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선물을 실은 트럭이 도착했다. 클럽 회원 몇이 바쁘게 움직이며 박스를 창고로 옮겼고, 이차원 탐색에 참여한 회원 몇은 이연우를 보기 위해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노인이 짧게 소개했다.
“일단 여기 10명. 편하게 굴리게. 한 명만 성공해도 되니까.”
“다 실패할 수도 있는데요.”
“괜찮아. 10명 더 대기하고 있어. 한 명은 성공하겠지.”
“아.”
이연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눈은 클럽 회원들을 살펴보았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까지. 남자와 여자가 섞여 있고, 다들 신체가 건강했다. 클럽에서도 엄선한 회원인지 전문가 같은 분위기를 둘렀고, 눈빛이 형형하다.
이연우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주사 맞기 전에 간호사가 따끔해요 말하듯이.
“실패하면 며칠 동안 불운할 수 있습니다. 대실패가 나오면 평생 불행에 시달릴 수도 있고요. 여러분 생각보다 위험하니까, 혹시 원하지 않으시면 지금이라도 물러나세요.”
“성공만 나오면 되는 거 아닙니까. 혹시 대성공이라도 나오면 대박이고.”
어떤 회원이 손을 싹싹 비비며 히죽 웃었다.
잃어버릴 것보다 얻을 것에 초점을 맞춘 듯했다. 그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도박 중독이 아니었다.
노인이 말했다.
“우리도 나름 대비했네.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렇다면….”
하긴. 클럽 정도면 리스크 관리나 위험 분산에 이골이 났을 테지. 무엇보다 이연우가 위험할 일은 없었다. 어쨌든 다른 사람한테 사고가 생기는 건데.
이연우가 왼쪽 끝에 선 회원을 보았다.
“그쪽부터 굴리겠습니다.”
“예.”
데구르르-
꽝!
꽝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실패든 성공이든 가능성이 구현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연우는 주사위를 굴렸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리고 열 명 모두.
실패가 7명이고, 성공이 3명이다.
그 결과에 따라 사람들은 두 무리로 갈라졌다. 성공한 사람은 노인 뒤로 가서 섰고, 실패한 사람은 문가에 모여 오들오들 떨었다.
“몸이 이상해….”
“왜 넘어졌지? 이게 불운인가?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크허어, 콜록, 콜록! 침 삼키다가 코로 넘어왔어.”
행운 부여에 실패한 대가가 벌써 그들을 덮쳤다. 사소한 사고. 누군가는 갑자기 감기에 걸렸고, 누군가는 코인이 떨어지기도 했다.
반대로 행운을 부여받은 자는 기쁘게 웃었다. 행운이 그들을 축복했다.
“주식 오른다!”
“지금이야! 복권 산다!”
“빨리 가챠를…!”
탐색을 위한 행운을 사리사욕을 위해 쓰는 모습. 바쁘게 핸드폰을 두드리고, 흥분해서 어슬렁거리고.
이연우는 그들을 불편한 표정으로 보았다. 정확히는 불운한 자들을 경계하며 손을 내저었다.
“의뢰 끝났습니다. 빨리 가십시오. 대가는 알아서 주시고요.”
혹시 불운이 그에게 영향을 줄까 봐. 행운보다 불운이 많으니, 어떤 사고가 찾아올까 두려웠다.
노인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찔렀다. 떠들던 회원이 입을 다물었고, 이연우도 노인을 보았다.
“생각보다 결과가 괜찮군. 작업 하나만 마무리하고 돌아가겠네.”
“무슨 작업 말이신지.”
“이대로면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날 것 아닌가. 조치를 취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노인이 한 손을 품에 넣었다. 양복 안주머니로 들어간 손이 웬 빨대 하나를 꺼냈다.
이연우가 눈을 깜빡였다.
‘빨대? 뭐지?’
빨갛고 하얀 줄이 그어진 플라스틱 빨대.
