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69)화 (169/194)

인간

멸망주의자의 테러가 휩쓸고 지나간 거리에는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불탄 건물과 접근금지 테이프가 걸린 문과 음울한 안색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거리로 나온 최재민은 눈치를 살피다가,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다.

“형, 어떻게 조사할 거예요?”

이연우는 멍하니 길을 걷다가 멈춰 섰다. 깨달음이 스치고 나직한 탄성이 터졌다.

“아. 본사 쪽에 아는 사람한테 먼저 연락해야지. 왜 바로 나왔지? 그냥 사무실에서 전화하고 나오면 되는데?”

행동이 앞섰다. 황당한 실수라면 실수였다.

이연우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 최재민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이연우를 보았다. 갑자기 믿음이 안 간다.

그러다가도 문득 최재민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쩌면 조사 실패하는 게 아기한테 도움이 될지도 몰라.’

아기를 두고 간 할머니를 찾아 대화하다가 이상개체의 흔적을 발견하면 결말이 나쁘니까. 격리, 실험, 배제 같은 것.

그러나 최재민의 낯빛은 금방 변해, 짙은 걱정이 어렸다. 생각이 조금 더 멀리 뻗었다.

‘그래도, 혹시, 그 아기가 위험하면 어쩌지. …에이, 아니겠지. 그 할머니가 데려왔잖아.’

사람을 죽이거나 괴기 현상을 일으켰다면, 사무실 같은 곳에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예, 접니다. 도움받을 일이 있어서-”

그쯤에서 이연우가 마크 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쪽은 굉장히 바쁜지 통화는 빠르게 끝났고, 이연우는 정보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CCTV의 데이터를 모아, 회사의 전문 AI가 사람을 추적한 결과.

지도에 실시간으로 동선이 그어진다. 동선의 끝은 머지않은 주택 단지에서 멈췄다.

지도를 이리저리 확대하고 축소하던 이연우가 핸드폰을 흔들었다. 그는 고개를 어딘가로 돌리고, 힘차게 앞서 걸었다.

“가자.”

40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그렇게 이연우는 별생각 없이 나아갔으며, 최재민은 복잡한 생각에 빠져 얼굴이 어두워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

그들은 5층 건물의 입구에서 멈췄다. 할머니가 들어간 주택 건물이고, 사는 집이었다.

정보부는 훌륭하게 서포트했다. 할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의 신상정보를 구했고, 이 건물에 사는 각 호수의 등기부등본 같은 데이터를 비교해 정확한 정보를 추출했다.

정보부가 정답을 내주었건만, 정작 최재민과 이연우는 좀처럼 들어가지 못했다.

“….”

“….”

물때 같은 것이 껴서 탁한 유리문 앞에서 막막함과 긴장이 섞인 얼굴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의 고민은 같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대화를 어떻게 하지? 애초에 문 안 열어주시면 어쩌지?’

탐문이나 수사 느낌으로 움직이는 건 또 처음이다. 거기에 아이를 두고 간 할머니가 순순히 응해줄 느낌도 아니고.

“아. 음….”

높은 난이도의 문제였다. 대화 능력에 자신이 없는 이연우는 ██하면 죽는 집 수준의 어려움을 느꼈고, 최재민은 최재민대로 난관에 부딪힌 얼굴을 했다.

용기를 낸 것은 최재민이었다.

“형, 제가 해볼게요.”

입을 꾹 다문 최재민이 비장하게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이었다. 이연우가 최재민의 목덜미를 잡으며 말렸다.

“아냐, 잠깐, 잠깐만.”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일단 부딪쳐-”

“아니, 방법이 있어.”

실랑이를 벌이던 최재민이 몸을 돌릴 때였다. 탁한 유리문에 형광빛이 스쳤다. 이연우가 에코백에서 자연스러운 형광조끼를 꺼냈다.

이연우가 탁, 조끼를 털며 말했다.

“장비 쓰면 돼.”

말 못 하면 어떤가. 대충 이상장비의 힘을 빌리면 되는데. 더구나 아기를 위한 일이니, 명분도 좋다.

최재민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혹감에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거, 그거. 보관함에 넣어둬야-”

순간 최재민의 머릿속에서 깨달음이 스쳤다. 이 사람이 알려준다고 그대로 배우면 안 된다. 거의 무법자 수준으로 규칙 무시하고 마음대로 사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런 혼란은 곧 사라졌다.

