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어디서 구린내가 나지 않아?
항구뿐만이 아니다.
저 멀리 보이는 요새의 성벽 위에도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1,000명이 적은 수도 아니고, 우리 때문에 전체적인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그런데 병사로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일단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나?
“정말... 이상할 정도로 병사가 안보이는군요. 일단 술집으로 가시죠.”
“자주 가시는 곳이 있으시다면 안내 좀...”
“하하, 이쪽으로 가시죠.”
10분 정도를 걸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폐허였다.
언제 문제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서 넓은 터 위에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만 남아있는 정도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르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볼라트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분명히 전에 올 때만 해도...”
“......”
“어, 음... 항해사님, 뭐 술집이 망할 수도 있는거잖아요?”
우르타가 애써 위로하듯 말했지만 우리 모두 그게 말이 안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이 바닥도 워낙 치열하고 뒷거래와 소소한 무력 충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술집이 이렇게 완전히 없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잘되는 술집이라는 곳은 대부분 입지조건이 좋은 경우가 많았고,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주인이 바뀌는 것이지 이렇게 폐허가 되어 방치 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만약 화재가 나서 건물이 완전히 다 타버렸다면 분명히 주변에도 그 흔적이 남았어야 하고, 정말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로 누군가가 건물을 다시 세우게 마련이다.
잠시 주변을 살피던 볼라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렇게 서있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은 아니죠. 일단 다른 데로 가봅시다.”
“그러죠.”
우리는 근처를 조금 돌아다니다가 술집 겸 여관의 간판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건축 방식이나 소재는 조금 다를지언정 안쪽은 그냥 흔하게 보던 술집의 풍경이었다.
1층의 홀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식사나 술을 마실 수 있었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었다.
아마 2층부터는 여관일 것이다.
1층에는 여섯 테이블 정도가 손님으로 차 있었다.
“점심으로 먹을 것 대충 내주시고, 맥주 네 잔. 그리고 저쪽에 있던 술집...”
“340로스요.”
“음, 400로스 드리지, 저쪽에...”
“60로스 돌려드리리다. 기다리슈.”
우리가 자리를 잡자 뚱한 표정으로 다가온 주인에게 주문을 하며 은화 하나를 꺼내 놓자, 냉큼 은화를 집어든 남자는 이야기를 나누기 싫다는 뜻을 확실히 드러내며 바로 몸을 돌렸다.
그가 멀어지자 볼라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러게요, 팁을 거절하는 술집 주인이라니?”
“저 사람, 불안해 보이네?”
“응?”
우르타의 뜬금없는 말에 우리의 시선이 우르타에게 몰렸다.
“우르타,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저 사람, 우리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눈동자가 계속 떨려. 그리고 땀도 많이 흘리는데?”
바깥 날씨가 덥기는 하지만, 가게 안은 그리 덥지 않다.
전형적인 건조한 기후의 특성인데, 햇빛만 잘 피하고 통풍만 잘 시키면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바닷가 근처는 바다와 육지의 온도차 때문에 원래 바람이 많이 분다.
“아니, 그걸 어떻게 봤어?”
“에? 그냥 보이는건데? 리안은 몰랐어?”
어, 전혀 몰랐다.
애초에 작정하고 그 사람을 관찰한 것도 아닌데 그걸 아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냐?
“흐음, 보좌관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배는 채워야 하니 식사가 나오면 식사부터 하시죠. 설마 독이라도 타겠습니까?”
“......”
웃자고 한 말인데 모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끝나고(정확하게 말하자면 제대로 먹은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몇 군데나 가게를 옮겨가며 비슷한 시도를 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다 되도록 우리가 얻은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심증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조금 막막한 심정이 되어 광장에 모여 앉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은 채로 30분 가량이 흐르고...
결국 네이선의 입이 열렸다.
“벌써 스무명째야...”
“난 스물 일곱.”
“그걸 왜 세고 있는데? 그나저나 진짜 많긴 하네...”
“아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나와 우르타, 네이선의 시선이 동시에 당황한 볼라트를 향했다.
선원이나 해적이나 하는 짓도 거기서 거기고, 복장도 비슷비슷하다.
애초에 해적이 일반 항구에 들어올 때 ‘나 해적입니다’라고 들어올 리가 없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면 선원인지 해적인지 감이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100% 맞는다고 확신할 수도 없고, 선원 복장인 사람 열 명중에 서너명 정도만 구분할 수 있지만, 일단 이곳은 해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어떻게 보면 해적이라는 것을 그리 숨기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해적이 많아 보이지 않아요?”
“예? 보좌관님 그게 무슨... 해적이라니요?”
약간 당황한 듯 볼라트가 주변을 급하게 두리번거렸다.
“아이고, 항해사님 진정하시구요, 지나가는 사람들 보면 해적 같은 녀석이 많잖아요.”
“네? 전 잘 모르겠는데... 해적이 구분이 됩니까?”
어... 볼라트는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때, 우리쪽으로 똑바로 다가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하루 종일 보이지도 않던 녀석들이 왜...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든다.
* * * * *
어째서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다짜고짜 칼과 창을 들이밀고 협조(?)를 요청하는 병사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경비대 사무실(?) 같은 곳에 끌려왔다.
