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이연우는 약점을 보완하기를 원했다.
습격에 취약하니 인지력의 강화를, 사람의 몸은 죽기 쉬우니 재생력의 강화를, 주사위의 실패가 두려워 리스크의 관리를.
이제 와서는 자아를 유지할 방법 역시 찾았으나, 어떻게 보면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축복 받은 아이…. 이게 옆에 있으면 사건사고도 안 겪지 않을까?’
모니터를 보는 이연우의 눈동자에 희망의 빛이 반짝였다.
그동안은 내 인생이 이런 걸 어쩌냐 그러려니 넘어갔지만, 위험한 사고가 찾아오는 운명을 고칠 수 있다면.
‘평온하게 살 수 있잖아? 아냐, 진정해. 들뜨지는 말고.’
후우-
이연우가 심호흡을 하며 마우스를 움직였다. 천문대의 경험으로 성장했기에 관련 정보부터 찾아보았다.
축복 받은 아이. 이상개체답게 이해할 수 없는 행운이 따라오는 아이.
‘이 아이가 찍어준 주식은 상한가를 치고, 격리하려고 했더니 격리에 문제가 생기고. 가챠 하면 한 번에 뽑고. 습격자는 길을 잃고, 넘어지고, 오발 사고 나고.’
관찰 기록과 실험 목록이 제법 길다. 그 말도 안 되는 행운.
이연우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번 만나고 싶은데….”
운명을 시험해볼 가치가 있다.
이연우가 마우스에 손을 올렸다. 마우스 커서가 수락 버튼 바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손가락을 까딱여 누르려는 순간.
손이 멈췄다.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어제 그 난리를 겪고 바로 일을 간다고? 이건 좀 아닌데?’
명왕성의 오염을 겪은 게 어제다. 워커홀릭처럼 매일매일 의뢰를 수행하러 다니는 삶은 그답지 않았다.
한번 큰일 겪었으면 한동안은 쉬면서 체력이며 정신력을 회복해야 한다.
휙-
마우스가 움직이더니, 회사 시스템을 종료했다. 이연우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며칠 좀 쉬자.’
이연우가 핸드폰을 쥐자, 마찬가지로 시간을 대충 보내고 있던 유지유가 고개를 돌렸다.
“의뢰 골랐어요?”
“고르긴 했는데. 어제 무리해서 며칠 쉬려고요.”
“….”
이연우는 핸드폰을 툭툭 두드리다가,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슬그머니 머리를 돌렸다.
유지유와 눈이 마주쳤다. 유지유는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순수한 부러움이었다.
1인 부서. 자기가 부서장이자 유일한 직원이며, 따로 명령을 내릴 사람도 없다.
“자기가 일하고 싶을 때만 하는 거예요? 할당량 없어요? 필수 의뢰나?”
“그런 건 딱히….”
그때였다.
그들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회사의 긴급문자인 줄 알고 허겁지겁 핸드폰을 확인한 그들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멸망주의자 미쳤나? 아니, 원래 미친놈들이긴 한데. 왜 이렇게 돌았지?”
“이거 진짜 멸망주의자가 보낸 거예요?”
이연우도 멍하니 핸드폰을 보았다. 멸망주의자가 단체로 돌린 광고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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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부족한가?’
이연우는 천천히 생각했다. 보아하니, 인력이 부족해 이렇게라도 수급하려는 모양이라고.
이런다고 멸망주의자가 되는 인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시간이 지났다.
이연우는 한동안 휴식한 후, 축복 받은 아이를 보기 위해 의뢰를 수락했다. 중간에 인터넷이 끊기거나, 마우스 선이 뽑히는 등의 사고가 있었으나, 수락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떠날 준비를 마친 이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 그래. 조심하고.”
“천천히 있다가 와요.”
반장과 유지유는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경쾌하게 손을 흔들며 이연우를 보냈다.
이연우는 찝찝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나 같은 인간이 주변에 있으면, 나 같아도 싫긴 해. 그래도 뭔가 좀 그런데.’
