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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19화 (19/420)

<19화> 위기에서 적성을 찾는것이 정석(1)

배 안이 삽시간에 시끌벅적 해졌다.

선장, 부선장에 항해사들까지 다 헐레벌떡 뛰어나왔고, 갑판장은 선원들을 배치하느라 인사할 시간조차 없었다.

“전부 칼 들어!”

“거기 다섯 명! 조범수 지원해!”

“야! 너희들 뭐해! 당장 무기고 가서 석궁 들고 와!”

나 역시 화물칸에서 꺼내 온 상자로 현측에 임시 바리케이트를 쌓고 있는데, 부선장님과 당직을 서고 있던 2등 항해사 조엘의 대화가 들려왔다.

“그래서 탈출로는?”

“현재 비어있는 북동쪽은 역풍이라서 속도가 안나옵니다.”

“충돌 예상 시간은?”

“현재상태로 진행할 경우 20분 내에 우현으로 접근하는 두 척의 선박과 교전거리에 들어섭니다. 이후 근소한 차이로 선수방향의 선박이 근접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후우... 적의 규모는?”

“인식되는 선박의 크기로 볼 때, 해적일 경우 약 50명씩은 승선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싸워야지. 그보다 어떤 놈들이...”

해적 수만 200명이라니... 배가 커지니까 위협의 수준도 덩달아서 커진다.

고드실카를 탈 때까지만 해도 해적이 30명이면 다 죽을 각오를 해야 했는데...

그런데 우리 인원이 고작 70명 남짓인데 이 인원으로 싸울 수가 있나?

아무리 해병대가 있다고 해도 힘들 것 같은데, 별로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잖아?

“저, 부선장님. 혹시... 각개격파를 시도...”

“응? 무슨 말이지?”

목숨이 걸렸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서 부선장에게 말을 걸자, 부선장 테일러가 날카로운 표정으로 반문했다.

그런데 무슨 말이냐고? 설마 4:1로 그냥 붙을 셈인가?

“아니 다름이 아니라, 북서쪽은 빠르게 접근할 수 있고 해적 50명 정도라면 해병대를 앞세운 저희가 빠르게 제압할 수 있을 테니 200명을 한 번에 맞이하기보다는 그렇게 쪼개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의외라는 표정을 지은 테일러가 표정을 굳히더니 옆에 있던 1등 항해사에게 말했다.

“흠, 일리가 있군. 1등 항해사! 타륜 잡아! 목표는 선수 쪽 갤리선 우현 방향이다!”

“네! 1등 항해사 타륜 인계받았습니다!”

1등 항해사가 조타수를 맡고 있던 선원을 물리고 타륜을 잡자, 테일러는 이어서 갑판장을 보고 소리쳤다.

“갑판장, 우현 충돌 대비! 돛 최대로! 우현 포대에 포격 준비하라고 전달해!”

“네! 부선장님!”

“해병대장 어디 있나!”

잠시 후 완전 무장한 해병대원들을 데리고 온 해병대장이 선장님 앞에서 경례를 올렸다.

“선장님, 해병대 전투 준비 완료했습니다.”

그러자 테일러가 지시하는 것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선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좋아. 지금부터 부선장 지시를 따르도록.”

“넵! 부선장님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해병대는 적함과 조우할 때까지 함수 창고에서 대기한다. 적함과 교전이 발생하면 역으로 치고 들어가서 적함을 점거하도록.”

“넵! 해병대, 뒤로 돌아! 함수 창고로 간다!”

일사불란하게 사라지는 해병대를 보고 있으니 뭔가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런데 2열종대로 사라지는 해병대... 쟤들 9명인데 왜 맨 뒷줄이 짝이 맞는 거야?

네이선 이 새끼! 어디 갔나 했더니?!

쌍방이 최고속도로 서로를 향해 달려드니 두 배의 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얼핏 보니 이쪽에서 미친 듯이 접근하자 저쪽 배 위에서 소란스러워지며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만, 배라는게 그렇게 급제동이 되는게 아니다.

겨우 바리케이트를 다 쌓고 영 손에 익지 않는 커틀라스(검신이 짧고 베기에 유리한 곡도)를 쥐고 바리케이트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좌측으로 크게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배가 균형을 회복하자마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선체가 떨리며 크게 휘청거렸다.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바다 위에서는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적당히 근접해서 가한 포격은 비록 유효탄을 내지는 못했지만, 4발 모두 해적선의 지근거리에 착탄하면서 엄청난 물기둥을 만들어 갑판위에서 기세를 올리던 해적놈들을 쫄딱 젖게 만든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우리는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포격을 가해야 하지만, 뒤쪽에서 기를 쓰고 접근하는 다른 세 선박 때문에 우리도 천천히 적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서로간의 거리가 50m나 남았을까? 해적놈들의 꼬질꼬질한 얼굴의 표정이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두 번째 포격이 가해졌다.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서 쏘아진 포탄은 예외 없이 적선에 틀어박혔고, 사방으로 나무파편을 흩뿌리며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몇 명의 해적은 바다에 떨어지고, 몇 놈은 피를 뿜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 피를 뿌리고 비명도 못 지른 놈들도 있겠지만, 죽은 사람은 원래 신경 끄는 편이 좋은 법이다.

그리고 갑판장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접현한다! 전원 충격 대비! 갈고리 준비!”

