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노인과 회원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부상 입은 사람은 일단 응급치료를 한 후 응급실로 보내고, 평범한 회원들은 자기 본업으로 돌아가고.
노인과 행운을 몰아받은 회원은 함께 어느 빌딩으로 향했다.
주사위가 부여한 운은 한시적이었으니까. 바로 탐사에 투입할 계획이다.
“자네한테 기대가 커. 일이 일이지 않나. 클럽 회장님도 주시하고 있을 거야.”
“맡겨주십시오. 세 명 분량의 행운 아닙니까. 황금이 아니더라도 뭐든 발견할 겁니다. 이익이 될 물건으로요.”
부드럽게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탐사 요원으로 뽑힌 회원은 자신감 있게 등을 쭉 폈다. 그를 둘러싼 행운도 행운이지만, 보험 삼아 빨아들인 생존자의 운이 자신감을 더해줬다.
무사히 탐사를 마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말해, 잃을 게 없다는 말이다.
‘멀쩡하게 돌아오기만 하면 돼.’
노인은 그런 회원을 흐뭇하게 보았다. 때로는 위험 속에 기회가 있는 법이고, 용기 있게 도전하는 자세도 중요했으니까.
그래도 노인은 노파심에 이런저런 잔소리 같은 조언을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이차원 탐사는 나도 몇 번 해봤지. 이차원에 떨어진 최초의 몇 초가 가장 중요해.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돌아오게. 하지만 환경이 괜찮아 보이면-”
따듯한 차 안에서 진지하게 대화한다. 노인이 말하면 회원은 귀를 기울였고, 운전사는 묵묵하게 운전에 집중했다.
때때로 울리는 내비게이션의 알림 소리가 경쾌하게 더해졌다.
- 3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운전사가 곁눈질하며 운전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한창 말하다 목이 마른 노인이 물을 꺼내 마셨다. 노인은 문득 창밖을 보았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어디를 가든 다 가본 적 있는 길 같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과 도로와 신호등. 부지런히 달리는 차와 길가의 사람. 변했다면 변했겠지만, 노인은 체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하도 이상한 걸 많이 봐서 평범한 풍경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게….”
괜히 감성에 젖은 노인이 물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 순간이었다. 노인이 뭔가 이상을 느꼈다. 퍼뜩 고개를 들어 앞을 본다.
“….”
운전사.
“지부장님.”
운전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뜻 보이는 뒤통수와 얼굴 옆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내비게이션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노인이 눈을 찌푸렸다. 행운을 몰아받은 회원은 조수석을 끌어안으며 머리를 앞으로 내밀었고, 이상하게 깨진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았다.
지도는 멀쩡했다. 지도만 멀쩡했다.
“오류 난 모양인데요. 데이터가 이상한데.”
현재 시각이 이상하다. 점심이 지난 시간인데, 35시 68분으로 나왔다. 현재 위치도 깨졌다. 궭붌밮 따위로.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이한 주의 알림이 올라왔다.
딩동-
- 이상異常 출몰 주의 지역입니다.
“….”
“….”
차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상황이 명백했다.
사고가 쫓아왔다. 이상현상을 마주했다. 이차원 탐사를 가기도 전에 말이다.
노인은 회원을 잠깐 보았다. 혹시 자기가 불운을 몰아받은 사람을 데려왔나. 하지만 분명히 행운을 몰아받은 회원이었고, 노인은 최대한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행운인가? 이게 너한테 도움이 되나?”
행운.
이해하긴 힘들지만, 운이 좋아서 생긴 일 아닐까? 왜, 이게 기회일지도 모르지 않나.
회원은 물론이고, 운전사도 그렇게 판단했다. 회원은 어려운 표정을 지으며 내비게이션을 노려봤고, 운전사는 평정심을 되찾으며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일단 계속 운전하겠습니다.”
“음, 그래.”
뭐 어쨌든 행운이 있는데.
