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유지유가 역병을 퍼트렸다. 어디서 독한 감기에 걸려 온 유지유는 반장은 물론이고, 졸업을 앞둔 부모감별사 최재민마저 감염시켜, 조사반을 마비시켰다.
어지간한 사건사고를 겪어도 멀쩡하게 돌아가던 부서인데, 고작 감기에 부서장부터 예비인력까지 싹 날아간 상황.
반장과 유지유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이연우에게 연락했다.
“어, 연우야. 네가 임시로 조사반 좀 맡아라. 업무 들어오면 대충 거절하고, 뒤로 미루기만 하면 된다.”
“액땜했다고 생각하면 뭐, 나쁘지 않네요. 이상한 사고 나는 것보다는 감기가 낫죠.”
빗물의 활력으로 저항한 이연우는 흔쾌히 조사반을 맡았다.
“예. 푹 쉬십시오.”
며칠 전화를 대신 받는 일쯤이야. 심지어 모르는 사람, 낯선 부서도 아니고.
그렇게 이연우 혼자 한산한 건물을 지키며, 오랜만에 조사원으로서 일하기 시작했다. 업무가 들어올 때까지 시간을 대충 보내는 일.
전화가 오면 거절하는 일.
“예, 조사반입니다. 아, 반장님이요? 지금 독감 걸리셔서 쉬고 계십니다. 예, 다음에 연락 주세요. 조사업무요? 지금 남는 조사원이 없어서….”
이연우는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대충대충 전화를 받았다.
성의 없는 목소리로 답하면서, 눈으로는 회사 인트라넷을 구경한다.
‘실험 제의는 검토 중이고. 아, 할 거 없네.’
인간자격증 관련한 보고와 제안은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처럼 보였다. 결국 시간이 남아도는 이연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낮잠이나 자야지.”
햇볕은 따스하고 난방도 적절해, 딱 자기 좋은 느낌이다. 긴장이 느슨하게 풀렸다. 뒤로 잔뜩 젖힌 의자 속으로 몸이 늘어졌다.
쌕쌕, 숨소리가 이어졌다. 이연우의 의식이 저 아래로 잠겼다.
그리고, 의식이 어딘가로 이어졌다. 개인의 무의식이나 꿈을 지나서, 기이한 정신적 공간으로.
***
“…어?”
이연우는 눈을 깜빡였다. 분명히 사무실에서 잠들었는데. 눈을 뜨니까 낯선 세상이었다.
모래가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 푸른 하늘에는 이런저런 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무엇보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 하나. 이연우는 그 간판을 올려봤다. 끊임없이 변하는 간판이 이연우의 언어로 변했다.
“꿈 거래소?”
이연우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온갖 사건사고를 겪었다. 이게 단순한 개꿈인지, 이상개체가 엮인 현실인지 분간하기란 쉬웠다.
이연우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얼굴에는 신경질적인 기색이 날카롭게 솟았다.
‘아니, 뭔. 그냥 낮잠 잤는데 왜 또 이상개체랑 엮이는 건데.’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영 마음에 안 든다. 주사위부터 찾아본 이연우는 주사위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이동은, 대실패 나오면 무섭지. 일단 들어가 보자.’
자신을 끌고 왔으니, 돌려보낼 방법도 저 가게에 있을 것이다.
이연우는 은근하게 긴장하며, 조심스럽게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딸랑딸랑, 벨이 경쾌하게 울었고, 안쪽에서 후드를 눌러쓴 가게 주인이 이연우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당신에게 꿈을 찾아주거나, 당신의 꿈을 적절한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꿈 거래소입니다!”
“….”
이연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야를 넓게 두고, 가게 주인과 가게를 둘러보았다.
가게 주인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후드 아래로 짙은 그림자가 얼굴을 가렸다.
‘가게는 골동품 가게 느낌이고.’
깔끔한 가게의 선반에는 오르골이나 수정구슬, 피아노, 축구공, 기타, 마이크, 시험지, 청진기 따위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이연우가 가게 주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절 부른 건 당신입니까?”
“글쎄요. 제가 불렀다기보다는, 당신의 영혼이 꿈 거래소를 찾아-”
헛소리다. 이연우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어, 가게 주인의 말을 막았다.
“관심 없으니까 돌려보내 주시죠.”
“아하하.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반응하죠. 그래도 모처럼 만난 건데 이야기라도 듣는 게 어떨까요? 전부 잠깐의 꿈일 뿐이잖아요.”
가게 주인은 장갑 낀 손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나무 의자가 나타났으며, 모락모락 김을 내뿜는 차가 계산대 위로 올라왔다.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짧게 물었다.
“골드버그 클럽입니까?”
꿈을 사고파는 가게. 당연히 클럽부터 떠올랐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어넘겼다.
“아, 골드버그 클럽. 황금빛 꿈을 꾸는 인간들! 저는 그런 속물이 아니라서요. 이 일은 훨씬 더 위대하고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랍니다!”
이연우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이연우의 반응이 어떻든, 가게 주인은 어깨를 쭉 펴고 자신감 있게 말하기 시작했다.
“꿈을 이룰 수 없는 사람은 꿈을 팔아 자유를 찾을 것이고, 능력은 있으나 꿈이 없는 자는 꿈을 사서 꿈을 이룬답니다. 말하자면 피지 못하고 스러질 꽃을 활짝 피우는, 아름다운 일이죠!”
“아, 예. 좋은 일 하시는군요. 그래서 돌아가는 길은 어디입니까?”
“….”
가게 주인이 멈춘다. 주인은 언제 신나서 이야기했냐는 듯 몸을 웅크리더니, 음산한 목소리를 흘렸다.
“내 말을 듣지 않는군요.”
