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보호회사 (192)화 (192/194)

엔딩

차원 통로는 비행기 격납고 같은 넓은 건물 안에 지어졌다. 귀중한 보석과 황금 따위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마법진, 그 중심에서 수직으로 솟은 타원형의 푸른 문.

그 문이야말로 거인 차원으로 향하는 통로다.

“컨테이너 들어간다!”

“멈춰! 저쪽에서 넘어올 시간이야!”

푸른 빛 아래에서 수많은 사람과 수송 장비와 기계장치가 바쁘게 움직였다. 현장용 형광조끼를 입은 사람은 형광봉을 바쁘게 흔들며 소리를 질렀고, 중장비가 매연을 뿜어내며 으르렁거리는 엔진 소리를 울렸다.

이 일에 투입된 마법사는 도망치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로 다리를 달달 떨었다.

“내가 진짜 스승 놈 손에서 도망칠 수 있었으면 이딴 일은 안 하는데.”

이건 마법도 뭣도 아니다. 단순히 통로를 관리할 뿐인, 노동하는 톱니바퀴다.

‘도주할까.’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무궁무진한 이차원이 자신을 기다렸다. 모험! 발견! 탐색! 마법사가 슬그머니 보석 목걸이를 쥘 때였다.

“감사 나왔습니다.”

그 옆으로 이연우가 불쑥 나타났다. 마법사가 기겁했다. 그동안 이연우가 행한 업적이 있었다.

도망친 마법사 추적. 스승 위치의 마법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추적하여 납치해오는, 마법사의 적.

“안, 안 도망칩니다.”

지레 겁먹은 마법사의 목소리.

이연우의 시선이 마법사를 스쳤다. 자연스럽게 미래에 펼쳐질 가능성을 보았다. 10갈래의 미래가 있으면, 9개의 미래에서 도망쳤다.

이연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진짜 미친 마법사들. 집단 단위로 일하기로 계약까지 해놓고 도망을 치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본적인 신의와 약속이란 개념이 머리에 없는 것만 같았다.

“도망치고 싶으면 도망치십시오. 어차피 다시 잡아 올 거니까.”

“….”

평범한 사람이면 이것을 경고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는 달랐다.

‘도주 허락한 거 같은데.’

능력만 되면 도망가라는 거 아닐까. 이건 암묵적인 허락이다. 눈동자가 데굴데굴 구르고, 보석 목걸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찰나.

그리고, 이연우가 주먹을 쥐었다.

“돌겠네.”

확률과 가능성을 조작한다. 이는 미래를 고정하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미래가, 마법사의 가능성이 좁아졌다. 도주하지 않는 미래로.

‘아.’

마법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일단, 이연우 앞에서 도망칠 수는 없지 않나.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뒤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맞다.

‘1년. 1년 동안 빡세게 준비해서 도망치자.’

그쯤에서 이연우가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을 대충 둘러보았다.

차원 통로를 관리하는 마법사, 이차원으로 나아가는 회사, 통로를 감시하는 다른 집단. 이연우는 그중 몇몇 검색대와 기계장치를 보았다.

‘어디 보자. 내가 확인할 게….’

검색대? 검사기? 회사가 이차원에서 평범한 핵배낭이나 평범한 생화학무기를 개발해서 넘어오지 못하게 설치한 기계장치만 확인하면 된다.

이연우가 차원 통로 옆에 설치된 복잡한 기계장치 앞으로 갔고, 기계장치를 담당하는 클럽 회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기계 제대로 작동하나 검사하겠습니다.”

이연우가 에코백에서 자그마한 철제 케이스를 꺼냈다. 그 안에는 평범한 총탄이 하나 들어 있다. 철제 케이스를 꺼내기 무섭게 변화가 생겼다.

삐이이이이이익-!

기계장치가 비명을 내질렀다.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검색대의 탐색 결과와 이상개체로 만든 검색대의 탐색 결과가 불일치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평범한’ 물체를 분석해서 만든 보안 시스템답게 곧바로 문제를 발견했다. 모니터에서 복잡한 문자열이 스쳤다.

- 괴리율 : 12.20429682000940318

한순간, 부서에 붉은 등이 들어왔다. 사이렌이 미친 듯이 울었고, 경고 방송이 터져 나왔다.

- 평범함 감지! 평범함 감지!

이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네.’

멀쩡히 작동하는 것만 확인하면 됐다. 물론 난데없이 비상상황을 맞이한 직원들은 끓는 물을 뒤집어쓴 듯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격리! 격리! 격리!”

“회사 뭐해! 조약 맺은 지 얼마나 됐다고!”

“으아악! 회사가 발작했다! 빨리 보고해!”

이연우는 말리지 않았다.

평범함이 검출되었을 때 얼마나 신속하고 정상적으로 움직이는지도 감사 대상이다. 일종의 훈련이었다.

그가 힐긋 클럽 회원을 보았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상부에 감사왔다고 말은 하셨습니까?”

“예.”

아마 보고에 걸리는 시간, 격리의 엄중함, 이런 것도 원격에서 평가하고 있을 것이다.

이연우가 느긋하게 주먹을 쥐었다. 일은 끝났으니, 거인 세계로 넘어갈 것이다.

***

거인 세계에 지어진 회사 거점으로 넘어간다.

임시로 지어진 막사와 컨테이너 건물, 열심히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짓는 건물. 그 모든 것이 폐허 위에 인간의 도시를 만들고 있었다.

이연우는 대충 평범한 공간 몇 블록을 만들어준 뒤, 천천히 도시를 걸었다. 그 뒤로 거점 담당자가 쫓아왔다.

