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
이연우는 허공에서 툭 튀어나왔다. 느긋하게 일상을 즐기던 조사반 식구들은 기겁했다. 갑자기 공간을 이동해 온 것은 분명 이상개체니까.
“뭐냐!”
반장이 다급하게 토지계약서를 쥐고, 유지유는 자연스러운 조끼를 꺼내 들었으며, 최재민은 게임을 하다가 마우스를 집어던졌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연우를 보던 식구들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장이 말했다.
“…연우 맞냐? 아침에 안 보이더니.”
조사원다운 경계심이고, 오랜만에 만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무슨 이사니, 6레벨이니, 온갖 괴물을 겪었던 이연우는 정겨운 미소를 지었고.
“예, 맞습니다.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왔습니다.”
그 미소에 조사원들이 파르르 떨었다. 저럴 애가 아닌데. 정다운 미소가 어색하다 못해, 징그러웠다. 사람 아닌 것이 사람 흉내를 내는 느낌과 비슷했다.
“건물의 주인으로서 명하니, 불청객은 정체를 드러내라!”
그들은 순식간에 반응했다. 반장이 계약서의 힘을 발휘하며 권총을 꺼내 쥐었다. 유지유는 형광조끼를 서둘러 입고, 반장과 최재민에게 던졌다.
그 모든 일이 찰나에 일어났으며, 부모를 보는 최재민만 진상을 파악했다. 이연우의 부모가 평소와 같아서. 최재민이 서둘러 외쳤다.
“반장님! 형 맞아…. 아닌가?”
최재민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계약서의 힘이 이연우를 덮쳤다. 이연우는 거부하지 않았다.
스르륵-
인간의 형상으로 보일 가능성이 풀려나며, 얼굴 위로 확률의 실타래가 솟구쳤다. 이연우는 반장이 총을 쏘기 전에 얼른 손을 들었다.
“저 맞습니다. 6레벨 올라서, 그것 관련해서 일하고 왔습니다.”
“…6레벨?”
반장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름은 들어봤다. 굉장히 큰 위험 혹은 적대집단의 우두머리. 그 수준에 올랐으면 당연히 본사로 찾아가 이런저런 대화가 필요하긴 한데.
이연우가 다시 인간의 얼굴로 되돌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서 작별 인사도 할 겸 찾아왔습니다.”
철컥, 반장이 권총과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다른 조사원도 슬슬 자리에 앉았다. 형광조끼를 주변에 대충 밀어두면서.
이연우가 이연우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언제 총을 겨눴냐는 듯,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본사로 가냐? 그래, 6레벨 올랐으면 그래야지.”
“와. 그럼 이제 엄청 강하겠네요? 나중에 큰 사고 터지면 전화해도 되요?”
이연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확률의 실타래가 느껴졌다. 그 실타래는 조사원들이 죽을 확률이다.
“아예 지금 축복 조금 내려드리겠습니다.”
“축복은 무슨 축복. 됐다. 그런 거 없어도 돼. 이미 받은 게 많구만, 뭘 더.”
반장이 손을 내저어도 이연우는 온 감각을 손바닥에 집중했다.
‘아. 이걸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반장이 죽을 확률이 잡혔다. 하지만 자세히 느끼면 그 실타래 하나는 수많은 얇은 실타래로 이루어졌다.
무작위의 죽을 확률. 그 하나의 실타래를 매듭 풀듯 풀어헤치면, 심장마비, 자연사, 총살 등으로 나누어진다.
애매모호한 실타래 하나가 여러 개의 세밀한 실타래로 이루어진 것이다.
잠시 그 실타래를 가늠하던 이연우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는, 얼른 유지유나 최재민의 가능성도 느꼈다.
“어. 죽을 확률이 굉장히 낮은데요.”
역시 조사원이라고 할까. 사고를 겪거나 이상개체를 만날 확률은 높은데, 사망할 확률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연우의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실타래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던 조사원들이 기겁했다. 사태 파악이 빨랐다.
