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새해를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전쟁으로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다른 느낌으로 들떴고, 사람들은 아직도 날짜를 작년으로 잘못 쓰는 실수를 반복했다.
날짜로는 기껏해야 작년과 며칠 달라졌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이 된 듯 이루지 못할 다짐을 하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새해 분위기를 즐기느라 바빴고.
이연우 역시 새로운 1년을 맞이했다.
조사원이 아닌, 부서장으로서.
- 불우이웃을 도와주세요. 제 보험회사가 하루아침에 망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안 사요.”
새해부터 걸려 온 스팸 전화를 끊고,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인다.
딸깍, 딸깍-
이연우는 회사 시스템을 둘러보았다.
새로 만들어진 부서, 주사위 이용권을 파는 도박근절센터에 의뢰가 잔뜩 들어왔다. 한참을 스크롤 해도 끝이 안 보일 만큼.
“연구소, 학회, 부서…. 클럽도 많고. 녹색협회, 예술가, 악마? 악마는 왜?”
이연우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회사가 홍보라도 했나? 왜?
‘내가 왜 도박근절센터로 이름을 지었는데. 주사위로 도박하지 말라고. 실패하고 대실패 나온다고.’
제발 일 시키지 말아 달라는, 이상한 요청은 하지 말라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었다.
염원과 달리 일거리가 쏟아졌지만.
그때 유지유가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이연우의 모니터를 빠르게 훑어보더니,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멸망주의자도 있는데요? 지구 멸망 굴려달라는데요?”
“그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연우가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의뢰가 몇 개 있다.
“녹색협회는 위대한 나무의 씨앗을 이동시켜달라고 하고, 예술가는 협회장 봉인 풀어달라 하고, 악마는 그냥 굴려달라 하고….”
“회사에서 검열 안 해요?”
회사가 거부할 제안이 그대로 들어왔다.
유지유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자, 이연우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제가 알아서 구별하라고 합니다.”
좋게 말하면 믿음이었다. 선 넘는 의뢰는 이연우가 알아서 거부할 것이라고. 이연우에게 모두 맡기겠다고.
그쯤에서 반장이 몸을 일으켰다. 어디 나가려는지 옷가지를 챙기던 반장이 지나가듯 툭 말했다.
“네 성격 분석하려는 모양이다.”
“아! 맞아요. 언니도 비슷한 일 겪었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자, 정보부의 유령을 언니로 둔 유지유는 뭔가 떠올렸는지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웠다.
“정예요원부터는 생화학무기나 대량학살병기로 봐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인성 분석하고 시험하고 그런다고 했는데.”
사람 하나로 보기에는 가진 무력이 남다른 인간들. 이상개체에 가까운 생체병기.
이들이 돌아버리면 그 여파가 작지 않았기에 회사는 여러 시스템과 절차로 이들의 정신 건강을 항상 체크하고, 또 분석했다.
하지만 정보부의 유령은 평소처럼 기밀정보를 훔쳐보다가 그 계획을 알았고, 이연우는 반장과 유지유 덕에 회사의 의도를 파악했다.
이연우가 새삼스레 넘쳐나는 의뢰를 보았다. 귀찮은 일거리가 다르게 보였다.
회사가 내민 시험지.
‘확실히….’
온갖 부서와 집단. 개성 가득한 의뢰와 그들이 내민 서로 다른 보상.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일이었고, 그렇게 쌓인 데이터가 충분히 많아지면 사람을 분석할 수 있다. 뭘 선호하고, 뭘 피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반쯤 위험레벨 6으로 보고 있으니까.’
이해할 만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꺼림칙한 것도 없었다.
“그러면 제 마음대로 고르면 되겠네요.”
들키고 싶지 않은 속내가 없으니까.
‘내가 멸망주의자도 아니고, 거창하게 바라는 것도 없고, 강하게 추구하는 신념도 없는데.’
이연우는 편안하게 의뢰 목록을 뒤졌다. 오직 그의 취향에 맞는 의뢰를 찾아서.
유지유가 질문했다.
“그래도 첫 업무잖아요. 의미 있는 업무 같은데, 뭘 고를 거예요?”
“간단합니다.”
유지유의 반짝이는 시선 속에서, 이연우는 빠르게 마우스를 클릭하여 말도 안 되는 의뢰들부터 쳐냈다.
“멸망주의자는 일단 거부하고. 협회장 같은 거랑 엮이는 것도 무조건 거부할 겁니다.”
집단 중 멸망주의자가 제외되었다. 또한 위험해 보이는 의뢰도.
‘협회장 같은 거랑 엮이는 일은 당연히 안 하고. 이건 실패나 대실패가 무섭고. 이건 그냥 위험하잖아.’
그렇게 선별하니 길었던 목록이 제법 줄어들었다.
남은 것 중 대가가 마음에 드는 의뢰를 고르면 된다. 이연우가 주의 깊게 목록을 살폈다.
‘보상. 뭘 고를까.’
돈이 가장 많고, 드물게 이상장비나 이상개체가 있다. 이연우의 눈이 느릿하게 글자들을 읽었고,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이건 도움은 안 되지만 좀 가지고 싶은데.’
그때 반장이 주섬주섬 차 키와 지갑 따위를 챙기더니, 조사원 하나와 조사원이었던 직원 하나를 힐긋 보았다.
“출장 나간다. 적당히 시간 때우다가 퇴근해.”
“아, 강의하러 가신다고 했죠?”
유지유가 데스크 칸막이 위로 머리를 들었다. 반장은 대충 손을 저었다.
“귀찮아도 해야지.”
“오.”
