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68)화 (168/194)

인간

며칠이 지났다.

새 정장을 입었던 최재민은 대충 운동복을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고, 이연우에게 나쁜 영향을 받아 조금 있던 신입의 마음가짐마저 풀려 버렸다.

딸깍딸깍딸깍!

목을 앞으로 내밀며 마우스를 연타하던 최재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우리 팀 뭐해!”

팀 게임을 한창 진행하다가 죽었다. 아무튼 남 탓하는 최재민의 눈에 푸른 빛이 맺혔다.

그 눈에 같은 팀의 부모가 보인다. 닉네임 위로 보이는 부모의 상황. 누군가는 부모가 아팠고, 누군가는 돌아가셨다.

열정적으로 타자를 누르려던 최재민이 순간 멈칫했다. 짜증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여기서 부모를 들먹이며 욕하는 건 좀….

“아이, 터졌네.”

결국 패배했다. 기분이 가라앉은 최재민이 머리를 벅벅 긁을 때였다.

뻑-!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유지유가 최재민의 뒤통수를 쎄게 후려쳤다. 최재민의 고개가 휙 꺾였다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아, 왜!”

“대놓고 게임하면서?”

유지유가 눈을 치켜뜨며 말하자, 최재민은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조사 업무가 없으면 쉬면서 대기하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일이 없다. 기껏해야 쓰레기 버리고, 사무실 청소하는 정도지.

그 지루한 시간에 게임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유지유는 그런 불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장을 보며 외쳤다.

“반장님 얘 좀 보세요! 아예 피시방을 만들었다니까요?”

“어어….”

의자에 늘어져 자던 반장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것만으로 최재민이 찔끔 물러섰다. 이상개체라고 격리당하고 실험당하려던 것을 반장이 구해준 은혜가 있었다.

최재민이 자기 자리를 보았다. 견습 조사원으로 일하는 동안 모았던 돈으로 산 컴퓨터가 번쩍번쩍 빛났다.

게이밍 마우스에 키보드가 무지갯빛으로 점멸했다.

‘좀 심한가?’

생각해보면 교무실의 선생님 중 이렇게 일하는 사람이 없던 것 같기도 하고.

반장은 잠에 취한 상태로 흐리멍텅하게 말했다.

“그, 뭐야. 키보드. 그래, 키보드 내리치지 마라. 시끄럽다.”

게임을 하든, 뭘 하든 상관없다. 조사만 제대로 하면 되지. 힘 줄 때 힘주고, 쉴 때는 쉬어야 하는 법이다.

반장이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유지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너무 자유롭지 않나?

유지유가 이연우를 보았다.

“연우 씨. 얘한테 뭐라고 해봐요.”

인터넷으로 웬 기부 사이트를 뒤지던 이연우가 슥 시선을 돌렸다. 현란하게 빛나는 키보드와 마우스. 거기에 사양 좋은 컴퓨터까지.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거 살 돈으로 공구를 사지.”

하나 같이 실용성이 부족한 물품이다. 개인 장비도 없으면서 저런 낭비는 아니지 않나.

거기에 최재민은 부모 감별로 이상개체를 알아내도, 이상개체로부터 살아남을 능력이 부족한데.

최재민이 눈을 깜빡였다.

“총 있지 않아요?”

“총 안 통하는 이상개체 만나면 어쩌려고. 아니면 이상한 공간에 떨어지거나. 생존 키트 같은 건 장만해서 들고 다녀야-”

유지유가 이마를 탁 쳤다. 진성 조사원들 앞에서 말을 잃었다. 어쩌면 다른 회사원인 가족의 영향 때문에 조사원의 감성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결국 포기한 유지유가 최재민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은 후, 이연우에게 관심을 돌렸다.

“기부하게요?”

이연우가 인터넷에 이런저런 기부 사이트를 잔뜩 띄운 뒤 이리저리 뒤져보고 있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한번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아무리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자격증은 꿈틀대는 기색이 없어서.

평소라면 안 할 여러 가지 행동을 해가며 추이를 지켜볼 계획이었다. 기부도 해보고, 봉사도 해보고.

‘아니면 반대로 못된 짓을…?’

눈동자에 장난기 같은 것이 반짝이는 그때였다.

이연우에게 전화가 왔다. 이연우는 바로 받았다. 핸드폰 너머에서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불우이웃을 도와주세요. 제 보험회사가 완전히 망했습니다. 오늘 먹을 음식도 없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간혹 받던 스팸 전화에 이연우가 바로 끊으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좋습니다.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 한 번만 도와주시면 제가 보답을-. 예? 예! 진짜입니까?

흥분한 목소리에 이연우가 침착하게 답했다.