“괜찮아. 가자.”

왜냐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이연우가 형광조끼를 입는 것도, 이곳에 있는 것도, 남의 집에 방문하는 것도.

끼이익, 건물의 정문이 열렸다. 이연우가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할머니가 사는 반지하 방을 향해.

꽉 닫힌 문을 여는 데는 오직 몇 마디의 말이 필요했을 뿐이다.

“점검 나왔습니다. 문 열어주세요.”

***

문이 열린다. 점차 열리는 문의 틈으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보였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는 한 손에 헤진 걸레를 쥔 채 이연우를 올려봤다.

“잘 오셨어.”

이연우가 반사적으로 문 너머의 환경부터 파악했다.

현관 근처에는 쓰레기가 곱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 먹은 분유의 캔 몇 개, 아기 기저귀 따위가 섞인 쓰레기봉투.

할머니 혼자 사는 듯한 집 안에는 퀘퀘한 냄새가 가득했고, 구형 냉장고 따위가 힘겹게 작동하며 신음을 뱉었다.

‘위험하지는, 않나?’

이연우가 안으로 발을 들이며 신발을 벗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점검도 하고, 몇 가지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으응. 그래. 안으로 들어와.”

할머니는 의심 없이 이연우를 맞이했다.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때 뒤늦게 최재민이 허겁지겁 달려오며 닫히던 문을 열었다. 최재민은 어설프게 웃으며 허리를 굽혔다. 언뜻 입가에 핏자국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최재민을 바라본다. 최재민이 긴장하며 뭐라 더 변명을 뱉으려고 할 때, 이연우가 말을 더했다.

“막 일하는 신입인데, 괜찮을까요?”

그 말에는 형광조끼의 효과가 적용되지 않았으나, 할머니는 적당히 고개를 주억였다. 만사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려 보이는데 장하네. 들어와, 들어와.”

두 사람이 따라 들어간다.

주방이자 거실인 좁은 공간에 할머니가 힘겹게 나무 탁자를 펼치려고 했다. 이왕 온 손님이니 적당히 대접하려는 것이다.

“도와드릴게요!”

최재민이 서둘러 달려가며 나무 탁자를 손쉽게 펼쳤다. 짧은 다리가 척척 펼쳐지고, 색이 바랜 나무 탁자가 놓였다.

“마실 거라도 드셔.”

할머니가 느릿느릿 냉장고 문을 열고, 거의 냉장고로 들어가다시피 몸을 집어넣어 음료를 더듬더듬 찾았다.

최재민은 그런 할머니를 보다가 다시 혀를 깨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이연우를 잡았다.

‘정신 차려! 아기 보호하려고 온 거잖아!’

아기가 인간으로 사회에서 살도록 찾아온 거다. 회사로부터, 이연우로부터 정체를 감춰야 한다.

부모가 아이의 위기 앞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듯, 최재민의 정신력이 한계를 돌파해 인식 왜곡에 저항한다.

이연우는 당연히 그 사실을 깨달았다. 시선이 스치는데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사원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

조끼 수준의 인식 왜곡을 떨쳐내야 살아남을 확률이 오른다.

그쯤에서 할머니가 냉장고에 넣어둔 보리차를 꺼내 컵 두 개와 함께 가져왔다.

“젊은이들 마실 게 없네….”

“괜찮아요! 안 그래도 목말랐어요!”

최재민이 몸을 들썩이며 유리병을 받고 쪼르륵 물을 따랐다. 머릿속에서는 고민이 스쳤다. 어떤 말로 대화를 열어야 할지, 뭘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하지만 형광조끼를 입은 이연우는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물을 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아기 두고 가셨죠? 그거 관련해서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조끼도 입었겠다, 빙빙 돌아갈 이유가 없다. 그럴 능력도 없고.

촤악-!

최재민이 손을 크게 떨며 물이 탁자 위로 쏟아졌다. 할머니도 주춤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이연우가 재차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할머니가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아기한테는 미안한 짓을 했어. 하지만 생이 얼마 안 남은 걸 어떻게 해. 나 죽고 그 애 혼자 남으면….”

“아뇨, 아뇨!”