회원들은 그게 뭔지 아는지, 긴장한 눈으로 다른 회원들을 곁눈질했다. 꼭 경쟁자를 보는 듯한 눈.
노인이 말했다.
“불운과 행운. 각각 한 사람에게 몰아줄 거야. 그게 통제하기 쉬우니까. 자, 알아들었지? 몰아받을 사람 정하게.”
그 순간이었다. 회원들이 얼른 손을 치켜들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고함, 혹은 내가 이겨야 한다는 고함이 터졌다.
“가위바위보로 합시다!”
“사다리 타기로 하는 게 낫죠!”
대충 두 사람을 뽑아 행운과 불운을 몰아주겠다는 말 같다. 회원들은 치열하게 다투었고, 어찌어찌 상황을 파악한 이연우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감당이 되나? 행운은 그렇다 쳐도, 불운을 한 사람한테 모으면….’
그 표정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노인이 이연우를 향해 빨대를 흔들었다.
“비물질적 빨대라고, 행운이나 감정이나 그런 것들을 빨아들이는 물건이야. 본래라면 다루지 못할 것을 상품으로 만들 수 있지.”
그러니까, 행운을 극대화하고, 불운이라는 쓰레기를 한곳에 모은다는 말인데.
‘이게 맞아?’
이연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생각을 포기했다. 이미 그의 손을 떠난 일이었다.
“그, 뭐가 됐든 나가서 해주세요.”
“걱정할 필요 없어. 설마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겠나?”
“아니.”
그쯤에서 사람 둘이 뽑혔다. 소란스럽게 다투던 회원들이 서로 다른 표정을 지었다.
불운을 몰아받을 사람은 우중충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연신 쓸어내렸고, 행운을 몰아받을 사람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노인이 먼저 불운을 몰아받을 사람에게 빨대를 건넸다.
“하게.”
“예….”
그 사람은 하기 싫다는 기색을 팍팍 풍기면서, 어렵게 빨대를 잡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계속 쉬다가, 다른 사람의 불운을 쭉 빨아들였다.
슈욱-
다른 사람을 가리킨 빨대가 공기를 빠는 소리를 냈다. 겉보기에는 장난치는 모양새였지만, 이연우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확률적인 가능성이 꿈틀대는 감각. 위험이 스물스물 다가오는 감각.
‘불운이 7명인데. 그걸 모으면.’
아니나 다를까.
2명, 3명, 불운을 빨아들일수록 사소한 사고가 이어졌다.
“크엑!”
갑자기 넘어지더니 빨대가 입천장을 긁었다. 그 사람은 피와 침이 섞인 붉은 액체를 질질 흘렸다. 비명을 길게 내질렀다.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는 사람을, 노인은 냉정하게 보았다.
“계속해.”
“영감님. 저 죽는 거 아닙니까? 심장마비 올 것 같은 기분, 아니, 진짜 심장마비 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 알고 자원한 거 아닌가. 차라리 빨리하는 편이 좋을 텐데?”
결국 그 사람은 쓰라린 고통을 억지로 참으며, 남은 불운을 흡수했다.
자그마치 7명의 불운이었다.
우당탕쿵탕, 난리가 났다. 옆의 선반을 툭 쳤더니, 반장이 대충 던져둔 전동드릴에 전원이 들어오며 발등으로 떨어졌다. 우득, 팔뼈가 부러졌다. 피로성 골절이었다.
멀쩡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다 죽어가는 환자가 되었다. 그 사람은 바닥에 누워 차마 비명도 되지 못하는 신음을 흘렸다.
“끄으윽, 끄으.”
“잘 버텼어.”
그리고, 노인이 품에서 도장 하나를 꺼내 그 사람의 이마를 쿡 찍었다.
임시 봉인이다. 본거지로 돌아가 제대로 처리하기 전까지는 불운을 봉인한다.
이연우는 저 멀리 도망쳐서 눈치를 살폈다.
