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64)화 (164/194)

본사

회사의 공문과 전자세계의 유령이 뿌린 정보는 거의 동시에 각 집단에 도착했다. 본사의 소식은 1순위로 처리할 정보이기에, 그 정보는 곧장 최상층으로 올라간다.

예술가 협회의 이사가 예술의 전당 깊은 곳으로 갔다. 황금과 보석과 석재 따위로 아름답게 지어진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고, 이사는 닫힌 문 너머에서 말했다.

“협회장님, 본사의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지금 본사가 위기에 빠졌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문 너머에서는 침묵이 감돌았다.

평소 아름다움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독실에 머무는 협회장이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부드러운 조명을 받는 협회장은 벽에 걸린 작품을 관람하다가, 한 손을 귓가에 올렸다. 세상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바람이 전해주는 소리. 무인에게 얻어맞은 세상이 징징거리는 소리, 주사위의 혼란한 성질에 어지럽혀져 술에 취한 듯한 세상의 소리.

이것만 가지고는 잘 모르겠다. 확실히 사고가 터진 것 같기는 한데.

“보여줘.”

협회장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의 부탁이다. 세상이 응했다.

허공의 수분과 빛이 움직이더니 신기루처럼 저 멀리 떨어진 본사의 현장을 재현했다.

밀웜의 머리가 범람하는 주차장을. 무인의 주먹질에 펑펑 터지는 밀웜과 밀웜에 휩쓸려 촉수 같은 실타래들만 삐죽 튀어나온 이연우.

“악!”

협회장이 눈을 질끈 감고 몸을 퍼덕였다. 단어 그대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바글바글 모인 밀웜의 머리.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징그러운 광경.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그 반응에 세상이 얼른 신기루를 지웠다.

협회장은 몸을 파들파들 떨며, 평소 쓰던 대화용 태블릿도 잊고 왁 소리를 질렀다.

“본사는 신경 쓰지 마! 저기는 아름답지 않아!”

밀웜은 당연히 징그럽고, 무인은 파괴의 화신이고, 이연우는 뭐가 잘못됐는지 미꾸라지처럼 변했다. 슉슉슉 위험을 피해 움직이는 몸짓이 경악스러웠다. 당장 세상도 경악하는 느낌이다.

저런 것들은 예술의 전당에 데려오기 싫었다.

“본사는 무시해!”

그 진심이 담긴 목소리는 어떤 노래보다 아름답게 울려 이사의 정신을 빼놓았다. 자아를 잃은 이사가 충실하게 명령을 수행했다.

그렇게 예술가 협회는 제일 먼저 무시를 선택했고.

다른 집단도 비슷비슷했다.

혼란의 악마니 도박의 악마니 하는 악마들이 본사를 느끼더니, 움츠러들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개념과 정보가 그들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저기는 ‘진짜’다. 재미 삼아 흥미를 위해 일으키는 놀이가 아니다.

“저건, 좀. 저런 혼란은 감당 못 해.”

“안 돼, 안 돼. 저런 것들이랑 도박하면 손모가지 날아가.”

거의 위험레벨 6 셋이 맞부딪치는 전장이다. 공간이 깨지고, 세계가 울부짖고, 멸망이 도래하는 전장.

악마도 기겁하는 사고였다. 애초에 악마조차 저 정도 난장판은 만들지 않았다. 그럴 능력도 없었다. 기껏해야 전쟁을 틈타 본진을 떨어뜨리는 정도지.

진짜 재난 앞에서 악마들도 이성을 되찾았다.

“본사 뭐하냐? 저거 안 막아? 계속 싸워서 세상 다 망가지면 어쩌려고?”

“아니, 보니까 저 중 둘은 회사 거야.”

“미친 건가? 잘못되면 큰일 날 텐데. 우리라도 나서서 저거 수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부정적인 이차원인 지옥의 개념적 생물인 악마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과 개념은 그들의 식량이자 무기였고, 인간은 그들의 친구였다.

가끔 툭툭 장난칠 수는 있어도, 진짜 다 죽으면 안 되는데.

“….”

“….”

악마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슬슬 전장의 파괴가 안전 수준을 벗어나고 있었다.

깨지고 잘린 공간은 더 이상 복구되지 않았다. 무인이 근처의 세상을 완전히 때려눕혀서.

