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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보호회사 (180)화 (180/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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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수인 악마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죄수랑 소통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원칙이기도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특히 위험해 더더욱 경계해야 한다.

숭배자가 직접 감시를 부탁한 존재, 감옥의 악마로서 느끼는 위기감, 6레벨이라는 이름의 위엄 등등, 온갖 부담감이 악마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연우는 바짝 긴장한 악마의 속내는 눈치채지 못하고 맹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괜찮습니다.”

이연우가 별생각 없이 손을 쥐는 시늉을 했다.

‘혼자 해도 되고, 저 악마로 놀아도 되고.’

시야에 들어온 순간, 상대의 가능성은 이연우의 손에 쥐어졌다.

허공을 더듬는 손끝에서 상대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충실한 간수로서 이연우를 감시하는 가능성. 가장 확률 높은 미래이자, 이연우가 얼마든지 간섭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악마의 미래, 악마의 존재, 악마의 생각, 악마의 자아, 모든 것이 이연우의 손에 달렸다.

정확히는 주사위의 혼란에 휘말렸다. 악마의 모든 것이 더 이상 악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심한 짓은 하면 안 되겠지?’

어쨌든 똑같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인데. 거기에 악마숭배자가 감시하고 있을 테고.

그렇게 이연우가 더듬더듬 가능성의 실타래를 고르기 시작할 때였다.

악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쩍 벌렸다. 위협적인 고함이 터졌다.

“움직이지 마! 이상한 짓을 하면-”

“아. 그냥 손 움직이는 건데. 너무하네요. 이래 봬도 정당한 포로인데.”

이연우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억울했다. 뭘 하려고 했지만, 아직 실제로는 하지도 않았는데. 겉보기로는 그냥 손 움직이는 것도 못 하게 막은 것 아닌가.

“너무하네. 안 되겠다.”

“멈춰!”

챙-

악마가 허리춤에서 길쭉한 꼬챙이를 뽑아 들었다. 죄인을 고문하는 도구다. 녹슬고 피가 말라붙은 꼬챙이가 횃불 아래에서 섬뜩한 빛을 뿌렸다.

이연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고문은 진짜 선 넘지. 저기요. 저는 죄인 아니고 자진 항복한 포로입니다. 그에 따른 대우를 해주셔야죠.”

“가만히 있어!”

“와. 이제는 말도 놓네. 자, 제 말을 들어보세요.”

입 다물라는 듯 쇠꼬챙이가 창살 틈으로 들어왔다. 이연우는 얼른 항복하는 자세를 취한 뒤,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포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간수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취미 활동을 돕는 건 정상적인 일입니다. 그렇죠?”

“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잖아!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꽈악!

악마가 쇠꼬챙이를 꽉 쥐었다. 손등 위로 핏줄이 돋아나는 순간이었다.

‘설득.’

주사위가 굴렀다.

데구르르-

성공!

이연우의 손가락 끝에서 흔들거리던 가능성의 실타래가 악마에게 닿았다. 슉, 꼬챙이를 뻗던 악마가 멈췄다. 얼굴에는 혼란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맞는 말인데? 6레벨이잖아? 내가 이렇게 행동할 상대가 아니잖아.’

평범한 죄인이 아니다. 자신이 과하게 행동했다.

악마가 머쓱하게 꼬챙이를 거둬들였다.

“주사위 놀이를 하자고 하셨습니까? 주사위를 가져오겠습니다.”

“주사위는 저한테 있습니다. 그보다 우선 여기 이불이나 의자부터 바꿉시다.”

이연우가 느긋하게 누더기 이불을 툭툭 쳤다. 걸레에 가까운 이불과 쥐가 파먹은 듯한 매트리스가 먼지를 풀풀 날렸다.

“예!”

