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이연우는 자기 차로 돌아왔다. 운전석에 앉아 멍하니 허공을 보았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스쳤다.
울어 젖히며 우다다 도망간 아이.
‘주사위 때문에 도망갔나? 대실패 위험 때문에? 아니면 진짜 내가 사고를 끌고 다녀서? 내가 그 정도로 불운한 운명을 타고났나?’
이연우가 문득 얼굴을 쓸었다. 추운 겨울, 차게 식은 피부의 온도. 이연우는 냉정하게 과거를 되새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운 좋은 편인데?”
사고를 많이 겪었지만 잘 살아남았다. 주사위도 꽝이나 실패가 많았지만, 대성공이 대실패보다는 많이 나왔다. 이 정도면 행운에 가깝지 않을까?
‘아냐. 그래도 사고가-’
그 순간이었다.
이연우의 눈에 광채가 맺혔다. 원인 따위는 뒤로 하고 현실을 인식했다. 사고. 의뢰. 업무.
그가 감동하여 중얼거렸다.
“업무 끝났잖아. 아무런 사고 없이.”
매번 펑펑 터지던 업무가 문제없이 종료됐다. 습격도 없고, 이상개체의 폭주도 없고, 예기치 못한 사건도 없었다.
그야말로 행운이다. 평온한 업무고 일상이다.
그 낯선 현실에 소름이 돋았다. 많이 어색했다. 이대로 끝나는 게 맞아? 진짜 이걸로 끝인가? 진짜? 뭐 안 터지고?
이연우는 운전석에 앉아 안절부절 몸을 꼼지락거렸고, 시간은 평온하게 흘렀다.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 근처의 새들이나 들고양이가 울고, 주변에는 사람 그림자도 안 보였으며, 이상현상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순간 이연우는 깨달았다.
‘내가 운이 없구나! 그래서 사고가 그렇게 터졌구나!’
또한 희망을 보았다. 이연우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습기 찬 창문 너머로 철새보호센터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행운으로 상쇄된 사고가 터질 운.
이연우가 못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행복은 나누면 두 배, 슬픔은 나누면 절반.”
그 관용어가 이연우의 머릿속에서 적당하게 바뀌었다. 행운은 나누면 두 배, 불행은 나누면 절반.
‘행운 좀 나눠 쓰자. ’
아이가 공포에 질려 엉엉 울던 장면이 떠올랐지만, 이연우의 자기합리화 앞에서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갔다.
‘행운이 상쇄되는 거면 그 아이한테도 좋은 거지. 이상개체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거잖아.’
이상개체로서 감시당하고, 격리당하고, 교육받는 삶이 얼마나 힘들까. 아이에게는 평범한 일상을 겪을 기회였다.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이연우는 생각을 비틀어가며 그런 결론을 냈고, 곧장 마크 정에게 전화했다.
쫓겨나다시피 내보내진 이연우가 철새보호센터에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예, 접니다. 지금 임시사무실로 조사반 건물 쓰고 있지 않습니까. 임시사무실을 철새보호센터로 옮길 생각인데, 방문 허가 좀 받아주십시오.”
-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진짜 옮기실 겁니까?
마크 정은 의아하다는 듯 질문했고, 이연우는 짧게 말했다.
“일단 며칠 있어 보려고 합니다.”
이연우의 눈이 문득 허벅지로 향했다. 아이가 팔을 휘저으며 도망치다가 때린 허벅지.
‘이상개체에 공격받은 거잖아. 그 대가를, 아니, 후유증이 있나 이곳에서 살펴야지.’
아이한테 너무 진심인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하지만 그 행운은 그에게 필요했기에 이연우는 모른 척 넘어갔다.
“며칠 머무르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돌아갈 생각입니다.”
- 예. 지금 사무실 이전 명목으로 방문 허가 받았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실험은…?
“아이가 도망쳐서 못 했습니다. 아마 주사위 도핑에는 효과 없을 거 같습니다.”
주사위 리스크 관리가 성공하면 이연우와 함께 위험지역으로 끌려갈 테니까.
마크 정은 아쉬워하며 한숨을 쉬었고, 그걸로 통화는 끝났다.
이연우는 곧장 차에서 내려 철새보호센터로 걸어갔다.
***
노을이 지는 저녁이었다.
