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그날은 아침부터 뭔가 불안했다. 위화감, 이질감, 불안 같은 것을 느끼며 강제로 깨어났고, 그 감정은 진득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뭐지?”
이연우는 눈을 섬뜩하게 빛내며, 좁은 방을 서성였다. 잠기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살다가 마스크를 벗은 느낌. 늘 입던 옷이 벗겨진 느낌. 체중을 지탱하던 의자나 침대의 다리가 부러진 느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방탄조끼를 잃어버린 기분인데. 진짜 뭐지?’
자신을 보호하던 무언가가 사라져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기분.
이연우는 정신 없이 방을 돌아다녔다. 이 기분의 원인을 모르겠다. 괜히 손을 비비기도 하고, 머리를 헝클어뜨리기도 했으며, 총을 꺼내 점검하기도 했다.
그러고 있자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이연우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문이 열리고 반장이 들어왔다.
“어, 연우야. 출근 시간인데 안 보이길래-”
반장의 걸음이 멈췄다. 이연우와 눈이 마주쳤다. 씻지 않아 엉겨 붙은 머리와 유리구슬처럼 감정 없이 반질거리는 눈동자. 거기에 정신 사납게 흔들거리는 몸짓.
본래라면, 반장은 이연우를 걱정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하지만 반장은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이건.’
지독한 이질감이 든다. 사람의 탈을 쓴 이상개체, 끔찍하게 위험한 이상개체를 마주한 것만 같다.
이연우가 짧게 탄성을 뱉었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났나?
“죄송합니다. 뭘 잃어버린 것 같아서 찾다 보니까, 시간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 말을 뱉은 직후였다. 생각이 스쳤다.
‘이게 내가 죄송할 일인가? 나는 조사원도 아니고, 부서도 다른데.’
이연우의 얼굴이 마네킹처럼 무기질적으로 가라앉았다. 머리에서는 짧은 시간 생각이 고속으로 흘렀다.
‘아. 반장님. 건물주지.’
쉘터 같은 안전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조사반의 부서장이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로 갈등을 일으키면 손해뿐이다.
이연우가 어설프게 웃었다.
“씻기만 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
반장은 반사적으로 반응했다. 베테랑 조사원으로서 쌓은 경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한 손이 허리 뒤로 돌아갔다. 접어서 뒷주머니에 넣어둔 부동산 계약서. 땅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이상개체에 손가락이 닿았다.
이연우의 눈이 도르륵 굴렀다. 눈동자가 반장의 손을 쫓아갔다.
“….”
“….”
긴장된 침묵이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뜬 눈으로, 평소와 같이 일정하게 호흡하며.
그 순간이었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유지유였다. 유지유의 맹한 얼굴이 반장의 어깨 위로 불쑥 나왔다.
“연우 씨 있어요? 아, 있네. 연우 씨, 편지 와있던데요?”
“편지 말입니까?”
이연우의 눈동자가 다시 굴러갔다. 하지만 여전히 시야를 넓게 두며, 인식 안에 반장을 두었다.
반장 또한 경계를 놓지 못했다.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앞에 있는 사람은 그가 아는 이연우와 다르다.
‘바꿔치기 당했나? 정신을 지배당했나?’
이를 알아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부동산 계약서를 쓰는 것이지만, 차마 입을 열 수 없다. 정체를 드러내라고 입을 떼는 순간, 위험이 닥쳐온다.
유지유가 반장의 어깨 너머에서 손을 뻗었다. 하얀 편지 봉투가 팔랑였다.
이연우가 한 손을 길게 뻗어 봉투를 받고, 시야 아래쪽에 두고 봉투를 뜯었다. 여백이 대부분인 휑한 종이가 나왔다.
이연우의 눈동자가 편지로 끌려갔다. 동공이 확장됐다.
- 인간자격증 취소 통지서
성명 : 이연우
본 자격증이 더 이상 귀하가 인간임을 보증할 수 없음에 따라 귀하의 인간자격을 취소함을 통지합니다.
“늦잠 잤어요? 웬일이래? 맨날 제일 먼저 출근하다가. 어제 무슨 일 있었어요?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유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피는 시선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오직 그 글자만이 시야를, 머리를 가득 채웠다.
다음 순간 이연우가 비명을 내지르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내 인간자격증!”
자아를 보호하는 최고의 도구. 주사위를 6레벨로 올릴 수단. 그게 취소됐다니! 이래서 불안했구나!
반장의 경계나 유지유의 호기심이 섞인 시선은 이미 인식에서 사라졌다. 이연우가 다급하게 에코백을 뒤집어 쏟았다.
“진짜 없어졌다고?”
우르르,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졌다. 총기, 형광조끼, 총탄 박스, 붕대, 비상식량, 라이터, 드릴, 전기톱, 구급 키트, 텐트, 모포 등등.
방을 가득 채울 기세로 흩뿌려도, 한가득 쌓인 잡동사니를 뒤져도 정작 인간자격증은 보이지 않았다.
진짜 사라졌다. 갑자기 찾아왔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반장과 유지유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연우가 미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지유가 내동댕이쳐진 통지서를 주웠다.
“…어.”
“음.”
그들이 동시에 깨달았다. 방향성은 달랐다. 유지유는 올 것이 왔구나, 반장은 자격증이 없어져서 이질감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연우 씨가 원래 좀 생각이 이상하긴 했어. 취소돼도 이상하지 않아.’
‘인간자격증이 인식 왜곡 효과도 있나? 그러면 지금 이상개체처럼 느낄 만도 해. 주사위가 머리에 박힌 애인데.’
다음 순간, 이연우가 벌떡 일어나 통지서를 낚아챘다. 이연우는 손을 벌벌 떨며 통지서를 재차 읽었다.
