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이직과 스카웃 제의의 함정(3)
이틀 동안 다른 배도 알아보는 것을 쉬지 않았지만 영 마음에 드는 녀석이 나타나지 않았다.
음.... 그것보다 네이선과 우르타가 이미 홀랑 빠진 느낌이라 열정이 떨어졌다고나 할까?
물론 고드실카 호에 이상이 생기는지 알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제 선술집에서 새 선원을 물색하는 갑판장을 만나기도 했다.
우린 잠시 복잡한 심정으로 눈빛을 교환했지만,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끝난거다. 전생을 각성한 이후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곳이지만, 이제 다시는 만날일이 없을거다.
아니, 없어야 하는거지.
별 소란 없이 항구에서 빠져나가는 고드실카 호를 보며 미련을 털어버린 나는 새 보금자리가 될 이클로나로 돌아왔다.
“리안, 괜찮아?”
내가 돌아오는 것을 본 우르타가 견시대 위에서 머리를 빼꼼 내밀고 크게 물어봤다.
고드실카의 견시대보다 1.5배쯤은 높아 보이는데 잘도 올라간다.
“어, 잘 갔어. 별 문제 없어 보이더라.”
자, 이제 새로운 생활에 적응 할 시간이다!
지금은 좀 잠잠하지만 출항하면 본격적인 신입 길들이기가 시작될거다.
물론 멍청하게 당할 생각은 아니라서 준비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 달쯤은 꽤나 고달픈 생활이 예상된다.
* * * * *
하늘은 맑고, 바다도 잔잔하고, 태양은 따뜻하고, 할 일은 있지만 뭐, 꼭 지금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벌써 이클로나에 승선한지 세 달이 흘렀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얼굴들이 쓸데없는 말을 한마디씩 하면서 지나간다.
반 쯤, 아니 대부분이 욕설이지만 처음 배를 탔을 때처럼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추임새 같은 거다.
다행히도 걱정했던 신고식은 좋게, 좋게 금방 끝났다.
몇 가지 묘하게 걸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이클로나 호가 현재 선주, 선장, 부선장의 통제하에 움직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부분이 컸다.
그러니까 경력직들을 모아놓기는 했지만 회사 자체는 신생 스타트 업 회사인 꼴이다.
거기에 내가 미리 준비한 뇌물을 초반에 살살 풀었더니 신고식은 간소하게 넘어갔다.
확실히 어디를 가더라도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황금만능주의 만세!
신고식이라고 해봐야 그저 험한 일 뺑뺑이 좀 몇 번 돌고, 나와 네이선이 줄에 묶인 채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정도가 전부였다.
항해중에 바다에 빠지는 것은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뱃사람이라는게 반쯤 목숨 걸고 하는 일이라 그 정도면 양호한거다.
이클로나에 대한 내 평가는 중상이다.
선장님은 60쯤 되보이는 단단한 인상의 노인인데, 꼭 군인 같다.
굉장히 무뚝뚝하고, 고드실카 호의 선장님처럼 선원들과는 거의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클로나에는 부선장에 1등 항해사가 한 명, 2등 항해사는 세 명이나 있고, 회계사까지 있어서 선장님은 솔직히 총괄 지휘? 정도만 하신다.
총 인원은 76명, 선박 크기에 비하면 조금 과한 인원이랄까?
내가 묘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이클로나는 확실히 상선이다.
그러니까 사략해적이나, 용병함, 탐험선 같은, 폭력적인 일을 주업으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 탐험선이 왜 폭력적이냐고?
항로도 제대로 안 알려진 미개척지를 다니는 탐험선이 곱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다닐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런 상선에 항해사나 회계사까지 있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포술장과 해병대장이 있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대포를 다루는 것은 현생이나 전생이나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요구한다.
