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83)화 (183/194)

리메이크

완벽한 보안 프로그램이 있더라도 사람은 막기 힘든 법이다. 하나의 열쇠가 아니면 열리지 않는 자물쇠도 열쇠 주인이 열쇠를 팔아넘기면 끝이지 않나.

타다다닥-!

마크 정은 현란하게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움직였다. 휙휙 바뀌는 화면에는 온갖 프로그램이 스쳐 지나갔고, 마크 정은 적당히 눈치를 살피며 세계 개변 장치 관련 프로젝트에 부서 하나를 집어넣었다.

도박근절센터.

이연우가 의뢰를 받아 주사위를 굴려주는 부서.

‘됐다.’

얼른 화면을 바꾼 마크 정이 식은땀을 쥔 손을 옷자락에 쓸어내렸다. 그 얼굴에는 안도 조금과 혼란과 걱정이 많이 떠올랐다.

‘잘한 건가? 이게 맞나?’

이연우는 수상한 행적 때문에 정예요원 자격이 정지된 상태다. 몇 차례의 검증이 더 필요했지만, 마크 정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권한을 남용했다.

뒤늦게 의심이 떠오르며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연우. 이상보호회사. 인류보호회사. 전쟁. 도대체 이게 다 무슨….’

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혼탁한 정신으로 힘들게 생각하기를 잠시.

마크 정이 시선을 옮겼다. 새로 부임한 이사가 갑자기 이사실에서 뛰쳐나오더니, 고함을 질렀다.

“전쟁 시나리오 수정해! 악마숭배자는 우리 진영이다! 숭배자한테 쓸 전력을 클럽이랑 협회장 쪽으로 돌려!”

“클럽도 적입니까?”

“그래! 이미 관련 증거를 확보했어!”

피를 토할 기세로 소리친 이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가 얼른 외쳤다.

“이연우 담당 직원 누구지? 빨리!”

“저입니다!”

마크 정이 손을 들고 벌떡 일어섰다. 이사와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마크 정에게 쏠렸다. 마크 정이 식은땀을 흘렸고, 이사가 손을 퍼덕인다.

“이연우는 회사의 적이다! 너는 암살 계획 진행해!”

마크 정이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직 적으로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합니다. 적인 클럽도, 아군인 악마숭배자도 공격했습니다. 단순한 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포칼립스가 다가온 세상 앞에서 멸망을 없던 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이사는 답답해 죽으려는 표정을 지었다. 변수인 6레벨이라 개변 다음으로 정보를 들었다. 죽은 이사의 최후의 발언까지 말이다.

‘개변도 알아채고, 이상친화적인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다른 6레벨과 손을 잡고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왜 회사 편이야.’

욱하고 목소리가 올라왔으나, 이사는 감정을 꿀꺽 삼켰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사 직속 비서실, 직원들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했다. 근본적으로 이 전쟁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호해야 할 이상異常과 왜 전쟁을 해야 하는가? 협회장으로부터 선제공격을 받았기에 시나리오대로 반격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전쟁 시나리오를 진짜 진행합니까? 그들은 귀중한 이상개체입니다.”

“이연우도 6레벨 아닌가요? 세상과 대적하는 6레벨을 왜 파괴합니까? 적이더라도 생포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이상보호회사와 인류보호회사 사이의 괴리가 벽이 되어 이사와 직원 사이를 갈랐다.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시선들 앞에서 이사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상보호회사의 명분이 없다. 그렇다고 개변 사실을 밝히면.

‘전쟁을 수단으로 이상개체를 파괴할 계획이 진행될 리가 없어.’

이사회가 뜻을 모아도 의미가 없다. 회사는 혼란에 빠질 테고, 회사는 마비된 상태로 공격받아 망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이사는 둘러대는 말을 내뱉었다.

“선공을 받았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가? 회사가 우선이야! 회사만 살아남으면 이상개체는 얼마든지 보호할 수 있어!”

“…이사님. 우리가 인류보호회사라는 말이 사실입니까?”

마크 정의 근처 자리에 앉아 있던 직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마크 정이 개변을 입에 담아가며 통화하는 소리를 엿들었다. 그는 눈동자를 사정 없이 떨며 말을 이었다.

