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무인이 클럽 회장을 때린 직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멍 뚫린 천장에서 떨어지는 밀웜이 줄어들었다. 비가 그치듯이, 밀웜의 물줄기가 약해진다.
그 아래에서 무인은 고개를 숙여 가슴팍을 내려보았다. 붉은 피가 흐르는 가슴.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총탄.
막지 못했다. 회복하지 못했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총에 맞은 것처럼.
“….”
“….”
이연우는 주사위를 부르던 것도 잊고,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 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있다.
평범한 총탄으로 무장한 암살자가.
‘누구, 당연히 회사원이겠지. 어디지? 설마 나한테도 쏘나?’
주사위로 느끼는 확률과 가능성의 세계에 생존본능이라는 필터가 걸렸다.
서로 따로 놀던 감각이 하나가 되었다.
기이한 감각이 더듬이가 되어 뻗어나가, 이연우에게 다가오는 위험한 확률과 가능성을 포착한다. 그것은 미래를 예지하는 수준의 통찰이었으며, 이연우가 반드시 살아남을 미래를 비추는 망원경이기도 했다.
‘위험!’
이연우는 눈을 희번득거렸다. 오직 그를 죽일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무인, 그리고 정보부의 유령.
무인과 이연우의 머리가 동시에 휙 돌아가, 어딘가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느리게 움직이는 무언가를 따라갔다.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밀웜의 물결에 남는 흔적마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람.
잠깐 동안 두 사람의 인식마저 속인 그것을 향해 무인이 말했다.
“정보부의 유령.”
자연스러운 형광조끼에 오염된 회사의 정예요원이다.
감각을 극한까지 곤두세운 두 사람의 시야에, 그녀가 머쓱하게 웃는 장면이 보였다. 그녀가 혼자 감탄했다.
“와, 이게 위험레벨 6이구나. 조끼 입으면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는데. 역시 문서로 보는 거랑 다르네요.”
그 목소리조차 백색소음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목소리, 생김새, 행동, 모든 것이 환경에 녹아들었다.
이연우가 아는 얼굴인데도 은근히 경계하는 동안, 무인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게 내 끝인가? 총에 맞아 죽는 것?”
무인이 상처 위로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 박동하는 심장이 조금씩 쇠약해진다. 심장 한가운데 뚫린 구멍을 통해 피와 생명이 흘러 나갔다.
죽음이 느릿하게 다가왔다. 무인의 소원과는 다른 허무한 죽음이.
짜증과 분노 따위로 범벅이 되어 있던 무인의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인의 눈동자에 순수한 불꽃이 맺혔다.
죽음을 죽일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죽더라도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
무인은 정보부의 유령을, 그 너머의 본사를 보다가 마지막으로 이연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가 얕보았던 적.
“내가 잘못 생각했어.”
적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무시했다. 자신의 깨달음, 되든 안 되든 강적에게 들이박겠다는 정신을 적이 실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혼란을 풀어놓아 감각을 어지럽히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정보부의 유령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기회까지 만들어냈지 않나.
“널 무시해서는 안 되는데.”
그렇게 맑은 정신으로 적을 인식하니 새로운 것이 보였다.
죽음을 쓰러뜨리지 못한 자신과 달리 죽음을 피하는 자. 생존이라는 생물의 근본을 극한까지 끌어낸 인간.
그와 다른 길을 걸어간 강자를 향해 무인이 웃었다.
“좋아. 죽여주마.”
세상도 죽이지 못할 자를 죽인다. 세상을 때려 울리는 것보다 더 멋진 업적이다.
심장조차 멎어버려 고요한 세상.
무인은 두 손바닥을 활짝 펴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새끼손가락부터 검지손가락까지 부드럽게 말아쥐고, 엄지손가락을 검지 위에 올렸다.
마치 처음 무술을 익힐 때처럼 신중하게. 오직 초심만을 떠올리며.
주변에서 증식하는 밀웜의 머리가 으깨지며 밀려난다.
이연우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공포가 몰려왔다.
스스스-
이연우의 주위에 일렁이는 가능성의 실타래가 저절로 흩어져 사라졌다. 더 이상 무작위의 가능성을 흩뿌리지 못했다.
