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
사실 전부 오해에서 일어난 과한 걱정이다. 상부도 사건을 심도 깊게 분석했고, 대부분은 서로의 생각이 엇갈려서 일어난 일이란 걸 알았다.
50인용 쉘터의 오라클 시스템을 터트리는 주사위와 아이의 행운이 충돌한 결과. 아이의 인식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 도망친 아이를 잡으려는 직원을 착각한 아이.
마크 정은 침을 꿀꺽 삼켰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사실 별문제 없어. 아이의 주관은 과장되었고, 편견으로 왜곡되었으니까. 사실만 보면 웃고 넘어갈 일이야. 하지만.’
그는 떨리는 눈동자를 애써 통제하며, 이연우를 힐긋 보았다.
예술가 협회장 때문에 기억소거제를 마셔 한달가량의 기억을 잃었지만, 그래도 나름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이다. 마크 정은 이연우란 사람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다.
‘위험 싫어하고, 어리숙하고 허술한 부분이 있는, 사회초년생.’
하지만 지금 이순간 낯선 사람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생존본능이 켜진 이연우가.
사람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억울함이나 미안함 따위의 감정은 증발했고, 느슨한 태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연우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은 채,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본사 무서워….’
이연우의 인식에서 본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장치에 가까웠다.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숫자로 보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면 윤리나 도덕 따위는 내다 버릴 수 있는 냉혹한 무언가.
그런 것이 이상세계를 지배하는 힘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을 위험개체로 본다면….
“본사의 걱정은 알겠습니다. 어린아이를 괴롭힌 느낌이니, 인성에 문제가 있나 의심할 수도 있죠.”
이연우는 오해를 풀기 위해 침착하게 말을 쏟아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아이를 왜 괴롭히겠습니까.”
“그 노래는 왜 부르셨습니까?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그 노래 말입니다.”
이연우가 회사의 의심을 알아챘으니, 마크 정도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 노래 하나 때문에 회사가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런 노래를 부르면서 울면서 도망간 아이를 쫓아간 건 좀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연우가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노래는 확실히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자신 없는 목소리가 억울하게 흘러나왔다.
“숨바꼭질 같이 놀이처럼 느끼라고…. 저는 애가 그냥 저를 싫어하는 줄 알아서….”
마크 정은 집중했다. 이연우의 표정과 목소리를 살피고, 사소한 몸 움직임을 분석한다.
이연우는 진실했고, 그럴듯했다. 판단은 프로파일러가 내리겠지만, 일단 마크 정은 경계를 풀었다.
낯설긴 해도, 사지를 헤쳐나온 회사원 아닌가. 마냥 허술한 사람일 리가 없다.
“알겠습니다. 상부에는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이런 의심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이연우 씨가 워낙 중요한 인력이라, 회사가 지나치게 민감했습니다.”
마크 정이 꾸벅 고개를 숙였고, 이연우는 활짝 웃었다. 의심이 풀린 듯했으니까.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회사가 그럴 수도 있죠.”
은은한 긴장이 흐르던 이연우의 방에 화기애애한 기운이 감돌았다.
‘본사에 찍히지 않았으면 됐지.’
긴장이 풀린 이연우는 자세를 느슨하게 풀었다. 이불만 대충 깔아둔 이연우의 방이었기에,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문득 고개를 들어 마크 정을 보았다. 떠날 준비를 하던 마크 정이 의아하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제 집. 언제 구해주실 겁니까?”
“아.”
이연우는 쉘터가 터진 이후로 조사반 건물에서 잠깐 머물고 있었다. 빈방에 대충 이불만 깔아두고.
‘딱히 안 찾아봤는데. 괜히 좋은 쉘터나 도시에 있는 집 구해줬다가 사고 터지면 어쩌려고.’
마크 정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얼른 그럴듯한 말을 떠올렸다.
“여기서 계속 머무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예?”
이연우의 표정이 단번에 찌그러졌다. 샤워실도 있고, 가스버너로 밥도 해 먹고, 큰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싫었다.
마크 정은 변명을 빠르게 뱉었다.
“자, 들어보십시오. 예술가의 이론은 아십니까? 세상을 감동시키면 작품이 된다.”
“그건 아는데.”
“그 작품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건물도 작품 아닐까요?”
“그게 무슨….”
이연우는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마크 정의 궤변을 들었다.
“조사원들이 오래도록 쓴 건물입니다. 생존예술가들의 거점인 만큼 사고가 안 나는 이상개체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이연우 씨가 한참 머물렀는데도 아무 문제 없지 않습니까?”
“어….”
그런가? 이연우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둥둥 띄웠다. 뭔가 그럴듯한데.
“사실 이연우 씨는 축복 받은 아이를 찾아갈 필요도 없었습니다. 이 건물이 이연우 씨가 원하던 거니까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마크 정은 헛소리를 당당하게 뱉고는, 발을 서둘러 방을 떠났다.
이연우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있다가,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세상을 감동시키면 작품이 된다. 예술가 협회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세계의 편애를 받는 괴물.’
그렇다면 생존본능으로 세상을 감동시키면.
‘생존본능이 이상개체가 아니어도 이상개체로 만들 수 있고, 이상개체가 맞아도 레벨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이연우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
이연우는 의욕 없이 의뢰 목록을 둘러보았다. 눈은 텍스트 목록을 보고 있었으나, 그 글을 읽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딴생각으로 가득 찼다.