“회사가 세상을 개변한 게 정말이냐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의 세상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직원들의 머릿속으로 서로 다른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회사라고 해도 자신의 인생을 다시 쓸 권리는 없다, 우리의 사명은 거짓인가, 우리는 무엇을 왜 해야 하는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

“….”

끓어오르기 직전의 물처럼 비서실에 열기가 고였다. 그들은 바쁘게 통화하던 핸드폰도 놓아두고, 부지런히 두드리던 키보드도 밀어둔 채, 오직 이사만을 보았다.

이사는 이사실로 몇 걸음이고 뒷걸음질 치며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이전의 이사회를 향한 욕이었다.

‘미친 인간들! 준비도 없이 이딴 개변을 일으킨 인간들!’

도대체 뭐가 잘못되면 회사까지 뒤틀린다는 말인가. 회사만 멀쩡했어도-

그 본능적인 신체 반응은 확실한 답이 되었다. 두뇌와 몸을 이어주는 신경인 직원들이 헛웃음을 흘렸다. 분노, 허탈함, 혼란, 슬픔, 의심. 온갖 감정이 끓어올랐다.

그리고 직후, 폭죽처럼 하얀 종이들이 곳곳에서 터졌다. 직원들이 동시에 집어 던졌다.

“내 가족조차 협회장한테 당했어! 오직 사명 하나 때문에 이 자리를 지킨 거지! 그런데 뭐? 애초에 이 사명조차 진실이 아니라고?”

“개 같은 회사! 우리가 도구냐? 멋대로 고쳐 쓰고, 필요하니까 멋대로 부려 먹고! 이게 세뇌랑 뭐가 다른데!”

사명이 흔들렸다. 정신무장이 풀어졌다.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시달린 직원들이 감정을 마음대로 내뿜었다. 오직 개인에 충실한 감정을.

이사가 다급하게 손을 내밀며 설득에 나섰다.

“회사가 개변된 건 우리조차 예상치 못한 사고-”

“진짜 개변했다는 소리잖아!”

빡-!

무선 마우스가 날아왔다. 이사가 이마를 문지르며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이번에는 키보드며 도시락 통이며 과일이 우르르 던져졌다.

그 순간이었다.

냉정하게 사람들을 둘러보던 마크 정이 눈을 빛냈다. 혼란 속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 할 일은 하나야.’

인류보호. 그건 회사의 정체성과 상관이 없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으니까. 멸망이 닥쳐왔으니까.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그가 쾅쾅, 테이블 위로 올라가 두 손을 활짝 폈다. 찢어지는 고함이 터졌다.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이런다고-”

“넌 또 뭐야!”

“악!”

날아온 모니터에 맞아 마크 정이 우당탕 넘어졌다. 발이 미끄러졌다. 그대로 테이블 아래로 떨어졌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고통이 느껴질 정도. 한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

모니터를 던진 사람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두 손이 갈 곳을 잃고 허공을 휘저었다.

“괘, 괜찮아?”

“팔, 내 팔.”

마크 정이 꺾인 팔을 보았다. 팔꿈치가 하나 더 생긴 것처럼 꺾였다.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지금이야.’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지금. 마크 정이 얼른 입을 열었다.

“여러분. 복잡한 문제는 잠시 미뤄둡시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간을 보호하는 겁니다.”

“우리가 원래는 인류보호회사라? 애초에 그것도 회사가 우리를 조작한 거라면-”

사직서를 손에 쥔 직원이 말했고, 마크 정은 바로 말을 끊었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가만히 두면 멸망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전쟁을 멈추고, 사람을 구하는 일.”

단순한 만큼 강력한 명분이 직원들에게 전해진다.

가족이 협회장에게 당했다는 직원이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전쟁 시나리오를 구조 시나리오 바꾸면 되긴 하는데.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냐. 클럽이랑 협회장을 어떻게 해야…. 아, 그런데 이상개체를 보호. 아니. 아.”

“방법은 많아. 암살도 있고, 휴전 협상도 있고.”

아이디어가 쑥쑥 솟구친다. 어느새 그들의 생각이 인류보호로 흘렀다.

마크 정이 고개를 저었다.