그렇게 이연우가 차를 타고 떠났다.
목적지는 축복 받은 아이가 있다는, 철새보호센터.
“아, 운전. 너무 귀찮은데.”
기름값은 회사가 지원하지만, 먼 거리까지 운전하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이연우는 피곤한 정신을 바짝 일깨우며 액셀을 밟았다.
국도를 구불구불 돌아다니고,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 멀리 있는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그러던 중 전화가 왔다. 마크 정이었다.
- 출발하셨습니까?
“가는 중입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작스러운 전화에 이연우가 귀를 기울였다. 눈은 운전에 집중했지만, 귀는 마크 정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혹시, 철새보호센터에 피해야 할 게 있나.
마크 정은 가볍게 말했다.
- 별일 없습니다. 저도 의뢰 한 번 확인했는데, 딱히 피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럼 왜 전화하셨습니까?”
이연우는 의아하게 물었고, 마크 정은 무언가 기대가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 본사에서도 이번 실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잠재적인 6레벨이지만 거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혹시 다른 이상개체로 도핑할 수 있을지, 관심이 많습니다.
“….”
이연우는 입을 다물었다.
‘결과 좋으면 축복 받은 아이랑 위험한 작전에 투입될 느낌인데.’
뭔가 좀 그렇다. 꺼림칙한 느낌.
이연우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보다 멸망주의자, 요즘 광고 문자 뿌리던데. 이상한 음모 꾸미는 거 아닙니까?”
- 아. 아닙니다. 순수하게 사람이 부족해서 그러는 겁니다. 다 이연우 씨 실적이죠.
집회에서 렙틸리언 전염병이 폭주하고, 나중에는 불운하게 사후세계 파편을 뒤집어쓰고.
멸망주의자는 정상적으로 활동하기 힘들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 무엇보다 지우개를 든 멸망주의자를 처치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때부터 그들의 몰락은 예정되었습니다.
마크 정은 피식피식 웃으며 설명했다.
자신의 이름마저 지워버린 멸망주의자. 다른 집단의 다양한 방해공작을 막던 멸망주의자. 그가 죽은 순간부터 그들의 미래는 정해졌다.
멸망주의자는 시들어 죽을 것이다.
- 이미 작전이 입안되었습니다. 온갖 방법으로 꾸준히 공작할 건데 그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아.”
이연우는 문득 깨달았다. 운 좋게 대성공이 나와, 여러 명의 자신이 협공해 물리친 그가 멸망주의자에서 위험레벨 6의 역할을 하던 인간이라고.
하긴 주사위 5개가 함께 구른 뒤에야 승산을 잡았으니.
‘6레벨을 넘보는 수준이었나?’
그쯤에서 이연우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철새보호센터.
“저 도착했습니다.”
- 예, 고생하십시오.
전화가 끊어졌다. 이연우는 외부에 자리한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느긋하게 내렸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들이켰다.
인적 없는 평야에 지어진 철새보호센터라 그런지, 분위기가 참 좋다. 공기는 맑고, 전체적으로 평온한 기운이 흐른다.
긴장과 마음이 저절로 풀릴 정도로.
‘벌써 느낌이 좋은데.’
이연우는 잠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쉘터 같은 곳에 들어온 것처럼 안전한 느낌을 만끽했다.
“누구십니까?”
“도박근절센터 이연우입니다. 오늘 협력해서 실험 진행하는데….”
그러고 있자니 보안요원이 조심스럽게 다가왔고, 이연우는 보안절차를 거쳐 센터 부지 안으로 들어갔다.
여러 종류의 새가 서로 다른 울음소리로 이연우를 맞이한다. 또한 느릿하게 걸어 나온 연구원이 이연우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안에 아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빨리 갑시다.”
“예.”
이연우는 연구원을 따라 길을 걷다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긴 꼭 동물원 같습니다. 저 새들이 이상개체입니까?”
사방이 철조망이나 유리 벽으로 막힌 우리와 우리 안에서 느긋하게 종종 걸어다니는 새.