악마가 서둘러 달렸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퀘퀘하고 낡은 수감실이 호텔 방처럼 변했다. 지옥불로 타오르는 랜턴이 조명처럼 창살에 매달리고, 푹신한 침대와 이불과 가구가 벽을 따라 늘어섰다.

무엇보다 수감실 문이 열려 있었다.

“네, 이번엔 실패가 나왔습니다.”

“제가 이겼군요.”

“축하합니다.”

이연우가 편하게 침대에 앉아 손을 꼼지락거렸다.

건너편에는 악마가 의자에 온순하게 앉아 있었는데,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뿔이 자라기도 했고, 손가락이 6개가 되기도 했다.

전부 이연우와 주사위 놀이를 하다가 얻은 변화였다.

‘이것도 질리네.’

이연우가 다시 지루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숭배자의 눈치를 보느라, 이름도 외모도 마음대로 바꾸는 악마에게 의미 없는 외형 변화, 아니, 무료 성형 수술만 해주었으나, 슬슬 재미가 없다.

악마가 말했다.

“이번에는 뭘 걸고 하면 되겠습니까? 피부? 꼬리?”

“잠깐만요. 더 재밌는 걸 하고 싶은데.”

이연우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뭔가 주사위의 오염에 도움이 되면서, 재미도 있고, 악마숭배자의 선을 넘지 않는 게 뭐가 있을까.’

여러 생각이 스쳤으나, 전부 조건에 맞지 않았다.

감옥을 자기 영역으로 만들기, 악마가 관장하는 개념 뒤바꾸기, 이연우에게 유리한 불공정 계약 맺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황금빛에 휩싸인 악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문을 담은 짧은 목소리가 터지고.

“어. 왜 계약이.”

악마가 휙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악마의 존재가 지구에서 사라졌다.

이연우는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현실을 인지했다.

‘이건 귀환에 가까운 느낌인데.’

이유 없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터. 이연우가 밝은 얼굴로 천장을 올려봤다. 감각이 느껴진다. 황금만능주의의 황금빛이 돌 천장을 뚫고 새어 들어온다.

태양이 떠오르듯, 황금의 빛이 악마의 영역을 비췄다.

이연우가 벌떡 일어났다. 구조가 찾아왔다. 이러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클럽을 도와 내부에서 소란을 일으켜야 한다.

“주사위! 준비해!”

활짝 열린 문을 거침없이 벗어나며, 이연우가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혼란을 가져오기만 해도, 난장판을 벌이기만 해도, 악마숭배자는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혼란을 일으키지? 아, 모르겠다. 주사위만 열심히 굴려야지.’

횃불만 고요히 타오르는 감옥의 복도를, 스멀스멀 확률의 실타래가 뻗어 나온 이연우가 달렸다.

***

영역을 복구한 클럽의 회장은 빌딩 최상층에서 눈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갑자기 대화를 요청한 협회장이 끔찍한 사실을 전해줬다.

인류보호회사. 이상異常을 적대하는 세상을 만들고, 이제는 이상異常을 말살하려는 원수.

“…몇 분만 기다리십시오.”

- 응.

황금만능주의로 연결된 협회장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클럽 회장은 비서를 향해 손짓했다.

“금괴 가져오십시오.”

“얼마나 가져올까요?”

“많이. 최대한 많이.”

비서가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회장은 정신 없이 최상층을 돌아다녔다. 몸을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미간을 짚기도 하고.

머리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이게 확실한 정보면…. 아니, 일단 정보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비서가 노동용 로봇과 함께 금괴를 가져오자, 금괴를 모조리 황금만능주의에 쏟아부었다.

목적은 진실한 정보의 획득.

“협회장이 말한 정보의 진실 여부를 가려주십시오.”

황금만능주의가 진실이라 대답했고, 회장의 몸이 굳었다. 회장은 눈을 황금빛으로 빛내며, 천천히 손짓했다. 계속 황금을 투입하라고.

“이번 이사회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알려주십시오.”

