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91)화 (191/194)

엔딩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이연우는 단번에 공간을 넘었다. 아마추어 마법사가 이차원의 문을 열어젖힌 공터로.

마침 보름달이 밝게 뜬 밤이다. 새하얀 달빛 아래 기괴한 풍경이 붉게 드러났다. 대지는 불그스름한 살덩이였으며, 공터를 둘러싼 나무는 살점의 촉수가 되어 흐느적거렸다.

본래라면 부엉이나 밤에 우는 새가 노래해야 하는 산이 질척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 중심에 두 사람이 있었다.

장작 패는 도끼를 어깨에 걸친 아저씨. 무당 옷을 입고 무릎을 꿇은 채 살덩이 책을 뒤지는 아줌마. 두 사람 모두 몸이 기괴하게 변질되었지만, 아직 정신은 멀쩡한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손아귀가 녹아내려 도끼와 하나가 된 아저씨, 이연우의 아빠가 도끼를 붕붕 휘둘렀다.

“미친 여자야. 도대체 뭔 짓을 저지른 거야.”

“아니, 연우 아범. 나라고 이럴 줄 알았나. 허주가 잘못 든 줄 내가 어찌 알아.”

무당 아줌마가 성질을 부렸다. 살덩이로 변이한 무당 옷이 흔들렸다. 색 끈이 변이하여 형광색으로 발광하는 촉수 따위가 먹이를 현혹하듯 허공을 휘저었다.

마법서의 영향은 신내림과 비슷했고, 마법서의 힘도 진실이었으니, 무당으로서는 크게 착각할 만도 하다.

하지만 알 바인가.

연우 아빠가 도끼로 주변 촉수 나무를 후려쳤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피를 뒤집어쓴 아빠가 위협적으로 도끼를 흔들었다.

“실수를 했으면 빨리 수습이나 해! 잘못하면 저기 마을까지 지랄 나게 생겼구만.”

문이 열렸다. 열린 문 너머로 오염이 쏟아졌다. 살덩이로 변하는 영역이 점점 넓어진다.

무당이 서둘러 살덩이 책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얇은 피부를 엮어 만든 책 위로 핏줄이 뻗어나가며 문자를 형성했다. 툭 튀어나온 눈알이 그 문자를 재빠르게 훑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런데 연우 아범. 이게 진짜 일어난 일이잖아.”

“헛소리하면 목 날아가니까, 생각하고 말하쇼. 여차하면 당신 목 날리고, 산에 불 지를 거니까.”

산속에서 집 짓고 사는 연우 아빠였다. 난로 때울 때 쓰는 등유는 물론이고, 장작이나 숯도 많았다. 계획적으로 이곳저곳 불 지르면 걷잡을 수 없이 산 하나를 통째로 태울 정도로.

‘고기니까 태우면 타겠지.’

아빠가 털푸덕 주저앉아 흐물흐물해진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게 다 뭔 일이다냐. 뭘 잘못 먹은 줄 알았는데.”

몸이 이상하게 변질된 고라니가 집에 쳐들어왔다. 그는 고라니를 도끼로 쳐 죽인 후 한동안 자신을 의심했다.

산에서 채취한 버섯이 환각 버섯이거나, 난로가 잘못되어서 가스를 들이마셨거나, 저기 박 씨가 준 술이 양귀비로 담근 술인 줄 알고.

하지만 현실이었고, 산을 뒤진 결과가 이 미친 무당이었다. 그가 한탄했다.

“미친 여자야. 당신도 마을에서 계속 살았으면서 이딴 위험한 일을 저지르면 어째.”

“그래서 몰래 산에서 했잖아. 금기 같은 건 다 지키면서 했는데도, 이 난리가 날 줄 어찌 알았겠냐고.”

무당은 억울한 마음에 고개를 들었다가, 시뻘건 도끼날을 보고 얼른 다시 고개를 숙였다.

시골은 인구 밀집도가 낮아 안전조치의 효과가 약했다. 대대손손 이상경험을 반복적으로 겪은 시골에는 금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금기를 구전하는 무당인 만큼 나름대로 조심했건만.

‘아. 누군가 했더니 무당 이모였네.’

그쯤에서 상황을 살피던 이연우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섰다. 낙엽 밟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 고깃덩이로 변해서.

