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악마숭배자는 평소처럼 움직였다. 혼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적당히 부려 먹을 악마를 불러오고, 대충 말하고.
“회사 이사 쪽에 연락 좀 하자.”
도둑의 악마는 후드를 쓰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는데, 용케도 인터넷을 훔쳐 와 통신을 연결했다.
도둑의 악마가 킬킬 웃으며 핸드폰을 넘겼다.
“연결 끝.”
“음. 악마숭배자다.”
핸드폰 너머에서 피곤해 죽으려는 목소리가 들렸다.
- 악마숭배자 누구? 방금 막 잠들었는데-
“6레벨 숭배자. 인류보호회사. 이상異常 없는 세상 같이 만들지.”
침묵.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 들리기를 잠시, 곧 핸드폰 너머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 그건 어떻게 알았지?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지?
“그쪽 이연우가 알던데. 같이 회사 없애고, 세상도 바꾸자고 했어.”
- 이연우가 그걸 어떻게, 아니, 빌어먹을! 이연우만 알 리가 없지 않나! 빨리 비상, 커억!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몇 초 후 요란한 발소리와 비명 같은 사람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 이사님! 빨리 의료진부터!
- 공격이다! 빨리 비상경보 발령해!
악마숭배자는 멍하니 핸드폰을 내려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이연우가 뭔가 했나 하고.
하지만 이연우는 감옥의 악마의 커스터마이징을 바꾸며 놀고 있을 뿐이었다. 악마도 그럭저럭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이사의 말을 떠올렸다. 이연우만 알 리가 없다. 이연우가 아니라면.
“클럽인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직후였다. 도둑의 악마가 황금빛에 휩싸였다. 악마가 음침한 눈을 깜빡였다.
“숭배자. 계약 종료됐는데. 너만이 아니라, 내가 다른 숭배자랑 맺은 계약도.”
그걸로 끝이다. 악마가 사라졌다. 영역에 머무는, 계약의 힘으로 지구에 머무는 모든 악마의 계약이 끝났다.
작은 창문 너머로 찬란한 황금빛이 밀밭처럼 머물다가 사라졌다.
“…모든 악마의 계약이 끝났군. 이 정도로 황금을 소모하면 미래가 없을 텐데? 아니. 뒤가 없으니까, 물 쓰듯이 쓰겠어.”
상황이 꼬였다. 이대로면 인간을 위한 세상이 찾아오기는커녕, 전쟁이나 일어날 기세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
고민을 이어가던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클럽 회장의 목소리. 회장이 웃음기 섞인 얼굴을 허공에 띄우며 말했다.
- 숭배자. 당신이 인류보호회사 진영에 섰다는데. 마음 바꿀 생각 없습니까?
“없어. 우리 같은 건 세상에 없어야 해.”
- 인간을 위해?
“인간을 위해.”
숭배자의 덤덤한 목소리에 회장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 그 인간을 위한 세상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멸망할 텐데요?
단순한 손익이었다. 인간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고 하면 인간이 죽는다. 포기하면 많은 사람이 산다.
빙빙 돌린 그 말에 숭배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느껴진다. 세상이 지옥이 되고 있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자가, 지옥으로 변하는 세상을 느꼈다.
“…뭘 했지?”
- 예술가 협회장이 힘을 썼죠. TV, 라디오, 스트리밍, 인터넷, 동영상, 문자, SNS. 전광판, 모든 매체에 그녀가 등장했습니다.
회장이 짧은 영상을 보여줬다.
여러 나라의 온갖 사람이 광신적인 기색을 보이며, 가까운 회사의 거점으로 몰려든다.
핸드폰을 보던 사람들의 정신이 나갔다. 도심의 전광판에 협회장이 나와, 수많은 사람이 좀비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군부대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도 했으며, 무장한 경찰과 소방관이 사이렌을 울리며 내달리기도 했다.
총성, 고함, 폭발음, 비명.
숭배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린 시절의 악몽이 떠오른다.
“…포기하면 저건 그만두나?”
- 회사를 무너뜨릴 때까지는 유지할 겁니다.
그래야 회사의 인력 상당수를 묶어두니까.
거기에 이미 정보공작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사진이 날아간 회사가 느리게 회복하도록, 온갖 거짓 정보가 뿌려졌다.
마치 클럽이 회사의 아군으로서 정보를 제공한 느낌으로, 혹은 회사가 스스로 알아낸 느낌으로.
회장이 말했다.
- 회사는 지나치게 거대하고 위험합니다. 이 기회에 치우는 게 맞습니다.
지금 세상이 바뀐 세상이라면, 회사는 언젠가는 그 사실을 알아내고 돌아갈 것이다. 지금 치워야 한다.