연구원은 우리를 곁눈질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조류 형태의 이상개체를 격리하는 곳입니다. 저쪽에 있는 새들 이름은 뉴클리어, 드론, 항공모함, F-15, UFO인데.”
“무슨 새 이름이.”
그만한 무력을 가졌다는 뜻일까? 이연우가 긴장한 눈으로 새들을 보았지만, 새는 멍청하게 꾸벅꾸벅 졸 뿐이었다.
어떻게 봐도 평범한 새.
연구원이 말했다.
“레이더나 정보자원에 잡힐 때 이름대로 인식됩니다. 핵미사일이나, 항모나, 전투기로.”
“아.”
이연우는 크게 감탄하며 새삼 새들을 보았다. 안전한 이상개체. 특별한 비밀도 없고, 잠재적인 위험요소도 없다.
‘이렇게 단순하고 평범한 이상개체를 얼마 만에 보는 거지?’
감동 같은 것이 느껴진다. 평범한 회사원의 일상을 겪는 것만 같다.
연구원은 이상한 사람 보듯 이연우를 보고는, 걸음을 서둘렀다.
“여기입니다. 아이가 머무는 방.”
그들은 센터 건물의 한 방으로 갔다. 어린아이의 방처럼 이름표가 달려 있고, 이런저런 스티커와 그림 따위가 붙은 문.
연구원은 짧게 노크하고는 자상한 목소리를 내었다.
“들어갈게.”
“응!”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연우는 호기심에 가득 차, 천천히 열리는 문을 보았다.
활짝 열린 문 너머에는 아이의 방이 있었다. 장난감이며 책이며 조류 인형이 널브러져 있고, TV에서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동용 애니가 재생되었다.
TV 앞에는, 유치원생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TV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축복 받은 아이?’
평범한 애처럼 보이지만 뭔가 다르다. 들어온 순간부터, 이연우는 마음이 느슨해짐을 느꼈다. 이곳은 안전하다는 확신에 가까운 직감.
그 순간이었다.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가 반갑다는 듯 손을 휘적이며 몸을 돌렸고.
이연우와 눈이 마주쳤다. 이연우는 최대한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아이니까. 그리고 괜히 적으로 보여서 불행한 일을 당하기 싫어서. 소극적으로 손을 살짝 들어 젓는다.
“안녕?”
“으, 으, 으아아아앙!”
한순간에 아이의 표정이 변했다. 즐겁게 아동용 애니를 보던 아이는 악몽을 보는 듯 이연우를 보더니 숨이 넘어갈 듯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이 쏟아지고,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연구원이 서둘러 다가갔다.
“얘야? 이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
“나빠!”
이연우도, 연구원도 당황했다. 그 짧은 순간 아이가 펄쩍 뛰어오르더니, 막을 새도 없이 두 사람을 제치고 두두두 달려 도망쳤다.
퍽, 지나가며 허벅지쯤을 손으로 때리고 복도 저 너머로 사라진다.
이연우는 멍하니 아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이를 잡으려는 직원들이 우당탕 넘어졌다. 아이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뭐지? 아니, 진짜 뭐지?”
이연우는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저렇게 울부짖을 정도로 내가 무섭게 생겼나? 아닌데?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하지만 생각이 진행되기도 전에 상황이 빠르게 흘러갔다.
연구원이 한숨을 내쉬며 이연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의뢰는 취소하겠습니다. 아이가 저러는 이상 실험은 불가능합니다. 사실 저도 딱히 실험하고 싶지 않았고.”
“아, 예.”
그렇게 이연우는 어리둥절하게 철새보호센터에서 쫓겨났다. 철새보호센터의 정문 앞에서 이연우는 눈을 깜빡였다.
아무런 사고 없이 순식간에 종료된 의뢰. 도망친 축복 받은 아이.
가까스로 상황을 파악한 그는 망연하게 중얼거렸다.
“나를 마주치지 않는 게 행운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