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연우가 알아챘다. 아기가 이상개체라는 사실을. 이연우의 눈동자에 심상치 않은 빛이 서렸고, 살짝 숙인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치 도화선이 타들어 가는 폭탄 같다.
최재민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온갖 생각이 두뇌 안에서 솟구쳤다.
‘아기를 보호해야 해. 하지만 어떻게?’
싸워서 제압한다? 불가능하다. 완력은 자기가 조금 더 강해 보이긴 하는데, 저 형은 생존이 걸리면 눈이 돌아갔다. 무법자 같은 인간이 이상장비로 무장한 채 규칙을 무시하면….
결국 최재민의 생각은 하나의 결론을 향해 나아갔다. 설득.
최재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울음기가 섞여 울먹였다.
“네…. 없어요…. 그 아기, 부모 없어요. 그래도 위험하진-”
그 순간이었다.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이고, 최재민이 퍼뜩 고개를 들어 이연우를 마주 보는 순간.
“이, 이-!”
할머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름이 더 자글자글하게 새겨졌다. 노인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는 어디서 그런 기운이 솟았는지, 벌떡 일어나 최재민을 내려봤다.
“이 상놈 새끼! 내가 그 아기 엄마야! 내가 사랑으로 키운 아기야! 부모 없는 아기가 아니야!”
“어, 어? 아니, 할머니, 그게 아니라-”
최재민이 엉거주춤 일어나 두 손을 내저었지만, 늦었다.
형광조끼 덕분에 이연우의 발언은 묻혔고, 할머니의 분노는 오롯이 최재민에게 향했다.
휙-!
할머니가 싸리 빗자루를 들었다. 거칠게 휘둘러지는 빗자루가 최재민을 향해 짝짝 내리꽂혔다. 최재민이 허둥지둥 도망쳐도, 빗자루는 끈질기게 쫓아왔다.
“악! 악! 할머니, 잠깐 진정, 악!”
“상눔의 시키! 이놈! 이놈!”
먼지가 풀풀 날린다. 이연우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살피다가 슬며시 일어났다.
그가 서둘러 현관으로 달렸다.
“도망쳐!”
다 알아냈다. 더 남을 이유가 없다. 신발에 대충 발을 욱여넣고 후다닥 문 너머로 달린다.
최재민도 짤막한 비명은 계속해서 내지르며, 얼른 이연우를 쫓아 반지하 방을 벗어났다. 그 뒤로 할머니가 몇 걸음을 쫓아오다가, 현관에서 멈춰 섰다.
툭, 빗자루가 떨어진다. 할머니는 숨을 씩씩 몰아쉬다가, 힘이 탁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할머니가 주섬주섬 품을 뒤져 사진을 꺼냈다. 아주 옛날에 사진관에서 가서 찍었던 가족사진.
빛바랜 사진에는 젊은 시절의 그녀가 아기를 품에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름진 손이 사진 속의 아기를 쓰다듬었다. 나지막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잘 살렴, 아가야.”
사랑받는 아기니 어디를 가든, 어떤 부모를 만나든 잘 살 것이다.
웅웅, 구형 냉장고가 내는 소음이 들려오는 반지하 방. 할머니가 일어나 젖은 걸레를 쥐었다. 아기는 떠났고, 자신도 곧 떠날 것이다. 떠난 자리가 깔끔하기를 바랐다.
반지하 창문으로 사람 그림자가 지나치고, 최재민과 이연우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
“아, 눈에 먼지 들어갔어.”
최재민이 눈물을 흘리며 한 손으로 눈을 비볐다. 빗자루로 맞다가 흙먼지가 들어갔다. 눈이 간질간질했다.
이연우는 형광조끼를 곱게 접어 에코백에 쑤셔 넣고는, 최재민을 흘겨봤다.
‘어떻게 할머니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
자신이야 형광조끼를 입어 괜찮다지만, 최재민은 말을 조심했어야 했다. 부모감별사가 아니라 패드립 발사대처럼 보였다. 이 친구도 인성에 문제가 있다.
그 의심은 이어지는 최재민의 말에 더 깊어졌다.
