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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35화 (35/420)

<35화> 여명의 기습(2)

포갑판에 도착하니 핏대를 세우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우르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쏠 수 있어요! 쏴야 한다니까요?!”

“누가 그걸 몰라! 근데 지금 불이 없잖아!”

“한발만! 한발만 쏘면 되는데!”

“우르타! 당장 제자리로 돌아가! 오냐오냐 했더니 네놈이 뭔데 자꾸 나서는거야?!”

사방이 흠뻑 젖은 꼴을 보니 금방 상황이 이해되었다.

방금 전에 바닷물이 튀면서 불이 다 꺼져버린 모양이다.

당연히 이런 일을 대비해서 준비해 둔 예비 불씨까지 몽땅 꺼져버리다니, 운이 더럽게 없는 셈이다.

고드실카 같은 작은 배는 당연히 부싯돌로 불을 켜지만, 이클로나 정도 되면 부싯돌로 불을 켜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포를 운용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세월에 부싯깃을 모아서 부싯돌을 치고 그 불을 키워서 횃불에 붙이고... 이래서는 답이 안나온다.

게다가 지금처럼 전투중이라면 급격한 기동으로 배가 쉴새없이 흔들리는데, 애초에 그런 세밀한 작업이 가능할 리가 없다.

그래서 준비하는 것이 지금 저쪽에서 포병대원 한 명이 붙잡고 낑낑대는 마력도구다.

나도 이야기만 들었고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데, 사람이 쥐고 있으면 마력이 모이면서 끝부분의 금속부가 뜨겁게 달아오른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도구의 성능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일단 라이터만큼 바로바로 불을 붙일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그래 라이터처럼...!

딸깍, 딸깍, 화르륵!

다행히 라이터는 문제없이 작동했다.

나도 물을 뒤집어 쓴 판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안주머니에 있어서 직접 물이 들어가지는 않은 모양이다.

“포병대장님! 이거면 됩니까?”

그러자 우르타에게 악다구니를 써 대던 포병대장의 목이 꺾일 듯이 돌아가며 나를 본다.

“리안... 보좌관? 당신이 왜 여기 있소! 당장... 어?”

“응? 리, 리안?”

포병대장의 눈이 라이터를 보고 찢어질 듯 커지고, 한 박자 늦게 나를 발견한 우르타가 얼빠진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웃어주고 싶지만 지금 상황이 숨도 못쉬게 바쁘다.

현측의 구멍으로 힐끗 보니 해적선과 우리의 거리는 이제 100미터도 채 안남았다.

우리도 회피기동중이라서 우현에 수직으로 때려 박히는 대참사는 피하겠지만, 확실히 말씨름 할 여유는 없다.

“마른 횃불 가져와! 포병대장님, 빨리 조준부터!”

“제, 제길! 보좌관에게 횃불 가져가! 당장 각 포 조준! 타겟은 접근중인 해적선 선수다! 죽기 싫으면 서둘러!”

포병대원 한 명이 허둥대며 내게 횃불을 내밀었다.

나는 그새 꺼져버린 라이터를 다시 켜서 횃불에 불을 붙였다.

손이 떨려서 그러는지 더럽게 안붙는... 붙었다!

“준비된 포부터 발사...”

“대장님! 안됩니다! 무조건 일제사, 일제사 해야 해요!”

“크윽... 2포 대기, 4포 좌로 5도, 아니 10도!...”

나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우르타에게 다가가 힘껏 뺨을 때렸다.

짜아악!

“정신 차려, 이 새끼야! 계속 멍 때릴거야?!”

“아야... 리, 리안? 그, 그게 뭐야?”

“시끄럽고 잘 봐, 여기를 눌러, 불이 생기면 계속 누르고 있어. 불이 안생기면 다시하고. 해봐, 빨리!”

나는 우르타에게 라이터를 쥐어주며 사용법을 알려줬다.