그렇게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비게이션은 그들을 목적지로 안내하지 않았다. 같은 자리를 빙빙 돌았다. 우회전, 우회전, 우회전, 우회전. 네모를 그리며 맴돌았다.
노인은 바깥을 보다가 말했다.
“저 건물만 몇 번째 보는지 모르겠군. 내비게이션은 무시하고 가게.”
“제가 핸드폰으로 내비게이션 어플 보겠습니다.”
회원이 핸드폰을 두드려 내비게이션 어플을 켰다. 길을 찾을 방법이야 많다.
- 3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
운전사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직진한다. 부아앙, 자동차가 가속하며 도로를 달리는 것과 회원이 어플을 켠 것은 동시였으며, 또한 두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것도 동시였다.
-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
회원이 손을 떨며 핸드폰을 보다가, 노인에게 말했다.
“제 핸드폰도 저 내비게이션처럼 망가졌습니다.”
“역시 이럴 때는 아날로그지. 거기 앞에 열어보면 지도 있을 거야. 그거 보고 찾아가지.”
옛날 감성도 좋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노인 덕분에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다.
회원이 몸을 구겨가며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글로브박스에서 빳빳한 새 지도를 꺼냈다.
다행히, 어쩌면 운 좋게 지도는 멀쩡했다.
‘그래. 뭐 문제 있겠어.’
회원은 긴장을 풀었다. 어쩌면 죽을 위험을 마주했을 상황인데 운이 좋아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일지도-
그 순간이었다.
내비게이션이 뒤늦게 말했다.
- 경로를 새로 설정합니다.
- 인간 단속 구간에 진입했습니다.
삐빅, 삐빅, 경고성을 울리며, 붉게 깜빡이는 화면.
그들이 인간이니까, 인간이 있어서는 안 되는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까. 그들에게는 그런 규칙이 적용됐으며, 그 규칙을 어긴 대가가 무엇일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노인이 지팡이를 꽉 잡았다.
“위험한 이상異常 같은데.”
상품으로 팔지도 못할 이상현상을 만나다니. 이게 운이 좋은 게 맞나?
‘이연우가 사기를 쳤나? 아니지. 행운과 불운을 직접 봤잖아.’
떨떠름한 표정을 짓던 노인은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결론을 내렸다. 손해만 안겨주는 이상개체? 버리고 도망치면 된다.
“차 세우게. 택시를 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다른 사람 차를 빌리거나 렌트를 하든. 저 기계만 버리면 괜찮겠지. 자네 핸드폰도 이 차에 버리고.”
전원은 꺼지지 않았지만, 물리적으로 멀어지면 괜찮지 않을까.
운전사와 회원은 곧장 움직였다.
비상등을 켠 차가 갓길을 향해 부드럽게 달리고, 회원은 핸드폰을 아예 꺼버렸다.
비상등이 깜빡이는 차가 점차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이 울렸다.
- 차량 정차 금지 구간입니다. 속도를 높이세요.
브레이크를 밟은 발이 느슨하게 떨어지고, 자동차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나아갔다. 운전사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지부장님. 어떻게 할까요?”
“….”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한다. 보아하니, 이상한 규칙 같은 것이 점점 중첩되고 있다.
미지의 위험.
“위험을 감수해야지. 속도 최대한 느리게 하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저는 괜찮습니다만 지부장님은….”
나이도 있는데 그러다가 다치지 않을까? 그런 염려가 섞인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저 귀신 들린 내비게이션에 휘둘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미지의 이상현상보다는 차라리 뼈 몇 개 부러지는 편이 낫다. 그렇게 클럽 회원들은 각오를 다졌고, 몇 초 후, 문을 활짝 열고 도로로 몸을 던졌다.
우당탕!
노인과 운전사가 도로 쪽으로 굴렀다. 회원은 운 좋게 푹신한 쓰레기봉투가 잔뜩 널린 곳으로 떨어져 멀쩡하게 일어났다.