“계좌번호 부르세요.”

- 그럼 바로 불러드리겠습니다!

해외의 계좌인지 처음 듣는 은행과 낯선 형식의 번호로 이연우는 곧바로 적지 않은 돈을 보내었고.

상대는 순수하게 기쁜 웃음을 터트리며 연달아 감사 인사를 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연신 고개를 숙이는 광경이 상상될 정도로 절절한 목소리였다.

-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바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보답은 괜찮-”

- 당신이 죽을 날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순간 이연우가 눈을 크게 떴다. 머리에서는 여러 생각이 떠돌았다. 사기인가? 이상異常인가?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 이연우는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듣지 않는다. 혹시 이상개체일까봐. 죽는 날을 만들어 고정하는 것일까 봐.

그렇게 이연우가 통화를 끊으려고 할 때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당혹한 목소리가 들렸다.

- 어, 어? 아니, 왜 죽는 날이 안 보이지?

“…이상개체?”

그 나직한 목소리에 조사반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졸던 반장이 퍼뜩 일어나 계약서를 쥐었고, 유지유는 형광조끼 보관함으로 다가갔다.

최재민이 뭘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다가, 핸드폰을 보여달라고 손짓했다. 부모를 감별하기 위해.

하지만 이연우는 손을 내저었다. 핸드폰 너머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 누, 누구십니까? 저 나쁜 짓은 진짜 한 번도 안 했습니다. 그냥 돈 받고 죽을 날 알려주고, 사후세계에서 부활하도록 도왔을 뿐입니다!

이연우는 잠깐 고민했다. 확실히 위험한 느낌은 없다. 보아하니 무슨 저주처럼 사망을 확정하는 수준은 아닌듯하다.

평소라면 바로 회사에 보고하겠지만, 이연우는 모처럼 선행을 베풀기로 했다.

“제가 클럽 쪽 번호 알려드릴 테니까, 그쪽이랑 연계해서 사업해보세요. 죽을 날을 알려주는 건 돈이 되지 않습니까. 클럽의 친구인 이연우의 소개로 왔다고 말하고요.”

이게 윈-윈이다. 클럽은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자신은 상품을 소개한다.

‘시간을 사는 지폐를 더 받고 싶은데.’

욕심을 섞어 골드버그 클럽 한국 지부장의 번호를 알려준 그쯤에서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뼈에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

그걸로 통화가 끝났다.

이연우는 조사반 식구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입을 살짝 벌리고 이연우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유지유가 말했다.

“무슨 이상개체가 전화를 걸어요? 아니, 그 전에 회사에 보고 안 하고 클럽으로 넘겨도 돼요? 아. 연우 씨는 괜찮겠네요.”

그녀는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정보부의 유령인 언니도 기밀 정보 마음대로 털고 다니는데….

비슷한 정예요원인 이연우도 어느 정도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양이다.

이연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회사에도 보고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게 위험하다면 아무한테나 전화 거는 것보다, 클럽 통해서 선별 받은 사람과 통화하는 게 조금 더 안전하지 않습니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이상개체.

만약 위험이 있다면, 회사가 격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동안 클럽을 거름망 삼아 무분별한 일반인을 거르면 된다.

최재민이 눈을 빛냈다.

“정보부 안 끌려가요?”

“…재민아. 네가 하면 끌려간다. 쟤는 좀, 신분이 특수해서 괜찮은 거지.”

반장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일반인의 안전을 위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긴 한데.

그래도 걱정이 들었다. 이연우가 6레벨에 올라 대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연우가 딱히 밝히지 않았다.

“그래도 조심해라. 정예요원도 회사 소속이니까 회사가 눈감아주지, 이적 행위는 봐주지 않아.”

그렇게 자잘한 잔소리를 몇 마디 하고, 이연우도 혹시 실수했나 불안해할 때였다.

응애——!

희미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모두 사무실 문 너머를 보았고, 반장은 얼른 마우스를 움직여 CCTV 화면을 켰다.

카메라 너머로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엉엉 우는 광경이 보인다. 사무실 건물 문 안에 버려진 아기가 엉엉 울었다.

유지유가 기겁했다. 올 것이 왔구나, 경계심이 치솟는다. 결국 이연우의 사고가 조사반에 이상개체를 끌고-

CCTV를 돌려본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웬 할머니가 아이 놓고 갔다. 일단 데리고 오마.”

“이상개체 아니고요?”

유지유가 되물었다. 반장은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힐끔 본 화면에는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아기의 뺨을 쓰다듬다가 조심스럽게 아이를 두고 가는 순간이 멈춰 있었다.