쓰러진 세상은 이연우가 풀어놓은 가능성 아래에서 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중력이 고장 나 파편이며 자동차며 밀웜이 둥둥 떠다니고, 콘크리트 조각과 철근이 멋대로 살아 움직이거나, 환영이 겹치거나.

거기에 끝도 없이 쏟아지는 밀웜까지.

세상과 질서가 무너졌다. 많은 악덕과 높은 차원의 개념을 관장하는 대악마조차 저기에 휘말리면 순식간에 죽을 것이었다.

“아바돈, 충해의 악마가 저 증식하는 벌레를 통제할 수 없나? 아, 저거 시체구나.”

“애초에 저기 들어가면 죽어.”

“지옥에 있는 악마숭배자…. 안 되지. 더 망가지니까.”

악마들이 입을 벙긋거리다가, 고개를 늘어뜨렸다.

방법이 없다. 악마보다 위험한 악마숭배자가 이 세상에 오면 세상은 더 빨리 망한다.

사람을 해치기 싫어 스스로 악마의 세계로 걸어 들어간 그 숭배자는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자였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없는 악마들이 말했다.

“…회사가 알아서 하겠지. 우리는 악마자치구나 점검하고, 숭배자 불러들이자.”

어차피 밀웜이나 이연우나 회사가 풀어놓은 전력인데, 회사도 다 생각이 있을 것이다.

애써 합리화를 마친 악마들이 악마자치구로 모여들었다.

한편, 골드버그 클럽의 판단은 가장 느렸다.

도심의 빌딩 최상층.

회장은 손에 쥔 금괴를 노려봤다. 잔뜩 찌푸린 눈에서 고민이 짙게 묻어났다. 고민은 하나였다.

“어떤 질문을 할까요?”

행동에 들어가기 전 황금만능주의에 던질 질문.

단순한 힘의 행사와 달리 정보의 대가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막대한 황금을 바치고 얻은 정보도 정작 제대로 쓰기 힘든 경우가 있었다. 정보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애초에 본사의 정보는 기본적으로 비싸기까지 한데.

손안의 금괴를 앞뒤로 돌리던 회장은 황금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눈을 보았다.

‘일단은 내 눈으로 현장을 봐야겠어.’

그리고는 휙, 손을 움직여 황금만능주의에 황금을 바쳤다. 이 시대에 먼 거리를 보는 일은 값싼 일이니까. 심지어 무인이 보안조치 같은 것까지 때려 부순 상황이라 더 저렴하다.

황금빛이 감도는 회장의 눈에 본사가 잡혔다.

밀웜 머리, 이연우, 무인. 어지러운 주차장. 시선을 옮겨가며 그 정보를 빠르게 해석했다.

‘밀웜은 회사가 숨겨둔 이상개체 같아. 이연우는 회사의 정예요원이고. 무인은 6레벨에 올랐군. 본사의 다른 사람은….’

보안요원이나 직원은 거의 대피가 끝났다. 고위 인사는 애초에 본사에 없는 듯하고.

보아하니, 딱 적절한 수준으로 무인을 격퇴하는 모양새다. 당연히 본사가 망했다는 소리는 헛소리였다. 차라리 이걸 기회 삼아 다른 집단의 속내를 떠보는 게 아닐까? 아니면 다른 집단의 손을 빌려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회장이 결단을 내렸다. 다른 손으로 황금을 들며 비서에게 말했다.

“클럽은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본사에 큰 피해가 생기겠지만, 그건 클럽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진짜 인류보호회사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재앙이면 몰라도, 단순한 싸움에 굳이 지원을? 핵폭탄 같은 6레벨이 맞붙는 전장에 함부로 끼어들었다가는 손해만 보는데?

본사의 손해를 굳이 클럽이 분담할 필요는 없다. 싸움의 여파가 심각하긴 하지만, 회사가 잘 수습할 것이다.

“본사가 상황 수습하면 그때 성명이나 발표합시다.”

“예. 글을 준비하겠습니다.”

비서가 물러나는 그때였다.

- 구경하나? 이게 재밌나?

밀웜의 물결 가운데 몸이 잠긴 무인이 문득 허공을 보았다. 분노하여 붉은 얼굴로 이를 까득까득 갈다가, 끝없이 쏟아지는 밀웜을 전부 으스러트리다가, 시선을 느꼈다.

