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허우적거리며 잠에서 깬 이연우는 의자 등받이부터 돌려놓은 후 생각에 잠겼다.
꿈 거래소, 꿈을 잃어버린 자신과 가게 주인.
대낮에 꾼 꿈은 분명히 현실이었고, 잠깐의 일탈 또한 이연우의 또 다른 면이었다.
‘그렇지. 굳이 오래 살 생각 없으면 그렇게 살겠지.’
생존이란 꿈을 잃어버렸다. 조심성이 제거됐다는 말이다. 지뢰밭에서 춤을 추든, 괴물한테 들이박든, 재미만 있다면 못 할 게 없을지도 몰랐다.
안 그래도 살얼음판 같은 세상 아닌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재미가 우선일 수도 있다.
물론 오래오래 살고 싶은 이연우에게는 미친 자의 행동으로 여겨졌지만.
“미친 짓을 몇 번이나 한 거야….”
이연우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오들오들 떨었다.
가게 주인한테 달려들었다. 꿈을 되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 나쁘다고. 주사위도 마구 굴렸다. 대실패가 무섭지도 않았다.
일이 잘못 풀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한동안 과거에 사로잡혀 있던 이연우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보고부터 하자.”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회사원으로서, 조우한 이상개체를 보고한다.
안 그래도 요즘 회사가 자신을 의심하는 느낌이라, 속이거나 숨기지 않고 전부 썼다.
사무실에서 낮잠 자다가 꿈 거래소로 간 이야기. 이연우의 꿈과 그걸 빼앗겼던 이야기. 그래서 잠깐 정신이 나갔지만, 꿈을 돌려받은 이야기.
‘내 꿈은 안전하게 오래 사는 거니까. 이걸 알면 회사도 안심하겠지.’
타닥타닥-
고요한 사무실에 이연우가 키보드를 치는 소리만 울렸다.
꿈 거래소의 주인이 꿈을 잃어버렸다는 말로 마무리된 보고서는 그대로 등록되었고, 이연우는 느긋하게 회사 시스템을 껐다.
‘뭐 별문제 없겠지.’
꿈팔이는 꿈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대충 보충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자기 말대로 꿈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수도 있고.
이연우는 꿈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잠깐의 해프닝으로 여기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
이상개체로 가득한 세계는 바쁘게 돌아갔다.
회사의 연구원은 매일매일 연구했고, 특전대는 이상개체와 싸우고, 정보원은 정보원대로 바쁘고.
새로운 이상개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복수하는 눈사람이니, 할로윈의 지각생이니, 제3의 등장인물이니.
그렇게 바쁜 회사한테 일거리 하나가 더 던져졌다. 꿈 거래소가 변화한 그것.
“…꿈 강탈자요?”
“예. 이연우가 만들, 었다고 말하면 조금 이상한데. 어쨌든 그 사람이 사고 쳐서 만들어진 개체가 있습니다.”
꿈을 전해주고 또 사람이 꿈을 이루는 광경을 좋아하던 꿈 거래소의 주인이 악귀같이 변했다는 증언이 들려왔다.
“이건 안전한 개체였는데.”
당장 예술가 몇도 당했다던가. 회사와 협력해서 그놈 당장 잡아 죽이겠다고 난리도 아니라고 한다.
“이연우 씨, 진짜 사고뭉치네…. 지금 천문대 날아갔고, 축복 받은 아이가 격리해제 일으키고, 몇 번째입니까.”
“일단 꿈 강탈자 적대 등급 올리고, 봉인이든 파괴든 계획부터 만듭시다.”
결국 예술가 몇과 특전대 부대 하나가 손을 잡고 작전을 세우기 시작했고.
본사의 누군가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이연우의 보고서를 분석하기도 했으며.
클럽은 슬슬 이연우와 친분을 다지기 위해 움직였다.
“이연우한테 의뢰 넣으세요.”
“어떤 의뢰를 넣을까요?”
“간단하게 행운 부여해달라고 합시다. 여러 명한테요. 그와의 친분과는 별개로, 잘 풀리면 우리의 꿈을 이룰 기회가 될 겁니다.”
그리하여 골드버그 클럽 한국지부의 노인이 조사반 사무실로 찾아왔다.
***
“혼자 있나? 조사원들은 다 어디 가고?”
