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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3화 (13/420)

<13화> 이세계 뒷골목에서 거래하는 법(2)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밖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큰 소리와 함께 뒷문과 앞문이 동시에 열리며 일단의 남자들이 몰려 들어왔다.

‘에이씨, 이번 판은 나가리 같은데? 뒤가 다섯, 앞은 넷... 응?’

재빨리 앞뒤로 포위한 깡패들의 숫자를 세던 나는 그 가운데 끼어있는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어떤 놈들이 남의 영업장에서 행패를... 어라? 너 리안이냐?”

“헐... 발레아스 아저씨?”

인상을 팍 쓰며 호기롭게 외치던 남자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나도 부지불식간에 당황스러운 음성을 내뱉었다.

“난 또, 옆 동네 놈들이 작업 들어온 줄 알았네. 그런데 네가 여기 웬 일이냐?”

“아니, 아저씨야말로 왜 여기에 있어요?”

“그게 좀 복잡한데, 시간 없는게 아니면 자리 옮겨서 이야기하자. 얘들아, 내 손님이다. 해산해!”

“어, 아저씨 부하인줄 알았으면 살살 했을텐데, 미안해요.”

아직도 바닥에서 끙끙거리는 부하를 힐끗 본 발레아스는 피식 웃더니 손을 흔들었다.

“뭐 부러지지는 않았네. 어이 베롯, 저 녀석 의사한테 데려가.”

아저씨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고개를 깊게 숙이더니 손짓으로 두 사람에게 다친 남자를 부축하게 한 뒤 전당포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깡패들도 우르르 전당포를 빠져나가고 네 명이 남아서 뒷정리를 시작하자 발레아스 아저씨는 우리에게 손짓을 하더니 뒷문을 열고 나갔다.

발레아스 아저씨를 쫓아 골목길을 1분쯤 걸어서 도착한 곳은 흔한 판자집이었다.

아 외관상 그랬다는 것이다.

막상 안에 들어가니 교묘하게 숨겨진 지하실 입구가 있었는데, 들어가 보니 지하임에도 상당히 쾌적했다.

“와우, 생각보다 괜찮네요? 공 많이 들이셨나봐요?”

“여기? 내가 만든 곳은 아니지, 크크큭.”

“뺏었어요?”

“먹고 사려면 어쩔 수 있냐? 나도 응?”

내가 비난의 뜻을 가득 담아서 노려보자 발레아스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야, 야, 그런 눈으로 볼 거 없어. 여기 쓰던 놈들이 좋은 의도로 썼겠냐? 여기 마약창고였다. 마약 팔고, 여자 납치하는 쓰레기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훌륭한 상인이냐? 엉?”

“아저씨가 무슨 상인이예요? 밀매업자면서.”

“야, 밀매상은 상인 아니야? 관두고, 그래서 넌 무슨일인데?”

아, 의외의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더니 긴장이 너무 풀렸는지 잡소리가 길었군.

발레아스 아저씨는 4년쯤 전에 알게 된 바흐카덴의 뒷골목 밀매상이다.

하필이면 내가 술을 마시던 술집 근처에서 거래가 있었나본데, 상대쪽에서 뒤통수를 때리는 바람에 부상을 입고 술집으로 밀려들어온게 인연이 되었다.

술도 올랐겠다, 인생은 꼬여가는 것 같아서 기분도 안 좋겠다, 술자리를 방해하는 불청객이라면 감사한 일이지.

나와 일행들, 거기에 싸움이라면 절대 피하지 않는 다른 손님들까지 죄다 함성을 내지르며 난장판을 만들었고, 덕분에 아저씨는 겨우 목숨을 건졌다.

대충 상황이 끝나자 한쪽 구석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반쯤 기절한 아저씨를 발견했고, 허탈함, 후련함, 죄책감이 뒤섞인 기묘한 감정 때문에 의사에게 데려다 주었더랬다.

의사라고 해봐야 중세 의술이 뻔한 수준이라 치료하다가 안되면 장례라도 치러달라고 돈을 좀 넉넉하게 던지고 나왔는데, 우리 배가 출항하기 직전에 어떻게 알았는지 아픈 몸을 이끌고 날 찾아왔다.

그 후로는 뭐, 적당히 도움이 되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밀수품도 처분해주고, 장물도 처리해 주고, 가끔은 아저씨에게 밀항자를 주선받기도 했다.

당연히 나도 아저씨가 요구하는 물건을 배달(?) 하거나 대리구매(?)를 해주기도 했지.

사실 이런 불법적인 일을 할 때 그나마 믿을 수 있는 거래처가 있다는 것은 서로에게 상당히 유리했기 때문에 우리의 사이는 꽤나 돈독했었다.

그런데 이 아저씨, 바흐카덴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 로제까지 와 있는거야?

그리고 그것보다 장물부터 처리해야지.

“일단 이것부터 봐줘요.”