“조사해보니, 이곳이 인간의 도시라고 하더군요. 길거리를 떠돌던 인간이 인간 도시의 전설을 현실로 만들려고 노력했던 땅. 회사의 거점으로 딱 좋은 곳입니다.”

길인간과 애완인간의 전설. 인간을 위한, 인간의 도시.

허나 그것은 구원의 전설에 불과했고, 어떤 인간이 희망을 품고 직접 인간의 도시를 건설했으나, 결국 거인의 외래종 관리국에 멸망한 땅.

그럼에도 전설을 쫓아 찾아오는 인간이 있었기에, 회사의 거점으로 걸맞은 곳이다.

이연우가 추억에 잠겨 도시를 보았다. 거점 짓는 회사원과 함께 일하는 다른 집단의 사람들. 때때로는 꼬질꼬질한 사람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는데, 거인 세계의 길인간이 분명했다.

“인간의 도시! 우리의 구원이 왔다!”

희망과 열정으로 빛나는 목소리와 눈.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걔 이름이 뭐였지. 단, 단. 단데 뭐였는데.’

거인 차원에 조난 당했을 때 보았던 여자. 함께 탈출할 뻔도 했던 그녀가 기억났다.

실타래를 쥐어 기억을 떠올린 이연우가 걸음을 멈추고, 거점 담당자를 보았다. 그가 질문했다.

“혹시 단델리온이라는 여자가 있습니까? 이 차원에서 태어난 인간인데.”

“확인해보겠습니다.”

담당자가 핸드폰을 꾹꾹 눌렀다. 이미 도시에 도착한 길인간의 신상명세가 등록되었다.

이연우는 기대를 품고 기다렸고,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담당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사람은 없군요.”

“…그렇습니까.”

이왕이면 살아 있었으면 좋겠는데. 인간의 도시, 인간 세상의 구원을 직접 봤으면 좋겠는데.

이연우가 망설이다가, 실타래를 골랐다. 단델리온의 앞으로 이동할 가능성.

하지만 이연우가 주먹을 쥐어 이동하기 전에 담당자가 이연우를 잡아챘다.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안내 사항이 몇 개 있었다.

“이연우 님! 먼저 안내해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우선 거인은 되도록 죽이지 마십시오. 외래종 관리국은 별거 아니지만, 검사 결과 거인 또한 인간으로 판명되었습니다.”

회사가 거인 세계로 넘어온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인을 납치해 실험실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인간이 아니면 대충 몰살하고 인간이면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 그 유전자와 존재를 분석했다.

하지만 거인은 차원의 법칙 때문에 거대하고 튼튼할 뿐, 인간의 일종이었다.

“아니….”

이연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무슨 멸망주의자도 아니고, 괜히 거인을 왜 죽이나. 혹시, 조난되었을 당시 중성화 수술이라도 당했으면 몰라도.

“안 죽입니다.”

“혹시 몰라서…. 아, 그리고. 길인간과 애완인간을 마구잡이로 구조하지 말아 주십시오.”

담당자가 건설 중인 도시를 가리켰다.

“아직 많은 인간을 수용할 공간과 식량이 부족합니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충분한 기반이 갖춰질 겁니다.”

막말로 이연우가 거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도시로 이동될 가능성을 구현하기라도 하면, 일이 복잡해졌다.

“예, 예.”

고개를 끄덕인 이연우가 실타래를 쥐었고.

세상이 변했다. 이동했다.

***

푸른 들판, 원래 세상의 나무만큼 거대하게 핀 민들레의 아래.

민들레의 아래에는 단델리온이 기대앉아 있었다. 금발과 인종의 구분이 어려운 혼혈의 외모. 민들레 씨앗을 한 손에 쥐고 흔들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가 커졌다.

“너, 너.”

“안녕.”

이연우가 웃었다. 그가 다가가, 그녀 옆에 앉았다.

“인간 도시는 찾았어?”

“뭐야! 네가 왜 여기 있어!”

단델리온이 벌떡 일어나, 이연우를 내려봤다. 헛것을 보나 의심하는 눈이었다.

거인의 집에서 탈출한 후, 온갖 고생을 하며 한참을 이동해 온 들판이었다. 약해빠진 이연우가 찾아오기에는 지나치게 먼 장소였단 말이다.

“나는 내가 알아서 탈출하겠다고 했잖아.”

“그래도 어떻게 여기까지 와! 어디 안 다쳤어? 너, 길에 나가면 바로 죽을 몸이잖아.”

이연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녀 앞에서 체력이 지독하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났고, 그는 6레벨이 되었다. 이연우가 손을 흔들었다. 그 손 주변으로 실타래가 일렁였다.

“그럴 힘이 있어.”

“…이거 그 관리국? 그 거인 놈들이 쓰는 거 아니야?”

6레벨도 없는 중소집단 따위보다는 훨씬 강대한 힘이지만, 이연우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단델리온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내가 회사 말했지?”

“인류보호회사?”

“어. 인간의 세상에서 온 사람들이, 인간을 구하러, 인간의 도시를 지었어. 같이 가자.”

단델리온이 눈을 반짝였다. 마치 별을 박아놓은 것만 같았다. 희망의 빛이 샘솟았다.

“좋아!”

단델리온이 이연우의 손을 붙잡았다. 동시에 이연우가 공간을 이동했다.

그들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들판에서 사라졌다. 따듯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그들이 기대앉아 있던 민들레가 흔들렸다.

새하얀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마치 인류와 회사처럼.

인류는 이미 많은 이차원으로 뻗어나갔다. 이제 회사는 인류를 쫓아 바깥으로 진출할 것이었고, 인류와 회사는 민들레처럼 번성할 것이었다.

이상異常이라는 험난한 위험 앞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인류라는 꽃이 곳곳에서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잡초보다 질긴 이연우는 영원토록 살아남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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