“아빠!”

그 외침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못 본 지 오래되었지만, 알아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연우냐? 내려온단 소리도 없이 언제 왔냐?”

“연우 많이 컸네. 요만했던 애가 언제 이렇게 컸다냐.”

두 사람은 상황도 잊고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변이된 손이 기이하게 흔들렸다.

그제야 그들은 상황을 깨달았다. 무슨 방사능에 피폭된 것처럼 몸이 망가지는 장소.

“연우야! 빨리 내려가라!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래! 얼른 내려가서 저기 산 너머에 있는 혜성무당한테 말 좀 전해라! 그 여편네가 이 문제는 알 거 같은데!”

이연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간이었으면 납치해서 마법사로 부려 먹었을 텐데.

나름대로 어렸을 때부터 얼굴을 보아온 이모라, 막 대하기는 어렵다.

이연우가 손을 쥐었다. 우선 문을 닫았고, 변이된 땅을 되돌렸으며, 두 사람의 몸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했다.

주먹을 세 번 쥐니,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처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산속에서 고라니가 울었다.

“빨리 산 내려가요. 지금 멧돼지 사냥하러 사람들 올라왔다던데.”

“…꿈인가?”

연우 아빠가 눈을 끔뻑였다. 뭐가 뭔지 이해가 안 된다. 사실 고깃덩이 차원의 문제부터 이해의 영역 밖에 있었지만, 그건 시골 특유의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연우가 이걸 해결한 건 감당하기 힘든….

“요즘 도시에서는 이런 것도 배우나? 도시 사람 다 됐구나.”

그 왜, 기술이 빨리 발전하지 않나. 역시 도시고, 최신 기술이다. 하긴 시골에서도 별 이상한 일이 생기는데 사람 많은 도시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 대처법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연우는 더 말하지 않고, 얼른 두 사람을 끌고 내려갔다.

***

이연우의 아빠는 산 중턱에 황토집을 짓고 살았다. 세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가, 거실에 어색하게 앉았다.

이연우가 마법서를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한 손에는 대놓고 확률의 실타래를 쥐었다. 이상현상을 겪은 사람한테 더 감출 이유가 없다.

‘텔레파시 같은 걸로 재능 있는 사람을 끌어오고, 문을 열게 만드는 마법서. 그 근원은.’

어떤 마법사가 더 필요 없다고 대충 차원의 틈바구니에 쓰레기 버리듯 던진 게 이 마을에 떨어졌다.

이연우가 한숨을 쉬며, 마법서를 무당에게 건넸다.

“제가 이런 문제 관리하는 회사 다녔거든요.”

“공기업이냐? 공무원 하겠다더니 비슷한 건 됐구나.”

아빠가 바로 물었다. 그의 생각에 이런 문제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맞았고, 그 문제를 관리하는 회사는 당연히 공기업이었다.

하지만 무당은 다른 것을 보았다. 신들린 듯 떨리는 눈동자가 이연우를, 확률의 실타래를 보았다.

“신내림 받았느냐?”

“이 인간아. 애를 왜 정신병자로 만들어.”

“신내림은 정신병이 아니야! 방금 그 난리를 보고도 의심하나?”

“일단 댁은 돌팔이-”

투닥거리는 두 사람.

이연우가 피곤함에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귀찮다.

아아. 신? 하찮은 이상개체 말인가? 내가 바로 진짜 전능한 신이다. 이딴 헛생각이나 잠깐 하던 이연우가 손을 휘저었다.

“이모. 이모는 일단 관련 기관으로 가야 합니다. 마법 배우셨으니, 지금처럼 살 수는 없어요.”

“…마법?”

무당의 눈에 밝은 빛이 스쳤다. 마법서를 보고 배우고, 마법을 행하며 느꼈다. 세상은 무한히 많다. 그 세상에 접촉할 수 있었다.

흥미가 생기다 못해, 지금껏 가져온 무당으로서의 세계관조차 내다 버리며 그 기술에 인생을 걸고 싶어졌다.

“예. 저기 마을에 귀농한 젊은 사람들 있죠?”

“그, 그, 마을의 규칙도 안 지키는 외지인?”