보안요원의 미심쩍은 눈초리를 받으며 들어간 이연우는, 여러 직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광경을 보았다.
직원들은 큼직한 대야에 새 모이를 잔뜩 담아 이런저런 우리 안으로 들어간다.
“밥 먹자.”
“아이고. 배고팠구나?”
새 무리가 종종종 뛰어와, 직원들을 둘러쌌다. 한순간에 포위된 직원들은 귀엽다는 듯 새들을 보며, 능숙하게 모이를 먹이통에 나눠 담았다.
몇몇 새들은 기운차게 날아오르더니, 아예 먹이통에 몸을 담갔다. 모이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때, 이연우를 맞이했던 연구원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는 이연우에게 다가왔다.
“사무실 이전. 무슨 속셈입니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연우는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말입니다. 분위기도 좋고, 공기도-”
“헛소리는 하지 마시고. 축복 받은 아이를 이용하려는 것 아닙니까.”
“이용까지는 아닌데….”
이연우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연구원은 이연우를 노려봤다.
“솔직히 저는 그 아이 안 좋아합니다. 우리 담당 분야도 아닌데, 그 애가 새 좋아한다고 이쪽에 맡긴 거라. 그래도.”
단호한 목소리와 단단한 눈빛.
“애는 애입니다. 도구나 무기처럼 이용당하는 꼴은 못 봅니다.”
이연우는 당당하게 연구원을 마주 봤다. 거리낌 없는 눈빛과 연구원의 경계하는 눈빛이 교차했다.
‘내가 본사도 아니고. 소년병처럼 쓰지는 않지.’
본사에 대해 이상한 이미지를 가진 이연우는 떳떳하게 말했다.
“저도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행운이 목적 맞습니다. 여기 있으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안전?”
연구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치 못했던 말을 들었다. 경계도 순간 풀렸다.
지금까지 축복 받은 아이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많았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행운을 이용해 주식과 코인을 하고, 로또 번호를 찍게 만들고, 게임 가챠를 대신 시키고, 실험에 동원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실험이 있었지만, 안전을 원하는 사람은 처음이다.
그쯤에서 연구원은 이연우에게 관심을 가졌다.
“혹시 출신이?”
부서장쯤 되면 아무나 앉혀놓지 않는다. 아무리 독특한 이상개체를 가졌어도, 말단부터 경력과 신뢰를 쌓은 다음 시키지.
이연우가 솔직하게 말했다.
“조사원이었습니다. 사실 지금 부서도 임시라, 실적 안 좋으면 조사원으로 돌아갈 겁니다.”
“아, 조사원.”
연구원은 경계를 완전히 풀었다. 조사원 출신이면 안전을 원할 수도 있다. 정신이 조금 이상한 다른 연구원처럼 아이를 이용할 생각도 없을 테고.
‘주변에 있고 싶을 뿐이면 뭐.’
연구원은 조금 느슨해진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그 아이 설득해보십시오. 그렇게 싫어하는 건 처음 보는데, 그 애가 싫다고 하면 사무실 이전 못 할 겁니다.”
“그러죠.”
방해만 안 해도 좋다. 이연우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 아이는 방에 있습니까?”
“저녁 먹고 놀고 있을-”
그때, 건물 입구로 직원 하나가 나오더니 지친 표정으로 크게 외쳤다.
“아이가 안 보여요! 어디 숨었나 봐요!”
이연우의 접근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몸을 숨겼다. 연구원은 빠르게 대응했다.
“가출하지 못하게 경계하십시오! 그리고.”
보안요원과 감시 시스템이 경계태세를 높이는 순간. 연구원은 이연우를 힐긋 보았다. 이제 와서 의문을 느꼈다.
‘아이가 이렇게까지 꺼린다고?’
축복 받은 아이를 위협하는 뭔가가 있다는 말이다.
‘주사위? 아니면 뭔가 저주라도 받거나, 이상개체에 쫓기나? 그래서 이곳으로 도피한 건가? 아니, 그랬으면 어디 입원하거나 보호받았을 텐데.’
그때 이연우는 작게 흥얼거렸다.
“꼭꼭 숨어라….”
숨바꼭질 같은 상황. 축복 받은 아이를 찾아, 옆에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어떻게 설득할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단 찾아보자.’
연구원의 경계 섞인 시선을 받으며, 이연우가 걸음을 옮겼다.
