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53)화 (153/194)

빨대

콱, 헬멧 쓴 괴인이 회원의 두 어깨를 붙잡았다. 회원의 몸통이 당겨지고 괴인이 얼굴을 들이대며, 새까만 헬멧이 회원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르륵,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온다. 반투명한 헬멧 전면부, 피로 붉게 물든 전면부 너머로 좀비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반쯤 썩어 흉측한 윤곽만 남은 얼굴.

“크에엑!”

“저리, 꺼져!”

회원은 울상을 지으면서 악을 썼다.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손바닥으로 밀어내고.

하지만 좀비의 힘을 이겨내지는 못했다.

쿵!

좀비가 헬멧을 쓴 채 머리를 들이박았다. 헬멧 너머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면서.

코앞에 싱싱한 고기가 있는데 헬멧 때문에 먹지 못한다. 좀비는 헬멧을 계속해서 들이박았다. 쿵, 쿵, 쿵, 회원의 머리가 깨질 때까지.

그 피로 헬멧이 물들 때까지.

“끄윽!”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피로 물든 세상이 빙빙 돈다. 좀비가 배고픔에 우는 소리와 머리가 쿵쿵거리는 충격음이 귀를 꽉 채웠다.

그쯤에서 행운이 움직였다.

우당탕!

헬멧 쓴 좀비가, 영원토록 배고픔에 시달릴 좀비가 넘어졌다. 회원을 붙잡은 손 또한 미끄러졌다.

운 좋게 찾아온 기회다.

“공격, 아니, 도망, 도망을…!”

머리가 깨져 피를 질질 흘리는 회원이 휘청거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자신을 버린 노인을 탓하지도 못 했고, 품에 넣어둔 권총을 꺼낼 생각도 못 했다.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 시간을 더 끌다가는 다른 이상개체를 만날 거야!’

옳은 판단이었으나, 오판이기도 했다. 안전한 장소가 있을까? 있더라도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

빙판이 얼어붙은 길을 회원은 허겁지겁 달렸다. 균형 감각이 박살이 났는데도, 운이 좋아 넘어지지는 않았다.

반대로 좀비는 계속해서 넘어졌다. 뒤편에서 좀비가 넘어지는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에 들어간 피 때문에 붉은 시야로 얼마나 달렸을까.

“…아?”

공원의 끝자락에 다다른 회원은 이상한 꽃을 발견했다.

무궁화.

지독하게 추운 한겨울, 눈이 잔뜩 쌓인 공원의 길가.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부끄럽게 봉우리가 맺힌 무궁화.

연분홍빛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빨리 돌린 듯이 빠르게.

사고다. 이상개체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막을 수 없는 사건이 그를 찾아왔다.

“아니지?”

회원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걸음을 멈췄다. 손이 벌벌 떨렸다. 추위가 아니라 공포 때문에.

‘아니지? 진짜 아니지? 몇 시간 만에 이상개체를 셋이나 마주친다고?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사람 운명이 이 모양이면 그게 사람인가? 이상개체를 빨아들이는 자석이지.

그런 생각 때문에, 예민하고 신속하지 못한 반응 때문에, 시기를 놓쳤다. 적절하게 살아남을 시기를.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떨어진 눈더미를 뒤집어썼던 무궁화꽃이 활짝 피었다.

회원은 천진난만한 노랫소리를 들은 듯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 놀이 또한 떠올렸다. 무궁화꽃이 피었다는 소리가 들렸을 때 움직이면 죽는 놀이.

회원은 조심성 없이 무심코 뒷걸음질 쳤고.

“아.”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뛰지 않았다. 심장이 멎었다.

스르륵, 회원이 뒤로 넘어졌다. 차마 감지 못한 눈이 탁한 하늘을 올려보았다. 믿지 못하겠다는 듯 부릅뜬 눈 위로 눈송이 하나가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아직 따듯한 체온에 녹은 눈이 핏물과 섞여 피눈물이 되어 흘렀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항시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또한 기회를 잡을 실력이 없으면 행운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자격 없이 이연우의 운명을 누리던 회원은 한겨울의 공원 길가에서 죽었다.

***

손절은 재빨라야 하는 법. 노인은 액운 덩어리인 회원을 내버리고 곧장 안전 쉘터로 돌아왔고, 클럽 회장에게 연락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망했소.”

- 알고 있습니다. 다 보았습니다.

핸드폰 너머에서 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딘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이번 결과가 큰 고민을 안겨준 듯했다.

노인은 조금 의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그래도 주사위 정보는 얻지 않았소? 얻은 게 없지는 않은데.”

- 주사위는 확실히 괜찮지요. 문제는 이연우, 그자입니다. 아무래도 주사위라는 포장에 속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잘 모르겠는데….”

회장은 잠깐 침묵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한참 고민하던 회장은 쉽게 말했다.

- 주사위만 보면 이용할 방법은 많습니다. 하지만 회사 고위층은 주사위가 아니라 이연우를 이용했습니다. 핵폭탄처럼. 그 이유를 이제 알았습니다.

