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66)화 (166/194)

본사

본사에 평화가 돌아왔다. 무인은 죽었다. 밀웜은 회사가 뭘 이용했는지, 순간이동 당하듯이 수거됐다.

그저 초현실적인 그림 같은 폐허만이 남았다. 곳곳의 공간이 깨졌고, 철근이 뱀이 되어 스스슥 기어 다니고, 흘러내린 자동차가 웅덩이에 고여 있으며, 콘크리트 파편이 소용돌이치며 주차장을 휩쓸었다.

유령이 어깨를 움츠렸다.

“거의 이차원이 되었네요. 본사 복구할 수 있나 모르겠어요. 시간 엄청 걸릴 텐데.”

이연우가 풀어놓은 가능성 탓이다. 세상의 법칙이 느슨해져, 본사의 일부가 공간형 이상개체 같은 것이 되었다.

이연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뒷수습이야 본사가 알아서 하겠지.’

무인과 싸우다가 벌어진 일. 이걸로 자신을 탓하지는 못한다.

본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것만이 유일한 걱정거리로 머리에 남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거의 영웅에 가까운 활약이었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 자신이었다.

방사능 뿌리듯 세상을 어지럽히고, 밀웜 같은 것을 만드는 위험요소.

‘내가 생각해도 좀 그래. 나 같은 게 세상에 있다고 하면 불안하지.’

주사위의 대실패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데.

이연우의 표정이 진지해지는 그때였다.

삐빅-

유령이 들고 다니던 핸드폰에서 기계음이 났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령이 핸드폰을 보더니 안타까워했다.

“임무 완료했으면 돌아가라고 하네요. 아, 본사 좀 더 뒤져, 아니, 구경하고 싶었는데.”

잠금장치를 열고 기록을 열람한 기록이 남아 회사의 눈을 완전히 속이지는 못했다. 그녀가 몰래 본 정보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았다.

비상경보가 울릴 때는 방해 없이 마음껏 훔쳐봐도 괜찮지만, 지금은 안 된다.

‘저래도 되나? 아, 하긴. 이 사람도 6레벨 후보 느낌이니까.’

이연우는 머리가 살짝 이상한 유령을 보다가, 마음을 놓았다.

정보털이범도 이렇게 멀쩡하게 내버려 두고 있다. 자신이 조금 위험해도 무턱대고 격리하거나 사살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순간 이연우의 얼굴에 근거 있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혹시 본사가 날 적대해도, 뭐.’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생존에 특화된 게 자신이다. 아무리 본사여도 자신을 어찌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때, 유령이 한 손을 소심하게 흔들었다.

“그럼 저는 돌아갈게요. 다음에 기회 되면 봐요.”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헤어질 시간이 왔다.

유령이 엉망진창인 주차장을 자연스럽게 떠났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유령의 뒷모습이 희미하게 흐려졌다. 거리가 멀어지며 인식에서 벗어났다.

이연우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이연우가 자기 뺨을 챱챱 때렸다.

“방심하지 마.”

방심이 곧 위험이다.

당장 멸망주의자만 해도 그렇다. 지우개를 든 멸망주의자를 죽여서 얕잡아 봤더니, 돌연 무인이 6레벨이 되어 튀어나왔다. 정상급 집단 중 조금 뒤처지는 멸망주의자인데도, 6레벨 수준의 무력이 둘이나 나온 것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잠재력이 어떻게 터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주변을 서성이던 이연우가 마음을 먹었다.

‘회사가 최고야.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제일 안전해.’

회사가 가지는 무력과 정보력. 모든 측면에서 회사와 함께하는 것이 낫다.

이연우가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평범한 방에 대피한 마크 정이 있는 연구소의 코드를 안다. 그곳으로 찾아가 진지하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이연우가 돌연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뭐가 발에 차이고, 슉 솟구쳤다.

“악! 뭐야! …철근이네.”

뱀처럼 스슥 기어 다니던 철근이다. 괜히 얻어맞은 철근이 머리를 치켜들었고, 이연우와 눈싸움을 하다가 휙 머리를 돌렸다.

이연우는 부릅떴던 눈을 비볐다. 그리고는 몸을 웅크리고는 고개를 휙휙 돌렸다.

“여기도 좀 위험해. 안 되겠다. 빨리 가자.”

그렇게 이연우는 비상구와 엘리베이터 따위를 이용해 연구소로 돌아갔다.

***

연구소는 주차장에 비해 깔끔했다.

범람했던 밀웜의 머리 때문에 책꽂이나 컴퓨터나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증식하는 밀웜의 압력에 기둥이나 벽이 변형되어 있었으나, 주차장의 난장판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다.

밀웜은 이미 수거되어 있었고.

이연우는 조심스럽게 연구소로 발을 들이다가, 눈을 깜빡였다.

“돌아오셨습니까? 상황은 종료된 모양입니다.”

마침 평범한 방에서 나온 마크 정과 마주쳤다.

그 옷차림이 깔끔했다. 낯빛도 멀쩡했다. 무인과 치고 박느라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자신과는 달랐다.

“….”

이연우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을 보았다. 유리 조각에 얼굴이 비쳤다. 꼬질꼬질하고 지친 얼굴.

갑자기 후회가 몰려왔다.

‘아. 그냥 평범한 방에서 대기할걸.’

그랬으면 적어도 무인과 생사결을 하지는 않았을 텐데. 회사가 밀웜도, 무인도 알아서 처리했을 텐데.

‘아니지. 그랬으면 6레벨에 오르지도 못했어. 잘된, 어, 잘된 일이야. 회사에 공로도 세웠고. 그렇지? 맞지?’

그렇게 이연우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자니, 마크 정은 연구소를 둘러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연구소가 엉망이 되었군요. 실험 데이터는 서버에 따로 보존한 듯한데, 그래도 망가진 실험기구는 아깝습니다.”

