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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0화 (20/420)

<20화> 위기에서 적성을 찾는것이 정석(2)

갑자기 생각난 우르타가 어디에 있는지 찾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포격을 피하기 위해서 수시로 선수를 돌리면서 움직이고 있지만 갤리선은 충분히 빨랐고, 아직 가속이 제대로 붙지 않은 우리는 너무 느렸다.

심지어 포격으로 견제하기 위해서 현측을 상대쪽으로 향하고 움직이다보니 선박간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꽤나 가까워진 두 척의 해적선을 착잡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데, 결국 명중탄이 터지면서 선원들 사이에 함성이 일었다.

선수 쪽 좌현 중간을 파고 든 포탄이 노잡이들에게 문제를 일으켰는지, 한참 동안 노의 움직임 전체가 멈추는 럭키 샷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수습을 했는지 겨우 해적선의 노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부지불식간에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내질렀다.

“이런 미친! 저게 뭐야?!”

다른 선원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함성소리 조차 나오지 않았다.

움직임이 줄어든 해적선은 급 기동을 하는 녀석보다 손쉬운 먹잇감이니, 다음 일제사격이 그쪽으로 몰릴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명중한 세 발의 포탄은 선박을 뚫는 것이 아니라, 폭발시켰다.

정확하게 말하면 타겟에 닿자마자 강력한 화염과 함께 포탄 자체가 터진 것이다.

전생의 영화에서 자주 보던 폭발 형태와는 조금 달랐지만, 확실한 것은 이 시대에 있기에는 과한 위력이었다.

아직도 엄연히 현역에서 활동하는 구식 대포에는 사석탄(돌을 깎아만든 포탄)을 쓰는 상황에서 오버 테크놀로지도 어느 정도지, 소이탄 혹은 고폭탄 급의 포탄이라니?

하지만 단순한 선원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우와아아아!! 이길 수 있어!”

“저 꼴을 보라구! 불도 못 끄고 있잖아!”

선원들의 끝없는 함성속에서 겨우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찬찬히 피격당한 해적선을 보니, 생각만큼 피해가 큰 것은 아니었다.

물론 쇠구슬에 불과한 일반 포탄보다야 훨씬 위력적이지만, 만약 전생 수준의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 포탄이었다면 조잡한 목선 따위는 단 한발만 명중해도 완파 당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해적선의 갑판 위쪽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듯 어지럽기는 했지만, 완파는커녕 반파도 당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접근해 왔다.

그러니까 순간적인 화염을 발생시켜 시각적 효과는 화려했지만, 의외로 파괴력이라던가 인명 살상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해적들 역시 충격은 충격이었는지 점점 다가오는 속도가 줄어들더니, 가장 멀리 있던 해적선이 선수를 돌리는 것을 시작으로 하나씩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쪽도 이득은커녕 손해만 막심한 해적과의 싸움을 더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해적선과 이클로나는 서로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리고 해적선이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던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지친 몸을 갑판에 내던지며 욕설을 내뱉었다.

“제기랄, 온몸이 삐그덕 거리네.”

“야, 야, 난 목이 안 움직여.”

“닥쳐, 케일 녀석은 목에 칼 맞았다고.”

“뭐? 케일이 죽었어?”

“아니, 얕게 들어가서 아직은 살아있을걸?”

케일 녀석이 중상을 입은 모양이군.

그리 친하지 않은 녀석이지만 씁쓸하기는 하다.

비록 얕게 들어갔다고 말했지만, 하필이면 상처 난 곳이 목이다.

변변한 의료 시설은커녕 응급조치조차 그저 지혈대로 피가 나는 곳을 묶는 정도에 불과한 이 곳에서 치명적인 목에 칼을 맞고 살아남기는 요원한 일이다.

육상이라면 물이라도 마음 껏 쓰겠지만, 배에서는 그마저도 사치니 말이다.

그나저나 우르타 이 자식은 어디에 있는 거지?

안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상자가 모여 있는 곳이랑 사망자의 시신을 모아둔 곳도 확인해 보았지만, 우르타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비록 칼 쓰는 실력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바다에 떨어질 만큼 반푼이는 아닌데 도대체 어디를 있는 걸까?

설마 무섭다고 숨어있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그런 짓을 했다면 누구도 목숨을 부지하기는 어렵다.

모든 것이 제한된 배라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열외를 허용하면, 규율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직접 칼을 들고 전투에 참여하신 것은 아니지만 선장님조차 타륜 옆에서 끝까지 전투를 지휘하고 조함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감히 선원이 전투를 이탈했다? 바로 추방형이다.