이건 클럽의 존망이 걸린 사안이다. 황금을 아끼지 않는다.

“세계 개변 장치. 인류보호 부서. 사보타주. 평범한 총탄 양산 계획. 이상異常을 보호하는 안전조치의 반전. 하. 하하.”

그리하여 이사회의 정보를 모두 얻은 회장이 웃었다. 옆에 있던 비서가 회장의 혼잣말을 듣고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회, 회장님. 상황이 이러면-”

“잠깐. …평범한 총탄과 관련된 문서와 정보를 주십시오.”

회장은 마지막으로 평범한 총탄의 정보를 얻었다. 다른 건 다 알아도, 그건 정말 처음 들었으니까.

평범한 총탄 자체는 황금만능주의도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것과 관련된 프로젝트나 보고서가 주르륵 회장의 머리에 새겨진다.

그것은 이상異常을 무효화하는 총탄이다.

인류보호회사가 이상異常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고 목표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회장이 헛웃음을 실실 흘렸다.

“아. 전쟁. 전쟁. 손해뿐인 전쟁이라.”

전쟁을 벌여 얻는 것은 손해뿐이다. 하지만 존망이 달린 전쟁이라면, 지면 멸망이고 이기면 생존인 전쟁이라면.

회장이 안절부절못하는 비서를 힐끔 보았다. 그가 표정을 싹 바꾸고 말했다.

“총력전 준비하세요.”

뒤가 없는 전쟁이다. 황금을 얼마나 버리든, 이겨야만 한다. 설령 사업과 꾸준한 이익을 위해 지키던 사회를 망가뜨리더라도.

비서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클럽이 준비한 범죄 사업이 바로 떠올랐다.

“세계 각국의 은행과 금괴 보관소를 지금 바로 공격하겠습니다.”

회사만큼이나 평범한 사회에 잘 녹아든 클럽이었기에, 상상 이상으로 세밀한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금괴로 매수한 스파이, 각 시설의 설계도와 보안 시스템, 거기에 황금만능주의를 비롯한 이상개체를 적절히 이용한 공격과 수송 계획.

회장이 말을 더했다.

“사업은 그만두고 전쟁 체제로 바꾸세요.”

비서가 핸드폰을 꾹 누르자 신호가 전달되고, 빌딩 내부의 로봇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상자에 가득 담긴 시간을 사는 지폐가 각 층에 쌓였다.

이어, 대피했던 회원들이 돌아와 지폐에 불을 붙였다.

지폐로 살 시간은 하나다.

금괴를 황금만능주의에 바치기.

시간을 단축하여 금괴가 이동되었다. 짧은 순간, 셀 수 없는 금괴가 황금만능주의의 입으로 들어갔다.

회장이 냉정하게 말했다.

“회사의 이사들을 모조리 죽여주십시오.”

본래라면 회장도 하지 않을 요구. 왜냐면 보호받는 이사를 죽이기에는 황금이 너무 많이 드니까.

하지만 반대로 충분한 황금만 바치면 어떤 일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클럽이 망할 위기 앞에서 회장은 눈이 돌아갔고, 대가를 받은 황금만능주의가 소원을 들어줬다.

한순간에, 이사들이 죽었다.

“다음으로, 현 상황에서 우리의 적을 알려주십시오. …악마숭배자라. 좋습니다. 숭배자와 악마가 맺은 계약부터 해지합시다.”

비상시를 대비해 빌딩에 비축한 황금이 급속도로 소모된다.

다시 한번 소원이 이뤄지고, 가만히 기다리던 예술가 협회장이 말했다.

- 나는 뭘 할까?

“…당신은 방송이나 합시다. 매체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 동시 생방송 되도록 돕겠습니다.”

- 좋아!

“방송 대본은, 그래요. 회사 거점들 알려주겠습니다. 당신을 본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 공격하도록 부탁해주십시오.”

이상세계의 핵폭탄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멸망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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