‘됐나? 끝인가?’
불운만 해결됐으면 문제없다. 괜히 사고에 휩쓸리지만 않으면 된다.
에코백을 꽉 쥐고 주변을 둘러보던 이연우가 슬그머니 사무실로 돌아왔다. 바짝 긴장해 전투태세에 들어갔던 몸이 느슨하게 풀렸다.
노인은 그런 이연우를 힐긋 보고는, 빨대를 손수건으로 슥슥 닦아 행운을 몰아받을 사람에게 건넸다.
“자네 차례야.”
“예!”
슈우욱-
세 명의 행운이 한 사람에게 모인다.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행운이 올라가며, 현실이 그 사람을 돕기 시작했다.
무슨 쿠폰에 당첨됐다는 문자가 날아오고, 이벤트에 뽑혔다는 연락이 오고.
이렇게 노인의 업무가 끝났다. 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연우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좋아. 이만 가보겠네. 앞으로도 협력할 일이 있으면 좋겠군.”
“그, 알겠으니까 그만 가십시오.”
이연우는 엉망이 된 사무실을 보며 떨떠름하게 말했다. 불운을 겪은 자들이 난리를 피우며 난장판이 된 사무실.
‘이거 내가 정리하나? 아. 내가 정리하는구나.’
클럽 회원들이 아무렇게나 우르르 몰려서 사무실을 떠난다. 부상 입은 사람은 등에 매달려 흐느적거렸다.
그 뒷모습을 본 이연우는 한숨을 푹 쉰 후, 걸레를 찾았다.
진상 같은 손님이지만 그만큼 돈을 많이 줄 테니, 더 따지지 않고 수습에 나섰다.
그렇게 의뢰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노인이 지팡이로 바닥을 딱딱 짚으며 걷고, 다른 회원들이 뒤에서 느릿하게 따라가던 중.
“….”
행운을 몰아받은 사람이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만, 무언가 아이디어가 스쳤다.
‘조사원 출신. 살아남을 운명 같은 게 있겠지.’
행운이 있어도 이차원 탐색은 위험하다. 무작위로, 황금이 있는 차원을 찾아 던져지니까. 어떤 차원을 마주할지, 어떤 존재를 만날지는 알 수 없었다.
‘호의적인 존재도 위험할 수 있어.’
그렇기에 탐색 인원으로 뽑힌 회원은 이연우를 유심히 보았다.
걸레로 바닥을 닦고, 떨어진 물건을 돌려놓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이연우를.
‘조사원으로 시작해 부서장이 되고, 주사위의 리스크 앞에서도 살아남은 운. 조금만 빌리자.’
스윽-
회원이 빨대를 슬그머니 들었다. 갑자기 손이 떨려 빨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지만, 회원은 얼른 빨대를 주워 입에 물었다.
“크흡, 흠.”
갑작스럽게 기침이 나고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숨이 막혔지만, 회원은 강인한 의지력을 발휘해 숨을 깊게 빨아들였다.
이연우의 운을 빨아들이기 위해.
슈우우욱-
목이 따끔따끔하다. 꼭 모래 먼지를 마시는 것 같다. 아니면 독가스나.
실제로 비슷했다. 회원이 기대한 살아남을 운이 아니라 사고가 쫓아오는 운명 같은 것을 흡수했다. 그것도 10초가 넘는 시간 동안, 잔뜩.
‘됐다!’
회원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얼른 걸음을 서둘렀다. 역시 행운이다. 운이 좋은 덕분에 빨대를 멋대로 쓰는 장면을 들키지 않았다.
‘생존자의 운까지 흡수했으니까 혹시 사고를 만나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그 경쾌한 걸음. 회원은 밝은 미래를 꿈꿨고.
“…뭐지? 왜 개운하지?”
이연우는 걸레를 들고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청소를 했기 때문인지, 넉넉한 의뢰금을 받기 때문인지, 갑자기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