골드버그 클럽의 많은 회원은 이익에 눈이 멀었다. 위험이나 다른 부분을 놓친다. 혹은 알더라도 무모한 도전을 거듭하는 편이다.

하지만 고위회원쯤 되면 많은 부분을 보았고, 회장도 늦지 않게 이연우의 본질을 보았다.

방사능이나 늪 같은 인간. 주변에 사고를 안겨주거나, 엮인 모든 것을 저 아래로 떨어뜨리는 인간.

당장 회사만 해도 이연우가 초래한 사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썼던가.

- VIP가 아니라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야겠습니다. 엮이면 손해만 보는 부류의 인간입니다.

“예술가 협회의 회장처럼 말이오?”

노인의 말에 회장은 한숨을 섞어 답했다.

- 어찌 보면 그 인간보다 악질 같습니다. 선의를 가지고 상호이익을 위해 접근해도 얻는 게 없으니.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소?”

그렇다면 클럽의 방식도 변해야 한다. 노인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말했고, 회장은 이연우 대응 정책을 결정했다.

- 서로 없는 사람처럼 사는 게 최선이겠습니다. 적의를 사든, 호의를 사든, 좋을 게 없으니까.

“알겠소. 아. 그리고 황금 확보 프로젝트는?”

- 순수하게 운에 맡기고 탐사하는 걸로 합시다. 황금만능주의로 정보를 얻으면 기껏해야 본전만 얻지 않습니까.

황금만능주의로 황금을 만들 수는 있다. 대신 등가교환 수준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서 그렇지.

그렇게 그들은 이연우와 탐사 관련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 그리고 멸망주의자 경계하십시오. 이것들, 슬슬 발버둥 치려는 느낌이니까.

“하긴. 가만히 있으면 말라 죽을 테니, 뭐라도 하겠지. 주의하겠소.”

또 다른 위험을 주의하며 그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

깊은 토굴 아래.

우두머리급 멸망주의자가 모여 끙끙 앓았다. 검은 연기를 두른 흡연자는 희미해졌고, 무인은 미라에 가깝게 붕대를 휘감았으며, 전자세계의 유령은 머리를 감싸고 구석에 앉았다.

고통 섞인 신음이 메아리치는 토굴은 무슨 병동처럼 약품 냄새가 진하게 났다. 전부 전쟁의 여파와 여러 집단의 공작 때문이었다.

저주, 저격, 불운, 공간 왜곡, 바이러스, 습격, 반란 등등. 온갖 이상개체로 이루어진 기상천외한 공격.

“진짜 죽겠다….”

“지우개 든 그 사람만 있었어도 이 꼴은 안 봤을 텐데.”

그들은 하나 같이 아쉬운 소리를 뱉었다.

지우개와 반쯤 하나 된 그. 그가 멀쩡하게 버텼으면 이딴 공작은 전부 지워졌을 텐데.

하지만 그는 이미 죽었고, 지우개도 빼앗겼다. 업보를 쌓을 대로 쌓은 멸망주의자는 버틸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전자세계의 유령이 중얼거렸다.

“이연우. 그 인간이 문제야. 그놈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망했다고.”

멸망주의자라고 멍청이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원인을 분석했다. 하나뿐인 원인을.

이상기후를 해결한 것을 시작으로, 지우개를 든 멸망주의자를 죽이고, 집회에 숨어들어와 안경과 렙틸리언 보스를 처리하고, 끝내는 불운으로 사후세계의 파편까지 뒤집어씌운 인간.

멸망주의자의 멸망 같은 인간.

“핵폭탄 같은 인간도 죽이고, 가장 세력 큰 렙틸리언 보스도 죽이고, 머리 역할 하던 안경도 죽이고. 어떻게 이렇게 골라 죽였지?”

“회사가 우리 전담으로 준비한 인간 아닐까.”

“지나간 이야기는 그만하지?”

그쯤에서 미라 같은 무인이 손을 들었다. 마시다 만 보드카 병이 들려 있었는데, 손짓에 따라 보드카가 찰랑였다.

“지금 문제가 한둘인가? 그 문제들 해결할 방법 찾기도 힘들다고.”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앓던 것도 잊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상황이 진짜 좋지 않았다. 위험레벨 6도 없고, 멸망주의자도 얼마 안 남았고, 거의 모든 집단이 그들을 잡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었다.

세상과 인류가 멸망하기 전에 죽기 싫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전자세계의 유령이 침울하게 말했다.

“일단 포섭은 잘 안돼. 광고 아무리 보내도 넘어오는 사람이 없어.”

“위험레벨 6을 확보하지도 못하지. 그럴 능력이 있으면 애초에 이렇게 몰리지도 않았잖아. 그나마 희망은 너인데.”

흡연자가 콜록 기침하더니 무인을 보았다.

“어때? 될 수 있을 것 같나?”

“아니.”

세상과 싸워 이기겠다는 무인은 주먹을 쥐었다. 붕대 때문에 곰 인형 같은 주먹이 허공을 스쳤다.

“붉은 거인으로부터 도망친 뒤 방사능은 이길 수 있어. 방사능보다 내가 더 강해. 하지만 아직 약점이 많아. 때리지 못할 것도 많고.”

