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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4화 (14/420)

<14화> 이세계 뒷골목에서 거래하는 법(3)

한참동안 브로치를 만지작거리던 토토 할아범은 나지막한 탄성을 뱉으며 내게 브로치를 돌려주었다.

“보석 상태도 그렇고, 세공도 그렇고, 최상급이야. 고위 귀족이나 쓸 법한 녀석인데? 어디서 났나?”

“아니 뭐, 고급 장신구야 돈만 많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푸하하하, 재밌는 말을 하는군. 돈이 많아도 이런 것을 함부로 쓰지는 못해. 세상이 그렇지 않나? 힘이 받쳐주지 못하는데 이런 고급품을 쓴다면 바로 빼앗기거나 공격받게 마련이지.”

하긴,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전생에서야 돈만 많다면 뭘 하건 상관없었지만, 여기는 전생이 아니다.

금력이 최 상위 권력이 아니라 계급, 무력, 권력에 휘둘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건 그런게 아니지.

“뭐든 상관없고, 얼마나 쳐줄 수 있어요?”

내가 살짝 정색하며 화제를 돌리자, 토토 할아범이 발레아스 아저씨를 힐끗 보며 말했다.

“딱 봐도 보통 위험한 물건이 아닌데, 이 녀석이 소화할 수 있으려나?”

그러자 탐욕의 눈빛으로 브로치를 노려보던 발레아스가 화들짝 놀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할아범은 날 뭘로 보고! 이게 무슨 왕실 물건이라도 되는게 아니라면 내가 취급 못할 건 또 뭐요! 내가 여기서 자리 잡은지 얼마 안되긴 했지만...”

“아저씨, 왕실 물건이면? 괜찮아요?”

“왕실 물건이면 내가 엉! 뭐? 왕실? 왕실... 이라고?!”

허세 가득하던 발레아스 아저씨의 어깨가 삽시간에 쪼그라들었다.

“어우, 넌 이걸 도대체...”

“최대한 출처는 숨겨야 해요. 걸리면 몇 명이 죽을지 모르는 판이니까. 괜찮아요?”

“아니, 내가 아직 자리도 제대로 못 잡았고 말이지...”

슬슬 허리를 뒤로 빼는 꼴이 겁을 잔뜩 먹은 모양새다.

그때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상황을 관찰하던 토토 할아범이 말을 툭 던졌다.

“출처만 잘 숨기면 200만 로스.”

잠시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200만 로스라니? 내가 5년 동안 죽어라고 모은 돈이 20만 로스도 안된다.

200만이면 산술적으로 내가 50년을 넘게 돈을 모아야 벌 수 있는 돈이라는 뜻이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사람은 발레아스 아저씨였다.

“내가 하마! 내가 어떻게든 처분해 줄께!”

어느새 브로치를 들고 있는 내 손을 꼭 부여잡은 발레아스 아저씨의 눈에는 탐욕이 넘실거렸다.

...솔직히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다.

“아유, 좀 놔 봐요! 쫌! 아오! 눈에 욕심이 하나 가득이구만 뭘!”

내가 힘겹게 아저씨의 손을 뿌리치고 아픈 손목을 주물럭거리고 있는데, 토토 할아범이 말을 걸었다.

“최근에 말이야, 프레티아 왕국에서 난리가 났다지? 왕녀가 도망갔다고 하던데...”

내 뒤에 서 있던 동료... 아니, 공범들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히 그 기색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토토 할아범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행방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아마 도주에 도움을 준 사람들은 살아남기 힘들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원하는게 뭐지, 할아범?”

내가 천천히 손을 내려 허리춤에 걸린 칼을 잡아가는 것을 보던 토토 할아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여기 발레아스 녀석은 처분할 수 없는 장물이다. 내가 맡으마.”

“아니! 내 걸 지금 눈앞에서 가로채겠다는거야, 할아범?!”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발레아스 아저씨가 발끈하며 화를 내자, 토토 할아범은 혀를 차더니 말했다.

“쯧쯧, 네놈도 알고 있잖느냐? 이거 잘못 건드리면 네놈도, 네놈 새끼들도 쥐도 새도 모르게 다 죽어. 소개비는 넉넉하게 줄테니 손 떼거라.”

“아니, 뭐, 꼭 내가 못하리라는 법도 있나?”