“세계 개변 장치를 쓰면 됩니다.”

가만히 듣던 이사가 말을 거들었다.

“그건 고장 났어. 고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

“아뇨. 이연우가 주사위로 고칠 겁니다. 그리고 전쟁을 없던 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듯 오한이 들었다.

이연우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넘어가더라도….

“그게 제대로 될까?”

사고뭉치. 그가 가진 주사위처럼 혼돈 같은 결과를 내는 인간. 인류보호라는 목적 아래에서 온갖 아이디어를 쏟아내던 직원들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이사는 멍하니 허공을 보며 생각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복잡한 생각이 스친다.

‘인류보호회사. 이상異常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라.’

어쩌면 회사는 어느 순간부터 본질이 바뀐 건 아닐까? 인류의 보호보다 이상異常의 말살을 우선시한 건 아닐까?

잠깐 침묵하던 이사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단, 심문용 기계장치와 이상개체로 이연우의 의도를 파악한 후-”

그 순간이었다. 이사가 말을 멈췄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짧게 세 번 진동했다. 정예요원과 종말방어장치 같은 우선 메시지의 도착 알림이다.

이사는 핸드폰을 꺼내 들며 계속해서 말했고.

“의도가 위험하지 않다면….”

눈을 의심했다. 메시지에는 심각한 소식이 쓰여 있었다.

- 세계 개변 장치 완전 파괴. 설계도 손실. 범인은 이연우.

시간만 주어진다면 세계를 고쳐 쓰는 최후의 보루가 완전히 망가졌다. 종말방어장치보다 더 중요한 멸종방어장치가 말이다. 이사가 핸드폰을 냅다 집어던지며 소리를 악 질렀다.

“이연우 죽여!”

“갑자기 왜-”

“세계 개변 장치의 설계도까지 파괴한 인간이 어떻게 우리 편이겠나!”

마크 정은 멍하니 이사를 올려보다가, 갑자기 닥쳐오는 고통에 까무룩 기절했다.

***

이연우는 공간을 이동하며 세계 개변 장치가 있는 부서에 도착했다. 마크 정이 프로젝트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 전에, 위치 정보만 듣고서.

“이게 그 장치란 말입니까?”

이연우는 거대한 강철 덩어리를 보았다. 터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무너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고철 쓰레기다.

이연우에게 ‘설득’ 당한 연구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까운 일이죠. 이렇게 망가지면 안 되는데. 이것만 멀쩡했어도 지금 전쟁도 쉽게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이연우는 천천히 고철 덩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손끝에서 가능성이 느껴졌다.

‘고칠 확률이 낮은데.’

과연 멸종방어장치다. 수리가 성공할 확률이 굉장히 낮았다. 그렇다고 생존본능을 믿기도 힘들었다.

이연우가 잠시 손을 움찔거렸다. 생존본능의 감각이 둔했다.

마치 이거 못 고쳐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듯, 실패와 대실패의 가능성을 피하지 않았다. 어쩌면 6레벨 수준의 장치라 파괴를 유리하게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한 번 굴려는 봐도….”

이연우는 망설이다가 한 번 주사위를 굴렸다.

데구르르-

꽝!

‘꽝은 숫자로 안 세지.’

이연우가 다시 주사위를 굴렸다. 꽝이 몇 번 더 나오고, 실패가 떴다.

쾅!

장치가 터졌다. 얼굴을 스친 강철 파편. 이연우가 손을 떨며 볼을 쓰다듬었다. 어차피 이런 건 생명의 위험은 아니다. 하지만 세계를 되돌릴 장치가 더 망가졌다.

“아니, 어. 그래. 성공만 나오면 돼.”

어쨌든 한 번이라도 성공하면 고쳐진다. 이연우가 얼른 주사위를 다시 굴렸고.

실패를 거듭하여 수리를 도울 설계도마저 손실됐다. 연구원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자 이연우는 손을 벌벌 떨었다.

수리에 성공할 확률이 한없이 0에 가깝게 떨어졌다.

이연우는 멍하니 강철 부스러기를 보았다. 그가 눈을 돌렸다. 이건 망했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남을 시키면 되었다.

“클럽 회장 다시 한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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