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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1화 (21/420)

<21화> 위기에서 적성을 찾는것이 정석(3)

해적선을 남겨둔 위치로 돌아가는 동안 우리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반대쪽에서 접근하는 해적선 한 척이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보자마자 뱃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셋이 있을 때도 승산이 없어서(솔직하게 말하자면 피해가 커질 것이 무서워서) 도망을 쳤는데 혼자서는 엉겨볼 엄두가 안났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 자신들이 노리는 빈 해적선이 왜 비어 버렸는지 알고 있는 상황이니 뭐...

비어있는 해적선을 나포해서 이클로나의 뒤꽁무니에 매다는데 성공한 선원들은 올라가는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주체하지 못했다.

선원 중에 7명이 죽고 11명이 다쳤지만, 그런 것을 마음에 담아두는 녀석은 없었다.

나도 죽거나 다친 녀석들과 모르는 사이가 아니지만, 소식을 들었을 때 잠깐 우울했을 뿐, 별 감흥이 없었다.

굳이 이런 전투가 아니더라도 수시로 죽어나가는 것이 선원이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떠난 사람 모두에게 의미를 부여했다가는 멘탈이 버티지 못한다.

뭐, 우르타나 네이선이 죽었다면 조금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관습적으로 해적질(?)로 얻은 재물은 선원들에게 고르게 분배된다.

여기에서 ‘고르게’라는 뜻은 전투에 기여한 정도와 선내 직위와 직급에 따른 차등을 둔다는 뜻이지만, 하여튼 추가 수익이 생긴다는 것이 중요했다.

게다가 고작 약탈품 정도가 아니라 무려 ‘선박’이다.

포격을 받아서 여기저기 부서졌고 관리 상태도 엉망인 중형 갤리선이지만, 심지어 급매로 내놓으면 얼마 받지도 못하겠지만, 그래도 선박이다.

보통 선원들은 평생 꿈도 못 꾸는 가격이라는 뜻이다.

대충 정리가 끝나고 소란이 가라앉고, 지휘를 항해사들에게 넘기고 부선장실을 향하던 테일러가 문득 나를 보더니 손짓으로 불렀다.

“잠깐 나 좀 보지.”

무뚝뚝하게 자신이 할 말만 하고 몸을 돌려 걸어가는 테일러가 향하는 곳은 부선장실이었다.

바로 들어가도 되는지 몰라서 문 앞에서 살짝 머뭇거리자, 그는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음, 조금 엉망이기는 하지만 그냥 들어오게.”

부선장실은 난장판이었다.

하긴 그 난리를 겪었는데 물건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도 이상하긴 하겠다.

다른 곳들이야 선원들이 대충 치웠지만, 선장실이나 부선장실, 해도실 같은 특별한 공간들은 일반 선원들이 들어가기 힘들다.

한 쪽 구석에 넘어져 있던 의자 둘을 집어 든 테일러는, 하나를 깔고 앉으면 내게 하나를 건네 주었다.

“앉지. 보다시피 뭘 권하기는 힘든 상황이고...”

“네, 괜찮습니다.”

“후후, 왜 불렀는지 알겠나?”

“아, 글쎄요? 딱히 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눈빛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타일러를 직시하지 못하고 눈을 돌리고 있는데,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궁금한게 많을 거야. 그동안 여기저기 많이 알아보더군?”

“헛... 그게, 그냥 저는 빨리 적응하려고...”

“탓하는 것은 아닐세. 뭐... 보아하니 오늘 전투에 대해서도 의문이 많을 것 같군.”

“아닙니다...”

의문이야 말도 못하게 많지만 그렇다고 그걸 다 물어볼 수는 없잖아?

나는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는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된다고.

“그래,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지. 출신도 변변치 않은 청년, 도저히 공부를 했을 상황은 아님에도 왠만한 학자들보다 넓은 지식, 놀라운 직관력과 통찰력, 거기에 논리적 추리까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거든.”

“아하하하...”

아니 그렇게 말할 정도는 아닌데... 그냥 인생이 2회차이고, 전생에서 공부를 20년이나 하다보니 그냥 공부랑 연이 없던 보통 사람보다 나은 것 뿐이다.

“그래서 그냥 뱃사람 특유의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자네를 겪기 전까지 말이야.”

“하하, 그 정도는 아닙...”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웃음으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테일러가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래, 그 정도가 아냐. 자네는 도대체 누구지? 확실히 첩자나 뭐 그런 쪽은 아니겠군. 자네 정도 인재를 첩자로 쓰는 나라가 있을리 없으니.”

“아니 무슨 인재까지... 뭐, 제가 조금 남들보다 잔머리를 잘 쓰기는 합니다만.”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내가 하고싶은 말은 이걸세.”

잠시 입을 닫고 말을 고르던 테일러가 심호흡을 하며 은근하게 물어왔다.