내가 품에 숨겨온 브로치를 내밀자 가볍게 받아들었던 발레아스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갔다.

“너, 이거 어디서 난거야? 내가 감정할 수준이 아닌데? 최고급품 같아.”

“아니 장물 처리하는 사람이 출처를 왜 물어봐요?”

“일단 기다려봐. 이거 재수 없으면 너랑 나 다 죽는다.”

심각한 표정으로 내 장난을 일축한 발레아스는 테이블 옆에 있는 줄을 당겼다.

잠깐 시간이 지나고 낡아빠진 책장처럼 생긴 곳이 살짝 열리더니 남자 하나가 나와서 아저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야, 너 가서 토토 영감 좀 불러와.”

“네, 보스.”

남자가 들어왔던 책장으로 사라지자 내가 가볍게 물었다.

당연히 긴장의 끈을 조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친절하고 도움이 되는 관계였다지만, 뒷골목 사람을 믿는건 정말 바보나 하는 짓이다.

재수 없게도 지하에 내려와 있어서 상황이 좀 꼬일 수는 있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어?

“토토? 이름이 웃기네요?”

“그냥 그렇게 불러. 이름은 아무도 몰라. 그래도 손재주랑 물건 보는 눈은 끝내주지.”

“뭐, 이 바닥에 정체 숨기는 사람이 한둘도 아니고. 그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요?”

“어휴, 말도 마라. 너도 알지? 붉은전갈파 놈들.”

붉은 전갈이라는 촌스러운 작명 센스를 보면 알겠지만 뒷골목 조직이다.

발레아스 아저씨와 적대관계인데, 사실상 바흐카덴의 뒷골목을 3분하고 있는 거대 조직이었다.

당연히 나머지 두 조직 중 하나가 발레아스 아저씨네 조직이었고.

내가 발레아스 아저씨랑 친하게 지내서 인지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몇 번 시비가 붙기는 했었다.

“아, 그 양아치들? 왜요?”

“그 새끼들 작년에 취임한 치안관이랑 무슨 짝짜꿍을 했는지 달그림자 조직을 눈 깜짝할 새에 흡수해 버렸어.”

“응? 달그림자면 그 살인청부업자들? 바흐카덴에서 아저씨네 조직보다 쎄지 않았나?”

“뭐야?! 우리가 뭐! 달그림자보다 밀릴 건 또 뭐야!”

갑자기 욱한 아저씨가 책상을 내리치며 언성을 높였다.

“아, 여튼 그래서 튀었어요?”

“말을 해도 좀... 튀었다니 그게 무슨... 그냥 좀 어? 작전상 후퇴! 뭐, 그런 거지.”

“아저씨 성격에 싸워보지도 않고?”

그러자 발레아스 아저씨는 잠시 입을 닫고 허공을 노려보더니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딱 3일. 3일 걸렸다, 달그림자라는 조직이 사라지는데.”

“엑? 아무리 그래도 살인청부업자들인데 그게 되나?”

“내 말이. 3일 만에 뒷골목 살인청부업자 조직을 없앤다? 치안관도 그건 못해.”

아저씨 말이 틀리지 않은게, 뒷골목 조직이 워낙 뿌리 뽑기 힘든 것도 있지만 살인청부조직은 더 심하다.

애초에 사람 죽이는 일로 돈을 버는데 조직 구조가 쉽게 드러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조직을 고작 3일 만에 없애버렸다?

그 정도 힘은 뒷골목에 투입되기에는 과한 전력이다.

냄새가 나는데?

“하여간 뭐, 뒷골목 이야기는 난 관심 없고. 아저씨는?”

“뻔하잖냐? 딱 봐도 위험한 냄새 솔솔 나지, 쓸 만한 정보는 하나도 없지. 바로 조직 정리해서 따라오겠다는 애들만 데리고 이쪽으로 사업장을 옮겼지.”

“튄 거 맞네 뭘.”

“아니라니까!”

실실거리며 아저씨와 투닥거리고 있는데 나지막한 노크가 들리더니 예의 그 책장 비밀문이 열리며 꼬장꼬장해 보이는 노인 하나가 들어왔다.

나이는 한 50대 중반 정도?

오른쪽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강인한 눈빛은 아직 자신이 현역임을 어필하는 것 같았다.

“어? 토토 영감! 빨리 왔구만?”

발레아스 아저씨가 한 손을 들고 활짝 웃으며 반기자 못마땅한 혀 차는 소리가 화답했다.

“쯧, 이래서 못 배운 놈들은... 네놈이 내 친구냐?!”

“어허, 오늘따라 왜 이리 까칠하지? 그러지 말고 이리 와보셔. 진짜 내가 보기 드문 걸 입수했어.”

“별 것 아니기만 해봐라 이놈.”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온 토토라고 불리운 노인은 내가 내미는 브로치를 보고 흥미롭다는 탄성을 내뱉었다.

“호오? 이런데서 볼 상품이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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