양쪽이 접현 하려고 하는 판이니 접현은 금방 이루어졌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양쪽에서 갈고리가 날아가고, 고정이 되자마자 준비해 둔 아래쪽에 못이 박힌 널빤지가 두 배 사이에 놓였다.

그리고 그 위를 해적놈들이... 어이없는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어느새 대기하고 있던 해병대가 노도처럼 밀고 들고 들어갔다.

해적선에 뛰어내린 해병대는 강하게 해적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그것을 구경하고 있을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널빤지가 한두개가 아닌만큼 저쪽에서도 해적들이 넘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선두의 해적이 우리 배를 밟기 한 발 전에 갑판장의 냉정한 명령이 떨어졌다.

“사격!”

미리 바리케이트 뒤에서 석궁을 장전해 놓고 기다리던 선원 열 명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고작 5m도 안되는 거리에 있는 사람크기의 거대 목표물을 못 맞추는 멍청이는 없었기 때문에 쿼럴은 모조리 인간의 연약한 육체를 헤집었다.

대번에 우리 배에 접근하던 대여섯명이 비명과 함께 추풍낙엽처럼 바다로 곤두박질치자, 뒤에 있던 해적들이 잠깐 주춤하는 듯 했지만 이내 악에 받친 함성을 내지르며 이쪽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 * * * *

“끄어어억...!”

숨이 넘어가는 사람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적응이 안된다.

나는 피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는 남자를 발로 차서 밀어내며 목과 쇄골 사이에 박힌 커틀라스를 뽑아냈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니 전투는 거의 우리의 압승으로 끝나가는 것 같았다.

이쪽으로 건너온 해적들이 열 명쯤 남아있는 것 같지만 죄다 합공을 당하고 있어서 곧 숨이 끊길 판이었고, 해적선 쪽은 해병대원들 말고는 대충 봐도 서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때 상대하고 있던 녀석의 가슴을 깊게 베어버린 갑판장이 칼을 크게 휘둘러서 핏물을 털어내며 소리쳤다.

“해병대장! 건너오시오! 오시기 전에 닻 던지는 거 잊지 마시고!”

“빨리빨리 치워! 언제까지 그놈들 붙들고 있을거야?! 야 리안! 멍청하게 있지 말고 널빤지 걷어!”

“네? 네, 네!”

아, 내가 지금 상대한 해적이 몇 명인데 좀 쉬면 안되나... 라고 팔자 좋은 소리 하기에는 방금 확인한 다른 해적선들의 위치가 심상치 않았다.

비록 몇 명은 바다에 뛰어들어서 목숨을 건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50명이 넘어 보이던 해적을 단시간에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쪽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 하나씩 건너오는 해병대들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느라 체력 손실이 상당할 테고, 선원들 중에도 죽거나 다친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상대해야 할 적은 이전의 세 배.

솔직히 가능하면 이탈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이정도 거리에서 이미 가속이 붙은 갤리선을 멈춰있던 범선이 따돌릴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그리고 포격으로는 뭐... 아까 본 것처럼 그냥 평범한 쇠구슬 몇 대 맞는다고 배가 금방 침몰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서, 고작 4문의 대포로는 적을 격퇴할 수 없다.

해병대가 이쪽으로 다 건너오자 우리는 남아있던 널빤지와 갈고리를 제거하고 무인선이 되어버린 해적선을 분리했다.

그리고 다시 최대한 펼쳐진 돛이 바람을 받기 시작하자, 그 사이에 제법 근접한 두 척의 해적선에게 포격이 시작되었다.

아직 거리가 먼 만큼 지근탄도 나오지 않았지만, 놈들에게 위협을 가해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효과 정도는 있을 것이다.

긴장이 조금 풀리면서 탈력감이 찾아와서 바닥에 널부러져 쉬고 있는데, 내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또 갑판장인가 싶어서 얼른 뒤돌아보자, 온 몸에 피로 범벅을 한 채 웃고 있는(솔직히 좀 오싹했다) 네이선이 서 있었다.

“리안, 어디 안 다쳤어?”

“어, 네이선. 아 맞다! 너 왜 해병대랑 같이 움직여?! 그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최강의 전력이라는 뜻은 가장 위험한 전투를 치른다는 뜻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정식으로 훈련받은 해병대원도 아닌 네이선이 뭐하러 그런 위험한 곳을 일부러 찾아간다는 말인가?

“하하, 대장님이 이번 항해 수당을 두 배로 주신댔어! 그리고 어차피 싸울거면 옆에 조금이라도 강한 사람이 있는게 좋잖아?”

“뭐라는거야, 이 바보가? 해병대가 가는데면 제일 위험한데일게 뻔한데 뭐가 좋아?!”

“아니야, 어차피 다 해적인데 뭘. 물론 리안이랑 우르타를 못 지켜줘서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

피가 굳으면서 간지러운지 코 밑을 긁적이며 말하는 네이선이 새롭게 보인다.

비록 실제 나이차이는 얼마 안나지만 코찔찔이였던 신입선원일 때부터 보기 시작해서 어쩌다보니 두 번째 배를 같이 타게 된 녀석이다.

처음 볼 때만 해도 몸만 좋은 순박한 시골 청년이었던 네이선이, 어느새 나보다 더한 피 냄새를 풍기는 전사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우르타는 어디있어?”

어라? 그러고보니 우르타는 도대체 어디있는거야?

전투 내내 한 번도 못본 것 같은데?!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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