심지어 전생에서는 중세에서나 썼을 법한 대포는 어설픈 지식으로 손댔다가는 대참사가 나기 십상이고, 정확한 사격통제가 없다면 화력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이곳은 정보매체나 교육 시스템이 거의 없는 곳이니, 일반인이 대포를 다루는데 필요한 화약이나 마법(원래 최고의 군수산업에는 최고의 기술이 들어간다)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보통 상선들이 해적에 대한 자위용으로 대포를 싣더라도 위협용으로 전시만 하거나, 위급 시에 쏘더라도 대충 어깨너머로 배운 녀석들이 몇 발을 대충 쏘고 도망치는데 주력하는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클로나는 몇 명 안 되지만 포병대가 있다.
일단 포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대부분 군인 출신, 그것도 고급 병종에 해당하는 희소 재원들이다.
애초에 상선에 타려고 하지도 않고, 태운다면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사람들은 고작 한 번이지만 주변에 다른 배가 없을 때 포격 훈련도 했었다.
더 말이 안 되는 존재들이 바로 해병대다.
육전대나 해병대나 내나 비슷한 말이기는 한데, 상선이 육상에 상륙해서 전투를 치를 일은 없을 테니 해병대 쪽이 더 어울리겠다.
실제로 지휘관을 해병대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말이지.
상선입장에서 해적선은 무조건 피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보통 갤리선을 사용하는 해적선이 더 빠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백병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선원 전체가 각자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운다.
조타수, 조범수, 견시수 이딴 거 안따지고 다 칼 들고 싸우는거다.
애초에 현재 하는 일에 따라 부르기는 하지만 사실 딱 정해서 저런 일만 하는 선원은 없다.
대부분 선원들이 갑판 청소도 하다가, 식사 준비를 하기도 하고, 견시를 보다가 돛 줄을 감거나 풀기도 한다.
물론 나는 견시대는 절대 안올라간다.
그런데 선박간의 전투를 상정한, 말 그대로 전투만을 담당하는 인원이 9명, 아니 해병대장까지 10명이나 있다.
이 사람들은 전투가 없는 평시 상황에서는 그냥 잉여 인간들이다.
놀고먹기는 미안한지 자기들끼리 훈련도 하고, 다른 평 선원들에게 칼질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하지만 대부분 아니꼽게 보는게 사실이다.
물론 대놓고 말하는 미친놈은 없다.
이 놈들 체격도 좋지만, 진짜 칼질 잘하거든.
네이선이 초반에 깝죽대다가 대차게 쳐 맞았을 정도였다.
네이선이 철면피처럼 달라붙어서 칼질을 배운 덕분에 요즘은 대련 같은 것을 해도 밀리지 않는 모양이지만, 처음에 네이선이 뭘 해보지도 못하고 칼등으로 쳐 맞을 때는 내가 다 오싹했었다.
심지어 해병대원들이 심심찮게 네이선에게 해병대가 될 생각이 없냐고 툭툭 농담처럼 던지는게, 조만간 해병대 소속이 11명으로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도 틈만 나면 조금씩 배우고 있지만, 영 소질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 야만이 넘쳐흐르는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력이 필수라서 이를 악물고 배우는 중이다.
결론적으로 스스로 상선이라고 하고, 확실히 상행위밖에 안하고 있지만 이클로나 호는 상당히 이질적이다.
부선장인 테일러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호의를 내게 보내고 있어서 망설이고 있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빨리 다른 배로 옮겨 타고 싶다.
이제 대형 상선에서 하는 일도 대충 손에 익었으니, 어딜 가더라도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좀 문제인데... 항구에서 그냥 튀어버리기에는 약간의 미안함도 있고 왠지 모르게 자존심도 상한다.
무슨 좋은 방법이...
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땡!
갑자기 견시대에서 간만에 찾아온 내면의 평화를 박살내는 급박한 타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에 가까운 견시 보고가 내 귀를 때린다.
“좌현 240도! 갤리선 출현! 이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현 80도! 갤리선 출현! 어, 어? 두, 두 척입니다!”
“좌, 좌현 350도! 개, 갤리선 출현! 이쪽으로 급속 접근 중!”
음, 내해에서 갤리선은 상선으로도 자주 쓰인다.
특히나 이동 거리가 짧고 바람이 미약한 연안 항로는 범선보다 갤리선이 효율적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사방을 포위하고 접근하는 갤리선?
확인 할 것도 없다, 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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