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드르륵-
이연우가 낡은 의자를 문 앞까지 질질 끌고 온 다음, 의자 위에 털썩 앉았다. 이연우는 죽은 생선같이 탁한 눈으로 가게 주인을 보았다.
“생각해봤는데, 그냥 대가를 가져가는 건 재미가 없어.”
“….”
가게 주인은 대답하지 않고, 이연우를 유심히 살폈다.
꿈을 잃어버린 이연우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딱히 열정도 없고, 죽지 않았기에 살아 있는, 모질고 거친 세상에 찌든 어른.
본래라면 가게 주인이 본 척도 안 하고 무시할 인간이지만….
‘뭐지?’
가게 주인은 무심코 몸을 뒤로 뺐다. 꿈도, 열정도 없는 인간한테서 위험이 느껴진다. 손님으로 찾아오는 인간보다는 자신 같은 무언가에 가까운 분위기.
이연우는 히죽 웃었다.
“우리 주사위 놀이나 합시다. 판돈은 당신이 가진 것 전부.”
“…당신 꿈이 아니라요?”
가게 주인이 손을 내밀었다. 손에 잡힌 이연우의 꿈, 박동하는 심장 모형이 계산대에 올라갔다.
하지만 이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재미없잖아. 내 기분이 풀리지도 않고.”
원래 자신의 꿈이었다. 그걸 판돈으로 걸어봤자, 자기 것을 돌려받는 것에 불과하다. 기분 나쁨을 해소할 것을 걸어야 했다.
‘농담이나 장난은 아닌데.’
가게 주인은 불안을 느꼈다. 단순한 주사위 놀이가 아니다. 진짜 판돈을 거는 도박이다.
“그…. 도박하기 싫다면-”
“그건 예의가 아닌데. 내 꿈은 강제로 뜯어가고 주사위 놀이 하나 못해? 그럼 나도 예의를 못 지키겠는데.”
이연우가 웃었다. 그건 그것대로 재밌다. 상대를 억지로 도박판에 앉히는 것도 좋고, 거부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주사위를 굴려도 좋다.
사실, 주사위를 굴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즉각적으로 현실을 조작하는 도박 아닌가.
그쯤에서 가게 주인은 어렴풋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스윽-
계산대에 올린 이연우의 꿈을 슬쩍 밀었다. 이연우를 향해서였다. 가게 주인이 말했다.
“꿈 돌려드릴게요. 우리 여기서 그만-”
“넣어둬. 내 꿈은 이제 중요하지 않으니까.”
이연우는 거절했다. 정말 중요하지 않았다. 꿈을 잃어버린 이연우는 가게 주인이 했던 말처럼 자유를 느꼈다.
‘사람은 죽어. 아등바등 살아서 뭐 하냐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지.’
몸을 꽁꽁 묶은 사슬이 풀린 기분. 그 개운함과 상쾌함. 이연우는 어떤 걱정도 없이 삶을 즐겼다. 자기 감정에 충실했다.
이연우가 문득 박수를 쳤다. 즐거운 주사위 놀이를 하기 전에 준비할 게 있다.
“그렇지. 주사위를 너도 봐야 하는데. 내가 보는 걸 구현할 수 있나?”
휘적-
고민하던 가게 주인이 손을 저었다. 이연우의 정신 한편에 있는 주사위가 계산대 위로 투영되었다. 대실패, 실패, 꽝, 꽝, 성공, 대성공, 여섯 개의 결과가 존재하는 6면 주사위.
“이게…?”
“좋아. 그럼 시험 삼아 굴려볼까? 주사위, 그냥 한 번 굴러줘.”
그 말과 동시에, 주사위가 펄쩍 뛰어올랐다. 주사위는 데구르르 경쾌하게 굴렀고, 결과를 냈다.
꽝!
투영된 주사위의 결과. 가게 주인은 이게 뭔가 싶어 침을 꿀꺽 삼켰고, 이연우는 고민했다.
“꽝은 3 아니면 4인데. 난 3이 좋으니까, 3이라고 치자.”