“텃세는 부리지 마시고요. 회사에서 부모님 경호하려고 내려온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한테 솔직히 다 말하면 필요한 절차랑 갈 곳 알려줄 겁니다.”

무당이 찔리는 표정을 지었다. 금기와 관습의 이름 아래 못된 짓을 많이 했다.

대문에 닭의 피로 부적을 쓰거나 개 오줌을 뿌리거나,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소금을 집어 던지거나.

어찌 되었든 이연우는 더 이상 이 시골에 있고 싶지 않았다. 여기 더 있어봤자 이상한 사고만 더 겪을 것 같다. 마치 마을의 온갖 민담이 살아나는 기분.

“맞다. 아빠. 엄마 멧돼지에 치여서 다쳤어.”

“멧돼지 놈들, 씨를 말려야 하는데. 알았다. 내려가 보마.”

이연우가 마지막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는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이런 문제 생기면 전화 주세요.”

“오냐.”

아빠가 대충 고개를 까딱이고, 무당은 이연우를 붙잡아 외지인과의 징검다리로 삼으려 했지만, 이연우는 망설임 없이 공간을 넘어갔다.

아빠가 감탄했다.

“저건 언제 상용화되나?”

“머리가 돌이신가? 저게 과학으로 보여?”

“과학 아니면 상용화되지 못할 이유라도 있나?”

“그건.”

무당이 뭐라 반박하려다가 반대로 설득되어 그럴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사소한 에피소드가 지나갔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이연우가 겪은 일은 야생의 마법사 하나를 발견한 것에 불과했고, 거대한 집단의 일은 끊임없이 진행되었다.

이연우가 3층 건물의 최상층 안에서 흐뭇하게 웃었다.

드디어 생존기구가 발족하였다. 그가 한 건 없었다. 다 이곳저곳에서 온 사람들이 일했다. 그 결과 건물도 생기고,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연우 씨. 있어요?”

유지유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직하고 싶다던 그녀는 결국 생존기구로 넘어왔다.

“예. 무슨 일이십니까?”

“여기 사직서요.”

“…예?”

이연우가 당황하여 유지유를 올려보았다. 다크 서클이 잔뜩 내려온 유지유가 얼른 받으라며 사직서를 흔들었다.

“여기서 일 못하겠어요. 일이 너무 많아요. 저는 그냥 조사원 하려고요.”

진짜 일이 많다. 막 발족되어 그런 것도 있고, 조사원의 느긋한 삶을 살아 더 강하게 체감되는 것도 있었다.

“아니, 갑자기 왜.”

이연우가 일단 사직서를 받자, 대충 건너편에 앉은 유지유가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엎드려 자듯 엎어진 유지유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며칠 해봤는데 진짜 못하겠어요. 이건,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에요.”

조사원일 때는 어디 조사 나갈 때를 제외하면 놀면서 자리만 지키면 되었다. 하지만 여기는….

“출근해서 일하고, 야근하고, 자고, 다시 출근하고, 업무는 계속 늘어나고. 진짜, 진짜, 저는 못 해요.”

차라리 조사원이 낫다.

이연우는 일단 말리고 봤다.

“그, 그래도 안전하지 않습니까. 월급도 부족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 필요 없어요!”

유지유가 벌떡 일어나, 핏발 선 눈으로 이연우를 노려보았다. 이전의 동료가 지금의 적이었다. 일을 시키는 적, 회사의 보스!

생명을 위협하는 이상개체처럼 삶을 괴롭히는 적. 조사원의 절실한 기세 앞에서 이연우가 물러섰다.

“어…. 알겠습니다. 뭐지. 결재? 올라오면 승인하겠습니다.”

“빨리해주세요. 빨리 탈출하고 싶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을 모양이다. 이연우가 얼른 마우스를 움직였다.

마침 시스템도 회사의 것을 써서 익숙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클릭 몇 번으로 승인되었다.

“됐습니다.”

“자유다!”

그렇게 유지유가 두 손을 번쩍 들고 우다다 뛰어서 떠났고.

“맞다. 차원 통로 감사하는 날이지.”

이연우는 일을 할 겸 옛날 보았던 사람을 만나러 떠났다. 그가 강력하게 건의했던 거인 차원의 회사 거점으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