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흐느적흐느적-
두 사람은 몇 걸음을 힘들게 걸었고, 이어, 동시에 우다다 전력으로 질주했다.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저것보다는 빨리 벗어난다!’
지옥은 이상異常 없는 영역이 되었고, 숭배자의 것도, 이연우의 것도 아니었다. 이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그들의 힘은 돌아올 것이다.
먼저 나가 힘을 되찾은 사람이 유리했다.
숭배자는 이연우를 포로로 잡아 이상異常 없는 세상을 만들 수단으로 쓰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렸다.
‘조금이라도 먼저 벗어나, 이 영역을 감싸듯이 지옥을 만들고 이연우를 붙잡는다!’
체력은 이연우보다 조금 떨어졌지만, 그는 길을 알았다. 그의 영역이다. 그가 만든 지옥이고, 설계한 영지다. 도로는 물론, 지름길까지 안다.
숭배자가 숨을 헐떡이며 복잡한 골목으로 몸을 던졌다.
반면 이연우도 필사적인 표정을 지었다. 위험 하나는 예민하게 감지했다.
“서로 할 일을 한다고? 각자 최선을 다하자고?”
헛소리.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는 싸워봤자 서로 다칠 뿐이라, 그냥 인사치레만 늘어놓은 것이다.
진심은 다르다. 자기 목숨조차 던지려는 숭배자가 자신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까?
‘숭배자가 먼저 벗어나면 위험해!’
극단적으로, 숭배자가 영역 바깥에서 총을 들고 영역 안의 자신을 위협하기만 해도 자신은 협박을 따를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영역 바깥으로 못 나오게 위협하기만 해도, 여러 죽음의 가능성 때문에 협상할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평범한 몸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껴가며 한참을 달리고 걷기를 반복했고.
“됐다!”
이연우가 조금 먼저 나왔다.
심장이 박동하며 빗물의 활력이 뿜어졌다. 전신의 피로가 씻겨 나간다. 동시에 생존본능의 스위치가 켜졌고, 머리 안의 주사위가 느껴졌다.
이연우가 얼른 주사위를 굴렸다.
“주사위. 내가 가까운 도시에 있을 가능성.”
데구르르-
주사위가 춤추듯이 구른다.
동시에 저 멀리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이제 막 벗어난 숭배자다.
“이연우! 너는 나갈 수 없다!”
먹구름이 소용돌이치는 하늘이 이상異常 없는 영역을 감싸듯이 흐른다. 허공에서 셀 수 없는 쇠사슬이 몸을 엮어가며 강철의 뱀이 되어 다가왔다.
이연우가 웃었다.
“운동 좀 하십시오. 명색이 악마 대장인데, 너무 나약한 거 아닙니까?”
아가리를 쩍 벌린 거대한 강철의 뱀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 주사위가 성공을 띄웠다.
성공!
이연우의 시야가 한순간에 변했다. 그는 가까운 도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연우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이 왜 이러지?”
협회장의 테러로 엉망이 된 도시.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아포칼립스가 찾아온 것처럼 아수라장이다.
이연우는 그제야 전쟁을 보았다.
***
길가에 가득한 전광판마다 아나운서처럼 정장을 차려입은 협회장이 있었다.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은 물론, 빌딩 높이 달린 화면에서도 협회장이 대본을 읽고 있었다.
- 해당 지역의 관객 여러분은 제가 말한 위치 중 가까운 곳으로 가세요. 가서 공격하세요.
협회장의 영향력을 빗겨낸 이연우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시야가 도심을 둘러봤다.
“와아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달리는 사람들. 자동차는 과속하다가 길가를 들이박았고, 곳곳에서 폭발과 화재가 일어났다. 때로는 총성도 들렸다.
다리가 으스러진 사람이 열광적인 기색을 드러내며 두 팔로 아스팔트 도로를 기었다. 그 손이 이연우의 다리를 스쳤다.
“가장 아름다운 자를 위해!”