딱, 딱, 지팡이로 바닥을 짚으며 들어온 노인은 텅 빈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새로 단장한 사무실은 사람 사는 느낌으로 충만했는데, 온갖 잡동사니와 이면지와 쓰레기 따위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다.
이연우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노인을 맞이했다.
“다들 아파서 쉬고 있습니다.”
“아프다고? 조사원이 전부? 말이 안 되는데?”
노인은 눈을 땡그랗게 뜨며 놀랐다. 조사원이 다칠 수도 있지만, 조사반이 마비되는 일은 어지간하면 없었다.
조사원 숫자가 3명, 4명이긴 하지만 어쨌든 생존의 달인인데. 그들이 전부?
“무슨 사고가 났나?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인데.”
“감기에 걸려서요.”
이연우가 솔직하게 말했다. 노인은 믿지 않았다. 적대집단의 사람이라 사실을 감춘다고 생각했다.
‘조사원이 싹 다 쓰러졌는데, 고작 감기는 말이 안 되지.’
어찌 되었든, 말하기 싫다는데 굳이 파고들 이유는 없다.
노인은 대충 의자를 찾아 앉으며, 책상을 딱딱 쳤다. 싸구려 책상이 무슨 플라스틱 치는 소리를 내었다.
“조사반에 예산이 부족한가? 어째….”
“그,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연우는 생수병을 건네줬고, 노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생수병을 보다가, 생수병을 책상 구석에 놓았다.
“정보상이 자산 정리해서 그거 전해주러 왔지. 겸사겸사 의뢰도 있고.”
“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정보상이 이것저것 주기로 했었는데.
이연우가 활짝 웃었지만, 곧 표정이 이상해졌다. 보상을 주러 왔다면서 옷차림이 굉장히 가벼웠으니까. 노인은 지팡이 하나가 전부였다.
그 눈초리에 노인은 혀를 찼다.
“내가 이 늙은 몸으로 그걸 다 옮길까? 지금 우리 애들이 트럭으로 가져오니까 기다리게. 목록부터 먼저 보란 말이야. 의뢰 이야기도 하고.”
품에서 서류 몇 장을 꺼낸다.
이연우가 냉큼 받아보니, 물품 목록이 제법 길게 나열되어 있었다.
‘현금은 넘어가고. 시간을 사는 지폐, 부동산계약서, 클럽제 권총, 금괴.’
이런저런 장비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저것들이었다. 무장과 이상장비.
노인이 자랑하듯 말했다.
“부동산계약서가 뭔지 아나?”
“예. 무슨 땅의 주인으로서 강제력을 행사하는? 그런 거로 압니다.”
“아는군. 이건 클럽 밖으로 팔지 않는 물건인데, 특별히 선물하는 거야.”
이연우가 기쁘게 웃었다.
‘이거 있으면 집도 안 터지겠지.’
집의 주인으로서 강제력을 행사하는 이상계약서. 이걸 잘 쓰면 어지간한 쉘터도 부럽지 않다. 습격자는 내쫓고, 이상개체도 내쫓고.
‘집 바로 구해야겠어.’
이후 노인이 정보상의 비밀유지계약서 따위를 내밀었지만, 이연우는 달콤한 꿈에 빠져 설렁설렁 흘려넘겼다.
그렇게 분위기가 좋아졌고.
노인은 본론으로 넘어갔다.
“아, 그리고 의뢰 맡기고 싶은 게 있는데.”
“의뢰 말입니까? 어떤 의뢰입니까?”
이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언제 기분이 좋았냐는 듯,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경고하는 말이 우다다 쏟아졌다.
“실패할 수도 있고, 대실패 나오면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성공해도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고요. 사실 주사위로 도박은 안 하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진짜 골드버그 클럽이 끝까지 몰려 도박이 필요한 상황이면 모를까.
그리고 그런 상황이면, 위험한 게 분명해 이연우가 의뢰를 거절할 것이었고.
노인은 그런 이연우를 다소 황당하게 보았다. 세상에 어떤 자영업자가 자기 상품을 안 팔려고 할까.
크흠, 헛기침한 노인이 서류를 꺼냈다.
“이번에 클럽에서 프로젝트 하나 진행하는데. 거기에 주사위를 쓸 생각이네. 보게.”