“주사위!”
이연우가 소리 내어 주사위를 불렀다.
느릿하게 주먹을 당기는 무인은 그런 이연우를 내버려 두었다. 최후의 일격이다. 무방비한 적을 때리고 싶지는 않다. 전력을 다해 맞붙어야 옳다.
이연우 역시 무인의 바람에 응했다. 이동이고 뭐고 가능한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찰나가 영원처럼 늘어졌다.
이연우의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한계를 초월한 감각이 어우러진다. 이연우는 정보를 정확하게 받아들였다.
‘미래가 닫혔나? 아니야. 이건.’
미래가 황폐하다. 몇 초 뒤의 무인이 이연우를 확실하게 죽였다. 생존할 확률이 0이 되었다는 말이다.
이연우는 그제야 주사위의 한계를 깨달았다.
‘존재하지 않는 가능성은 구현할 수 없어.’
이상異常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극도로 낮은 확률로 온갖 일이 벌어질 수 있으나, 6레벨 앞에서는 그조차도 부족하다.
이연우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러니까, 이대로 죽는다고? 아니지.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없어.’
늘 하던 대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길게 늘어진 시간 속에서 생존본능이 발작했다. 안전한 평소에는 잠만 자던 생존본능은 위기 앞에서 극한까지 활성화되었다.
이연우와 함께 위험을 겪으며 성장한 생존본능이 6레벨의 경계를 넘었다.
죽음뿐인 미래를 연다. 존재하지 않는 살길은 직접 만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이연우와 심장이 멈춘 무인이 눈을 마주쳤다.
늘어졌던 시간이 가속했다. 훅, 짧게 숨을 몰아쉰 무인이 주먹을 뻗었고. 이연우는 뒤로 넘어지며 주먹을 피했다.
***
주먹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먹물 같은 어둠이 뿌려졌다. 빛조차 죽어버린 순수한 어둠이었고, 세상에 남은 상처였다.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을 상처.
“….”
“….”
이연우도, 무인도 입을 열지 않았다.
뒤로 자빠진 이연우는 밀웜 위에 누운 채로 숨을 몰아쉬며 눈앞의 검은 궤적을 보았다.
‘살았다….’
저거에 맞았으면 진짜 죽었다. 부활 판정을 굴리지도 못한다. 그런 가능성까지 죽여버리는 공격이었으니까.
무인이 한숨을 흘렸다. 평생 살며 가장 강한 주먹이었는데, 끝내 죽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징그러운 놈. 네가 이겼다.”
“이긴 게 아니라 살아남은 거지.”
이연우는 비틀비틀 일어나며 말했다. 애초에 승패는 관심사가 아니다. 지더라도 살아남으면 좋다. 반대로 이기더라도 죽으면 의미가 없었고.
무인은 이연우를 빤히 보다가, 한숨을 흘렸다. 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가치관이었으나 대충 넘어갔다.
‘6레벨 치고 정신 멀쩡한 인간 없긴 하지.’
아마 자신과 싸우던 도중 경계를 넘은 것 같지만 말이다.
무인이 고개를 숙여 심장을 내려봤다.
머리에 총을 맞고도 날뛰었다는 호랑이나 차에 치이고도 잘만 달리는 산짐승처럼 날뛰었으나, 끈질긴 생명에도 한계가 왔다.
여한이나 미련이 전부 사라진 지금, 호기심 하나가 떠올랐다.
“…이 총알은 대장의 지우개로 만든 건가?”
자신의 방어력이나 재생력까지 지워버린 총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우개를 조각내서 탄두 삼은 느낌이다.
이연우는 유령의 눈치를 살피며, 눈을 피했다. 기밀무기인데 답할 수는 없다.
무인은 스스로 답을 내렸다.
“지우개를 이딴 식으로 낭비하다니. 회사 놈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대장의 지우개에 죽는 것도 멸망주의자의 업보 같기도 하고. 무인이 희미하게 미소 짓다가, 천천히 뒤로 넘어졌다.
세상을 때리고, 본사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무인에게 후회 없는 죽음이 찾아왔다.