“그게 무슨 의미죠? 애초에 이걸로 무슨 놀이를 하겠다는 말입니까?”
이연우가 손가락 세 개를 폈다.
“주사위 놀이 3번만 합시다. 성공 나오면 내가 이기는 거고, 꽝과 실패가 나오면 당신이 이기는 거야.”
가게 주인은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룰은 이해했지만, 상황을 잘 모르겠다. 굳이 이 인간 말을 따라야 할까? 지금이라도 내쫓으면-
그리고, 이연우가 말했다.
“첫 번째. 이 가게의 꿈들이 사라질 가능성.”
“뭐-”
화들짝 놀란 가게 주인이 펄쩍 뛰어오르고, 주사위 또한 높이 솟구쳤다. 데구르르, 주사위가 계산대 위를 굴러다닌다.
꿈틀거리는 가능성. 현실로 구현되는 가능성.
가게 주인은 그제야 주사위의 힘을 알아봤다.
‘아니, 이딴 걸 가진 인간이었다고?’
후회는 늦었다. 이미 상대를 건드렸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게 주인은 안광을 번쩍이며 주사위를 보았고, 다음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꽝!
“아.”
가게 주인이 털썩 주저앉았다. 이연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 게임은 당신이 이겼습니다. 바로 다음 게임 갑시다.”
“뭐, 뭘 굴리려고요? 꿈 돌려드릴 테니까, 제발 그만-”
가게 주인은 이연우의 꿈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꿈을 돌려줄 생각이다. 어렵지 않다. 머리나 몸통에 쑤셔 넣으면 끝이다.
하지만 조금 전의 가게 주인이 그러했듯 이연우는 대응하지 않았다. 자기 할 일을 할 뿐.
“두 번째는, 꿈 거래소에 사람이 방문하지 않을 가능성.”
꿈 다음은 가게가 대상이다.
계산대를 넘어오던 가게 주인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것은 몸을 훽 돌려, 계산대를 보았다. 주사위가 구르고 있었다.
데구르르-
가게 주인은 똑똑히 보았다. 꽝과 실패, 성공 따위가 어지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결과가 어지럽게 교차할수록,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성공만 안 나오면 돼! 제발!’
순식간에 꿈 거래소의 미래가 어지럽게 흔들렸고,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실패!
“아아.”
가게 주인은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계산대에 두 손을 짚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고작 주사위 하나지만, 그 결과에 따라 현실이 바뀌었다. 그것도 그의 가게가 걸린 현실이.
짧은 순간 긴장을 얼마나 했는지….
그때, 가게 주인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연우가 세 번째 판정을 골랐다.
“마지막이야. 당신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
“아니, 잠깐!”
가게 주인의 느슨하게 풀렸던 긴장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번에는 아예 목숨이 걸렸다.
‘이번에도 행운이 따라줄까?’
앞의 두 번에서 이겼기 때문일까. 가게 주인은 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여 이연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판정만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생각의 속도보다는 느리다.
데구르르, 주사위가 구르기 시작했다. 가게 주인의 목숨을 걸고.
“아!”
가게 주인은 계산대와 이연우 중간에 멈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몸을 벌벌 떨며 구르는 주사위를 보았다.
극도로 집중했기 때문인지, 흩날리는 먼지와 좌충우돌하며 구르는 주사위가 세세하게 눈에 보였다.
실패가 위로 왔다가, 옆으로 굴러 꽝이 나오고, 툭 튕겨 성공이 윗면으로 나오고, 빙글 돌아 꽝이 나오고.
그 순간순간마다 심장이 저 아래로 쿵 떨어졌다가, 위로 솟구치기를 반복했다.
‘제발, 제발.’
그리고, 결과가 나왔다.
꽝!
“살았다….”
가게 주인이 땅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손이 힘없이 늘어져 바닥을 쓸었다. 수명이 딱히 존재하지 않지만, 수명이 줄어든 기분이다.
그 위로 이연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이연우는 가게 주인을 축하했다.
“운이 좋으시네요. 세 번 다 이기시고.”
