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34)화 (134/194)

전쟁

묘한 광채가 맴도는 건물.

거대한 미술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나, 예술가 협회장이 머물며 아름다움이 더해진 이곳이야말로 예술가 협회의 본진, 예술의 전당이다.

예술가협회의 이사들이 회의실에 모여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협회장님이 직접 작품들을 수집하러 가셨는데, 얼마나 챙겨 오실까요?”

“글쎄. 기대만큼 많이 챙기지는 못할 듯한데.”

평소에는 예술 차이, 사상 차이로 말싸움을 벌이던 이사들이 이때만큼은 같은 심정으로 협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파괴될 작품을 구조한다. 예술의 전당을 더 화려하게 꾸민다.

협회장께서는 얼마나 많은 작품을 데리고 올까?

귀에 이어폰을 꽂은 어떤 이사는 잠깐 소리에 집중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사후세계 부서졌어. 파편 세 개 정도만 챙길 것 같아.”

협회장이 직접 행차한 세계가 부서졌다는 소식을 들었는데도, 그들 중 협회장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협회장 바로 아래에서 그녀를 모시는 이사들이다. 그녀가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저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를 아쉬워할 뿐.

“세 개…. 괜찮은 작품들이 있으면 좋겠군.”

“우리 파편은 이쪽으로 떨어질 텐데. 어디쯤 오셨으려나.”

이사들이 일제히 창밖을 본다.

과연 푸른 하늘 너머에서 반투명한 운석 세 개가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그 궤도 앞에서 구름이 스스로 갈라지고, 무지개가 떠올랐으며, 나무와 풀 따위가 꽃을 피웠다. 그녀를 환영하기 위해.

이사들이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이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무선 이어폰에서 들려온 소식.

“어, 어.”

“자네, 왜 그러나? 협회장님 마중 나가야지.”

주섬주섬 일어나던 이사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고, 소식을 들은 이사는 실수로 완성 단계의 작품을 부순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악마자치구가, 자치구에 머물던 악마와 숭배자가 협회장님한테 당했다고 하는데.”

“….”

순간 이사들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솔직히 다른 집단에서 협회장과 동급의 이상개체로 경고할 것은 예상했다. 그걸 감수할 작정이었고.

그런데, 악마자치구? 따로 놀던 악마숭배자들이 이상기후를 기회 삼아 간신히 만든 본진이?

이러면 저쪽은 눈이 돌아갈 텐데? 경고나 견제로 안 끝날 텐데?

그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악마숭배자가 미쳤나? 본진을 전쟁터에 떨어뜨려서 뭘 얻는다고.”

“악마자치구? 왜? 어째서?”

“멸망주의자가 수작 부린 거 아닌가?”

혼란스러운 목소리들 속으로, 온화한 목소리가 더해졌다.

“안녕하십니까, 예술가 여러분. 악마자치구의 법률 의원입니다. 이번 일로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왔습니다.”

이사들이 흠칫 놀라 몸을 돌리니, 은테 안경을 쓰고 정장을 입은, 전문가 느낌의 남자가 이사들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악마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 언뜻 유약해 보이는 외관에도 이사들은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대악마? 우선 우리 말을 좀 들어보시오. 그대들의 본진을 타격한 건 우리 뜻이 아니오. 일종의 우연한 사고지.”

시간을 끌기 위한 말이었다.

어차피 조금만 있으면 협회장이 온다. 협회장만 오면 아무 문제 없다.

악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받았다.

“저는 도리를 아는 악마입니다. 규칙과 법률을 준수하죠. 이번 일 또한 사리에 맞게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 다행이군. 우리 쪽 잘못은 인정하오.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앉아서 이야기하지.”

이사들이 허둥지둥 움직였다. 평소 예술 창작에만 몰두하는 터라,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부족한 의자를 찾고, 뭘 대접해야 하나 고민하고, 황량한 회의실을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물이 어딨더라? 컵? 컵 없나?”

“의자가 없는데? 아, 그 의자는 협회장님 의자요. 앉지 마시오.”

“악마자치구를 왜 전쟁터로 옮겼습니까? 솔직히 그쪽 잘못도….”

“그렇지. 어떤 악마시오?”

악마가 가늘게 뜬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이름은 여럿 있죠. 복수의 악마, 함무라비 법전의 악마, 동귀어진의 악마, 상호확증파괴의 악마, 둠스데이 머신의 악마. 오늘은….”

그 이름. 핵 잠수함처럼 세계를 떠돌다가 악마자치구가 공격받으면 움직이는 복수대행자의 이름.

한창 움직이던 이사들이 멈췄다. 그들은 곧장 전투태세를 갖췄다. 조각칼을 쥐고, 망치를 쥐고, 목을 가다듬고.

악마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함무라비 법전의 악마로 왔으니까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악마가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터져 나오려는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우리 본진이 털렸으니, 그쪽 본진도 털려야죠. 얼마나 합리적입니까.”

드드득-

예술의 전당이 진동한다. 전당에 존재하는 작품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사들조차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그물에 겹겹이 뒤덮인 듯한 느낌.

예술 활동에 집중할 뿐인 예술가는 대악마의 기습 앞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조각가가 날카로운 조각칼을 쥔 채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너! 감히 내 아이들을 훔쳐 가겠다고!”

“그것만이 아닙니다. 당신들도 집행 대상입니다. 왜냐고요? 악마랑 숭배자들이 다 정신이 나갔거든.”

“협회장께서 곧 오실 거다!”

이사들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하지만 대악마는 낄낄 웃으며 그들을 장난감 보듯 보았다.

