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황금만능주의가 황금을 연료 삼아 공격을 쏘아 보내고, 협회장의 세계가 공격을 막아내는 상공.
미사일 세례와 방공망의 접전처럼, 세계가 뒤틀리는 상공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
“….”
파편 가운데에 서 있는 협회장이, 세계 반대편의 도심 빌딩에 서 있는 클럽 회장이 이연우가 도망친 장소를 보았다.
둘의 전투에서 이연우는 모기와 같았다. 윙윙거리며 협회장의 정신을 사납게 만드는 모기. 집중을 조금이라도 흩트리면 좋은, 우연히 찌르기라도 하면 좋은 모기.
그런데 그 모기가 갑자기 그들과 동등한 수준에서 힘을 썼다.
“위험레벨 6?”
클럽 회장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단순히 위험성만으로 수준을 따지는 5레벨까지와 달리, 6레벨은 전능에 가깝거나 불완전하게나마 절대성을 지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온갖 이상異常과 장비에 카운터를 제대로 맞으니까. 모든 종류의 위험을 이겨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연우는 그런 종류의 힘을 보여줬다. 협회장을 위해 움직이는 세계를 억지로 수정하며 도주한 그 힘.
회장이 다시 중얼거렸다.
“경고인가?”
머리가 복잡하다. 건드리는 시늉만 하다가 힘을 드러내고 돌아간 이유가 뭘까? 무슨 의도를 지녔을까?
이만하면 충분하다? 더 세상을 난장판으로 만들면 멀리서 공격하겠다? 아니면 다른 장소에 큰 문제가 생겼나?
반면에 협회장은 눈을 깜빡이며 작게 말했다.
“가지고 싶어.”
저건 걸작이다. 자신처럼 세계에게 사랑받는 수준의 명작이다. 예술의 전당에 두면-
세계가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려는 그때, 클럽 회장이 말했다. 그 목소리는 거리를 넘어 울렸다.
“적당히 하십시오. 방금 돌아간 저 친구, 선 넘으면 멀리서 저격하려는 모양인데. 여기서 더 선을 넘으면 못 돌아옵니다.”
무수한 제재가 들어갈 것이다. 예술가 협회가 버티기 힘들 정도로 많은 제재가.
그건 뒤로 하더라도, 당장 확률을 조작하는 주사위와 소원을 이뤄주는 황금만능주의가 협공할 것이다.
협회장이 눈을 흘겼다.
“황금이 아까운 건 아니고?”
“황금이야 항상 아깝고. 이만 마무리합시다. 당신과 대화만 해도 황금이 소모돼서. 봉인 한 달이면 적당하지 않습니까?”
클럽 회장은 이번에 소모한 황금이 아까워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고, 협회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파편들은 내 거야.”
“저도 그건 건들 생각 없습니다. 아, 그리고. 악마숭배자랑 당신 협상해야 하는데. 내가 대신 해줄 수 있습니다.”
서로 교환한 본진과 중요인력들. 그 뒤처리.
협회장은 관심 없다는 듯 자리에 앉았다. 잔디가 서로 얽히며 푹신한 잠자리를 마련했다. 기온 또한 딱 낮잠 자기 좋은 온도로 변했다.
그녀가 눈을 감자 파편에 어둠이 찾아왔으며, 주변에 무릎 꿇은 이상개체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굳었다.
“알아서 해.”
“대리 협상한 보수는-”
“이사들한테 말해. 난 잠깐 잠이나 자야겠어.”
협회장이 잠에 든다.
클럽 회장은 곧장 연결을 끊으며 마지막으로 황금을 쏟아부었다.
한 달간의 봉인.
상공에 멈춘 세 개의 파편 주변으로 황금빛이 번쩍였다. 협회장이 받아들였기에 황금빛은 찬란하게 빛나며 파편을 휘감았고, 곧 세 개의 파편이 사라졌다.
한창 말하느라 입이 마른 클럽 회장이 투덜거렸다.
“대화만 해도 손해를 보는 인간…. 비서실장. 이번에 쓴 황금은 회사에 청구하십시오. 대신 일한 값은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예.”
비서실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통화를 하며 느낀 이연우와 이곳에서 들은 이연우가 너무 달라서.
‘위험레벨 6이라고? 그런 느낌은 조금도 못 받았는데. 그냥 회사원 같던데.’
그리고 클럽 회장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이연우. VIP 목록에 올리세요. 이번 일은 혹시 우연이더라도, 6레벨에 올라갈 잠재력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예술가 협회 대리해서 협상 진행할 준비-”
전쟁 뒤에도 클럽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에 투자한 시간과 황금을 회수하기 위해.
다른 파편은 회사한테 맡기고.
***
이연우는 콩닥거리는 심장을 쓰다듬었다. 전장에서 도망쳤는데도 한 번 놀란 몸은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죽겠네….”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과 사건이 아니었다. 화면으로 본 전쟁터도 그렇고, 협회장이나 황금만능주의 같은 이상개체도 그렇고.
그래도 어떻게 도망갈 수 있었지만, 이연우는 자신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확률을 조작했지?’
이연우는 살짝 떨리는 손을 움직였다. 확률을 움켜쥐듯 주먹을 쥐고, 허공을 휘적거리고.
