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이세계 뒷골목에서 거래하는 법(1)
로제항에 입항한 후 선장님에게 호출을 받은 심호흡을 한번 하고 선장실 문을 정중하게 노크했다.
잠깐의 어색한 시간이 침묵이 흐르고, 안쪽에서 묵직한 선장님의 대답이 들려왔다.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잿빛 머리카락 안쪽으로 깊은 눈빛을 한 선장님의 시선이 느껴졌다.
배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고드실카 호의 선장님은 조금 특이하기는 했다.
일전에 말한 대로 선원들의 직원 복지(?)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데다 선원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을 잘 하지 않았다.
보통의 작은 선박들은 선장이 직접 선원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도 참 특이한 부분이다.
출신도 조금 특이하다.
보통 작은 무역선의 선장들은 항해사 출신인 경우가 많다.
항해사로 경력을 쌓다가 상회나 선주(선박의 실제 소유주)에게 선박을 위임 받아서 선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기업의 계열사 사장, 또는 체인점의 점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당연히 자영업자들이 있을 것 아닌가?
선주가 선장을 겸하는 경우인데, 바로 우리 선장님이 그런 케이스에 해당한다.
갑판장님이 하는 말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는 배도 좀 타고, 행상도 하고, 상회에서 일도 하고 뭐 별걸 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고드실카 호를 얻게되고, 그때부터 해양 무역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상행위를 제외한 선박 운용은 갑판장과 항해사에게 거의 위임하다 시피 한 상태다.
뭐, 결론은 나는 선장님과 말을 섞어볼 일이 별로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안좋은 일로 1:1면담을 진행하게 되니, 조금 답답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선장님,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리안이라고 했지?”
“네, 선장님.”
“이야기는 갑판장에게 잘 들었다. 먼저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군.”
“네, 죄송... 네?”
어라? 대번에 욕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일단 책망하는 말을 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다.
이거 생각보다 잘 풀릴 수도 있겠는데?
“나도 이야기는 들었지. 왕녀와 함께 있던 기사가 알렌 경이라고?”
“네, 그렇게 들었습니다.”
“알렌 미우라프, 프레티아 근위대 사상 최연소 대원이었고, 다음 근위기사단장으로 가장 유력했던 남자지. 그런 자가 위협한다면 나라도 협박에 굴복했을거야. 일단 살아남는게 중요하니까.”
“아... 그, 유명하신 분이군요?”
어쩐지 왕녀의 호위치고는 엄청난 실력자라고 생각했다.
차기 기사단장이면 대충 전 세계에서 열손가락 안에, 아니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20위 안에는 충분히 드는 실력자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이후의 대응도 나는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아직도 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방법이야.”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계속해서 나오는 칭찬의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약간 엄해진 선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배에 손실이 상당하지.”
“아, 그건 제 잘못 크니 처벌을 감수...”
적당한 수준의 처벌이야 벌어들인 수익(?)에 비하면 크지 않아서 감수할 수 있다고 대답하려는데, 그 말을 끊고 선장님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유야 어쨌건 이 배를 위험에 빠뜨렸고, 심지어 모두의 목숨을 담보로 했던 일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어.”
“......”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준 자네에게는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난 선장으로서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네.”
“선장님 전...”
“미안하군.”
* * * * *
허탈한 기분으로 선장실을 나온 나는 초점 없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선장님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이번일이 좋게 끝났다고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는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처럼 운이 따라주지 않을 지도 모르지.
그러면 그냥 다 죽는거다.
그러니 선장님 입장에서는 이번 일에 연루된 놈들을 다 죽여서라도 선원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건을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면 몰라도, 연관된 선원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술을 퍼마신 선원들의 입은 한없이 가볍다.
다들 뇌가 장식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당장 로제 항에서 그 이야기를 떠드는 놈은 없겠지.
하지만 다음 기항지, 그 다음 기항지에 정박할 때가 되면 최소한 몇 놈은 긴장이 풀릴 테고, 그때쯤 내게 받은 거액을 자랑하며 왕녀를 밀항시킨 이야기를 꺼낼거다.
그러면 단순한 다른 선원들은 ‘와, 대박이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나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다.