“그쪽도 내 말을 안 듣는데.”
이연우 또한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 꿈팔이는 뭐지? 관심 없다니까?’
꿈. 사람의 열정과 희망을 담은 그것을 거래하는 신비한 가게가 단순한 잡상인으로 격하되었다. 아니, 이연우에게는 잡상인보다 악질로 여겨졌다.
“안 사고 안 판다고요. 사람 납치해서 강매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그 순간이었다.
가게 주인의 기분이 나빠짐에 따라, 가게가 변하기 시작했다. 악몽처럼 두려운 어둠이 일렁이고, 곳곳에 널린 아름다운 꿈 대신 어둡고 끔찍한 꿈이 기어 나온다.
한순간에 어둠에 잠긴 가게 안.
어둠 너머에서 울음과 한탄과 비명 따위가 들려왔고.
이연우는 얼른 의자에 앉았다.
“정말 흥미가 가는군요. 꿈을 팔면 무엇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무슨 꿈을 파시나요?”
이연우는 천연덕스럽게 눈을 깜빡였다. 당신에게 집중한다는 듯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잠에 취했던 머리가 깨어났다.
‘앞에 있는 이거 이상개체야. 조심해야지.’
괜히 잘못 건드려서 사고당하기는 싫다. 좋게 넘어가는 게 가장 좋다.
가게 주인은 말문이 막혀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손님이.”
어둠이 물러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다시 가게에 내려앉았다. 여러 사람의 꿈이 형상화된 물건들이 은은하게 빛났다.
이연우는 한숨을 돌렸고, 가게 주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조심하세요. 저는 당신 생각보다 대단하고,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하니까요.”
“훌륭하십니다, 선생님!”
짝짝짝, 이연우의 영혼 없는 박수와 감탄.
가게 주인은 냅다 손을 저어, 차를 없애버렸다. 이연우에게 줄 차는 없다. 주인이 불친절하게 말했다.
“꿈은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 꿈을 이룰 능력이 있는 사람한테만 팔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이연우는 귀 기울여 듣는 척했고, 가게 주인은 이연우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꿈을 살 자격이 없네요. 뭘 이룰 능력이 있어야지.”
“아, 저런. 그럼 저는 손님 자격이 없겠군요. 안타깝지만 돌아가야겠습니다.”
이연우가 활짝 웃었다. 어찌 보면 무시당한 것이지만, 그에게는 별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당신 꿈은 꽤 괜찮네요. 순수한 생존욕구. 삶의 갈망. 이건 불치병 환자한테서나 볼 법한데. 좋아요.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한테 팔면 되겠어요.”
가게 주인에게는 이연우의 꿈이 보였다.
생존. 그 원초적이고 순수한 꿈.
가게 주인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분 좋은 목소리가 후드 아래의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 꿈 저한테 파시죠? 더 어울리는 사람한테 전해줄게요. 당신보다 그 꿈을 잘 이뤄줄 사람이 그 꿈을 보석처럼 빛내줄 거예요.”
“….”
이연우는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물끄러미 가게 주인을 바라보았다.
가게 주인은 두 손을 계산대 위로 모았다. 설득하듯, 친절하게 말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감당 못할 꿈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차라리 깔끔하게 꿈을 포기하면, 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당신의 꿈은 다른 사람이 대신 이뤄줄 거고요.”
“안 팔아요.”
“예?”
그쯤에서 이연우가 몸을 일으켰다. 더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다.
‘내 꿈을 팔면 나는 조금 더 여유롭고 자유롭게 살겠지. 회사도 퇴직하고 벌어둔 돈으로 삶을 즐길 거야. 하지만 그뿐이잖아.’
생존. 그 근본적인 동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이 망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아마 방심하고 금방 죽을지도 모른다.
‘일단 가게부터 나가자.’
이연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가게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는다. 손에 불끈 힘이 들어가며 손잡이를 당겼다.
덜컥-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저,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모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괜찮아요. 제가 당신을 꿈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게요. 다 끝나면 저한테 고마워할걸요?”
한순간이었다.
이연우는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마음, 정신, 영혼, 뭐라고 말하든, 그 뿌리가 되는 핵심적인 무언가가 사라졌다.
생존이란 꿈을 잃어버린 이연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가게 주인이 한 손에 심장 모형을 쥐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뛰는 심장 모형.
“좋아요. 훌륭한 꿈이에요. 강하고, 순수하고. 이걸 누구에게 줘야 아름답게 빛날까요?”
그쯤에서 가게 주인이 이연우를 보았고, 둘의 시선이 교차했다. 가게 주인이 말했다.
“어때요? 자유로워진 기분이?”
“잘 모르겠는데.”
이연우는 멍하니 말했다. 사라진 생존욕구를 대신해 정신이 다시 구성되고 있었다. 그가 겪었던 모든 기억을 바탕으로 새롭게.
어딘가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이연우의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당신은 꿈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를…?”
가게 주인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하다가, 멈췄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이연우가 냉혹하게 중얼거렸다.
“사람은 언젠가 죽어.”
가치관이 재정립됐다. 그가 겪은 사고와 이상경험. 살얼음판 같은 세상. 광대한 우주와 이상세계.
이 세상에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은 헛짓거리에 불과하다.
오직 하루하루 충실하게, 내일 죽어도 만족하며 죽을 수 있게, 마음 가는 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옳다.
그리고 지금 이연우의 마음이 가는 곳은.
“내 꿈을 마음대로 가져갔지. 그 대가는 내가 알아서 받을게.”
위험하겠지. 상대는 미지의 이상개체고, 주사위의 리스크는 여전하니까. 생존본능이 은근히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기분 나쁜 걸 해소하는 게 더 중요했다. 이연우가 주사위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