아, 당연히 바다 위에서 추방한다. 손발은 친절하게 묶어주고.

겨우 정신을 차린 갑판장의 지휘 하에 갑판을 정리하고 있는데, 하부 선창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몇 명의 선원이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우르타가 끼어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었냐고 물어보려던 내게 우르타는 빠른 속도로 다가와서 내 일을 거드는 척 하며 낮게 속삭였다.

“리안, 리안. 혹시 그거 마지막 거 봤어?”

“마지막 뭐? 아니, 이게 아니지. 너 이 녀석 어디에 있었던 거야?

“응? 나는 아래...”

“설마 어디 숨어있었던 것은 아니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멍하니 보던 우르타가 배를 잡고 웃어 재끼며 말했다.

“으하하하, 하핫, 내가, 히히힛, 숨어 있는 줄 알았어?”

“아니, 왜 쳐 웃고 지랄이야, 지랄은. 전투 내내 안보이니까 그렇지.”

“아, 포갑판에 있었어.”

“엥? 포갑판은 왜?”

* * * * *

- 전투 발발 직전 1층 포갑판 -

실화를 막기 위해 물에 적신 낡은 천이 담긴 상자를 포갑판으로 옮겨 놓은 우르타는 싫은 티를 숨기지 않았다.

어둡고 꽉 막히고, 심지어 좁기까지 한 공간. 가장 싫어하는 공간...

언제부터였을까? 기억이 닿은 최초의 순간부터 우르타는 막힌 공간이 싫었다.

반대로 뻥 뚫린 공간, 시야가 한없이 확장되는 높은 곳이 좋았다.

보통은 어렸을 때 밀폐되고 좁은 곳에 갇히면 그렇게 된다고 하는데, 우르타는 딱히 그런 기억이 없음에도 그랬다.

그래서 집을 나와 무작정 항구로 갔다.

넓은 바다로 가고 싶었고, 우연히 리안을 만나 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에서 가장 높은 곳, 견시대는 우르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견시대에 서면 상상도 못했던 먼 곳까지 볼 수가 있다.

가슴까지 뻥 뚫리는 해방감은, 그곳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시간이 지나도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견시대에 대한 상상으로 기분을 끌어 올린 우르타가 바닥에 천조각을 늘어놓고 있는데, 포병대장의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았다.

“거기, 너!”

“네? 저요?”

“그래, 너 견시수였지?”

“네에...”

딱히 견시수라고 보직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주로 하는 일이 견시수였기 때문에 우르타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관측병이 하나 필요해. 네가 저쪽에서 우현쪽 관측병을 맡도록.”

“네에? 전 그런거 모르는데요?”

“내가 물어보면 보이는 대로 대답만 하면 된다. 눈은 좋겠지?”

“눈이 좋은 편이긴 한데...”

“그만! 지금 전시상황인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나? 빨리 자리로 가!”

어쩔 수 없이 포병대장이 말하는 자리로 가면서 우르타는 쉬지 않고 궁시렁 거렸다.

방금 포혈이 열리면서 밀폐 상태는 벗어나서 다행이기는 하지만...

우르타는 정말, 정말, 이 좁고 어두운 공간이 싫었다.

하지만 포혈로 들어온 빛에 그 자태를 온전히 드러낸 거대한 대포는, 이 최악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었다.

* * * * *

“그래서 전투 내내 포갑판에 있었다고?”

“응! 그 대포라는 것 말이야...”

다시 또 대포 예찬론을 꺼내는 우르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포탄의 정체는 우르타가 알아왔다.

무려 마법포탄이란다.

하여간 이놈의 마법이라는 녀석이 늘 오버테크놀로지의 주역이다.

슬쩍슬쩍 우르타가 알아본 결과 비밀리에 제작된 시제품 정도 되는 것 같다.

보아하니 내 눈에는 안차도 다른 사람들은 꽤나 만족하는 것 같으니 조만간 세상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겠다.

저 포탄이 흔하게 사용되기 전에 배타는 일을 접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이 된다.

저런 포탄이 사용되면 해전은 점점 더 사망 위험도가 높아질게 뻔하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내 신념에 어긋난다.

그리고 그보다... 이제 겨우 시제품인 포탄을 군함이 아니라 일개 상선이 가지고 있다고?

점점 더 심한 구린내가 나는 것 같다.

어쩌면 나, 이전의 왕녀 사건보다 큰 사건에 휘말리는 것 아닐까?

배를 돌려 나포(?)에 성공한 해적선이 있는 곳으로 방향을 틀라고 지시하는 부선장 테일러를 바라보는 내 심정이 점점 복잡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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