최재민이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당황해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졌다. 순간 시선이 이연우를 스쳤다. 왜 직설적으로 사람을 찌르냐는 시선.

이연우도 뭔가 양심에 찔리는 기분에 슬쩍 눈을 피했고.

곧 노인의 이야기가 시작되어, 두 사람은 할머니를 보며 귀를 기울였다.

“아기가 조금 아프지만, 참 착해. 이왕이면 좋은 사람 곁에 갔으면 좋겠어서 그랬어.”

***

이야기는 단순했다.

고아로 자라 힘겹게 살아가던 할머니가 젊은 날에 주운 아기. 하루하루 버티며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그녀의 집 앞에 버려진 아기는 그녀의 품에서 웃었다고 한다.

그녀는 아기의 웃음 보는 순간 그 아기를 자신의 자식으로 받아들였고, 헌신하며 아기를 키웠다.

나이를 먹지 않는 아기를.

이연우와 최재민의 눈에 경계와 의문과 깨달음이 스쳤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여 나무 탁자 모서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기가 제대로 크지 못하는 병에 걸렸나 보더라고. 티브이에서 나왔어. 성장이 멈추는 병이 있다고.”

이연우도 어설프게 기억이 나는 듯했다. 하이랜더 증후군이었나?

‘그런데 그게 아기 나이에서 나타날 수도 있나?’

그가 물었다.

“병원에는 안 데려갔습니까?”

“어떻게 데려가. 나도 찾아봤어. 치료법이 없다며. 괜히 주사 받고 아픈 짓만 당하면 어떻게 해.”

그런가? 이연우의 눈에 의구심과 경계심이 섞였다.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만, 은근히 꺼림칙하다. 이상異常과 평범 사이의 선에 걸쳐져 있는 무언가를 본 느낌.

하지만 막 나가자니 진짜 단순한 아기 같았고, 마음이 울렁거렸다. 보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막 나갈 수도 없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그렇게 서서히 부모의 마음과 이성이 충돌하는 이연우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최재민이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위험하지 않아. 그냥 성장이 멈춘 아기일 뿐이야. …하지만 어떻게 하지?’

최재민의 표정에도 고민이 섞였다.

단순하게 보호기관에 보내도 문제다. 자라지 않는 아이는 곧 회사의 정보망에 걸린다. 어쩌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아기는 차라리 회사의 기관에-

그 순간, 이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민아. 그 아기, 부모 없지?”

이상개체냐는 질문이다. 최재민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최재민이 손을 벌벌 떨며, 끼긱,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눈살을 찌푸린 채 치열하게 생각하는 이연우가 있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조금의 단서를 얻었을 뿐인데, 그는 진실에 닿았다. 자신이 위험에 빠졌다고, 이상개체에 영향받았다고 의심한 결과다.

‘…다른 아기를 볼 때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나?’

뉴스나 영상을 볼 때 느꼈던 것보다 강한 감정이다. 마치 자신이 부모가 되고 그 아기가 자신의 자식인 듯한 감정. 어떻게든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감정.

물론 눈으로 직접 보아서 느껴지는 게 다를 수도 있지만, 사고를 하도 겪은 이연우는 그 감정조차 의심했다.

만약 그 아기가 감정을 조작해 자라지 못하는 자신의 보호자를 만드는 것이라면.

이연우의 머리에서 영향을 떨쳐내기 위한 사고회로가 돌았다.

‘나는 100퍼센트. 아기는 50퍼센트. 절반이야. 혹시 나를 온전히 물려받았다면, 그건 재앙이고.’

나태의 악마를 떠올린다. 서로 죽이려고 했지 않나.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한 감각이 들며, 곧 감정이 밀려났다. 이연우가 고개를 들고 최재민을 보았다. 눈동자에 확신이 서렸다.

“맞지?”

땡그랑-!

최재민이 컵을 떨어뜨렸다. 그 반응은 확실한 대답으로 돌아왔고, 이연우는 웃었다.

‘뭐야. 막 위험한 것도 아니잖아. 그러면 회사에 맡기면 되겠네.’

회사가 잘 맡아서 적절하게 키울 것이다. 회사가 아기조차 괴롭히는 비윤리적인 집단은 아니다. 이연우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사고 없이 좋게 끝맺어지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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