왜냐하면 자랑을 할 때는 좋은 것만 이야기할 뿐, 나쁜 이야기는 보통 빼먹게 마련이잖나?
심지어 이번일이 얼마나 위험했는지, 조금만 삐끗했으면 다 죽을 위기였다는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놈도 있을 거다.
구구절절 말이 많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짤렸다.
나뿐만 아니라 공범들도 죄다 짤렸다.
갑자기 배에 선원이 6명이나 비면 배 운항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그럴 리가. 항구 술집에 가면 배를 타려는 놈팡이들이 하나 가득이다.
대부분 인간쓰레기에 가까운 놈들이지만, 잘 찾아보면 뱃일에 익숙하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들도 섞여있다.
나처럼 갖가지 이유로 원래 타던 배를 못 타게 된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놀다보니 자기가 타던 배가 자기를 버리고 떠나버린 경우다.
고드실카 호가 워낙 직원복지(?)가 좋아서 복귀율이 이상하게 좋은 거지, 실제로 대부분의 상선들은 복귀율이 개판이다.
사람이 부족하면 술집에서 인사불성이 된 다른 배 선원을 납치(?)해서 출항해 버리기도 할 정도니, 더 말해 뭐하겠나?
하여간 공식적으로 우리 6명은 이번에 밀항을 주도하면서 단정을 망실하게 한 책임을 물어 모두 해고당했다.
배에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이번 항해 수당도 못 받은 것은 물론이다.
당연히 왕녀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에 붙여졌다.
과연 얼마나 비밀이 유지될지는 모르겠지만...
은행에서 찾은 돈으로 선원들에게 빌린 돈을 갚은 나는, 다른 실업자 다섯 명과 함께 로제 항구를 배회하고 있었다.
일을 마쳤으면 수익 분배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러면 일단 장물(?)을 처분해야 했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그럴 듯(?) 해 보이는 한적한 뒷골목의 전당포를 발견했다.
애초에 이런 뒷골목에 있는 전당포가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곳일 리가 없지 않겠어?
우리가 전당포 문을 열고 우르르 들어가자, 안에서 한참 카드게임을 하고 있던 덩치 세 사람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엉거주춤 일어섰다.
“뭐, 뭐야?! 어디 놈들이냐!”
“뭔 소리야? 손님이다, 이 멍청이들아.”
나는 당황하는 녀석들의 질문을 바로 받아쳤다.
뒷골목에서는 기세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호구 잡혀서 가격을 후려치는 정도면 양호하고, 재수 없으면 가진 것 다 털리고 쫓겨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놈이 정신을 차리고 맨 앞에 있던 내 어깨에 손을 올리자 좀 과하게 힘을 썼다.
“어이, 갑자기 이렇게 단체로 들어... 크헉!”
나는 놈의 팔을 잡고 바로 뒤로 돌리면서 꺾어버렸다.
내가 알렌 경한테 협박당하고, 갑판장한테 멱살 잡히고 그래서 좀 연약해 보일 수 있는데, 나도 뱃일만 5년을 했다.
내 손에 죽은 놈이 몇 놈인데 뒷골목 깡패 따위에게 밀리겠어?
“이 새끼들, 손님 접대가 엉망이네?”
나는 팔이 꺾여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오금을 힘껏 걷어찬 뒤 앞으로 밀어버렸다.
뭐, 부러지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당분간 제대로 걷기는 힘들거다.
한 놈이 순식간에 제압당해 고통스럽게 바닥에 나뒹굴자, 나머지 두 놈이 방어적으로 물러서며 물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오! 여기가 어딘지 알고...!”
“아, 몰라! 모르고, 대가리 나오라고 해. 거래하러 왔다.”
“뭐? 거래? 지금 이게 거래하자는 태도요?!”
“거... 한 놈 더 박살나야 말귀를 알아 처먹으려나? 이번에는 진짜 골로 가는 수가 있다?”
내가 한 발 다가서며 살기를 뿜어대자 두 놈은 눈빛을 주고받더니 한 놈이 천천히 물러나서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저놈이 돌아올 때는 패거리를 잔뜩 데리고 오거나 보스를 데리고 오겠지.
아, 패거리를 잔뜩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당연히 튀어야지!
돈 나오는 일도 아닌데 뭐 하러 목숨 걸고 싸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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