이연우는 무인을 깊은 눈으로 내려보았다. 본사에 와서 본 것과 겪은 것. 평범한 방과 총탄. 살길이 없는 무인의 공격.
6레벨에 올랐다고 기뻐하기에는, 세상이 여전히 위험하다.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회사가 제일 위험해. 그 방이랑 총탄은 답이 없어.’
이연우가 슬쩍 눈을 돌렸다. 슬금슬금 다가오던 유령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 저 처음이에요. 조끼 입었는데 어떻게 보는 거지? 주사위가 무슨 감각을 준 거예요?”
신기하다는 듯 이연우 주변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유령을, 이연우는 불편한 표정으로 보았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고 또 유지유의 누나라 어색한 지인으로 여겼으나, 방금 본 바로는 최악의 암살자였다.
자연스럽게 다가와 평범한 총탄을 빵 쏘면 누가 버틸까. 예술가 협회장이나 세상이 도와줘 총이 스스로 망가지겠지.
‘아니, 이 사람이면 총 쏘는 것도 세상이 자연스럽게 여기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
진짜 위험한 사람이다. 절대 시선을 떼서는 안 된다.
‘혹시 모르니까 방탄조끼를 알아봐야겠어.’
인간의 취약한 몸을 가진 이연우는 딴생각을 하다가, 뒤로 물러났다.
“그, 선배님. 혹시 본사 소식 좀 아십니까? 제가 작은 실수를 해서.”
“실수요? 아, 그래서…. 어쩐지 격리계획이 있더라.”
“…뭐가 있어요?”
유령이 부끄럽다는 듯 수줍게 웃었다.
“모처럼 본사에 왔겠다, 그냥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본 거예요.”
“아니, 제 격리계획 말하는 거 맞습니까? 그거 내용이 어떻게 됩니까?”
이연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흘려넘길 수 없는 말이었으니까.
‘격리계획까지 세워놨다고? 지금 빨리 도망쳐야 하나? 아니, 정보는 알아야지. 그래야 대처하지.’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지친 몸에서 활력이 샘솟는다.
유령은 이연우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제 동생 동료기도 하고, 상담소에서 봤던 적도 있어서 꺼내왔어요. 막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이연우는 낚아채다시피 서류를 가져간 후 빠르게 문자를 훑어내렸다. 글은 정말 짧았고, 단순했다.
요약하면 이런 느낌이었다.
이놈 이거 생존주의자인데, 쉘터 제공하면 알아서 들어가지 않을까요? 그리고 대충 생존필수품이랑 인터넷 제공하면 안 나올 것 같은데요.
이연우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격리가 아니라 보호지.’
이게 격리계획이면 환영이다. 집 주고 밥 주고 돈도 준다는데.
유령에게 위협을 느끼지 못해 생존본능이 꺼진 이연우는 이번 사고를 수습할 계획을 세웠다.
“격리해달라고 해야겠다.”
사고를 쳤으면 징계를 받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쉘터 데려가는 척하면서 평범한 방에 집어넣으면 문제이긴 한데.’
그 불안은 이어지는 유령의 말에 조금 사그라들었다.
유령은 사방에서 증식하는 밀웜의 머리를 보며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인이 갈아버리고도 남은 밀웜이 분열하고 있었다.
“으, 징그러워. 아무리 무한동력이 탐나도 그렇지, 이건 좀 별로네요.”
“무한동력이요?”
이연우가 의아하게 묻자, 유령이 신나서 설명했다.
“무한 회전 톱니바퀴 같은 것처럼 쉘터 같은 곳에서 고갈 걱정 없이 쓸 동력이요. 회사는 예전부터 꾸준히 비상용 자원을 준비했거든요. 이게 그 자원 같아요.”
이연우의 눈에 희망의 빛이 맺혔다. 사고회로가 현실을 뒤틀었다.
‘이러면 본사가 나를 나쁘게 볼 이유가 없네?’
멸망 시나리오 수준의 이상개체를 만든 게 아니다. 에너지난을 해결할 자원을 만든 것이다.
격리를 깨고 혼자 도망친 것이 아니다. 본사를 위협하는 멸망주의자를 막기 위해 재빠르게 출동한 것이다.
이 정도면 본사에서 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공로상 같은 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