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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24화 (24/420)

<24화> 여자는 이유없이 다가오지 않는다(2)

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지만 우르타와 네이선은 딱히 놀라지 않았다.

조용한 밤에 훈련되지 않은 여자들이 뒤를 밟는데도 모를 정도로 어리숙한 녀석들이 아니니까 이미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뒤를 보자 순간적으로 한 명은 앞을, 한 명은 좌우를 살피는 것이 제법 노련한 티마저 난다.

잠시 머뭇거리던 여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술집에서 스쳐봤던 여자 세 명이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한 발 앞으로 더 나오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어디로 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히 다른 술집이지. 그건 아가씨들이 왜 궁금하지?”

“그럼 저희가 아는 가게로...”

“아니. 제안은 고맙지만 사양하지.”

보아하니 창녀들 같은데, 뭘 믿고 그녀들을 따라간다는 말인가?

평소라고 해도 속옷까지 탈탈 털릴 위험이 높은데, 지금처럼 소문이 퍼진 상태라면 목숨까지 위험하다.

대화를 하면서 몇 걸음 더 다가오는 바람에 이목구비를 구분할 수 있게 된 그녀들은 심지어 제법 예쁜 편이었다.

창녀에도 급이 있다.

그럼 선원들이나 주로 가는 선술집에서 영업하는 창녀는 어느 정도 등급일까?

선술집의 수준이 동네 불량배들이 주로 다니는 술집보다 수준이 떨어진다고 하면 어느 정도 인지 알겠지?

젊은 여자는커녕 나이가 내게 이모님 쯤 되어 보여도 추녀만 아니면 양호한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세 명은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나이는 대략 20대 후반쯤,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들을 정도의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아, 그래서 내가 술집에서 이 여자들을 제대로 못 봤구나.

남자들이 근처에 하도 많아서 얼굴도 제대로 안보였었다.

전생이나 현생이나 똑같이 통용되는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유 없이 미녀가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라’였다.

“그럼 어두우니 조심히들 돌아가라고.”

내가 약간 비꼬는 느낌으로 인사를 던지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리자, 아쉬운 듯이 뒤를 힐끔 거리는 두 녀석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르타와 네이선 모두 여자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만취 상태로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라 여자에 대해 내성이 좀 낮은 편이다.

방금 전까지 제법 노련한 티가 난다고 흐뭇해하던 내가 왠지 한심해져서 조용히 한숨을 폭 내쉬는데, 뒤에서 다급한 말이 들려왔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혹시 다음 술집에 같이 가도 될까요?”

하아, 이런 뜬금없는 전개, 도대체 뭔데?

물론 네이선이 좀 잘생기기는 했다.

우르타도 선이 가늘기는 하지만 제법 괜찮은 타입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 여자들이 우리에게 반해서 합석을 신청했다고 믿는 바보는 없겠지?

당연히 우리 돈을 노리고 온 것이 분명하다!

“아가씨들, 미안하지만 우린 돈이 별로 없어. 은행에 다 맡기고 왔다고.”

이건 진짜다.

이렇게 빨리 소문이 퍼질 줄은 몰랐지만 분명히 소문이 돌 것 정도는 예상했거든.

대놓고 해적선을 나포해서 항구에 들어왔는데 소문이 안도는게 이상하잖아?

그리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이왕 계좌를 만들었으니 많은 돈을 들고 다니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내가 당당하게 외쳤지만 그녀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뿐, 극적인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한 여자가 손뼉을 치며 눈을 동그랗게 만들며 말했다.

“은행... 아, 들은 적 있어요! 그런 곳은 귀족님들이나 다니는 곳 인줄 알았는데, 아닌가봐요?”

“어머,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네요!”

“그러게? 어쩐지 무식하고 못생긴 다른 선원들과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했더니...어쩜!”

“오빠들~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놀아요~”

* * * * *

난 떨떠름한 눈빛으로 하하호호 떠들고 있는 2남 3녀를 바라보았다.

끝내 우리를 따라 온 세 여자는 우리와 합석을 하고 말았다.

오빠라는 말에 홀랑 넘어가버린 멍청이들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듣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뒤에 뭘 숨기고 있는지는 몰라도 겉보기에는 전혀 위험하지 않는 여자들을 끝까지 경계하기에는 뱃사람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왠지 겁쟁이 같잖아?

그래도 이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두 녀석에 비해, 난 술은 최대한 자제중이다.

대부분의 돈을 은행에 맡겼다고는 해도, 열흘이나 항구에 머물 생각이라서 수중에는 꽤 큰 돈이 들려 있었다.

사실 이 곳에서 소매치기, 강도, 절도는 워낙 흔한 일이라서 특별한 사건 축에도 못 든다.

그런데 저 바보들은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술을 퍼 마시는 거지?

얼마나 알콩달콩 잘 놀고 있는지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불편을 넘어서 불쾌에 들어선 것 같다.

슬슬 주변의 시선이 노골적인 적의로 바뀌었을 때쯤, 나는 허리춤에 매달린 동전 주머니를 제대로 다시 묶어서 허리에 고정시켰다.

아무래도 오늘은 원 없이 싸워야 하는 날인 모양이다.

