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새의 무리가 폭풍이 되어 우리를 벗어나기 무섭게 경보가 울린다. 에에에엥, 귀 아픈 사이렌이 터져 나오며 한밤중의 정적을 찢고, 붉은 등이 깜빡이며 깊게 잠든 건물을 물들였다.
- 격리 실패. 격리 실패. 보안 요원은 즉시 출동하시고, 부서 책임자는 상황실로 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녹음된 방송이 반복되었다.
“….”
이연우는 멍하니 창문 앞에서 멈췄다.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억지로 친절한 목소리를 내던 그는 창가에서 밤하늘을 보았다.
“새?”
레이더에 다른 것으로 인식된다는 새가 밤하늘을 빙빙 돈다. 격리가 뚫렸다.
사고. 이연우의 본능이 깨어났다. 느긋하게 아이를 쫓던 못된 아저씨에서 생존주의자로 변화하는 순간.
‘습격? 사고? 뭐지?’
둔한 두뇌 세포가 기지개를 켜고, 번쩍거리는 생각이 명멸한다. 날 선 감각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했다.
이연우의 눈이 번쩍였다.
“찾았다.”
창가에서 멀리 보이는 새의 우리. 그 근처에서 호다닥 뛰어가는 어린아이의 형상.
상황이 명백했다.
‘저 아이가 도망치겠다고 새를 풀었어. 습격은 아니야. 위험하지도 않고.’
깨어나던 본능과 감각이 다시 잠에 든다.
이연우는 다시 아이를 괴롭히는 못난 사람이 되었지만, 망설였다.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쫓아가는 게 맞나? 애초에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하지?’
이연우는 양심과 안전욕구 사이에서 헤맸다. 아이를 쫓아가기 위해 시간을 사는 지폐와 라이터를 꺼냈지만, 좀처럼 불을 붙이지 못했다.
아이의 감각과 생각을 알지 못했기에, 이연우의 마음은 조금씩 안전욕구로 기울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오해는 풀면 돼. 얼굴을 보고 말 한마디 못 나눴잖아. 내가 무해하다고 알리면 되지 않을까?’
시간으로 따지자면, 경보가 울리고 1분쯤 지났을까.
숙련된 회사원들이 건물 위층에 있는 생활관에서 잠옷 차림으로 우르르 뛰쳐나왔다.
“뭐가 빠져나간 거야!”
“빨리!”
혼란스러운 외침과 우두두 울리는 발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온다.
그 선두에는 이연우를 맞이한 연구원이 있었다. 연구원은 통신기를 들었는데, 통신기에 입을 바짝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상부에 보고해! 레이더 지랄 났을 거니까, 관련 기관에 말하라고!”
레이더나 정보자원에 이상하게 인식되는 새다. 항공기를 추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도 우르르 나타날 거고, 공항 감시 레이더에도 잡힐 것이다. 군부대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큰 문제로 비약되지는 않는다.
갑자기 항공모함이 육지 한가운데에 나타났다고? 공중항공모함이야? 말이 돼? 핵미사일이라고? 그게 한국의 시골에서 갑자기 쏘아졌다고? 새가 날아다니는 속도로 움직이는데? 미사일 궤적도 아닌데?
누가 봐도 의심 먼저 할 상황이니까.
연구원은 계속해서 말했다.
“해수대응중대에 출동 요청해! 그리고-”
문득 연구원이 이연우를 보았다. 또한 창문 저 너머에서 활기차게 뛰는 아이를 보았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인간 때문이야!’
축복 받은 아이 덕분에 평소에는 사건사고 없이 평온한 부서가, 이 외부인이 들어오자마자 뒤집어졌다.
‘애초에 아이랑 이 인간을 같이 두면 안 됐어!’
실수다. 처음부터 판단을 잘못했다. 아이를 설득할 기회를 주면 안 됐다. 악의가 없어도, 주변에 있어서는 안 된다. 연구원이 성큼성큼 걸었다.
“라이터가 왜 이러지.”
이연우는 창문 너머를 노려보며, 틱틱, 라이터에 불을 붙이려고 노력했다. 좀처럼 불이 나오지 않아 스위치를 계속 누르다가, 결국 포기하고 드르륵 창문을 열었다.
달려가서 얼굴을 보고 대화할 생각이다. 그가 창틀에 손을 얹는 순간.