***
어둠이 내린 밤.
아이는 그림자 속에 숨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아직 작은 아이에게는 거대하게 느껴지는 복도가 음산한 그림자로 뒤덮였다.
환한 달빛을 받아 선명하게 드리운 나무그림자가 창문 너머로 흔들렸다.
아이가 울상을 지었다. 이렇게 무서운 건 처음이었다. 전부 그 괴물 때문이었다.
“나쁜 사람.”
아이에게 세상은 밝게 빛나고, 푹신푹신하며, 따스한 무언가였다. 어딜 가도 즐겁고, 따듯한 기운에 둘러싸이는.
하지만 그 괴물이 온 순간 달라졌다.
따듯한 기운이 사라졌다. 세상이 불안정해졌다. 처음 느껴보는 평범한 위험이 곳곳에 도사렸다.
뛰다가 넘어지거나, 물 마시다 사레가 들리거나, 게임이 안 풀리거나.
주사위의 무작위한 성질과 이연우의 팔자 같은 것이 행운과 충돌한 결과였으나, 그걸 모르는 아이에게는 이연우가 못된 괴물로 느껴졌다. 자신의 세상을 망가뜨리는 괴물.
‘도망쳐야 하는데….’
아이가 망설였다.
건물 바깥으로 나갈 때는 꼭 어른과 함께 가라고 세뇌에 가깝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이상개체 없이 순수한 심리조작에 당한 인식이 사슬이 되어 발을 묶는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그 괴물의 목소리다.
“어디 있니?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야. 너한테 나쁜 짓할 생각이 없어. 그냥 같은 건물에 살 뿐이야. 자, 여기 문화상품권 있는데 가지지 않을래?”
어설픈 말.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이연우가 어색하게 내뱉은 말.
그 말은 아이에게 영원토록 네 세상을 망가뜨리겠다는 소리로 들렸고.
회사가 만든 심리적인 사슬을 깨부쉈다. 아이의 눈에 달빛이 맺혔다.
‘도망쳐야 해! 어른은 믿을 수 없어!’
같이 사는 아저씨나 아줌마는 이미 괴물한테 속았다. 저 괴물과 말하고, 심지어 아이가 직접 위험하다고 외쳤는데도 웃으면서 아이를 붙잡으려고 했으니까.
그러는 동안에도 이연우가 가까워진다.
흡, 아이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몸을 웅크렸다. 숨소리도 안 내고, 그림자 속에 숨었다.
이연우는 발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이런저런 위험을 겪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기척을 죽이게 됐다.
“어디 있지? 구석에서 자나? 주사위 굴릴까?”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연우가 달빛이 비치는 창문 앞으로 나왔다. 나무 그림자가 촉수처럼 얼굴과 몸을 휘감고, 유혹하듯 내민 문화상품권이 괴물의 혓바닥처럼 흔들렸다.
아이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고, 동공이 잔뜩 확장됐다.
이연우가 주사위를 찾는 순간 세상이 더 망가졌다. 그 끔찍한 상실감과 고통.
다행히 이연우는 아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것도 아니라 머리가 둔했고, 감각은 깊게 잠들었다.
쓸데없이 동심을 느낀 이연우는 아이와 놀아주는 게 이런 느낌인가 싶어 흥얼거렸다.
“꼭꼭 숨어라.”
점점 멀어지는 노랫소리가 음산한 복도에 맴돌다가, 끝내 사라진다.
아이가 푸하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우다다 달려 나갔다.
‘도망쳐!’
평소에는 혼자 나오지 못할 바깥으로 경쾌하게 발을 내디딘다. 이 순간 혼자 나가지 말라는 교육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곧장 새 친구들이 머무는 우리로 향했다.
‘혼자서는 못 도망쳐! 여기 아저씨들 다 괴물한테 속았어!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해!’
순찰 도는 보안요원을 운 좋게 피한 아이는 운 좋게 잠기지 않은 우리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일어나!”
이리저리 흩어져 잘 자던 새들이 푸드덕 깨어났다. 새들은 멍청한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빨리 도망쳐야 해! 빨리 나와!”
한순간 새들의 눈에 야생성이 돌아왔다. 새들은 순식간에 날개를 펼치더니 문을 향해 날아갔다.
철새보호센터에 경보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