그 전쟁이 얼마나 길게 이어질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몰랐다. 이건 최소한의 선조차 존재하지 않는 전쟁이었으니까.
숭배자가 눈을 떴다. 그 눈동자에 결의가 서렸다. 마음을 정했다.
“아니. 사람은 죽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만든다. 지옥에는 죽음이 없으니까.”
사람을 구한다. 동시에 미래를 설계한다.
이상異常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이 존재했다. 사람만 살아있으면, 결국 회사는 비전을 이룰 도구를 만들 것이다. 아니면 자신이 하든가.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하리라.”
숭배자에게는 그럴 힘도, 의지도 충분했다.
회장이 침묵했다.
- ….
“….”
또한 숭배자가 몸을 웅크렸다. 저들이 만든 지옥이 곧 그의 힘이 될 것이다. 지구의 표면을 전부 그의 영역으로 만들 셈이었다.
허공에서 황금빛이 번쩍이고, 꽉 눌린 용수철처럼 지옥이 움츠러드는 그때였다.
펑, 지면이 터져나가며 지하에서 이연우가 기어 나왔다.
흙먼지와 잿가루 같은 것을 잔뜩 묻힌 채, 관절을 뒤틀어가며 네 발로 힘겹게 몸을 빼낸 이연우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아!”
숭배자와 회장의 시선이 동시에 옮겨졌다.
숭배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회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저 인간이 왜 저기 나와 있어?’
이상한 불길함이 스친다. 허공에 아른거리는 황금빛을 본 이연우가 활짝 웃었다.
“구하러 왔구나! 고맙습니다! 이제 제가 돕겠습니다!”
- 아니, 뭘 하려고, 일단 멈추십시오!
“이연우! 거기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포로가 아니라 죄수로서 영원한 고통을-”
숭배자가 회장을 뒤로하고 몸을 돌려 이연우를 위협해도, 이연우는 고개를 저었다.
안타까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영원한 고통은 곧 영원한 삶이 아닌가? 죽음이 아닌 것은 그를 위협할 수 없었다. 숭배자의 협박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리낌 없이 행동하라는 응원이 되었다.
이연우가 주먹을 느슨하게 쥐었다.
“주사위.”
찰나, 세 6레벨의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극한의 집중이 시간마저 느리게 인식했다. 이연우의 몸에서 확률의 실타래가 꾸물꾸물 솟구쳤다.
‘빌어먹을!’
회장이 기겁했다. 그는 단번에 연결을 끊었다. 저건 폭탄이다. 괜히 엮일 이유가 없다. 차라리 숭배자 혼자 피폭당하게 두는 것이 낫다.
반면 숭배자는 눈을 번뜩였다.
‘굳이 상대할 필요 없어.’
회장이 사라진 지금이다.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이연우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은 죽지 않으니까.
그가 읊조렸다.
“지옥이 오리라.”
이연우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휙 휘둘렀다.
“다른 시간, 다른 상황에서 만났으면 좋은 친구가 됐을 텐데. …주사위. 숭배자의 악몽, 숭배자의 지옥이 구현될 가능성.”
다른 자의 지옥,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지옥의 개념을 관장하는 자에게 오직 그만을 위한 맞춤 지옥을 선물한다.
데구르르, 주사위가 구르고.
느려졌던 시간이 다시 빠르게 흘렀다. 지옥이 폭발적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이연우의 주변에서 확률의 실타래가 꿈틀거리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세상에 침묵이 찾아왔다. 폭발하는 힘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
“….”
두 사람은 멀뚱멀뚱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봤다. 세상에 이상異常의 힘이 사라졌다. 그들은 완전한 일반인이 되었다.
대실패!
왜냐면, 주사위가 대실패를 띄워서. 숭배자의 지옥이 아니라, 숭배자의 이상향이 구현되었다.
“아니, 어? 대실패? 어?”
“이건, 이상異常 없는 세상이 아닌가?”
두 사람은 혼란에 빠졌다. 이연우는 주사위는 물론, 생존본능이며 빗물까지 감각에서 사라졌고, 숭배자는 지옥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그냥 신경질적인 인상의 아저씨가 되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노련한 인간이었기에 상황 파악이 빨랐다.
지옥의 확장은 멈추었으며, 어중간한 크기의 지옥은 이상異常의 힘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눈치를 살피던 이연우가 악 비명을 지르며 얼른 몸을 돌렸다. 그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우다다 뛰어나갔다.
“도망쳐!”
약해졌다. 잘못 넘어지면 죽는다. 잘못 맞아도 죽는다. 우박에 머리가 찍혀도 죽고, 번개를 맞아도 죽고, 갑자기 심장마비가 찾아와도 죽는다. 그냥, 죽음이란 가능성이 생겼다. 엄청 많이 생겼다.