“협회장은 나도 못 당합니다. 내 힘도 안 통할 테니까. 하지만 여기 올 수 있을까요?”

“그게 무슨….”

그때 흐릿한 그림자가, 거대한 운석의 그림자가 예술의 전당 상공을 스쳐 지나갔다. 창문으로 비치는 빛이 길게 깜빡였다.

이사들의 얼굴이 굳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협회장님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셨나?”

“정신 차려, 멍청한 노인네야! 다른 집단이야! 다른 집단이 견제하고 있다고!”

그 말대로다.

황금을 잔뜩 먹은 황금만능주의가 클럽 회장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었다.

대악마는 힐긋 천장을 보며 혼란한 상공을 느꼈다. 협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세계와 황금만능주의가 강제하는 힘이 충돌한 여파.

두 집단의 수장이, 두 집단의 핵심 이상개체가 세계를 비틀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세계에 퍼진 어떤 힘.

특정한 대상에게 불운을 일으킬 가능성. 점차 사라져가는 불운이 마지막으로 세계를 기울였다.

대악마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적에게 불행을. 회사가 미리 깔아둔 모양인데. 일이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나?’

과연 전쟁은 전투 전부터 시작되었다. 회사가 깔아둔 포석이 힘을 발휘했다.

전부 착각이었다. 이연우가 정보상에게 복수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주사위로 굴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지금도 힘을 발휘했다.

“압수!”

대악마가 포로 교환을 위해 이사와 전당을 털어가는 이때.

몇몇 위험한 파편이 이연우의 적을 향해 떨어졌다. 멸망주의자를 향해. 그들이 숨은 아지트로.

***

멸망주의자들은 저마다 아지트에 숨어 있었다. 렙틸리언 보스의 폭주에서 살아남은 인간이나, 애초에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탈취자의 지휘 아래 일제히 테러를 일으킬 계획이었다.

“전쟁 시작하고 얼마나 지났지?”

“1시간 아직 안 지났어.”

한창 전쟁 중인 시각에, 탈취자가 각자의 아지트에 포탈을 열어주면 온갖 도시를 테러한다.

멸망주의자들은 저마다 폭발물이며 독극물이며 이상개체 따위를 점검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반투명한 운석.

“저거 사후세계 아닌가? 저게 왜 떨어지고 있지?”

“누가 독단적으로 계획을 진행했나? 그럴 여력이 없을 텐데?”

어리둥절한 마음, 잘 됐다며 신나는 마음, 그리고, 자기들 쪽으로 떨어지는 운석을 보며 기겁하는 마음.

세 명의 우두머리급 멸망주의자가 각자의 아지트에서 거대한 파편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았다.

아지트가 변화한다. 전쟁 중이던 사후세계로.

“….”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며 검은 연기를 풀풀 내뿜던 흡연자가 손을 떨었다. 그는 자기 앞에 나타난 사후세계를, 온갖 식물이 울창하게 피어오른 전장을 보았다.

“녹색협회? 하필이면?”

소소하게 그들을 괴롭히던 불운이,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을 불러왔다.

머리에 꽃이 핀 녹색교단의 인간과 씨앗을 든 식물 연금술사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눈앞의 흡연자를 노려보았다.

“흡연자? 안 되지! 그분께서 간접 흡연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예술가 협회장께 해를 끼치는 놈들이니까, 잡아서 죽입시다.”

툭툭, 식물 연금술사가 씨앗을 뿌리고, 녹색교단의 성직자가 손을 모으자 식물이 빠르게 자라났다.

검은 연기를 빨아들여서 정화하는 식물이.

“….”

흡연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가 한순간 폭발하고, 일대의 식물이 검게 죽었다.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멸망주의자들의 머리 위로 쏟아진 파편.

“이건 못 이기겠는데.”

초월적인 육체능력을 자랑하는 무인이 붉은 거인을 보더니, 콜록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달렸고.

“아…. 여기는.”

녹색의 문자열로 이루어진 전자세계의 유령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눈앞에서 눈을 깜빡이는 정신을 쪼아먹는 새와 마주쳤다.

***

그 시각, 이연우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클럽이시라고요?”

회사원 유령들의 협조 아래 안전해진 병원. 이연우는 병실로 돌아와 회사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클럽의 전화를 받았다.

- 클럽 회장님 아래 비서실장입니다. 이연우 씨, 주사위 이용권 팔겠다고 했죠. 그거 지금 사겠습니다.

“…지금요?”

이연우는 의심스럽게 물었다.

어쨌든 전쟁 중이다. 적대집단인 클럽의 의뢰를 지금 들어야 하나?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은 침착하게 말했다.

- 회사는 허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뭘 굴려드리면 되겠습니까?”

- 예술가 협회장. 전면적인 공격은 아니어도 됩니다. 귀찮게 굴 정도만 되어도 좋습니다.

예술가 협회장과 클럽 회장이 싸우고 있다고, 사소한 견제라도 부탁한다고.

이연우의 목소리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못 합니다. 할 수 없습니다.”

- …혹시 관전하셨습니까?

“관전하긴 했는데.”

-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비서실장이 핸드폰을 가리고, 뭐라고 말한다.

직후 이연우가 정신 아래에 묻어놨던 협회장의 영향력이 사라졌다.

이연우는 깔끔하게 씻겨나간 정신을 느끼며, 당황했다. 비틀렸던 정신, 말도 안 되는 생각, 자신답지 않았던 정신.

그 광범위하고 지독한 정신오염.

“아니. 어.”

- 영향력을 제거했습니다. 의뢰, 받을 겁니까?

“아뇨. 진짜 못합니다.”

이연우는 진심으로 답했다. 저런 괴물하고 엮이라고?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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