“어, 어, 어. 연우야. 아무것도 하지 마. 그거 잘못 건들면 지금 죽는 거 아니야!”
“멈춰요!”
“형!”
이연우의 손에 자신들의 죽음이 잡혀있다. 설마 이연우가 그들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냥, 목숨이 저렇게 구현화 된 것 자체가 끔찍하게 불안하다. 심장이 밖에 나온 기분.
그 기분에 공감했기에, 이연우가 얼른 실타래를 풀었다.
“그, 음. 목숨이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전화주십시오. 바로 공간 이동해서 찾아가겠습니다.”
확률은 유동적이고, 지금 조작해도 향후 미래에는 새로 생길 수도 있다.
아예 전화 한 번이면 구조하러 오겠다는 말에, 조사원들이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래, 고맙다. 든든하네.”
“와. 6레벨 지인이 생겼네요. 어디 가서 자랑해도 돼요?”
그쯤에서 이연우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툭 치는 손길을 느꼈다.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가온 최재민이 눈동자를 떨면서 말했다.
“형. 혹시, 그걸로 저 평범한 사람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태어나길 이상개체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회사에 붙잡혀 고초를 당하기도 했고, 물론 마구잡이로 남들에게 패드립을 던지다가 걸린 것이지만, 자신이 괴물이 아니라 진짜 인간이길 원했다.
‘이상개체면 좋은 거 아닌가? 거기다 이상개체 감별하는 데 쓸만한 능력인데.’
왜 자기 생존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을 원하는지 이해 못 한 이연우가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허공을 휘저으며 확률을 찾아냈다.
“가능하긴 한데. 진짜 해줘?”
평범한 공간도 만드는데, 개체 하나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연우에게서 어딘가 말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최재민이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가, 결의를 품고 입을 열었다.
“이왕이면 괴물 같은 것보다는-”
“재민아. 너 보통 사람 되면 군대 간다.”
“괴물 감별하는 이상개체가 낫죠. 저는 원래 이 능력 좋아했어요. 특별하잖아요.”
한순간에 태세가 전환되었다.
군대 가기 VS 살던 대로 살기. 답은 당연히 후자였다. 종족 정체성 같은 건 고려할 문제가 되지 않았다.
뻔뻔하게 말을 싹 바꾼 최재민을 보며 유지유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반장은 혀를 쯧쯧 찼다.
“너 이상개체 아니면 회사가 굳이 군대 문제 해결 안 해주지.”
부모 감별하는 이상개체라 산업기능요원처럼 회사 근무로 대체하게 도와주지, 그냥 사람이면 그런 거 없다.
그 말은 뜻밖에도 이연우에게 타격을 입혔다.
“…이상개체면 군대 안 갑니까?”
“무슨 사고 나라고 군대를 보내.”
아니. 아니. 이연우가 입을 벙긋거렸다.
‘나도 원래 이상개체였던 거 같은데.’
둘 다 6레벨에 올리고 느꼈는데, 생존본능은 처음부터 자신 안에 있었던 듯했다. 그냥 사고 없이 안전하게 살아서 잘 자고 있다가, 본격적으로 사고를 겪으면서 깨어나 진화한 느낌.
‘아니. 군대 안 가도 됐잖아? 애초에 공시 준비 안 하고 회사에 입사해도 됐잖아.’
억울하다. 진짜 억울하다. 결국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이연우는 괜히 회사를 욕했다.
‘최재민은 잘만 찾았으면서 나는 왜 못 찾은 거야. 일찍 찾아줬으면 군대도 안 가고, 직장도. 아니, 아.’
이연우가 입술을 오리처럼 내밀고 있자 잠시 분위기가 이상해졌지만, 반장이 손뼉을 짝짝 치며 분위기를 정리했다.
“그럼 고기나 먹자. 연우 보내는 겸.”
그렇게 그들은 저녁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식을 하러 우르르 몰려 나갔다.
***
하늘이 어스름하게 어두워질 무렵이다. 조사반 식구들이 어슬렁어슬렁 도심의 거리를 걸었다. 아무래도 밖이라 발언에는 주의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새로 창업하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생존기구입니다.”