목덜미를 콱 잡혔다. 이연우가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연구원이 버럭 소리 질렀다.
“보안요원! 이 외부인 내쫓아!”
“저기, 선생님. 뭘 오해하셨는데, 이번 사고는 제 잘못이, 맞나? 아무튼 이렇게까지 할 일은-”
“보안요원!”
연구원은 들은 척도 안 했다.
허겁지겁 복도를 달리던 보안요원 둘이 멈칫하더니, 이연우를 좌우에서 잡았다. 억센 손아귀가 팔짱 끼듯 양팔을 얽매고는 그대로 뒤로 끌어당겼다.
이연우는 차마 발버둥 치지도 못했다. 연구원이 빠르게 통보하는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사무실 이전은 무조건 반대할 겁니다. 축복 받은 아이의 관리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상부에 보고하고, 접근금지 요청도 넣어야겠지.”
순식간에 파렴치한 범죄자가 된 느낌에 이연우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난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찾아다닌 게 끝인데! 같이 있던 시간은 1분도 안 돼!’
찾아다니면서도 아이가 겁먹지 않게 친절한 목소리를 내었고, 자신은 안전함을 알리고, 놀이처럼 느끼게 동요까지 부르면서 돌아다녔는데!
“아이가 정문 쪽에 있으니까, 뒷문으로 보내!”
그렇게 이연우는 질질 끌려가, 철새보호센터의 뒷문 밖으로 쫓겨났다. 한동안 한숨을 푹푹 쉬던 이연우가 차로 돌아갔다.
“포기하자…. 아, 그래도 아쉬운데.”
어쨌든 자잘한 사고는 있었지만, 위험한 사고는 없었지 않나. 행운 성능 확실한데. 아쉬움에 계속 뒤를 돌아보던 이연우가 체념하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
새들이 철새보호센터 상공을 정신 사납게 빙빙 돌며 보안요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물총이나 마취총, 포획용 드론으로 무장한 보안요원과 연구원이 새를 돌려놓으려고 애를 썼다.
‘힘내, 친구들아!’
속으로 새를 응원한 아이는 흙길과 나무 그림자 사이를 휙휙 뛰어다니며 눈을 반짝였다.
“어?”
세상이 따듯해졌다. 괴물이 사라진 듯 말이다. 옷가지에 흙먼지나 지저분한 눈을 잔뜩 묻힌 아이가 걸음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한밤중에 이게 뭐 하는 거냐고!”
“해수대응중대 언제 와!”
새 친구와 아저씨들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게임하듯 소리치고, 총을 뿅뿅 쏘고, 장난감보다 멋있는 드론을 조종하고. 새들은 날개를 파닥이며 비행기처럼 멋있게 날아다니고.
세상이 돌아왔기 때문일까. 아이는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괴물이 없어졌으면 도와줘야 하는데.”
괴물한테 속은 착한 아저씨들을 깨워야 한다.
물론 무섭다. 위험하다고 알려줬는데, 웃으면서 괴물을 도와 자신을 잡으려고 했으니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아이가 결의가 서린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모험을 하는 것처럼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그렇게 아이는 아이를 쫓아온 연구원을 가장 먼저 보았고,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일어나! 괴물한테 속았어!”
“그래. 아저씨도 알아. 그래서 괴물을 내쫓았단다. 이제 괜찮아.”
연구원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다가왔고, 아이의 눈은 동그래졌다.
이 아저씨가 그 못된 괴물을 물리쳤다고?
“아저씨가 어떻게? 아저씨 약하잖아?”
연구원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 체력을 못 따라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긴 한데.
그가 얼른 말을 돌렸다.
“그…. 괴물을 왜 그렇게 무서워했니?”
“아! 진짜 나빠! 막, 막!”
아이의 관심은 금방 돌아갔다. 괴물에게서 도망치고, 괴물의 눈앞에서 숨었고, 또 어떻게 새를 풀어줬는지, 자기 모험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손발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말하는 아이에게 귀를 기울인 연구원은 곧 결론을 냈다.
‘행운과 상쇄된 불운? 그 사람은 그래서 아이의 행운을 원했고, 아이는 그 사람이 싫었고?’
아니, 싫은 수준이 아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상실감. 선명한 위험과 진득한 공포를 처음으로 느꼈다.