이연우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게 엉망? 그러면 내가 본 주차장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이연우는 곧 정신을 차렸다. 그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이사님하고 연락됩니까?”

“지금 바쁘신지 계속 통화 중입니다.”

본사가 거의 반파되었다. 이사가 바쁜 것도 당연하다. 피해 규모를 집계하고, 피해 현장을 복구할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어쩌면.

‘날 평가하는 중일지도 모르지.’

이연우의 눈에 한줄기 긴장이 스쳤다.

어두운 회의실에서 이사가 회의하는 광경이 상상되었다. 사람들이 이연우를 어떻게 평가할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사가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긋는다.

- 이상異常을 만드는 이상異常.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니 죽이게.

그러면 안전조치 001이 주사위를 억누르고, 유령이 평범한 총탄을 들고 다가오고.

‘설마.’

최악의 경우를 상상한 이연우가 몸을 부르르 떠는 그때, 마크 정이 말했다.

“이연우 님 핸드폰으로 연락해보십시오. 아마 이연우 님 전화는 연결될 겁니다.”

회사의 정예요원이니까.

이연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마크 정에게 번호를 받아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울리는 통화 연결음이 괜히 불안하다. 이연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이사의 목소리다.

- 이연우 특수조사원. 이번 일은 잘했어. 실험 결과도 좋고, 밀웜도 이용 가치가 높아. 어쨌든 자네가 걱정할 일은 없으니 안심하게.

진짜 바쁜지 우다다 말을 쏟아낸 이사가 전화를 끊었다.

이연우는 멍하니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성의 없이 대충 돌아온 반응. 자신을 적대하려고 했다면, 억지로 안심시키기 위해 더 성의 있게 대응했을 것이다.

‘됐다.’

입가가 꿈틀거린다.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남은 일은 하나뿐이다.

‘쉘터, 아니, 격리 받자.’

안 그래도 집 없이 조사반 사무실에서 사는 몸이다. 집을 구할 기회다.

마크 정은 그런 이연우를 이상한 눈으로 보다가, 이어지는 이연우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연우가 입술을 꾹 깨물어 자신을 진정시키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고를 크게 친 것 같습니다. 멸망 시나리오 수준의 이상개체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징계를 받아야겠습니다.”

“회사 의뢰로 실험해서 만들어진 거라 괜찮을 겁니다.”

마크 정이 바로 답했다.

본사가 시켜서 일어난 일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도망치면서 회사 격리도 많이 부쉈습니다. 단순한 징계로는 부족하고, 저를 격리-”

“아니,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왜 이연우 씨를 격리합니까!”

마크 정이 기겁했다. 격리? 이연우를? 물론 계획은 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격리란 단어 자체를 꺼내면 안 됐다.

마크 정은 이연우의 심리를 추측했다.

‘멸망 시나리오 수준의 이상개체를 만들어서 불안한가? 회사가 자신을 처리할까 봐?’

그렇다면 그 불안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적인 믿음으로 안심을 주어야 한다. 잘못하면 터진다.

‘지금 이연우가 터지면 본사가 버틸 수 있나? 못 버틸 거 같은데?’

본사의 운명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 마크 정이 필사적으로, 거의 빌듯이 말했다.

“절대,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건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만약 누가 격리라는 단어를 꺼내면 제가 목을 걸고 막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아무리 이연우 씨가 사고를 쳐도, 회사원인 이상 회사가 등 돌리는 일은 없습니다!”

두 사람의 말싸움이 들려오는 연구소,

이윽고, 대피했던 직원들이 돌아오고 현장을 조사하는 소음이 본사를 채웠다.

***

이사는 정말 바쁘게 일했다.

“밀웜을 이용한 무한동력기관? 녹색협회와 협력해야 최고 효율을 보인다고? 이건 내 담당이 아니니까 다른 이사한테 보내게.”

“본사 이전 계획을 수정했다고? …내가 이걸 또 언제 다 보나. 자네가 먼저 보고 요약해.”

“다른 집단 동향은 아직 파악 안 됐나?”

쏟아지는 보고서와 연락의 파도 앞에서 허우적거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몸이 다섯 개쯤 있으면 좋겠는데.’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사의 고위직은 오직 인간만이 오를 수 있으며, 편의를 위한 이상異常 사용조차 제한되어 있었다.

다른 평범한 사람처럼 인생을 살며, 인간의 감성을 잃지 말라고.

그때, 비서 하나가 서둘러 다가왔다.

“이사님, 유령의 보고서입니다.”

“주게.”

정예요원의 보고를 이사는 바로 확인했다. 대충 쓰여 있는 보고서가 빠르게 읽혔다.

‘이연우가 무인을 마주쳐서 상대했나. 유령이 평범한 총탄을 박을 기회를 만들었고, 최후의 공격도 피했고.’

그 의미는 단순했다. 이연우가 6레벨에 올랐다. 회사에 6레벨 전력이 탄생했다.

하지만 생존본능을 모르는 이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오염되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주사위의 성질인가?”

주사위를 얻은 지 1년도 채 안 된 인간이 이렇게 빨리 오염될 수가 있나? 안개의 오염이 그 정도 영향을 끼쳤나? 아무리 짧아도 1년은 넘어야 할 텐데.

이는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했고, 이사는 적당히 넘어갔다. 일이 너무 많다.

그는 잠깐 사이에 더 올라온 보고서를 보았다. 프로젝트 : 평범한 세계를 연구하는 연구팀에서 올린 보고서다.

“근본적인 기술을 획득했으니, 목적에 필요한 다른 기반 기술을 연구해야 한다? 음, 진행하라고 하게.”

회사는 오늘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