“거, 이름 참….”
생존기구가 도대체 멀쩡한 이름인가 싶다. 아무래도 이연우에게는 작명 센스가 없는 것 같았다. 도박근절센터도 그렇고.
유지유가 눈을 빛냈다.
“혹시 거기 사람 안 필요해요? 저 이직하고 싶은데.”
회사원인 가족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이 마구 샘솟았다.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원이면 생존의 달인 아닌가. 당연히 생존기구에도 어울리는 인재다.
“사람 필요하죠. 아무래도 저 혼자는 무리가 많아서.”
“…그런데 가면 뭐해요?”
“감시? 행정? 저도 모릅니다. 어떤 직종으로 어떤 사람이 몇이나 필요한지.”
뭐 행정업무를 해봤어야지 감이라도 잡지. 이연우가 어려운 기색을 드러내자, 유지유가 고민에 빠졌다.
그쯤에서 고깃집에 도착했다. 대충 사무실 근처에 있는 집이었다.
“들어가….”
최재민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 손가락 네 개를 펴서 내밀었다. 4명이라고.
“어….”
하지만 최재민은 손을 슬그머니 내렸다. 문을 넘어오는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평범했던 고깃집이, 시뻘건 조명이 비추는 기괴한 고깃집으로 변했다.
뒤따라 들어오던 사람들도 전부 문 앞에서 멈췄다.
내다보이는 조리실에는 사람 같은 것이 갈고리에 매달려 있고, 커다란 중식도를 든 요리사는 이상한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상개체다. 공간과 개체 형태의.
“….”
“….”
조사원들의 얼굴에 긴장이 내려앉았다. 칼날처럼 날이 섰다. 손은 각자 무장으로 향했다.
가죽을 뒤집어쓴 요리사가 흐흐 웃었다. 피로 물든 중식도가 섬뜩한 빛을 흩뿌렸다.
“싱싱한 식재료가 왔군. 좋아, 좋아. 인간 암컷 하나, 인간 수컷 어린놈 하나. 나이 먹은 놈 하나. 그리고….”
이연우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귀찮아 죽겠다는 감정이 온몸에서 내뿜어졌다.
‘아, 또 뭔데. 귀찮게.’
환송회? 송별회? 어쨌든 좋은 자리인데 이걸 망쳐?
인간의 형상을 포기한다. 확률의 실타래가 얼굴을 뒤덮는다. 이연우가 성큼성큼 걸어, 아무 자리에 앉았다.
“주문.”
“…예! 무엇을 드릴까요?”
요리사는 어느새 칼을 내려놓고,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았다. 괴물이 앞에 있었다. 자신 같은 것과는 수준이 다른 것이.
조사원이 눈치를 보다가 이연우 주변으로 앉았고, 최재민이 말했다.
“여기 메뉴판이 없네요?”
이연우가 있는데 무슨 사고가 터질까. 당장 요리사의 태도가 모든 걸 설명했다. 사람 죽이는 못된 이상개체를 놀려먹을 기회를 최재민은 놓치지 않았다.
“부모 없는 이상개체라 그런가-”
“조용히 해!”
그 입을 유지유가 서둘러 막았다. 조심해야지, 왜 쓸데없이 못된 말을 뱉는지 모르겠다.
한순간, 요리사가 중식도를 꽉 쥐었다가, 이연우의 시선을 받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제가 글이랑 숫자를 쓸 줄 몰라서….”
“햄버거.”
이연우가 탁 테이블을 쳤다. 요리사가 당혹했다.
“선생님. 여기는 고깃집-”
“햄버거.”
“그게-”
“햄버거.”
요리사가 침묵하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떤 버거를 만들어드릴까요?”
“그냥 햄버거. 내 마음에 안 들면 죽는다.”
이연우가 손을 쥐었다. 근처에 있던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사라졌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시간이 정지되었다가 흐른 듯이.
요리사가 필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