하지만 그때의 감각은 재현되지 않았다. 사실, 그 감각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진짜 머리가 하얗게 질린 상태로,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이다. 그냥, 엄청 놀라서 비명을 지르면서 도주했다는 체감만 남았다.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마크 정이 들어왔다. 그는 근처 카페로 가서 마실 것을 사 왔는데, 커피 몇 잔을 찰랑찰랑 흔들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본사 돈으로 여기 계신 분들한테 다 돌리느라.”
사후세계와 융합돼서 병원에 마실 물이 없긴 했다. 녹물이나 핏물만 남았다.
“아. 좋은 일 하셨네요.”
이연우가 손을 내밀자, 마크 정은 공손하게 웃으며 빨대를 꽂아서 건넸다.
“어휴, 아닙니다. 좋은 일은 이연우 님이 하셨죠.”
평소 기억소거제 대비용으로 쓴 일기로 대략 기억을 복구한 마크 정은 이연우를 거의 이사 대하듯 접대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소식을 들었다.
“이연우 씨가 적에게 불운을 부여한 덕분에 진짜 위험한 파편들은 멸망주의자 머리 위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일로 줄인 피해만 해도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예?”
넋이 빠진 채로 있던 이연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예. 이사님이 아주 칭찬하셨습니다. 덕분에 멸망주의자한테 피해도 주고, 민간 피해는 줄이고, 시간도 벌었다고요.”
“…제가요?”
이연우의 머리가 고장 났다. 안 그래도 지친 머리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불운이 그렇게 오래갔단 말입니까?”
“이젠 사라졌지만, 사라질 즈음에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멸망주의자도 적이긴 하다. 근본적으로 함께 할 수 없는, 없어졌으면 좋겠는 집단이고.
멸망주의자도 이연우를 적대했다. 지우개를 지닌, 멸망주의자의 최고전력을 사살하고, 렙틸리언 보스를 폭주시켜 망치고.
거기에 마크 정은 눈을 반짝거리며 이연우를 보았다.
“거기에 예술가 협회장한테 경고까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연우 씨 때문에 한 달 봉인을 받아들였다던데.”
“아니, 그건 뭔. 말이 안 되는데.”
이연우는 혹시 자기가 이상개체에 당했나 의심했다. 환각을 보여주거나, 꿈을 꾸게 만들거나.
진짜 말이 안 됐으니까. 그 협회장이 뭐가 아쉬워서 도망친 사람을 보고 경고로 받아들인단 말인가.
‘이거 어떻게 깨지?’
하지만 계속되는 마크 정의 말에 이연우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표정이 핼쑥해졌다.
“클럽이 정보 다 전해줬습니다. 이연우 씨가 위험레벨 6의 힘을 과시하고 돌아갔다고. 협회장도 그것 때문에 물러났다던데요.”
“아닌데. 그거 아닌데.”
손이 벌벌 떨린다. 손에 쥔 일회용 커피잔이 진동하며 커피가 흘러넘쳤다.
과대평가가 두렵다.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 안 나는 행동, 우연히 찍은 최고점을 자기 능력으로 볼까 무섭다.
“협회장의 간섭을 물리친 건 맞는데,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다시 하라고 해도-”
“아닙니다. 이만한 능력은 자랑하셔도 됩니다.”
“진짜, 진짜, 제 능력이 그 정도는 아닌데.”
이연우는 불온한 미래를 보았다.
본사가 자기를 협회장과 동급으로 보고, 감당 못 할 임무를 내리는 미래.
마크 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연우가 돌아버릴 말을 계속해서 뱉었다.
“걱정은 알겠습니다. 그만큼 위험이 따라올까 봐 그러시는 거겠죠. 하지만 이만한 힘이면 오히려 안전해집니다. 누가 감히 건드리겠습니까.”
“아니, 진짜 아니라니까요!”
이연우는 거의 빌듯이 설명했고, 마크 정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그거 아닙니까? 어쨌든 6레벨의 잠재력이, 아니지, 그만한 힘을 써봤다는 거 아닙니까? 시간 문제 아닙니까?”
“….”
이연우의 입이 다물렸다.
‘시간 문제긴 해. 시간이 지나면 주사위에 오염될 거고, 원하는 대로 가능성을 구현하는 수준에 도달하긴 할 거야.’
필요한 건 시간일 뿐이다.
이연우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부 이용한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차라리 키워야 하는 씨앗으로 보게 만들어, 회사가 애지중지 아끼게 만들겠다는 생각.
마크 정이 웃었다.
“이미 본사는 당신을 다시 평가하고 있을 겁니다.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한 사람이 없어서. 이번 전쟁 뒤처리도 나설 필요 없습니다. 푹 쉬라고 하십니다.”
파편이든 뭐든, 이연우는 나설 필요 없다고.
그럴 만한 잠재력과 가치를 이연우가 보여줬다.
마크 정이 앞으로 바뀔 회사의 보수나 복지를 어지럽게 설명했지만, 이연우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고민하고, 협회장쯤 되는 상대로부터 도망칠 생각을 하고.
문득 이연우의 눈이 빛났다.
‘그래. 뭐가 상대든, 상황이 어떻든 도망칠 능력만 챙기면 돼. 한 번 해봤으면 두 번도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