관측장비를 돌려가며 전장을 구경했다.

이연우가 일하며 보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이상개체들. 이연우는 집단과 특징을 하나하나 머리에 새기며, 집중해서 화면을 보았다.

‘저런 게 있다고. 저런 걸 상대하려면 판정은 이걸 준비하고, 주사위 아니어도 이렇게 행동하면….’

위험레벨 5의 끔찍한 이상개체만 있는 건 아니라, 여러 집단의 주력 이상개체를 보고 배울 수 있다.

마크 정이 흘러가듯 말했다.

“집단의 본부나 위험레벨 6의 이상개체는 안 나오기로 협상된…. 어.”

“…저거 악마숭배자들 도시 같은데요.”

마크 정이 황급하게 화면을 확대했다. 악마자치구가 강하하고 있다. 자치구의 악마들도, 그들도 당황했다.

“아니, 어. 본진을 왜 전쟁터로.”

이연우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악마는 얼마 보지 못했지만, 뭐라고 할까. 정신 나갔다고 할까, 자기 컨셉에 충실한 놈이라는 느낌이었으니까.

“저놈들도 뒤통수 맞은 모양입니다. 아마 그냥 사고 친 악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네 본진을….”

이연우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매만졌다. 심장이 쿵쿵 뛰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뭔가 잘못된 느낌인데.’

단순한 심리적 불안이라고 하기에는, 직감이 든다. 마치 대실패를 코앞에 둔 느낌이나, 위험이 등 뒤에 서 있는 느낌.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화면이 변했다. 노트북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다른 관측장치의 화면으로 변했다.

예술가 협회장이 걸어 나오는 그곳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반응하기도, 경계하기도 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해는 없었다.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위해 움직였으니까.

“….”

“….”

말할 수 없다. 움직일 수 없다. 그저 화면을 보며, 그들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영혼을 울리는 예술, 영혼을 사로잡는 예술을 초월해, 영혼을 향한 폭력에 가까운 예술이 그곳에 있었다.

“아….”

마크 정이 울음과 환희와 사랑이 뒤섞인 신음을 토했다.

이연우도 다르지 않았다. 저건 세계가 구애하는 아름다움이다.

보라, 전장의 모든 이상개체가 그것을 향해 무릎 꿇는 것을. 사후세계가 그것을 위해 몸을 비트는 광경을.

전쟁은 멈추었고, 싸우던 자들은 그것의 노예가 되었다. 사후세계의 모든 빛이 그것을 향해 내리쬐었고, 모든 어둠은 행여나 그것의 아름다움을 가릴까 세계 끝까지 물러갔다.

협회장이 말했다.

- 나와 함께 가자.

소리도 예술이 될 수 있다. 그것의 목소리 또한 세계가 구애하는 예술로서 영혼을 뒤흔들었다.

모든 이상개체가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흔들흔들 걸음을 옮겼다. 세계가 스스로 열어준 통로를 향해.

이연우는 멍하니 그것들을 보았다. 자신도 가고 싶다.

“….”

아름다움의 세례 앞에서 생존본능이 마비됐다. 자의식이 지워졌다. 모든 감각과 생각이 그것에만 집중되었다.

‘주사위. 우리도 가자. 이동, 아냐, 이동은 실패할 수도 있어.’

어떻게 해야 저것에 가깝게 갈 수 있을까. 어떤 판정을 굴릴까.

그런 생각을 할 때.

서늘한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고.

꽝, 굉음이 터졌다. 이연우가 멍하니 화면을 보니 사후세계가 찢겨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가장 아름다운 자는 조금의 영향도 받지 않았지만, 이연우는 그것의 영향력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생존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이연우는 여전히 노트북 화면에 눈을 고정했으나, 시야 구석, 노트북 건너편의 창문에서 유성 같은 것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사후세계가 산산이 조각난 채로 추락하고 있다.

“어….”

때마침 관측장치가 파괴되었는지, 화면이 꺼진다. 마크 정은 여전히 그것에 사로잡힌 채 울었고, 이연우는 얼굴을 마구 비볐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사후세계가 낙하하고 있다. 그것은 괜찮을까. 망했다. 사고가 크게 터졌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은, 지금 내가 위험한데 내가 우선 아닐까. 일단 살아야 그것도 다시 볼 수 있으니까.

흔들리던 눈동자가 힘겹게 노트북에서 멀어졌다.

***

어떤 도로의 중심.

괴상한 고깔모자나 로브 따위를 걸친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들 중 가장 늙은 두 사람이 중얼거렸다.

“시원하게도 터졌군.”

“이래도 되나 모르겠소. 명령 없이 우리들 마음대로 한 거라.”

“어쩌겠나. 지휘부가 마비됐는데.”

두 노인이 동시에 한 젊은 마법사를 보았다. 노트북으로 관전하던 놈인데, 협회장을 보고 정신이 나갔다.

한 번 영혼을 빼서 세탁을 돌려야겠다.

“악마자치구 때문에 추락하기 시작했고, 협회장 때문에 추락이 가속되었고, 지휘부가 마비됐지.”

“최선이긴 했소. 늦었으면 더 큰 참사가 일어났을 테니까.”

말하던 두 노인이 문득 서로를 보았다. 그리고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뭐. 회사든 다른 놈들이든 뭐라고 하면 도망치면 되는 일이지.”

“세계가 어디 여기 하나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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