빨리 이 영역을 벗어나 힘을 되찾아야 한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게!
“…멈춰! 이연우! 나와 함께 이상異常 없는 세상을 만들자!”
숭배자는 허겁지겁 이연우를 쫓아 달렸다. 이연우를 쫓는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맺혔다.
‘비전! 이상異常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수단! 잡아야 해!’
추격전이 시작됐다.
이연우는 악악 비명을 지르다가도 숨이 차서 다 죽어가는 신음을 흘렸고, 숭배자도 체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라 혼자 발을 헛디뎌 넘어지거나 침을 질질 흘리며 힘겹게 달리기를 이어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마 몇 분이 채 안 지났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몇 년은 늙은 얼굴로 사지를 파들파들 떨어가며 몸을 채찍질했다.
“이, 연, 우! 대화, 말만, 잠깐!”
“그만! 쫓아, 오라고!”
우당탕!
이연우가 돌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이연우는 온몸을 비틀어가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호흡이 가쁘다.
뚝뚝, 땀방울이며 침을 흘린 이연우가 이를 악물었다. 한계다. 체력에 한계가 왔다.
‘움직여!’
악마보다 독한 숭배자가 쫓아오고 있다. 빨리 도망쳐야 한다. 주먹질이라도 턱에 잘못 맞으면 죽을 수 있다.
악마숭배자는 자신을 제압하려는 모양이지만, 그것도 잘못되면….
까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연우가 손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간신히 발을 떼었다.
악마숭배자도 정신 나간 얼굴로 다리를 뻗었다. 오직 정신력이 체력이 다한 육신을 움직였다.
“멈, 춰!”
그쯤에서 이연우가 도주를 포기했다.
‘달리기도 잘못하면 죽을지도 몰라. 차라리 여기서 숭배자를 쫓아내야겠어.’
푹, 에코백으로 손이 들어갔다. 이 영역에서는 이상개체가 아니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연우가 비틀거리며 숭배자를 노려봤다. 마치 에코백에 총이 있는 척.
“더, 다가오면, 쏜다!”
“지옥에는, 죽음이…. 지금은 있네?”
숭배자가 걸음을 멈췄다. 두 손을 무릎 위로 짚고 몸을 숙여, 우웩, 헛구역질을 몇 번 하다가,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체력을 다시 채우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이 지나갔다. 숭배자가 편하게 말했다.
“이연우. 그래. 네 정보는 들었지. 보호할 이상異常을 위험하다며 파괴한 생존주의자. 이상異常 없는 세상은 너에게도 좋지 않나?”
이연우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다시 도망치려는 기색을 보였다. 슬그머니 뒷걸음질을 친다.
숭배자가 돌아버리겠다는 얼굴로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안 잡는다! 대화만 들어!”
“…해보십시오.”
“이상異常이 없으면 그만큼 안전한 거야. 우리 같은 6레벨 때문에 세상이 망가지지도 않고,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개체 때문에 사고를 당하지도 않고.”
진실한 감정이 담긴 말이다. 이연우도 진지하게 답했다.
“아마 6레벨이 되기 전이었으면 저도 동의했을 겁니다.”
아마 한때는 이상異常 없이 안전한 세상을 원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사고로부터 안전하기를 원해서.
하지만 6레벨에 오른 지금은.
“그런데, 지금 이상異常 없는 세상을 체험하니까 확실히 알겠습니다. 아뇨. 이상異常이 존재하는 세상이 더 안전합니다.”
“…왜?”
숭배자가 귀를 기울여 듣다가 질문했다.
이연우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마 남에게 밝히는 건 처음일 것이다.
“나는 살아남는 자니까. 주사위가 아니라 생존본능으로 6레벨에 올랐으니까.”
죽음을 피하는 자가, 어쩌면 수명의 제한조차 돌파한 자가 순수하게 의문을 담아 말했다.
“왜 죽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죽어야만 하는 세상으로 바꿔야 합니까?”
자연사, 교통사고, 심장마비, 바이러스, 들개, 추락, 골절, 화재, 부조리한 사고 등등, 수많은 죽음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세상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
숭배자가 입을 다물었다. 근본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악마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이질감이 느껴진다.
자신이 관장하는 개념을 컨셉으로 잡고 노는 악마. 이연우를 생존의 악마라고 생각하면.
“악마한테 관장하는 개념을 버리라고 할 수는 없지…. 좋다. 가라. 그러면 각자 할 일을 해야지.”
“좋습니다. 서로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합시다.”
그렇게 두 사람은 등을 돌렸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이 영역의 끝을 향해. 전쟁이 벌어지는 세상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