눈에 멍이든 우르타, 손목이 부어서 술잔을 잡을때마다 인상을 찡그리는 네이선을 내가 한심한 눈으로 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대를 벗어나지 않는 걸쭉한 음성이 내 귀에 꽃혔다.

“에이, 씨발! 엿같아서 술 못마시겠네!”

“그러게, 여자 없는 새끼는 눈꼴셔서 살겠어?!”

“아예 방에 들어가서 하던가!”

귀를 오염시키는 더러운 소리들의 출처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이미 인간에서 개와 비슷한 무엇인가로 변해버린 아저씨 네 명이 눈에 잡혔다.

“크크크큭, 야, 야, 그만 해라. 그래도 못생긴 새끼는 우리보다 더하잖아! 술도 못 처먹는데 여자들이 말도 안건다구?!”

마지막에 말한 놈, 넌 뒤졌다.

술집이 후끈 달아오르고, 근육을 긴장시킨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에 질세라 아저씨들도 의자를 뒤로 밀쳐내며 벌떡 일어섰다.

한 명이 달려들면 바로 이전 술집과 같은 난장판이 시작되려는 순간, 날카로운 예기가 한 발 앞으로 나오려던 아저씨의 눈앞을 지나갔다.

퍼억!

무엇인가 나무로 된 벽면을 때렸고,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난 벽으로 향했다.

삼분의 일쯤 박혀있는 단검.

단검던지기라면 못하는 선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흔한 기술이지만, 저 정도의 힘과 정확도는 쉽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행동이 조금만 빨랐으면 이미 요단강을 건넜을 뻔한 아저씨는 물론 모두의 시선이 단검의 궤적이 시작된 곳을 찾았다.

태연하게 다른 단검을 공중에 던졌다 받는 것을 반복하던 남자는 모두의 시선이 쏠리자 피식 웃으며 말했다.

“더 해봐. 단검이 아직 다섯 개 남았는데, 다음번에는 손이 미끄러질지도 몰라.”

“......”

어떤 말도, 움직임도 없는 침묵이 3초쯤 지나자 단검 던지기를 멈춘 남자가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난 술마시는걸 방해받는게 너무 싫어. 그러니까 다들 닥치고 앉아!”

서로 눈치를 보던 우리와 아저씨들은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동안은 어색한 침묵이 술집에 내려앉았지만, 어느새 이전에 있었던 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시비를 걸던 아저씨들은 진즉에 술집을 떠났고, 우리와 합석하던 아가씨들도 경직된 표정을 영 풀지 못하더니, 끝내 돌아가 버렸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고작 단검던지기 한 번에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굳이 변명을 해 보자면, 선원들이 워낙 무식하고 난폭하다보니 술을 마시면 싸움이 나는 일은 이벤트 축에도 못 낀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룰이라는게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단순한 시비에서는 날붙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먹으로 맞으면 멍들고, 터지고, 부러지는 정도지만, 칼을 들면 찔리고, 베이고, 죽는다.

그래서 선원들 사이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날붙이를 든다는 뜻은 서로 목을 걸자는 뜻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붙는게 시비인데, 그때마다 목숨을 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저렇게 본인일도 아닌데 칼 들고 설치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만약 단검을 던진 남자가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조금만 만만해 보였다면 아마 칼부림이 났을 거다.

실력에 꽤나 자신이 있으니까 남의 일에 저렇게 대놓고 개입한 것이다.

뭐, 덕분에 싸움을 피하고 여유 있게 술을 마시게 되었으니 조금 고맙긴 하다.

하지만 우르타와 네이선은 아가씨들이 가 버린 것이 속상했는지 영 표정이 띠꺼웠다.

그래서였을까? 문제의 남자가 우리 테이블로 성큼성큼 다가와 빈 의자를 차지하고 앉자, 우르타와 네이선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선원들끼리 술집에서 서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또는 돈이나 주먹)를 나누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우르타와 네이선의 표정은 충분히 무례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걸었다.

“이런, 이런, 그쪽 두 사람은 아가씨들이 가버린 것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걸 아는 작자가 여기에 뭐하러 왔지? 단검으로 재롱잔치라도 할 셈인가?”

빙글거리는 웃음이 마지막 인내심을 무너뜨렸는지, 겨우 참고 있던 네이선이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내가 계속 눈치를 줬지만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건지 말에 막힘이 없었다.

“크하핫, 그건 조금 미안하구만. 하지만 여자야 뭐, 다른 여자도 충분히 많지 않나? 한 잔 하고 풀지? 난 크리드라고 하네.

네이선의 칼솜씨가 날로 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실력자들은 부담스럽다.

위생도 엉망이고 의료 수준은 더 엉망인 이 세상에서 몸에 칼이 들어갔다 나오면 죽을 확률이 20%는 넘을 거다.

그러니까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느니 나는 그냥 한 번 참는 쪽을 택하겠다.

“크리드? 난 리안. 아까는 고마웠어!”

크리드가 ‘요놈봐라?’라는 표정으로 내게 두터운 손을 내밀었고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악수를 했다.

그때 잠시 기묘한 표정으로 자기 몸을 더듬던 우르타가 소리를 질렀다.

“으악! 내 돈주머니 어디 갔어?!”

“......”

그 여자들, 칼에 겁먹어서 튄 것이 아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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