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연우는 더러운 병실에서 쉬며, 마크 정을 통해 소식을 들었다. 본사에서 이연우의 위치를 조정했는지, 온갖 정보가 거짓 없이 고스란히 제공되었다.
단순한 현장직은 듣기 힘든 정보.
협회장의 봉인과 협상을 맡은 클럽과 복수의 악마.
“그래서 본진과 핵심인력을 교환하기로 협상했다고 합니다.”
“그, 이건 악마숭배자들 자업자득 아닙니까?”
이연우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협회장이 갑자기 튀어나왔다지만, 정신이 돌아버린 악마가 뒤통수를 때려서 생긴 일 아닌가 싶다.
마크 정은 헛웃음을 지었다.
“악마가 그런 걸 신경 쓰겠습니까. 자기가 날뛸 명분 생기면 신나서 달려드는 놈들인데.”
“그건 그런데.”
자기들 즐겁자고 본진을 전쟁터에 떨어뜨리는 놈들이다. 그 대악마는 복수가 좋고 난장판이 좋아, 예술의 전당에 쳐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왜 정상이 없지? 그나마 회사나 클럽이 정상이야.’
이연우가 한탄했다. 세상에 미친 자들이 너무 많다. 마법사들은 뭔 붉은 거인을 어디에 떨어뜨려야 재밌을까 말싸움을 한다지 않나.
멸망주의자, 예술가, 악마, 녹색교단, 다른 집단들. 전부 머리의 나사가 풀릴 대로 풀렸다.
“악마숭배자 쪽에도 협회장급이 있고 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깔끔하게 교환하는 걸로 협상한 모양입니다. 죽거나 파괴된 건 없어서.”
마크 정의 설명에 이연우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호기심이 생겼다.
“악마숭배자 쪽에는 누가 있습니까? 협회장 같은 거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마크 정은 기억을 떠올리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한다.
“악마는 아니고 숭배자입니다. 지옥에 가 있다고 듣긴 했습니다. 아마 죽지는 않았을 텐데,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구에 없으면 됐다. 지금까지 돌아왔다는 말도 안 들리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연우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사후세계와 융합되어, 공포영화에서나 볼 법한 폐병원으로 변한 병실. 바깥에서는 회사원 유령들이 떠돌고 있고, 음산한 한기가 허공을 맴돌았다.
걱정되는 풍경이었다.
“파편들은 괜찮습니까? 오염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전쟁 중이던 놈들도….”
사후세계가 현실로 쏟아져 내렸다. 평범했던 병원은 이상개체가 되었다. 전쟁터에서 협회장을 보고 정신이 오염된 개체들도 날뛰지 않을까.
마크 정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한창 수습 중이라고 합니다.”
“어떻게요?”
이게 수습이 되나?
아직 회사의 역량을 체감하지 못한 이연우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고, 마크 정은 입술을 달싹이다가 머쓱하게 말했다.
“최선은 파괴고 추방이었죠. 지금도 비슷합니다.”
마크 정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추방. 그냥 다 다른 세계에 버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사후세계 전체를 추방하는 것보다는, 파편들 따로따로 추방하는 게 쉬워서….”
“….”
이연우는 순간 기억을 떠올렸다. 나무 인간이 보여줬던, 이상기후로 멸망한 지구.
그때 이차원에 건설한 이주지는 지구를 쓰레기통 삼아, 감당하기 힘든 이상개체를 지구에 버렸다.
역시 회사다. 시나리오가 준비되어 있는지, 비슷한 문제 앞에서 비슷한 해답을 내놓았다. 오염물질을 내다 버리겠다는 해답을.
이연우는 이런저런 말들을 떠올렸으나, 결국은 짧은 말을 뱉었다.
“마법사들 신났겠네요.”
“안 그래도 지금 파티 분위기라고….”
얘는 저기에 풀어주면 잘 살지 않을까, 나 저기 세계 싫은데 저쪽에 버리자, 의외로 다른 차원도 괜찮지 않을까.
마크 정은 몇 번 보았던 마법사를 떠올리며 그들의 대화를 상상했고, 이연우는 피곤한 눈을 비볐다.
어쨌든 큰 문제 없다는 소리였으니까. 세상이 멀쩡하면, 이상기후처럼 대처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면 안심해도 괜찮았다.
‘내 일은 끝났어.’
그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누더기가 된 침대에 몸을 기댔다. 흐릿한 창, 깨지고 금 간 창문 밖에서는 소란이 한창이었지만, 그와는 상관없는 문제다.
이연우가 잠들 기색이자, 마크 정은 노트북을 켜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일단 기억부터 복구하자. 그리고, 이연우가 만들겠다는 부서 기획하고, 향후 계획도 준비하고.’
이연우의 일은 끝났지만 마크 정의 업무는 아직 많이 남았다.
마크 정은 평소 저장해두었던 영상기록을 재생하는 한편, 문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창밖을 보았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란이 병실 안까지 들린다.
“저기 운석 떨어진 곳 아니야? 완전히 망했는데? 저, 저 창문 깨지고 페인트 벗겨진 것 좀 봐.”