“앞날이 캄캄하군.”

흡연자가 검은 연기를 푸우 흘렸다. 연기가 그들의 미래처럼 새까맣다.

한편 전자세계의 유령은 머리통을 부여잡은 채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안경만 있었어도 뭔가 방법을 찾았을 텐데. 안경. 안경처럼 생각을 하면.”

큼직한 작전을 세우고, 이런저런 꼼수를 떠올리던 안경.

전자세계의 유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동료의 얼굴을 그리며, 그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그와 협력했던 기억, 그가 세운 작전, 그가 상황을 활용하는 법.

모든 기억이 유산이 되어 자그마한 머릿속에서 빛을 내뿜었다.

문득 전자세계의 유령이 고개를 들었다. 흐리멍텅했던 눈에 빛이 맴돌았다. 마치 안경이 반짝이듯.

“이상기후!”

“뭐라는 거야. 너 정신 아직 안 멀쩡하니까 좀 쉬어. 너까지 다치면 우리 진짜 답 없으니까.”

“술 한 잔 마시고 자라.”

두 멸망주의자의 걱정 섞인 핀잔에도, 전자세계의 유령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펄쩍 뛰어올랐다.

“이상기후 해결됐을 때! 우리 뭐했지?”

“뭘 해. 이상기후 구성 개체 빼돌리러….”

그들도 어렴풋이 감을 잡았다. 전자세계의 유령이 박수를 짝짝 쳤다.

“그거야! 우리한테 부족한 건 다른 놈들한테 얻으면 되잖아!”

“…어떻게? 그게 쉬울 거 같진 않은데.”

흡연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가 손을 멈췄다. 꽉 막힌 토굴에서 담배는 조금 그렇다.

전자세계의 유령이 흥분해서 손을 파닥였다.

“회사 사람들 빼돌리자! 위험레벨 6도 포섭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슬슬 짜증이 섞이는 목소리. 전자세계의 유령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손이 0과 1로 이루어진 문자열로 무너지더니, 핸드폰 속으로 들어가 기밀문서를 건져 올렸다.

“최초의 멸망주의자는 회사 사람이었어! 왜? 사람이 이상異常을 만든다고 생각해서!”

그 기밀문서가 핸드폰 화면에 선명하게 출력됐다.

이상異常의 기원이 인간이라고. 인간이 다 죽으면 이상개체는 다 사라지고 더 발생하지 않는다고. 인간이 이 불합리한 우주의 원인이라고.

“인류가 멸종하면 이상異常도 사라진다! 인류 이후에 탄생할 지성종과 우주의 생명을 위해 우리는 죽어야 한다! 이걸로 회사원 포섭하자!”

“…광고 문자나 뿌리는 것보다는 낫겠는데.”

흡연자가 혹한 기색을 보였다.

회사원 중에는 정신이 돌아버린 자들이 많다. 이상기후 때만 해도 그걸 해결해보겠다고 60억 인구를 말살하려던 인류학살회사 파벌이 생길 정도니까.

그 거시적인 사명감을 어떻게 이용하면 광신도 같은 멸망주의자를 양산할 수 있지 않을까?

무인이 보드카를 몇 모금 삼키고는 물었다.

“위험레벨 6은? 사람을 아무리 모아도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결국 말라죽을 거야.”

“그것도 빼 오자! 6레벨에 발 걸친 사람들 어떻게든 포섭하면 되잖아!”

“…이연우 같은 사람?”

“바로 그 사람도 목표야!”

전자세계의 유령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이 우리 적이니까 문제지! 우리 편이 되면 얼마나 든든해?”

“그건 맞는데. 그 인간이 이런 짓을 할까?”

그들도 대강 정보를 안다. 이연우는 멸망주의자의 주적이니 더 잘 알았다.

일단 생존주의 성향인 인간인데. 대의가 뭐든 위험한 짓거리를 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자세계의 유령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감 있게 말했다.

“포섭용 이상개체 몇 개 있잖아.”

무인과 흡연자는 잠깐 서로를 마주 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여기서 더 나빠질 상황도 없으니까.”

“성공만 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어.”

그렇게 어두운 토굴 안에서 작전이 세워졌다.

***

이연우는 퇴근을 준비했다. 퇴근이라고 해 봤자, 사무실에서 옆방으로 이동할 뿐이지만 말이다.

“오늘 컨디션 좋은데?”

창문을 한 번 점검한 이연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경쾌하게 걸음을 옮겼다.

청소도 깨끗하게 끝냈고, 의뢰금도 방금 전에 들어왔다. 과연 클럽답게 돈 계산이 깔끔했다. 두말없이 현금을 이체했다.

그렇게 이연우는 사무실을 벗어나고, 사무실 문을 꽉 닫았다.

그 순간이었다. 이연우의 얼굴이 잔뜩 찌그러졌다.

“갑자기 기분이 나쁜데.”

살인 사건을 몰고 다니는 탐정 같은 운명이 돌아왔다. 반나절의 자유를 누렸던 이연우는 본능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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