회장과 무인의 시선이 공간을 뛰어넘어 마주쳤다.

- 재밌으면 너도 같이 싸우든가, 아니면 꺼져!

회장이 얼른 시선을 거두었지만 조금 늦었다. 어두워지는 시야 속에서 무인의 주먹이 허공을 넘어 다가왔다.

정확히 회장을 노리는 주먹.

“윽!”

회장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 회장은 눈가를 가리며 몇 걸음 비틀비틀 물러섰다. 회장이 들어둔 생명보험이 빛을 발하며 상처를 회복했지만, 그 회복 속도가 늦다.

세계를 부수는 무인의 일격이었다. 먼 거리에서 빗맞았으나, 상처는 끔찍했다.

“회장님!”

“빨리 치료를!”

주변의 비서들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오지만,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피가 묻은 손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됐습니다. 오히려 잘된 일입니다. 우리도 무인에게 당했다고 말하면 되겠습니다.”

회피가 최선인 공격에 맞았다. 회장은 아예 드러눕기로 했다.

그렇게 세 집단이 관망을 선택했으며.

회사는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에 기겁하며 빨리 사고를 끝낼 준비를 시작했다.

증식하는 밀웜의 머리를 태워, 그 열기로 물을 끓여 터빈을 영구적으로 돌릴 준비.

그리고, 무인을 죽일 명령을 내렸다.

“유령에게 움직이라고 하게. 본사 그만 뒤지고.”

***

밀웜의 파도에 휩쓸린 이연우는 숨부터 멈췄다. 입을 꾹 다물고, 두 손을 들어 코와 입과 귀를 막았다.

‘벌레 삼키면 안 돼.’

증식하는 밀웜의 머리다. 괜히 귀나 코로 들어간 밀웜의 머리가 안쪽에서 분열하면 내부에서부터 찢겨나갈 수도 있었다.

입으로 삼키는 것도 안심할 수 없었다. 만약 밀웜이 위액에 녹는 속도보다 분열하는 속도가 빠르다면? 위장부터 터지는 것이다.

‘그래도 저 무인보다는 덜 위험하지만.’

푸우, 범람하는 밀웜의 위로 머리를 내민 이연우가 무인을 보았다.

“빌어먹을! 이게 샌드백이랑 뭐가 다르냔 말이다!”

무인은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마치 물속에서 폭탄이 터지듯, 밀웜의 머리가 분수처럼 펑펑 솟구쳤다.

무인의 공격에 휩쓸린 밀웜은 그대로 으스러져 완전히 파괴됐다.

또한 주변의 세상도 한계에 도달했다. 부서지고 베이고 찢어진 세상은 회복하지 못했고, 망가진 세상은 이연우가 풀어놓은 가능성에 오염되었다.

질서가 사라지고 혼란이 찾아왔다.

먼지가 돌처럼 떨어지고, 부서진 자동차가 액체가 되어 흐물흐물 흘러내렸다. 콘크리트 벽 사이로 튀어나온 철근이 몸을 꿈틀거리더니 지렁이처럼 빠져나왔다.

이연우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슬슬 도망칠까?’

도망칠 각이 선명하게 보인다. 무인은 자신을 경계만 하고 있고. 밀웜은 회사가 알아서 처리할 테고. 도망치기 딱 좋은 시점인데.

이연우의 머릿속에서 생각이 흘렀다.

‘이만하면 시간 충분히 끌었어. 말도 회사원답게 잘했고, 회사도 사실 무인이 다 때려 부순 거고.’

어찌어찌 본사가 인식하는 자신의 위험성이 낮아지지 않았을까?

마침 최적의 기회가 찾아왔다.

돌연 무인이 허공을 보며 버럭 성을 내었다.

“구경하나? 이게 재밌나?”

클럽 회장의 염탐하는 시선이다.

이연우 또한 그 시선을 느꼈으나, 불쾌함을 느끼지는 못했고 도리어 고마움을 느꼈다.

주먹을 뻗는 무인의 신경이 전부 회장에게 쏠렸으니까. 방해 없이 도주할 기회였으니까.

‘주사위! 이동, 그러니까 조사반-’

“재밌으면 너도 같이 싸우든가, 아니면 꺼져!”

그리고, 총성이 울렸다.

탕-!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