***

반장이 아기를 데려왔다. 헤진 포대기에 싸인 아기는 최재민의 품에서 몸을 꼼지락대고 있다. 최재민은 흔들리는 눈으로 아기를 내려보았다.

주변에 둘러선 조사반 사람들도 서로 다른 표정을 지으며 아기를 보았다.

앞이 보이긴 하는지 말똥말똥 뜬 눈으로 천장을 올려보는 아이는 몸을 꼼지락대었다.

유지유가 통통한 볼을 푹 찔렀다.

“애가 울지도 않고, 얌전하네요. 낯선 장소인데. 너무 귀엽다.”

그들은 모두 같은 감정을 느꼈다. 안타까움과 씁쓸함, 그리고, 보호욕. 마치 자신의 절반이 이 아이인 것 같다. 자신의 자식을 보는 듯하다.

그때 반장은 편지 한 장을 읽고 있었다. 포대기 사이에 끼어 있던 누런 종이.

아이를 두고 간 할머니가 쓴 듯, 꼬불꼬불하고 맞춤법이 잘 맞지 않는 글로 쓰인 편지. 곧 반장이 한숨을 내쉬며 편지를 곱게 접었다.

“그 할머니가 일가친척도 없고, 곧 죽을 몸으로 더는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두고 가셨다고 하네.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잘…. 하.”

복잡한 감정이 담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며 아기를 보았다. 자신이 자식을 낳으면 이런 감정을 느낄까? 안도감이나 안정감이 가슴을 맴돈다.

‘내 유전자의 50퍼센트.’

자신이 죽어도 자식이 있다면, 자신의 절반은 세상에 남는다. 그런 생각이 든다.

그때였다.

최재민이 침을 꿀꺽 삼키더니 반장을 보았다.

“반장님. 이 아이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글쎄.”

반장이 감성에 젖은 눈으로 아이를 보았다. 이상하게 정이 가고 자식 같은 사랑을 느끼게 만드는 아이라 사무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었다.

본래라면 회사에 연락해 연결된 보호기관으로 보낼 테지만, 반장은 망설이다가 말했다.

“일단 잠깐 데리고 있자. 그 할머니 찾아봐야지.”

자초지종을 들어볼 생각이다. 가능하다면 회사의 기관보다는 평범한 세상에서 사람 손에 사는 것이 좋으니까.

아이에게 가족 같은 사랑을 느낀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돌연, 최재민이 빽 목소리를 꺾어가며 소리쳤다.

“그러면! 제가 조사해볼게요!”

“네가?”

“이제 막 정식 조사원 됐잖아요! 한번 저 혼자 조사해보고 싶어서요. 위험한 일도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이 의아한 눈길을 보냈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그러면 연우 씨랑 같이 가. 아기는 내가 볼게.”

“연, 연우 형이랑요?”

최재민이 당혹한 눈으로 이연우를 보다가, 다시 아이를 보았다. 아이 위로 보이는 공란을 보았다.

[부 : ]

[모 : ]

이상개체다.

이연우가 끼에엑 발작할 이상개체. 최재민이 며칠 동안 일을 배우면서 대화를 나누고 받은 인상이 그랬다.

“그, 그, 그! 저 혼자서 해봐야 훈련? 연습이 되지 않을까요?”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아무리 이상개체라도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자신이 괴물이 아니듯 아이도 괴물이 아니며, 사람으로 살 권리가 있었다.

이대로 회사 손에 맡겼다가 정체가 들통나 평생을 실험실에 갇혀 살게 할 수는 없었으며, 이연우라는 위험인물 근처에는 더더욱 둘 수는 없었다.

‘할머니 찾아서 대화하다가 이상한 낌새라도 느끼면….’

아무리 이연우라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강하게 왜곡된 인상을 가진 최재민은 진심으로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유지유는 손을 뻗어 아이를 품으로 데려왔다.

“네가 어떻게 조사해. 할머니는 이미 멀어졌을 텐데. 경찰에 신고하면 며칠 걸릴 거고. 차라리 연우 씨가 인맥 쓰는 게 낫지.”

“정보부에 동기나 아는 사람도 있고, 본사 자원도 빌릴 수 있긴 합니다.”

품에 안긴 아이는 순진무구한 눈으로 유지유를 올려봤다. 그러다가 근처의 이연우를 보고는 꺄르륵 웃었다.

이연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평범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사는 게 좋죠.”

괜히 회사의 보호기관에서 자랐다가 회사원이라도 되면 하루하루 몸 비틀며 살아야 한다.

최재민은 은근히 어두운 안색을 했으나, 결국 두 사람이 할머니를 찾기로 했다.

두 사람이 사무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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