“하, 하하. 예. 그, 여기 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원하는 꿈 있으면 몇 개 드릴 테니까, 앞으로 서로 마주치지 않는 게….”
가게 주인은 흐느적, 손을 올렸다. 이연우의 꿈을 쥔 손이었는데, 그냥 돌려줄 생각이었다.
“….”
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가게 주인은 순간 끔찍한 불길함을 느꼈다. 가게 주인이 떨며 고개를 들었다. 흔들리는 후드 너머로 이연우가 보였다.
웃고 있는 이연우가.
“자, 그럼 네 번째 판정 굴릴까요?”
“…세 번만 하겠다며!”
“마음이 변했어. 그리고 이게 더 재밌잖아.”
약속? 그걸 왜 지켜야 하나? 재미도 없는데.
그 순간 가게 주인은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생존. 그 꿈을 잃어버려, 사람을 억제하는 선 또한 잃어버린 자.
‘이 꿈을 빨리 돌려줘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가게 주인은 이연우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놀아날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가게 주인은 벌떡 일어나 몸을 던졌다. 박동하는 심장 모형, 이연우의 꿈을 제일 앞으로 내세우며.
또한 이연우가 말했다.
“네가 너의 꿈을 잃어버릴 가능성.”
데구르르-
성공!
교차했다. 가게 주인이 뻗은 손에 들린 이연우의 꿈이 이연우에게 돌아가는 것과 동시에, 가게 주인은 그의 꿈을 잃어버렸다.
“…어?”
“아?”
두 사람은 동시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이연우가 판단이 빨랐다. 한 번 빼앗겼던 꿈이 정신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반면 가게 주인은 처음 겪는 상실감에 눈을 마구 떨었다.
“내 꿈…?”
이연우는 코앞에서 가게 주인의 혼란을 고스란히 느꼈다. 몸이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기괴한 울음 같은 것이 들리고, 가게가 이리저리 일렁이고.
이연우는 기겁한 표정으로 주사위를 불렀다.
“이동, 아니, 잠에서 깨기!”
성공할 것 같은 판정을 찾아 부르기 무섭게 성공이 나오고, 꿈 거래소가 흐릿해진다.
다음 순간, 이연우는 조사반 사무실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연우는 식은땀으로 푹 젖은 이마를 쓸었다.
“아니, 미친. 살고 싶지가 않았나? 어떻게 그딴 짓을 하지?”
기분 나쁘다고 죽어라 달려들었던 기억.
이연우는 자신답지 않았던 기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조심성 없는 모습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
꿈 거래소.
와장창, 가게 주인은 선반을 쓰러뜨렸다. 깔끔하게 정리된 나무 선반이 와작 부서지고, 곱게 전시한 꿈들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렀다.
“내 꿈, 어딨지?”
가게 주인은 몸을 웅크려, 꿈 하나하나를 보았다. 그리고는 멀리 집어던졌다.
“아니야,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이런 게 아니다. 자신은 조금 더 아름다운, 숭고한 꿈을 꾸었다.
팔이 부러진 피아니스트의 꿈을 재능 있는 아이에게 전해주었고, 순수한 삶의 갈망을 품은 불치병 환자가 죽기 전에 전해준 꿈을 삶의 희망을 잃은 자에게 주었다. 때로는 아버지의 꿈을 아들에게 전해주기도 했고, 때로는 재능 없는 자의 꿈을, 때로는….
하지만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를, 그렇게 행동해 즐거웠던 이유를 잃어버렸다. 공허한 삶만 남았다.
“아냐, 아냐. 안 돼. 이렇게 살 수 없어. 내 꿈을 찾아야 해.”
그때, 딸랑딸랑, 벨이 울리고 손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여기가 어디…?”
새로 방문한 손님은 문가에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쓰레기장처럼 엉망이 된 꿈 거래소의 내부.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가게 주인.
가게 주인이 머리만 빙글 돌렸다.
“너. 꿈을 가지고 있구나. 그게 내 꿈일까?”
“아니, 어, 어!”
그렇게 가게 주인은 자신의 꿈을 찾아 손님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