눈동자에서 불꽃이 확 일어나고, 목소리에는 섬뜩한 무언가가 담겼다.
“내 것을 멋대로 가져가?”
보증을 못 해서 취소하겠다고? 누구 마음대로? 뭔지도 모를 이상개체 마음대로?
‘아니지. 내 마음이, 내 안전이 더 중요하지. 넌 날 보증해야만 해.’
인간자격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연우가 우다다 달렸다. 잠옷 차림으로 사무실로 들어갔다.
남은 반장과 유지유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고 눈을 깜빡이다가, 사무실로 돌아갔다.
“가자. 음, 연우한테 의미 깊은 걸 텐데 취소됐으니까, 정신 나갈 만도 하네.”
“정신은 원래 조금 이상-”
***
투다다다, 사무실에는 이연우가 거칠게 키보드 치는 소리만 들려왔다. 조사반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고 이연우의 눈치를 살폈다.
이상異常 같은 이질감도 이질감이지만, 이연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핏발 선 눈이 번들거린다.
마치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식량을 도둑맞은 생존자 같다. 펑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연우는 인간자격시험을 괴롭힐 준비를 마쳤다. 잠깐 동안 자료는 충분히 조사했다. 거친 타이핑 소리가 멈췄다.
딸깍-!
이연우의 화면에 메모장이 켜졌다. 이연우는 신중하게 단어를 썼다.
‘되찾을 방법. 강탈. 재시험.’
자신한테 필요한 자원을 얻는 방법. 이연우는 하얀 화면 속 검은 글자를 노려봤다.
강탈은 쉽다. 마크 정에게 연락해 인간자격증을 수집해 보내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그리고 자격증 하나하나마다 이 자격증이 자신의 것일 가능성을 굴리면 된다.
‘재시험도 쉽지.’
골드버그 클럽에 부탁하면 된다. 마침 죽을 날을 보는 이상개체를 선물로 줬으니, 그 대가로 시험을 보게 도와달라고 하면 된다.
시험? 그냥 생존본능에 맡기고 찍으면 된다. 짐승이 되지 않는 길, 사람으로 살아남는 길로 인도할 테니.
하지만 안 된다.
이연우가 탁탁탁, 백스페이스키를 눌러 두 단어를 지웠다. 작은 읊조림이 흘러나왔다.
“이런 방법은 안 돼.”
결국은 임시방편이다. 자격증은 다시 취소될 것이고, 응시 자격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확실하게 자격증을 얻을 방법이 필요하다.
이연우가 꾹꾹 키를 하나씩 눌러 글자를 썼다. 그 글자는 단순했다.
협박.
이연우가 벌떡 일어났다. 손에는 컴퓨터 사인펜이 들렸다. 그가 말했다.
“저 오늘 휴가 내고 쉬겠습니다.”
“어, 어. 쉬어라.”
어딘가 어설픈 인사와 안도의 한숨을 들으며, 이연우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골드버그 클럽 한국지부의 장인 노인에게 전화를 걸면서.
***
- …황금만능주의로 인간자격시험을 불러달라고?
“선물 받으셨으니 이 정도 일은 해주리라 믿습니다.”
이연우는 접이식 탁자 위로 컴퓨터 사인펜, A4 용지를 펼쳐놓으며 말했다. 핸드폰 너머에서는 잠깐 침묵이 감돌다가, 사무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 알겠네. 회장님께 전하지.
그걸로 통화는 끝났다. 통화가 끊어지기 전에 고민이 섞인 노인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 우리가 친구 되자고 다가가는 사람들의 기분이 이런가? 머리가 아프군.
이연우는 흘려 넘기며 마지막으로 환경을 점검했다. 시험지는 A4 용지고, 필기구 있고, 방송이 나올 스피커는 대충 핸드폰으로 대신했다.
‘감각 최상이고. 좋아.’
이제 시험만 찾아오면 된다.
째깍째깍 시간이 지났다. 물이 되어 빠르게 흘렀다. 이연우의 눈살이 점점 찌푸려졌고, 노인에게 다시 전화할까, 핸드폰을 쥘 때였다.
띵동댕동-
핸드폰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그가 처음 겪었던 이상개체인 인간자격시험의 그 종소리. 이연우의 눈동자에 빛이 어렸다. 감상에 빠질 법도 하지만, 오직 생존의 감각에만 집중했다.
치직, 노이즈가 한차례 울리고 음질 나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시험 시작….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멈췄다. A4 용지 위로 문제가 흐릿하게 떠오르다가 정지했다.
이연우의 고개가 기울어지는 순간, 방송이 이어졌다.
- 이번 시험은 취소되었습니다. 또한 이연우 응시생의 응시 자격을 박탈합니다.
핸드폰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노이즈가 잦아진다. A4 용지에 희미하게 새겨진 문제도 점차 사라졌다. 그 위로, 탁, 컴퓨터 사인펜이 올라왔다.
“나한테 널 끝낼 방법이 두 개 있거든.”
하나는 회사의 파괴 계획을 이용하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자격시험이 폐지될 가능성을 굴리는 것. 그가 준비한 협박 수단.
이연우가 웃었다.
“6레벨 정신 오염도 막을 수준으로 자격증 하나 발급해줘. 그러면 파괴하지는 않을게.”
그리고, 대답이 돌아왔다.
- 응시생 여러분에게 공지합니다. 오늘부터 인간자격시험은 폐지됩니다. 이상자격시험으로 새로 찾아뵙겠습니다.
이연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내가 기대한 게 아닌데?’
불가능한 일을 강요받은 인간자격시험이 변화를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