“이곳은 상평시의 병원-”
경찰과 소방관이 통제하는 인파. 핸드폰을 높이 들고 떠드는 사람들. 생중계를 나온 언론사.
마크 정은 언뜻 미소를 지었다.
‘비밀 유지는 그만뒀지. 그런데 정보 통제를 멈추진 않았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정보 통제. 시대에 뒤떨어진 통제 방식을 그만두고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바꾼 정보부의 방식.
회사의 보호 아래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진실에 도달하지 못 하리라. 이상異常이 넘쳐나는 세계를 안전하게 여기리라.
***
회사는 그동안 완전한 비밀 유지, 완전한 정보 통제를 추구했다. 조금의 정보도 흘러가지 않게, 일반인은 이상異常의 그림자도 인식할 수 없게.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어디서나 접속 가능한 인터넷,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 누구나 쉽게 올리고 보는 정보.
사람 하나하나가 조사원이며 정보원이 되는 시대. 그 헤아릴 수 없는 정보의 바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구가 늘어날수록 회사는 한계가 다가옴을 느꼈다.
-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는 더 이상 비밀을 유지할 수 없다.
- 해마다 소모되는 기억소거제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모든 정보를 감시하는 자원 또한 그렇다.
그리고 이상기후가 찾아왔다.
회사는 비밀 유지를 그만뒀다. 어차피 포기할 지구와 죽을 사람들, 비밀 유지 따위에 투자할 자원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상기후는 사라졌고, 회사는 정보 통제 방식을 바꿨다.
더 효율적으로, 이 시대에 걸맞게.
- 빅 브라더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 사람들이 자유의지로 관심을 가지지 않게, 진실을 찾지 않게 만듭시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어도 그 소식을 찾지 않듯이 말입니다.
- 정보 검열 시스템을 조금만 바꾸면, 더 적은 자원으로 전 세계를 감시할 수 있습니다. 80억 인구가 우리의 눈이 되어 줄 겁니다.
- 또한 끈질긴 사람들은 조사원으로 쓸 겁니다.
그게 지금이다.
***
기자 김덕복은 담배를 태우며 핸드폰을 노려봤다. 그가 기자로서 일하는 방송국의 긴급 방송이었는데,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방송이 송출되고 있었다.
아니, 모든 방송이 그러했다.
실시간으로 송출되는 방송들을 돌려본다.
- 이건 종말입니다! 창조주께서 우리를 벌하시는-
- 제가 신내림을 받았는데, 저건 저승입니다. 저승이 역류했습니다. 어떻게 아냐고? 신께서 알려주셨어!
- 렙틸리언의 공격이 분명합니다! 모두 렙틸리언을 경계하십시오! 청와대 공격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에 렙틸리언이-
- 렙틸리언 그거 전염병이라고 밝혀진 게 언젠데!
자칭 전문가라는 사이비들이 게스트로 나와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때로는 사이비들이 멱살을 잡고 싸우기도 했다.
- 운석이 반투명하다고 무슨 초자연현상이라고 하시는데, 이건 드물게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대기권의 수증기가 빛을-
그나마 교수의 설명만이 그럴듯하게 다가왔다.
“이건 아닌데.”
김덕복이 피곤한 마음에 다른 방송으로 들어가자, 정치, 연예인, 기업, 외교, 다른 나라 이야기, 예능, 스포츠, 수많은 정보들이 흘러넘쳤다.
김덕복은 무슨 걸그룹 무대를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 테러를 기점으로 이상해진 세상의 진실을 알아내서,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분명히 진상은 따로 있어.”
왜냐면, 그는 파편이 병원에 떨어지는 걸 직접 보았으니까. 운석 충돌과는 다른 것을 보았으니까.
그걸 보는 순간 평소 가지고 있던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담배가 끝까지 탔다.
김덕복은 고민하다가, 그가 부업 삼아 실시간 스트리밍하던 동영상 플랫폼으로 들어갔다.
수많은 영상이 올라오는 플랫폼은 김덕복이 들어오길 기다렸다는 듯, 김덕복 취향의 영상을 추천했다.
걸그룹, 이상현상을 탐사하는 동영상, 그가 일하는 방송국의 영상, 영양제 광고 등등.
그중 그의 흥미를 끄는 영상이 있었다. 무슨 눈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영상.
“제법 상세한데….”
김덕복이 영상을 보니, 지역과 사고 사례가 자세하다. 마치 누군가 1차로 정보를 수집한 듯한 모양.
김덕복은 고민하다가, 그 사건을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얼른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버리고, 추위에 얼어붙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자동차로 돌아갔다.
진상을 알 수 있으면 좋고, 몰라도 기사로 쓸 수 있다. 또한 취재 과정을 스트리밍할 수도 있고.
김덕복이 탄 차가 겨울의 도로를 달렸다.
그는 알지 못했다. 그의 알고리즘에 추천된 영상은 회사가 만들어 일부러 추천한 영상임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의 눈으로서 조사를 나간 것도.
그의 스트리밍을 보는 시청자는 회사의 AI이며, 실제로는 송출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