“이건…?”
일종의 기획서.
이연우가 빠르게 훑어보니, 이차원 탐색과 우주 개발 관련한 문서였다. 기술과 단어가 거창해서 그렇지, 목적은 단순했다.
황금 확보.
“황금만능주의에 사용된 황금은 영구적으로 소모되지. 결국 지구에 있는 황금은 제한되어 있는데, 계속 쓰다 보면 고갈되지 않겠나.”
“그래서, 황금을 채굴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는 말입니까?”
“그래. 우주는 넓고 차원은 더 넓은데, 굳이 지구에서만 황금을 캘 필요는 없지 않나.”
이연우는 진지하게 문서를 살피다가 고개를 저었다. 문서를 책상에 놓고, 살짝 밀었다.
“이건 제 전문이 아니라서요. 마법사나 우주 연구하는 회사 부서를 찾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이차원 탐색의 전문가인 마법사. 우주과학 전문가인 회사의 부서. 그쪽에 맡기는 게 옳다.
“그건 다 해봤지.”
하지만 노인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당연히 전문가와 협력 먼저 해봤다. 그 결과는….
“마법사가 황금으로 이루어진 차원을 알더군. 거금을 주고 해당 차원 좌표를 받았지.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나?”
“모르겠는데요.”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고, 노인은 머리를 꾹꾹 눌렀다. 그가 젊었을 적 겪었던 경험.
“그 차원이 말이야. 마법사들이 몇 번이나 약탈했던 차원이더군. 황금은 마법사도 쓰는 재료니까. 그래서 그쪽 원주민이, 우리를 보자마자 공격했어.”
클럽은 손해만 보고 철수했다고.
이연우가 입을 벌렸다. 클럽이 크게 사기를 당한 모양새였으니까.
“아니. 사기를…. 그 마법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뭘 어떻게 돼. 우리한테 자원 크게 뜯어먹고 다른 차원으로 도망쳤지.”
“그걸로 끝났다고요?”
노인은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지팡이로 바닥을 투두둑 쳤다.
“그럼 뭐 어떻게 하나? 끝까지 가면 손해만 커지는데.”
손익이 맞지 않았다. 황금만능주의를 써서 차원 너머로 도망친 마법사를 응징하면, 되찾을 자원보다 잃어버리는 자원이 더 많았다.
소모되는 황금도 황금이지만.
“예전에 어떤 마법사는 고깃덩이 차원의 문을 열어 황금 광산을 전부 살덩어리로 만들었어. 어떤 마법사는 자기 원수를 클럽 지부에 떨어뜨렸고. 그것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야.”
마법사만큼 마음대로 사는 인간도 없다. 심지어 말장난을 치는 마법사면 괜찮은 편이었다.
대부분은 대놓고 사기를 쳤으니까. 수틀리면 도망치면 된다고.
그 말을 전부 들은 이연우는 눈을 깜빡였다.
이상한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역시 힘이 있으면 위험한 일을 해도 위험하지 않구나….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꿈 거래소의 경험이 뭔가 가치관을 흔든 기분.
이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기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래서 의뢰는 뭡니까?”
“간단하네. 행운 부여.”
노인은 기획서 중간의 문단을 가리켰다.
“클럽 회원 몇 명한테 주사위를 굴려주게. 그중 행운을 얻은 사람에게 무작위 탐사를 맡길 생각이야.”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위험한 일도 아니고, 사람 몇한테 행운 부여만 굴려주면 되는 일이다.
노인이 손을 척 내밀었다.
“그럼 계약 성립으로 알겠네.”
이연우는 주름진 손을 물끄러미 내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악수는 조금. 무슨 강제력 있을까 무서워서.”
클럽 한국지부의 장 아닌가. 사소한 행동에 뭐가 숨어있을지 모른다. 노인은 알겠다며 손을 거뒀다.
문득 이연우가 질문했다.
“회사와 협력해서 우주 개발은 안 했습니까?”
“아, 그거.”
노인은 헛웃음을 지었다.
“우주는 회사와 일반인 관할이니까 나오지 말라던데.”
“아.”
우주에 어떤 이상개체가 있을지 모르는데, 적대집단이 나오는 꼴은 못 본다고. 무슨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애초에 통제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런다고 다른 집단이 순순히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협력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