최재민이 충혈된 눈으로 이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발걸음은 질질 끌렸다.
“형, 그 아기 어떻게 할 거예요? 막, 막, 배제하거나 제거-”
“뭐?”
앞서 걷던 이연우가 걸음을 멈췄다. 그는 경악하여 눈을 동그랗게 떴다. 휙, 고개를 돌린 이연우는 손을 떨며 최재민을 가리켰다.
“아니,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네?”
최재민이 어리둥절하여 이연우를 보았지만, 이연우는 질색하며 몇 걸음 멀어졌다.
“진짜 못됐다. 아기를, 배제? 제거?”
이게 사람이 연상할 단어인가? 감정이 없는 것인가? 아기의 감정 조작을 빗겨낸 자신조차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순간 이연우의 표정이 심각하게 가라앉았다.
‘감정이 조작된 상태에서 저런 생각을 했나? 아니면 애초에 감정이 없어 조작이 안 통했을까?’
어느 쪽이든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물론 위기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가치가 있겠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연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내가 아는 상담소 있거든. 너 한번 상담받아봐. 이상하거나 위험한 거 아니고, 회사에서 운영하는 상담소야.”
“아, 형!”
최재민이 버럭 소리 질렀다. 지독한 억울함이 얼굴에 새겨졌다. 표정이 찌그러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온갖 말이 목 너머에서 솟구치다가 꽉 막혔다.
“아, 아! 아!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 진짜!”
이연우는 뭔가 인간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최재민을 보았고, 최재민은 펄쩍펄쩍 뛰어가며 온몸으로 답답함과 억울함을 표현했다.
“아기 어떻게 처리-”
“처리도 단어가 조금 그런데.”
“아악! 앞으로 어떻게 되나 물어본 건데!”
“그건 모르지. 그냥 회사에 보고하면 알아서 할 텐데, 그걸 우리가 왜 고민해.”
생각해보면 진짜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조사반의 일이 뭔가. 이상개체와 조우하고, 그걸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다.
아기라는 이상개체를 만났으니 보고하면 끝인데.
이연우는 결론을 내렸다.
‘아기가 부여한 보호 욕구가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게 만든 거야. 이왕이면 좋은 환경으로 가라고.’
아기가 자신을 보고 웃은 이유도 어렴풋이 깨달았다. 반드시 살아남는 미래로 향하는 존재. 보호자로 이만한 사람이 없지 않을까? 본능적으로 안전한 사람을 찾은 것이다.
최재민이 투덜거리는 소리는 무시한 채, 이연우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다.
‘인간자격증 강화 안 되나? 아기의 보호자로 적합하다고 인증받은 거잖아. 굉장히 사람다운데? 아닌가? 아, 하긴. 나이는 나보다 많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조사반 사무실로 돌아갔다.
***
조사반 사무실에는 분유 냄새가 풍겼다. 이연우와 최재민이 조사하는 동안 젖병과 분유를 사 왔는지, 반장이 아기한테 분유를 먹이고 있었다.
유지유는 옆에서 사진을 찍거나, 아기의 볼이나 발바닥을 쿡쿡쿡 찌르고 있었다. 그녀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 왔어요? 어떻게 됐어요?”
아기도 따라서 고개를 돌려 이연우를 보고는 꺄르륵 웃었다. 이연우는 고개를 주억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확실히 감정 조작이다.
해맑은 아기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불현듯 감정이 변했다. 보호 욕구, 부모의 사랑, 그런 것들이 마음을 색칠했다.
‘안 통하지.’
사고회로를 몇 번 돌린 그가 말했다.
“이상개체입니다. 회사에 보고하고, 회사 쪽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이상개체라고?”
반장이 고개를 들었다. 최재민이 진이 빠진 표정을 지은 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재민은 바로 대답하려다가 말을 몇 번 고심한 후 말했다.
“네. 자라지 않는 병에 걸린 아이였어요. 할머니가 젊은 시절부터 키웠대요.”
“…재민아. 안 보이냐?”
부모가 안 보이냐는 말. 최재민은 짧게 답했다.
“네.”