그 사람이 기어서 지나간 자리로 붉은 핏자국이 이어진다.
이연우가 입술을 떨었다.
“전쟁? 이 정도까지 한다고? 이건, 이건 내가 예상한 게 아닌데?”
민간인까지 이렇게 동원하는 건 조금 아니지 않나? 생각했던 암살이나 전면전이 아닌데? 이건 차라리….
“멸망이잖아?”
그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마크 정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이연우 님! 어디 계셨습니까? 핸드폰은 왜 안 받고, 이상개체를 이용한 비상연락은 왜 거절하셨습니까! 지금 비상상황입니다!
이연우는 무심코 손을 들었다. 주사위를 이용해 연락을 끊으려고.
하지만 활짝 펼친 손바닥을 좀처럼 움켜쥐지 못했다. 품 안의 인간자격증이 열기를 뿜는 듯했다. 냉정한 머리에 온기가 감돌았다.
이연우는 입술을 벙긋거리며, 수많은 피해자를 보았다. 어린아이와 노인조차 잔뜩 확장된 동공을 희번득거리며 거리를 달렸다.
“엄마. 아빠.”
그의 가족이 이들에게서 비쳐 보인다. 무의미하고 잔혹한 죽음이다.
마크 정이 그 목소리를 들었다.
- 당신의 부모님은 우리가 보호했습니다. 인질은 아닙니다.
인질은 진짜 아니었다. 이연우한테 인질이 통할까? 그냥 단순하게 6레벨 요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였다.
듣는 듯 마는 듯, 이연우는 여전히 멍한 상태로 도심을 걸었다. 생존본능이 꿈틀거렸다. 멸망이 닥쳐온 세상에서 생존본능이 경계 너머의 뭔가 다른 것으로 변화하려는 듯하다.
자신만을 보던 시야가 가족으로 넓어지고, 가족은 곧 사회로, 인간이라는 종 전체로 확장되었다.
흐릿한 머리로 기이한 생각이 흘렀다.
‘모든 인류가 멸망한 세상에서 나 혼자만의 생존이 의미 있는가? 자손을 낳을 수도 없이 홀로 살아남는 생존. 그건 곧 인류의 멸망이다.’
개인의 생존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 인류의 생존.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인류를 지킬 희생정신이-
그 순간이었다. 이연우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려! 이건, 내 생각이 아니야!’
변화하는 생존본능의 오염이다. 이연우가 걸음을 멈추고 이를 악물었다. 사고회로가 고속으로 돌아간다.
‘이건 멸망이 아니야. 단순한 전쟁이지. 인류 멸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당장 클럽만 해도 사업을 진행할 기반은 남겨야 할 것 아닌가. 하다못해 금광에서 금을 캘 인간이라도 말이다.
거기에 악마숭배자는 사람을 살릴 것이고.
‘아직은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혹시, 정말로, 인류가 멸망할 위기가 찾아온다면 모른다. 햄버거라도 사 먹기 위해 사람을 구할지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변화하는 생존본능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야가 좁아졌다.
‘지금 할 일이 그러니까. 뭐지?’
그때 마크 정이 침을 꿀꺽 삼켰다. 긴장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연우 님. 다른 집단을 방문하고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몇 가지만 알려주십시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리고, 당신은 여전히 회사원입니까?
“…상황은 단순합니다. 회사가 선공했습니다.”
- 우리가요? 이상보호회사인 우리가 왜.
혼란 가득한 반응에 이연우는 침착하게 답했다.
“회사가 세계를 개변했습니다.”
본래의 세상과 인류보호회사. 그들이 저지른 개변. 그래서 일어난 전쟁.
설명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현실을 다시 인식했고, 그가 할 일을 떠올렸다.
“잠깐, 저 기억부터 떠올리겠습니다.”
- 예!
마크 정은 큰 소리로 답했다. 온갖 거짓 정보가 떠도는 상황에서 맥락을 찾았다. 그것부터 전하고, 진실 여부를 파악한다.