잠시 주저하던 우르타는 내 강요에 못 이겨 라이터를 쥐고 버튼에 손을 올렸다.

라이터를 켜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 배워야 할 정도 기술은 아니지만,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우르타는 한참 만에 라이터를 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포병대장의 외침과 함께 거대한 포성이 울렸다.

“지금, 좋아! 발사!”

순간적인 진동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동그라졌지만, 나는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밖으로 난 틈에 눈을 가져다 댔다.

새까만 포연 사이로 해적선의 실루엣이 보이는데 조금 느려진 느낌이다.

“성공이다! 대장님, 뒷일을 부탁드립니다! 우르타! 잘 쓰고 반납해라? 잃어버리면 넌 죽을 줄  알아!”

포병대장은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 듯 이미 포병들에게 재사격 준비를 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나마 우르타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관측병 자리로 뛰어가다 말고 내게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대충 이쪽은 정리된 것 같으니 올라가자, 여기에서는 할 일이 없어.

운이 좋아 한 발을 더 쏠 수 있다면 항해 불능까지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수가 박살나면 아무래도 기동성에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니 말이다.

* * * * *

상갑판으로 올라오는 사이 결국 포탄에 한 대를 맞았는지 배 전체가 울리는 충격이 있었다.

겨우 난간에 의지해서 상갑판으로 올라오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해적선과 남은 거리는 고작 20여 미터, 거짓말 안하고 상갑판의 선수에 몰려있는 해적놈들의 얼굴에 있는 점까지 보이는 거리다.

우리도 모두 충돌을 대비해 자세를 낮추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는 중인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화살도 한 차례 교환했는지 피칠갑을 하고 볼트로 난장판이 된 바닥을 뒹굴고 있는 몇몇 선원도 보인다.

석궁 맡은 녀석들은? 반격은 제대로 한거야? 노텐 이 자식, 제대로 못했으면...

급하게 석궁병(?)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니 낯익은 옷의 남자가 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눈알에 깊게 박힌 볼트 꽁무니가 보인다.

들어간 깊이로 봤을 때... 즉사다.

“망할... 노텐...”

“리안, 아니 보좌관님 지휘를! 노텐은 첫 사격에 죽었어!”

그래, 애도는 나중에 하자. 아직 살아있는 놈이 더 많잖아?

나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내 석궁을 집어 들고 바리게이트 뒤에 몸을 숨기면서 소리 질렀다.

“전원 사격 준비! 엄폐해! 장전...”

순간 다시 배가 휘청이며 포성이 울렸다.

초 근접 사격이다.

재수 없으면 도탄 된 포탄이나 충격에 의해 비산하는 나무 파편에 의해 우리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포병대장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다.

다행히 이번에도 제대로 들어갔다.

해적선의 선수는 형체를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망가졌고, 속도도 급감했다.

충격을 버티지 못해서 균형을 잃고 바다에 빠져버린 해적들은 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 봐도 적선의 갑판위에 모인 해적의 숫자는 100명은 넘어 보인다.

정말 오늘 죽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나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선수에서 칼을 휘두르며 시끄럽게 떠드는 해적 한 놈을 노리고 석궁을 쏘며 외쳤다.

“발사! 한 놈이라도 더 죽여! 재장전 후 준비 되는대로 쏴!”

우리쪽에서 볼트가 한 무더기 날아가고, 재장전을 하는데 머리 위에서 악쓰는 소리가 들렸다. 견시대다.

“충돌한다! 충격대비! 다 엎드려!”

쿠쿠쿠쿠쿵! 우지지지직! 크우우웅...

배가 왼쪽으로 크게 휘청이며 강렬한 충격파가 전해져왔다.

기껏 쌓아놓은 바리케이트가 엉망진창으로 흩어지고, 선원 몇 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다에 빠지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다.

갑자기 가해지는 강력한 힘에 용골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린다.

설마 부러지는 것은 아니겠지? 용골이 부러지면 끝나는거다, 바로 배가 반동강 나버릴테니까.