“그러면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반장은 본격적으로 잔소리하려다가 아기가 몸을 뒤틀자 얼른 손을 고쳐 아기를 다시 받쳤다. 차마 큰소리를 칠 수 없다.
“그러니까, 어. 다 먹었네. 트림시켜야 하나?”
“네. 제가 할까요?”
유지유가 손을 뻗는다. 그녀는 아기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면 회사 부서에서 평생 살겠네요. 불쌍해요. 아기로 평생….”
“그게 최선이지. 아기한테도 좋은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중에 감사 나가야겠구만.”
혹시 노화를 막는 기술을 만들겠다고 실험할지도 모르니까.
이연우는 그 광경을 몇 발짝 물러난 거리에서 보였다. 아기의 감정 조작에 단단히 당한 광경이다.
아마 생명을 위협하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을 이끄는 느낌이라 베테랑 조사원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나마 평범한 사람과 달리 어느 정도 저항한 듯하지만.
‘이런 것들이 어떻게 모여서 시너지를 내면 위험하려나?’
만약 사고가 터지면 아기를 데리고 살려고 여력을 낭비할 테고, 그 낭비를 노린다던가.
이연우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상상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감정 조작도 있습니다. 막 보호하고 싶고, 좋은 환경에서 잘 자라면 좋겠다고 느끼게 만듭니다.”
“어?”
순간 세 사람의 시선이 이연우에게 모였다. 그들은 의심 가득한 눈동자로 이연우를 보다가, 걱정 가득한 목소리를 내었다.
“연우야…. 버려진 아기를 보면 당연히 이런 감정 느낀다.”
“아니, 형! 그런 생각 하면서 절 상담소로 보내려고 한 거예요?”
특히 유지유는 경계로 눈망울을 가득 채우며, 아기를 꼭 안았다. 사랑을 사살하는 인간이다. 감정은 정상적으로 느껴도, 인식과 표출이 이상하다.
“안 돼요, 연우 씨. 아기 건드리지 마요.”
아기를 보고 느낀 동정이나 보호 욕구가 어떻게 표현될지 모른다.
반장은 이연우를 안쓰럽게 보았다.
“편집증에 걸렸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이상개체 많이 겪으면 생각이나 감정도 의심할 수 있어. 그런 사람 많다.”
이연우는 입을 크게 벌렸다. 황당했다.
그는 입술을 몇 번 달싹이다가, 설득을 포기했다. 심각하게 위험한 것도 아니고, 영향을 떨쳐냈다가 괜히 진짜 의심병에 걸릴 수도 있고.
‘그냥 빨리 아기 보내자.’
이연우는 직접 상부로 보고했다. 자라지 않는 아기, 감정을 조작하는 아기.
상부는 재빠르게 찾아와 아기를 데려갔고, 조사반 사람들은 슬픔과 동정으로 아기를 배웅했다. 잘 살라는 응원과 회사원을 향한 부탁이 이어졌다.
“아기야, 잘 가.”
“애 가지고 허튼짓 못 하게 잘 막으라고. 어차피 내가 감사 갈 거지만. 경고 전해주쇼.”
“예, 예. 꼭 같이 전하겠습니다.”
이연우는 혼자 동떨어져 권총을 매만졌다. 조사반 사람들이 조금 걱정되었다.
‘혹시 시간 지나도 계속 영향받은 상태면, 머리에 총이라도 겨눠야 하나.’
아무래도 위협이야말로 간섭을 떨쳐내는 즉효약이었으니까.
그렇게 조사반의 하루가 지났고.
다음날, 이연우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 인간자격증 취소 통지서
성명 : 이연우
본 자격증이 더 이상 귀하가 인간임을 보증할 수 없음에 따라 귀하의 인간자격을 취소함을 통지합니다.
“내 인간자격증!”
인간자격증이 사라졌다.
이연우의 눈동자에 불씨가 튀었다. 자격증이 취소되었다고 짐승이 되지는 않았지만, 가진 것을 뺏어가다니. 주사위로 6레벨에 오를 방법을 차단하다니.
이연우가 흔들리는 눈으로 통지서를 다시 읽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보증을 못 해? 아니. 해야만 할 걸.’
*** 탈락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