이연우는 고함과 사이렌으로 시끄러운 도심 한복판에서 주먹을 쥐었다.
“개변 전의 내 기억을 떠올릴 가능성.”
데구르르-
성공!
개변 전의 기억이, 한 사람 분량의 데이터가 쏟아진다. 비슷한 듯 다른 기억. 이연우는 침착하게 기억을 소화했다.
‘기억이 두 배. 경험도 두 배. 사고를 겪고 살아남은 경험도 두 배. 다 흡수해.’
생존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두 세계의 기억이 하나로 합쳐진다.
“아.”
그리하여 이연우는 개변 전과 개변 후의 기억을 모두 떠올렸으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다.
인류보호회사가 원하는 평범한 세상도 아니며, 조금 전의 자신이 꿈꾸던 회사가 없이 이상개체가 넘쳐나는 세상도 아니다.
이연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세상이 제일 낫네.”
세계는 이상異常을 허용하고, 회사가 위험을 관리하고, 다른 집단과 회사가 균형을 유지하며 사회를 보존하고, 자신은 적당히 사는 세상.
그 세상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다.
잠시 눈을 반짝이며 머리를 굴리던 이연우가 마크 정에게 말했다.
“저는 회사의 편입니다. 이미 클럽의 본진을 테러했고, 숭배자를 공격했습니다.”
- …이연우 님, 잠시만 대기해주십시오. 회사가 엉망이라 이연우 님의 신분을 다시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상황이 많이 나쁩니까?”
한창 통화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마크 정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간 긴장된 목소리가 이어졌다.
- 예비 인력이 이사가 되고, 비상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전쟁 시나리오에 따라 회사는 1시간 내로 반격할 예정입니다.
굉장히 바쁘다는 말. 정확한 정보는 전하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이 간다.
‘녹색협회의 씨앗을 키울 거고, 정예요원이 움직이겠지. 기억소거제를 대대적으로 살포할 계획도 있을 거고, 종말방어장치도 동시에 가동할 수 있고.’
하지만 지금 이연우에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연우는 침착하게 계속해서 말했다.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계를 개변한 장치는 어디 있습니까? 제가 장치를 고치고 이 전쟁을 없던 일로 만들겠습니다.”
- 그건 이사 쪽으로 요청을 넣어야 하는데, 지금 우선으로 처리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개변이 사실인지 먼저 파악해야 시나리오와 작전의 방향이….
마크 정이 말하자, 이연우는 주변의 참사를 슥 둘러보고는 억지로 목에 핏대를 세웠다.
설득을 위한 과장된 고함이 터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사람이 죽고 있습니다! 이상보호회사든 인류보호회사든 상관 없이 사람은 구해야 할 거 아닙니까!”
- 그건 어차피 개변하면-
“어떻게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합니까! 개변한다고 죽음이 아니지는 않습니다!”
- ….
마크 정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소리를 내었다. 양심과 회사의 혼란과 전쟁과 개변. 모든 것이 고통이 되어 머리를 찔렀다.
끝내 마크 정이 힘겹게 말했다.
- 좋습니다. 제가 프로젝트 하나에 이연우 님을 참여시키겠습니다. 해당 부서 연구원의 지시를 받아 개변 장치부터 고치십시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치 정보를 들었다. 이연우가 바로 연락을 끊고, 힐긋 하늘을 보았다. 먹구름이 몰려왔다. 숭배자의 지옥이 팽창하고 있다.
저 멀리 도시 끝에서부터 섬뜩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멸망 앞에서 생존본능이 다시 변화하려고 꿈틀거렸지만, 이연우는 냉정하게 손바닥을 폈다.
“여긴 내 세상이 아니지.”
회사가 실험으로 바꾸어 만든 세상. 기억조차 만들어진 것이다. 이상개체가 조작한 세상이다.
이연우가 본래의 세상을 되찾기 위해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