“자네 아니, 리안군. 나와 함께 하지 않겠나? 다시 소개하지. 몰로스 제국 제 1함대 소속, 테일러 우스칸트 중령일세.”

그래, 이런 전개가 되어야 말이 된다.

그런데 제국에 함대가 있나?

제국은 전통적인 육상 교역망을 중시하는 국가이고 애초에 국토 대부분이 내륙이다.

심지어 제대로 된 항구도 별로 없다.

그래서 연안을 지키는 순시선이나 있을 뿐, 함대라고 할 만한 전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뭐, 순시선도 굳이 따지면 군함으로 분류할 수 있으니까 함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차마 남에게 저렇게 당당하게 말할 일은 아니었다.

“저, 그런데 제국에 함대가 있습니까?”

“물론 임시직이지. 지금 창설중이니까.”

“아, 네....”

모든 조직이라는 것이 그렇지만 해군도 ‘만들자!’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군함은 기본이고, 체계적으로 교육된 지휘관과 훈련된 병력이 필요했다.

추가적으로 안정적인 거점이 될 군항, 수행할 임무, 잘 짜여진 조직 등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지 못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해군이랍시고 새로 건조한 군함에, 배 한번 타보지 못한 지휘관과 간부들, 육군에서 차출된 병력을 넣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병력들은 부족한대로 연안 순시선에서 차출한다고 하더라도 지휘관이나 간부급들은 최소한 이런 상선이라도 태워서 장거리 항해에 대한 경험을...?!?!?

“설마... 경험을 쌓기 위해서...?”

“확실히 놀라운 추리력이야, 그래. 선장님 이하 간부들, 해병대, 포병대, 그리고 몇몇 선원들까지 본국에서 엄선하여 파견된 병력이다. 제국의 이름에 어울리는 함대를 갖추기 위해서.”

“하지만 이런 상선 따위와 군함은 다릅니다!”

“다르겠지. 하지만 우리가 제대로 된 해군을 창설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나라들이 전력을 당해 막아왔어. 특히 일레드 놈들은...”

아... 대륙 최강이라는 몰로스 제국이 이런 대항해시대에 해상 활동이 미약해서 의문이었는데, 지속적인 견제 때문에 활동을 안한게 아니고 못했던 모양이다.

다른 나라들도 필사적이긴 했을 것이다.

안그래도 다른 나라들과 월등한 격차로 ‘제국’을 공인 받은 나라가 바다까지 집어삼키면 그때는 따라잡을 길이 요원해질 테니까.

“자네는 일레드의 최근 강세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탄탄한 서해 항로의 수입과 강력한 해군을 통한 내해 장악력 아니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이지.”

“그, 그게...”

궁금하지 않다.

아니 궁금하긴 한데, 알고싶지 않다.

애초에 일반인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일반인이 아니거나 인간이 아니게 되잖아?

저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아마 테일러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죽어야 할 것이다.

“북해 항로. 환상의 대륙 노던테라. 들어는 봤겠지?”

아, 취소다. 항구에 떠도는 헛소문을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그냥 몽상가인 모양이다.

“그것은 그냥 소문...”

“아니! 노던테라는 실존하고 실제로 북해 항로는 존재한다. 물론 그곳이 제도인지, 섬인지, 대륙인지는 몰라. 하지만 일레드에서 쏟아지는 최고급 모피, 질 좋은 강철, 각종 귀금속과 마정석까지... 고작 향료 제도에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아니 아저씨, 우리는 그것을 근거 없는 추측이라고 하거든요?

그냥 확인되지 않은 당신의 의심일 뿐이라고!

“하지만 진짜 그런 것이 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제국 정보부에서 극비리에 알아낸 사실이다. 내해와 서해 항로의 일레드 군함들? 그들은 그저 눈속임이야. 일레드 해군의 가장 중요한 일은 노던테라로 향하는 항로를 독점하는 것이다.”

그래, 정보부에서 극비리에 알아낸 일을 이제 그냥 선원인 내가 알게 되었군.

하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올인 해 볼까?

솔직히 요즘 들어 ‘선주가 되어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산다‘라는 목표가 좀 회의적으로 느껴지고 있는 참이다.

얼마 전에 왕녀 사건을 겪으며 인생에서 한 번이나 있을법한 큰 돈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목표치는 멀기만 하다.

왕녀 사건 같은 것이 매년 일어나는 정기 이벤트가 아닌 이상에야 배를 사기전에 내가 늙어 죽게 생겼다.

만약 제국 해군이 성공적으로 창설된다면 최소한 전투함의 갑판장까지는 될 것 같다.

항해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항해사나 함장은 힘들겠지만, 잘만 하면 부함장까지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정규 해군 전투함의 부함장이면 전생에서도 영관급 장교였고, 이 곳에서는 위상이 더 높다.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상류층 최하단에 진입이 가능할 정도니까 부족하지는 않을 거다.

뭐, 상선보다 위험하기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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