“빨리 움직여!”
노인은 아픈 티도 내지 않고 지팡이를 짚었다. 명품 정장이 긁히든, 관절이 아프든, 멈추지 말고 움직일 때였다.
“어디로, 어떻게 갑니까?”
“일단 저 이상개체로부터 멀어져! 이 도로에서 벗어나고!”
어쨌든 인간 단속 구간이라지 않나.
그리고, 회원의 행운이 그들을 도왔다. 아무런 문제 없이 그들은 도로를 벗어났다.
숨을 헐떡이는 노인과 회원과 운전사가 공원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한숨 돌린 그들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게 행운?
“…안 되겠군. 어쩌면 자네가 탐사에 가지 말라는 뜻일지도 모르겠어.”
행운이나 불운 같은 운명은 해석하기 힘들었고, 그들의 인식 안에서 단편적으로, 마음대로 해석되었다.
뭘 얻지도 못하는 이상개체를 만났는데 그 뜻이 뭘까. 탐사를 막은 게 아닐까.
하지만 노인이 잘못 해석한 말은 회원에게 아이디어를 주었다.
‘잠깐만, 이거 혹시.’
기억이 떠오른다. 이연우의 운을 흡수할 때 일어났던 일들. 빨대를 떨어뜨리고, 기침이 나고, 숨이 막혔다. 꼭 그러지 말라는 듯, 그건 하면 안 된다는 듯.
가까스로 진실에 도달한 회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가 부들부들 떨며 질문했다.
“영감님. 회사의 조사원 말입니다. 회사가 조사원 뽑을 때, 뭐를 먼저 봅니까? 생존능력이나 살아남을 운 아닙니까?”
“생존? 그건 후천적인 거지.”
숨을 돌린 노인은 왜 그런 걸 물어보냐며,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다.
“조사원 일이 뭔가? 이상개체 찾아가는 일 아닌가? 굳이 따지면 사고 많이 겪는 사람이지.”
확실한 조사를 위해 이상개체를 잘 만나는 사람을 쓴다. 이를테면 이상현상을 마주한 일반인을 스카우트한다거나.
조사원이 생존의 달인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그 많은 이상異常을 만나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은 인간이란 소리니까. 생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조사 몇 번 하고 죽으니까.
‘그럼, 그럼. 내가 빨아들인 게!’
망했다. 흡수해서는 안 될 것을 흡수했다. 이대로면 행운이 문제가 아니다. 행운에도 한계가 있을 것 아닌가.
어쩌면 행운은 이미 바닥났을지도 몰랐다. 불운 같은 것을 흡수해서.
“영감님! 사실은-”
결국 회원은 솔직히 말했다. 임시 봉인이라도 받으려고.
빨대를 돌려받은 노인은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프로젝트가 아닌데 그걸 자기 마음대로 망친 놈이다.
“안타깝게도 도장은 일회용이야. 그러니 잘 버텨보게. 흡수했다고 해도 영구적인 건 아니니까.”
“그래도 뭔가 방법이-”
그때였다.
그들이 쉬는 공원으로 웬 헬멧을 쓴 사람이 비척비척 걸어왔다. 좀비처럼 엉성한 걸음으로, 손을 허우적거리며.
그르륵, 가래 낀 소리가 헬멧 너머로 들려온다. 피 칠갑 된 헬멧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상개체군. 자네 찾아온 모양이야. 자네가 처리하게. 나는 이만 돌아가서 프로젝트를 손봐야겠어.”
“아니, 잠깐만요!”
노인과 운전사가 망설임 없이 떠났다.
회원은 그들을 쫓아가려 했으나, 와아악, 달려든 헬멧 쓴 괴인한테 붙잡혔다. 회원은 눈물을 흘리며 발버둥 쳤다.
이상을 끌어들이는 방향제도 아니고, 사고가 계속해서 쫓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