‘생존 예술? 가능한가? 가능하면 어떻게 하지? 위험 속에서 몸 비틀고 살아남기? 그건 싫은데.’
드르륵, 마우스 휠이 계속해서 돌아갔다. 어느새 의뢰 목록의 끝까지 도달했는데도, 이연우는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위험레벨 6, 6레벨, 생존본능, 인간자격증, 주사위.’
산의 정상이 환하게 보이는데, 정작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없다. 이연우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 있자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반장이 몸을 일으켰다.
“점심 뭐 먹을래?”
“저는 입맛이 없어서….”
이연우가 고개를 저었고, 유지유도 마스크를 쓴 채로 도시락을 꺼냈다. 출근하는 길에 사 왔는지, 죽이 나왔다.
“감기 걸려서 간단하게 먹을래요.”
“음, 그래.”
쉰 목소리에 반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혼자 밥 먹으러 나갔다. 유지유 또한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러 떠났고, 이연우는 마우스를 열심히 놀렸다.
“정보나 찾아볼까.”
혼자 생각해서 안 되면 인터넷에 검색을 하든, 기록을 찾아보든, 다른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면 될 일이다.
마침 보안 등급이 높아졌기에, 이연우는 온갖 기밀자료를 마음대로 둘러볼 수 있었다.
“위험레벨 6, 이상개체 진화….”
이런저런 키워드로 검색하니, 흥미로운 자료들이 잔뜩 나온다.
이연우는 눈길을 끄는 문서를 찾았다. 정확히는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문서를.
‘위험레벨 7?’
바로 문서를 연다.
[위험레벨 7에 대한 제안]
그동안 우리는 사고와 피해자의 규모로 위험레벨을 부여했습니다.
6은 지구멸망, 5는 국가몰락, 4는 도시괴멸 등등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회사가 보유한 이상개체가 많아지면서 6레벨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지구 멸망급의 위험이라도 약점을 찔리면 너무 쉽게 파괴되었고, 회사는 손쉽게 이들을 관리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전능과 절대성이 6레벨의 기준이 되었죠.
그렇다면 그 이상의 위험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본 적 없는, 상상하기 힘든, 가설로만 존재할 그 위험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이 이를 두고 논쟁하고 있습니다.
먼 과거에는 태양계 멸망의 위험, 혹은 우주 멸망의 위험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다투었으나, 이차원과 평행세계가 발견된 뒤로는 그 다툼이 더 심해졌습니다.
저는 더 단순한 기준을 제안합니다.
우리가 관리할 수 없는 위험. 가설로만 존재하는 위험레벨.
인류멸종의 위험. 지구, 우리 우주, 이차원, 평행세계를 가리지 않는 인류의 멸종.
어차피 상상일 뿐이니, 확실한 무언가가 발견되기 전에는 스케일 크게 정해둡시다. 기준이야 얼마든지 고칠 수 있으니까요.
그 답변은 간단했다.
승낙. 몇몇 연구원은 생산성 없는 짓에 그만 몰두하고 본업에 충실해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문서를 보던 이연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냥 가설이네. 있지도 않고.’
하도 스케일이 크니까 현실감이 없었다. 애초에 저런 게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세계를 가리지 않는 인류멸종?
‘저런 재앙이면 죽어주는 게 예의…. 그건 아니고. 아니, 잠깐만. 생존 예술.’
아이디어가 스친다. 이연우가 서둘러 고민에 빠져들었다.
‘혹시 죽을 상황에서 살아남으면 세계가 감동하나?’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이연우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곧 아이처럼 쉽게 마음을 바꿨다.
‘위험은 애초에 피해야지. 안 되겠다. 리스크가 너무 위험하고, 확실하지도 않아. 차라리 주사위로 6레벨 올라가는 게 낫겠어.’
답이 안 보이는 문제가 길을 막는다면, 그냥 길을 돌아가면 된다. 시험 볼 때도 안 풀리는 문제는 마지막으로 미루지 않나. 아예 포기하거나.
“오염, 자의식 지키기.”
이연우는 방향을 바꿨다.
생존본능이더라도, 주사위만 못하다. 역시 주사위가 좋다. 그 전능에 가까운 힘이면 생존은 문제도 아니다.
이연우는 의뢰는 뒤로 내팽개치고 이런저런 이상개체를 찾아보았다.
영혼 관련한 것도 찾아보고, 심리나 정신 쪽도 보고, 저항이나 생존 관련한 것도 보고. 위키 보듯 어느 순간 목표를 벗어날 정도로 푹 빠져서.
그러던 중 이연우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인간자격증이 오염에 저항하는 걸 회사는 모르나?’
오염 저항 관련한 실험기록이 없다.
가만히 모니터를 보던 이연우가 턱을 매만졌다. 인간자격증.
‘이것만큼 저항 잘하는 게 없는데. 혹시 시험 여러 번 치면 자격증을 여러 개 받을 수 있나? 아니. 주사위가 시험 치고 자격증을 따면 어떨까? 아, 그럼 독립하나?’
가능성을 조작할 시점까지 오염된 뒤, 인간자격시험을 부르고, 결과를 조작하는 방법.
‘시도해볼만 한데.’
어쨌든 주사위의 오염도는 다시 내릴 수 있으니까.
이연우는 갑자기 열의를 찾고는 보고서 하나와 제안서 하나를 썼다.
인간자격증의 오염 저항. 그리고 인간자격증을 여러 개 딸 수 있는지, 그렇다면 개수에 따라 오염 저항에 차이가 있는지 실험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