진동이 가라앉을 때쯤, 저쪽에서 볼트 몇 발이 날아와 내 근처에 박혔다.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보니, 내 쪽을 향해 손가락질 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놈이 눈에 들어왔다.

근처에 석궁을 든 해적 몇 놈도 있었고...

아무래도 내가 방금 전에 중요한 놈을 맞춘 모양이다.

내 왼쪽에서 엄폐하던 녀석이 장전을 끝내고 나와 눈이 마주치며 고개를 까딱 하더니 재빨리 내가 보던 방향을 향해 석궁을 쏴재끼고 쪼그려 앉으며 나와 다시 눈을 맞췄다.

“어... 미안, 아니 죄송...”

“에이씨... 그걸 못 맞추냐...”

한동안 기다려도 재사격이 없길래 다시 살금살금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이미 사격전을 벌이는 상황은 끝났다.

널빤지는 이제 걸리기 시작했는데, 돛에 달린 로프를 타고 넘어오는 녀석들이 십수명에, 어떻게 왔는지 벌써 우현 한 구석을 차지한 해적놈들이 십수명이다.

진짜 로프만 타고 반동으로 배를 건너 뛴다고?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인줄 알았는데...

그리고 망할 해병대는 어디 간거야?

“장전 끝난 놈들은 맞추기 쉬운 놈한테 대충 쏴버리고 백병전 합류해! 나 먼저 간다!”

해적선에 문제가 심각한 듯 배도 많이 기울었고 방향도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것 같은 반면, 다행히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마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해적선을 뿌리치고 다시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우리 배에 옮겨 탄 저 해적놈들부터 다시 바다에 처박아야 하겠지만.

* * * * *

백병전에서는 흉흉한 기세의 해적을 정면으로 맞서기보다 기습 또는 뒷통수 치기가 제일 좋은 거다.

어디를 다쳤는지 피에 젖어 제대로 못 일어서는 선원의 등판을 항해 커틀라스를 내리찍던 해적놈의 뒷목을 갈라버린 후, 나는 다시 전체적인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해적선이 배를 내던지며(?) 시도한 접현은 거의 실패했다.

우리와 해적선과의 거리는 이미 5미터 이상 벌어졌고, 완전히 정지한 해적선에 비해 이클로나는 큰 무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가 해적선의 선고(높이)는 눈에 띄게 낮아졌고, 그나마 좌현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아, 지금 침몰중이라는 뜻이다.

그 위에는 해적 수십 명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지만, 저들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 고기밥이지.

탈출용 단정을 내려서 마다카트 항구로 가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그때까지 소형 보트 수준인 단정이 이 난장판에서 버틸 확률도 낮고, 항구로 들어가면 바로 해적으로 경비대에 잡혀서 목이 매달릴거다.

우리에게 항복한다고 해도 결과는 별 다르지 않다.

마스트에 매달려 말라 죽거나 팔다리가 묶여서 바다의 품에 안기는 것이 차이랄까?

이클로나에 옮겨 타는 것에 성공한 해적들이라고 딱히 상황이 좋지도 않았다.

우리에게는 최강(?)의 해병대가 있거든.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나타난 해병대는 여기 저기 뭉쳐서 항전중인 해적들을 눈에 띄는 대로 박살내고 있었다.

확실히 내해의 해적들보다 실력이 제법이라 해병대도 압도적으로 밀어붙이지는 못하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우리 쪽 인원수가 더 많으니까 이기는 건 당연하다.

이제 다른 배들 상황이 문제인데...

콰아아아앙!

삐이이이이이........

어이씨... 뭐야?

갑자기 고막이 터질 듯 한 폭음과 함께 귀가 먹먹해지고, 눈앞에 나무 파편이 비산했다.

정정하자, 나무 파편도 있고 사람도 있다. 음... 그래, 사람 파편도 있구나?

그리고 발밑이 허전한 걸 보니 그중에 나도 포함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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