그리고 후속 조치 없이 두 시간은 방치된 기분이다...
“도대체 왜 끌고 온걸까?”
“뻔하지, 우리가 묻고 다니는 것 때문이야. 그것 말고는 걸릴게 없어. 냄새가 나지 않냐?”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될 부분이 있을 리가...”
한참 속닥거리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정규군 간부 복장을 한 남자가 병사 두 명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후, 나는 마다카트 수비대 소속, 대위 미르바프요. 먼저 불편을 드린 점을 사과드리겠소.”
준비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가 인사를 건네자, 우리 사이에 약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말을 해도 되는 건지 볼라트의 눈치를 보았다.
직제 상 상하관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볼라트는 이클로나 소속이 아니므로) 사회적 통념으로 볼라트는 내 상급자다.
하지만 또 이번 일행을 주도하는 것은 나니까 대표 선정이 되게 애매한 것이다.
가만히 눈빛을 교환하던 우리는 볼라트가 살짝 고개를 끄덕임으로서 암묵적인 합의에 도달했다.
“반갑습니다. 미르바프 대위님. 저는 이클로나 호의 항해사, 리안입니다. 여기는 제 일행들이구요. 저희는 이런 대우를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일단 항해사라고 뻥을 쳤다.
지들이 가서 확인할 것도 아니고, 만약 확인한다면 우리를 억류한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딱히 이유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항해사라고 하는 쪽이 족보에도 없는 보좌관보다는 더 있어 보이잖아?
원래 이런 자리에서는 뭐라도 있어 보여야 상대방이 더 조심하게 되는 법이다.
내 대답에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던 미르바프는 이내 입을 열었다.
“당신들이 본국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소, 하필이면 이클로나 호의 국적이 제국이더군?”
“잠깐만요, 첩보 활동이라니요? 저희는 그저 단골 술집...”
“아, 아, 그만! 난 당신들의 변명을 들으려고 온 게 아니오. 그건 어차피 중요하지도 않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보고는 해 두었소. 오늘은 여기서 쉬시고, 내일이면 총독부로 이송될 테니 그렇게 아시오.”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미르바프는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버렸고, 우리는 벙 찐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건 확실히 뭔가 잘못되었다.
애초에 우리는 손발이 묶이거나 하는 범죄자 취급을 당한 것도 아니고, 처음에 이곳에 올 때도 어디까지나 ‘조사에 협조해 달라’라는 병사들의 협조 요청으로 자발적(?)으로 온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첩자 혐의라니? 말도 안되고 근거도 빈약한데, 심지어 이쪽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
게다가 미르바프라는 사람의 말도 굉장히 미묘하다.
일단 첩자라고 하면서 끝까지 존대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첩자에게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나름 편안한 방(?)에서 편안하게 두는 것도 이상하다.
아니, 이제 겨우 원래 가던 술집이 없어진 이유밖에 안 물어봤는데 벌써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 되버렸다고?
각 국의 법이 조금씩 다르다고는 하지만 몇 가지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이 있다.
일단 왕정국가니까 반역에 대한 처벌은 당연히 사형이다.
전생의 동양 왕조 국가들처럼 사촌 이상까지 적용하는 연좌죄를 적용하지는 않지만, 일단 배우자와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은 죽는다고 봐야한다.
형제자매도 상황에 따라 죽기도 하고 말이지.
두 번째는 해적에 대한 처우다.
해적행위로 사로잡힐 경우 기본적으로 사형이고, 이것을 피해자(?)가 국가의 허가 없이 직접 집행하더라도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덕분에 선의의 피해자(?)들이 꽤 많이 양산되고 있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그래서 사실 바다 위는 무법지대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막말로 다 털어버리고 ‘얘들 해적임’ 이러면 처벌 할 건덕지가 없는 셈이니까.
마지막으로 불법적인 첩보행위에 대한 처우다.
말 그대로 스파이 행위에 대한 처벌인데, 그냥 사형도 아니고 정황 파악 후 사형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고문으로 최대한 정보를 뽑아낸 후 사형’이 되시겠다.
그런데 이 첩보행위의 주체는 보통 자국민이 아니고 타국민이기 마련인데, 그래서 다른 것보다 ‘증거’에 대해 좀 까다롭다.
잘못하면 국제적 분쟁거리가 될 수 있으니 서로 조심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우리를 첩자로 모는 미르바프의 행위는, 이후에 충분히 제국과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짓인 셈이다.
막말로 정말 제대로 일을 벌이려면 이클로나를, 아니 최소한 메를리오네까지 승선인원을 전부 체포, 구금해야 조악한 거짓말이라도 엮어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쁜건, 볼라트는 선단 기함 힐레아테 소속이라는 것이고, 심지어 국적도 쿠샤 왕국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쿠샤 왕국 소속의 상선이라지만 지금 상선단으로 엮여있는 다른 배들이 이정도 사태를 ‘아, 그렇습니까?’라고 넘어갈 리가 없다.
그렇다면 안전하게 일을 치르려면 우리 상선단 전체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뜻인데, 세상에 그 정도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그 정도로 사건의 스케일이 커지면 빈약한 내 상상력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일지 추측도 못하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