유지유는 뜻 모를 감탄을 터트렸다.
자기계발 강좌처럼, 회사의 직원이 다른 직원들 상대로 강의하는 자리. 때로는 연구원이 교양 수준으로 이상학을 가르치기도 하고, 때로는 전투원이 작전 이야기를 풀기도 했다.
그리고 조사원은.
“미지의 이상개체 만나고 어떻게 임기응변으로 대응하는지, 대충 경험 몇 개 이야기하면 돈 들어오는데.”
생존 경험을 이야기한다.
정보를 어느 정도 습득한 상태로 일하는 대부분의 연구원이나 전투원과 달리, 미지의 이상개체를 조사하는 업무.
이런 요령은 누구에게나 쓸모가 있어, 반장은 주기적으로 강의를 나가는 편이었다.
두 사람이 그 자리에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칸막이 아래로 머리가 사라지면서, 인사말이 흘러나왔다.
“다녀오세요!”
“오냐.”
“길 조심하십-”
“조용히 해! 네가 조심하라고 하면 사고 날 거 같으니까.”
반장은 괜히 투덜거리며 사무실을 떠났다.
유지유는 머리를 매만지다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인터넷을 돌아다녔고, 이연우는 심혈을 기울여 첫 업무를 골랐다.
반장의 말을 듣고 초심을 되찾았다.
‘역시 생존이 우선이지. 괜찮은 장비는 안 주나? 내 약점을 보충하거나, 강점을 살려주는 그런 거.’
인지능력을 향상해주거나, 재생력을 강화해주거나, 아니면 행운을 더해주거나.
하지만 그런 걸 보상으로 제시한 사람은 없었고, 이연우는 가장 안전해 보이는 요청을 선택했다.
[관측 보조 요청]
- 명왕성의 태양계 행성 복귀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 이상異常에 오염된 명왕성이 관측에서 벗어나고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주사위의 힘을 빌려 명왕성을 관측하고자 합니다.
- 장소….
장소는 외딴곳의 천문대고, 보상은 단순한 돈이다. 수락 버튼을 누른 이연우는 가볍게 생각했다.
‘관측이면 실패나 대실패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
그렇게 도박근절센터의 첫 번째 업무가 결정되었다.
***
이연우는 시계를 보고, 곧바로 떠났다. 유지유는 혼자 남아 좋다며 얼른 가라고 손을 휘저었고, 이연우는 차를 몰고 한적한 시골로 달렸다.
차가 붐비는 도시를 벗어나고도 한참을 달려, 차는커녕 사람 사는 집조차 보이지 않는 외딴 평지.
덜컥-
이연우는 차에서 나오며 주변 환경을 둘러보았다.
“진짜 아무것도 없네….”
천문대가 있을 법한 평지. 별 관측을 방해하는 빛을 피해, 정식 도로조차 없는 곳에 지어졌다.
이연우는 눈이 쌓인 길을 걸었다. 푹푹 빠지는 발을 힘겹게 옮기며 정문에 도착하니, 닫힌 철문과 보안요원이 그를 반겼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아.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예? 오늘 방문 예정 없는데.”
“도박근절센터 이연우입니다. 안쪽에 여쭤보십시오.”
이연우가 새로 만든 신분증을 보여줬다. 테이저 건과 무전기를 든 보안요원은 당황하며, 안쪽에 통신을 걸었다.
이연우는 가만히 서 있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와서 느끼는 미묘한 위화감.
‘…회사원끼리는 뭐가 통하나? 그냥 회사원이라고 하면 대부분 믿잖아.’
생각해보면 회사원이라고 밝히면 의심하는 꼴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남이 변장하거나, 아예 몸을 빼앗을 수도 있는데.
“확인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보안요원이 머쓱하게 웃으며 철창을 열자, 이연우는 가볍게 질문했다.
“그런데 회사원 사칭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거의 없습니다.”
보안요원이 잡담하듯 말했다.
“이게 미신인데. 회사원 사칭하면 회사가 잡아가서 진짜 회사원으로 만든다는 괴담이 있어서. 보통은 습격하거나, 몰래 들어오는 편입니다.”
“아.”
이상異常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단순하게 재미를 위한 괴담도 괴담으로 넘어갈 사람은 적다.
이연우조차 진실을 의심했다.
‘진짜 비슷한 이상개체 있는 거 아니야?’
의심에 물든 표정을 본 보안요원이 웃었다.
“그냥 미신입니다. 회사원 사칭하는 적대 개체는 결국 회사한테 잡히니까, 이상하게 왜곡된 괴담이겠죠. 자, 안에 들어가십시오.”
보안요원이 손을 뻗어 높은 건물을 가리켰다. 그쪽까지 길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예. 고생하십시오.”
이연우가 들어가니, 한산한 1층으로 연구원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자다가 나왔는지 부스스한 느낌의 연구원은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니, 이렇게 일찍 오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왕 하는 일 빨리하려고 바로 왔습니다.”
그리고 빨리 왔다고 해도 오후인데. 이연우가 그렇게 말하자, 연구원은 눈을 깜빡였다.
“별 보려면 밤 되어야 하는데요?”
“…아.”
천문대여도 회사의 부서라서 시간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이연우는 어벙한 표정을 지었고, 연구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렇게 된 거 천문대 구경이나 하십시오. 그렇지, 외계인 보시겠습니까?”
“외계인이요?”
갑자기 외계인이? 이연우는 에코백을 고쳐 매며 장비를 확인했다. 호기심보다는 경계가 앞섰다.
연구원은 그런 기색도 모르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異常에 멸망한 머나먼 문명 최후의 생존자가 이곳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