그 증언이 생생했다. 아이가 과장되게 말했지만 공포가 은연중에 묻어났고, 연구원은 입을 살짝 벌렸다.
‘이건 애를 괴롭힌 수준인데? 아니, 노래는 왜 부른 거야. 애가 울면서 도망가는 거 봤잖아. 사이코패스인가?’
불운을 가지고도 조사원에서 부서장이 된 인간이니, 그 심성을 감히 예상할 수 없다.
연구원은 그 진술을 전부 녹음한 뒤, 상부에 보고하기로 했다. 둘은 서로 떨어뜨려 놓는 게 맞았다.
한창 보고서 초안을 떠올리던 연구원은 문득 아이를 내려보았다.
‘나는 이 아이에 대해 조금도 모르는구나.’
이상개체로 태어난 아이가 보고 느끼는 세계는 그들과 달랐다. 어쩌면 평범한 아이처럼 대하는 게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고, 연구원의 눈이 깊어졌다.
***
아이의 과장 섞인 진술과 연구원의 냉철하면서도 의도를 담은 보고서는 그대로 상부로 올라갔고, 한국지사뿐만이 아니라 본사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아이의 순수하면서도 진실한 이야기는 그들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순진한 어린아이를 괴롭힌 것처럼 보여서.
무엇보다 노래가 결정적이었다.
- 거기서 그런 노래를?
그래서 몇몇 사람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이연우를 담당하는 프로파일러들과 이사와 마크 정을 비롯한 직원들.
- 무엇이지? 인간성을 상실한 것인가? 이상개체가 되어버린 것인가? 안개에 오염당한 것인가?
-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될 기억을 만들다니.
이연우는 단순한 직원이 아니었다.
미래의 레벨 6이자, 회사의 핵심 전력. 그간의 업무 이력만 모아서 읽어보면 감탄이 나오는 인재.
그렇기에 이연우가 돌아버리면 그 여파는 끔찍할 것이었고, 회사는 사소한 사고 하나도 함부로 넘기지 못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머리를 맞댔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한다.
- 생존주의적 성향이 발현된 것 아닐까요? 첫 만남에 허벅지를 맞았는데, 공격으로 인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 어쩌면 질투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의 행운은 이연우가 원하는 방향의 힘인데, 아이는 처음부터 그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합리적으로 따져보는 사람이 있었고.
- 처음부터 본성을 숨겼다면? 그동안의 모습은 소시오패스가 고도로 학습한 결과물이라면?
- 이상오염의 징조일지도 모르지요.
멸종의 대변인처럼 비관적으로 가정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 그냥 오해 같은데….
생각 없이 본질을 알아채는 사람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모든 주장이 그럴듯했고, 또 확실한 근거가 부족했다.
결국 이사가 짧게 말했다.
- 앞으로 주의 깊게 살피도록 하지. 마크, 자네는 그를 자주 만나니 잘 관찰하게.
- 예.
그렇게 마크 정은 아이의 진술을 옮겨적은 문서를 가지고 이연우를 만났다.
마크 정은 문서를 건네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니, 아이를 왜 그렇게 괴롭히셨습니까. 아이가 악몽에 시달리겠던데요.”
“제가요? 저 진짜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아니, 안녕 한마디밖에 못 했는데.”
억울함으로 가득한 이연우는 문서를 받아 읽었다. 그리고 얼굴에서 억울함이 사라지고, 양심에 찔려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느낄 줄 몰랐는데….”
아이가 느꼈던 공포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자신이 그렇게 괴물 같나 불편하기도 하고.
‘아니, 잠깐만.’
문서를 몇 번 더 읽은 이연우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마크 정이 이렇게 문서까지 들고 찾아온 걸 보니 뭔가 심상치 않다.
수상한 기색을 느낀 머리가 깨어나더니, 감정이 배제된 냉철한 판단이 빠르게 내려졌다.
‘의심? 안개 오염되어서 이상개체로 변하고 있다고 의심하나?’
이 의심을 풀어야 한다. 잘못되면 본사에 잠재적인 위험요소로 여겨진다.
이연우의 입이 열렸다.
“주사위를 아이가 그렇게 느낄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직원을 세뇌했다는 듯이 나왔는데, 이건 당연히 오해고요.”
생존본능이 켜져 냉정한 목소리에 마크 정의 눈동자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