“......”

“그래서... 얼마나 주시려고?”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발레아스 아저씨를 보던 토토 할아범은 고개를 설래설래 젓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뭐, 200만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가격이고, 실제로 여기저기 돌리면서 세탁을 해야하니 그대로는 못준다. 절반 주마, 100만.”

“아니, 내가 할아버지를 어떻게 믿어요? 안그래도 목숨까지 걸린 일인데. 그리고 100만은 너무 후려치시는 것 같은데?”

내가 삐딱하게 대답하자, 겨우 제정신을 차린 발레아스 아저씨가 턱을 긁적이며 말했다.

“리안, 솔직히... 그거 나는 처분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안 되면 뒷골목에서는 처분 할 사람 거의 없을 거야.”

“방법이 없어요?”

“음, 괜한 놈한테 걸리지 말고 그냥 여기 할아범한테 넘겨. 나도 할아범이 무슨 재주로 처분하겠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못 믿을 분은 아냐.”

한참의 고민과 실랑이 끝에 나는 브로치를 토토 할아범에게 100만에 넘기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야 상황이 진정되고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 쯤 천천히 처분하고 싶었지만 다른 녀석들이 무언의 압박을 하는 통에 어쩔 수 없었다.

가격을 안 듣기라도 했으면 내가 꿀꺽하고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대충 쪼개줄 수도 있었지만, 모두가 가격을 들은 이상 말도 안되는 일이다.

선원들이 아무리 무식하다고 해도 100만보다 20만이 작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결국 그렇게 합의가 끝나고 나는 내친김에 목걸이를 내 놓았다.

“이건 어때요?”

내가 품에서 목걸이를 꺼내자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토토 영감은 내게 목걸이를 건네받아 진지하게 목걸이를 살펴보았다.

발레아스 아저씨도 호기심이 생기는지 대놓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토토 할아범이 목걸이를 탁 내려놓자 아저씨가 낚아채듯이 집어 들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건 뭐, 15만? 싸구려는 아니지만 특별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안보이는군.”

엑? 고작 15만? 아니, 15만이 고작은 아니지만 분명히 왕녀는 이 목걸이가 더 중요하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잔금으로 준 것도 목걸이였고, 자기가 복권되면 가지고 오라는 것도 브로치가 아니고 목걸이였다.

이쯤 되면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이 늙은이가 나한테 사기 치나?

“다시 한 번 보시죠, 이게 그렇게 싸구려가 아닐 텐데?”

“다시 볼 것도 없어. 이정도 물건은 흔해서 내가 잘못 볼 리가 없거든.”

토토 할아범의 심드렁한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발레아스 아저씨도 김빠진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그러네, 이건 나한테 넘겨라. 10만 쳐줄게. 어때?”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아저씨, 다시 한 번 봐 봐요.”

“왜 이래? 너 나 못 믿냐?”

“에이, 솔직히 밀수업자가 믿을만한 직업은 아니지.”

“뭐? 이자식이?!”

“아, 아, 장난이구요, 진짜 다시 보라니까요? 이게 잔금으로 받은 건데?”

그러자 고개를 갸우뚱 하며 다시 목걸이를 살펴보던 발레아스 아저씨는 한참 동안 꼼꼼히 살펴보고 나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야, 아무리 봐도 너 눈탱이 맞은 모양인데? 아니, 그럼 브로치가 선금이라는 소리니까 눈탱이는 아니지. 뭐, 왕녀님이 돈이 부족하셨나?”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처음에야 급한 마음에 비싼 브로치를 내밀었지만, 막상 주고 나니 너무 비싼 걸 줬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장신구들의 가치를 제대로 몰랐었을 수도 있고, 잔금으로 줄만한 더 비싼 패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조금 아쉬울 뿐, 딱히 당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니 쿨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굳이 이걸 지금 처분할 필요는 없겠지.

혹시 알아? 전생에서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왕녀가 복권에 성공할지?

“일단 이건 나중에 처분하죠. 지금은 저것만 해도 골치가 아프니.”

“그래? 하긴, 뭐 이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지.”

약간 아쉬운 목소리로 발레아스 아저씨가 손을 떼었다.

브로치와 비교당해서 그렇지, 목걸이 정도만 되도 상당히 괜찮은 장물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왕녀와 엮인 물건이니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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