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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1화 (41/420)

<41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반란에는 반란

자신을 리안이라고 밝힌 젊은 남자, 제법 재미가 있다고 미르바프는 생각했다.

보통 그 나이라면 젊은 혈기에 깊은 생각을 하기 어려운 법인데, 마치 노련한 40대처럼 대응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당황을 드러내지 않고, 불리한 조건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 와중에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런 부분은 교육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저 나이에 그런 판단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친해둬도 좋을 지도...

멀어지는 리안과 우르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르바프의 입이 열렸다.

“남은 자는?”

“넷! 해병대 출신이라는데, 실력이 꽤 되는 것 같습니다.”

“흠, 전열에 세워.”

“추적은 어떻게 하실건지......?”

“적당히, 최소한 우리가 총독부를 제압할 때까지 추적 병력은 합류하지 못해야 해.”

“넵,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안타깝지만 개인적인 호감이나 호기심은 잠시 접어둘 시간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미끼로 나간 남자들의 생환 확률은 아마 10% 미만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과 상당히 친해 보이는 남은 남자도 전투 중에 죽어 주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괜히 그가 다른 두 사람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난리를 피우면, 함께 전투를 겪은 부하들도 그를 제압하는 것이 마냥 좋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도 희생당한 세 명을 위해 마음껏 비통해하고 고마워 할 수 있을거다.

경례를 하고 돌아서는 부관에게 미르바프가 차갑게 식은 목소리로 말했다.

“15분 준다. 그 안에 준비하도록.”

“......네, 대위님!”

잠깐 멈칫했던 부관은 뒤돌아서 힘차게 대답하고 즉시 뛰어 나갔다.

방에 혼자 남은 미르바프가 나지막하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운이 좋았어...... 리안이라고 했던가? 그쪽도 운이 따라준다면 살아서 볼 수 있겠지... 후훗.”

15분 후, 자리를 옮겨 사다리를 올라간 미르바프의 앞에 널찍한 정원과, 정원에 도열한 약 200명의 병사들이 보였다.

목숨을 건 일전을 앞둔 병사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대위님! 중위 발로아 외 204명 집결 완료했습니다!”

“좋아, 배신자를 때려잡으러 가자! 발로아, 너는 계획대로 병영을 장악한다. 반항하는 녀석은 죽여도 좋다.”

“넵! 경비중대, 기동 2중대는 나를 따른다!”

발로아의 외침에 대열의 가장 왼쪽에 있던 60여명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두 개 중대라고 해도 반역자들을 제외했기 때문에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잠들어있을 병영 주둔 병력 정도는 제압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경계조의 대부분도 이쪽에 합류하기로 한 병사들이니까.

* * * * *

- 20분 후 총독부 정문 -

총독부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긴장을 높였다.

총독의 사탕발림에다 군중심리까지 더해져서 쉽게 동조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차오르던 참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발소리의 주인공은 그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렸다.

제일 앞에 선 남자는 총독의 환심을 사서 사실상 군령권을 쥐고 있는 내사과장 미르바프 대위.

그리고 그 뒤에는 딱 봐도 일백은 가뿐히 넘어 보이는 병력이 완전 무장한 상태로 도열해 있었다.

“으... 내사과장...님...... 여기는 어떻게?”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빛, 차마 뽑지 못하고 쥐고만 있는 칼, 경비병들이 이미 상황을 파악했다는 것을 눈치 챈 미르바프가 뒤를 보고 살짝 눈짓하자, 병사 몇 명이 뛰어나왔다.

“반역에 동조한 죄를 쉽게 씻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순순히 협조한다면 정상 참작은 해주겠다.”

달려든 병사들이 우악스럽게 무장을 해제시키려고 하자, 한 병사가 돌연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악! 반란, 반란이... 커헉!”

무장을 해제하던 병사가 빠르게 칼을 놀렸지만, 이미 비명은 총독부를 울린 후였다.

“쯧, 쉽게 가나 했더니... 전원 돌격! 총독을 잡아야한다! 내사과, 군기과는 당장 후문 봉쇄해!”

미르바프는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직접 칼을 뽑아들고 총독부 내부로 질주했다.

건물 내부로 진입한지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방에서 금속음과 비명이 터져나왔다.

총독은 멍청이가 아니다.

오히려 영리하고 능력 있는 축에 속했다.

이런 사태는 이미 상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지금쯤이면 탈출을 준비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혹시나 해서 가장 믿을만한 병력으로 후문을 봉쇄하기는 했지만, 그 탈출로는 아마 후문 쪽이 아닐 확률이 더 높았다.

미르바프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의 어깨를 베어낸 뒤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천장까지 치솟은 핏 줄기로 볼 때 치명상이었다.

“으아악! 죽엇!”

얼굴에 묻은 핏방울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내리는데 왼쪽에서 섬뜩한 살기가 밀려왔다.

살짝 당황하며 왼쪽을 보자 달려오던 자세로 아밍 소드에 목이 관통당한 병사가 보였다.

아밍 소드의 주인이 칼을 회수하며 물었다.

“내사과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벤터 중대장, 고맙네.”

기동 4중대의 중대장인 벤터 대위가 씨익 웃으며 먼저 앞으로 나섰다.

“선배님이 쓰러지면 이겨도 이긴게 아닙니다. 몸 좀 사리십시오.”

“별소리를 다하는군.”

미르바프가 쓴 웃음을 짓자 벤터가 칼을 크게 휘둘러 핏물을 털어내며 앞으로 한 발짝 내 디뎠다.

“4중대, 내사과장님을 호위한다! 모여!”

후방을 경계하던 기동 4중대 소속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전방을 점했다.

“가자! 시간이 없어!”

미르바프가 거침없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 총독부 전체에서 소음이 울렸다.

원래 총독부에 상주하는 병력은 20여명에 불과했지만, 총독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100여명까지 충원을 했기 때문에 소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군대라는 것이 그렇다.

개개인은 약하지만 조직을 이뤘을 때 강하고, 그 조직을 지휘할 지휘관과 명확한 명령체계가 있을 때 최고의 효율을 보여준다.

총독은 정치적 역량은 있을지언정 군재는 없었고, 명확한 명령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사방에 흩어진 100여명의 병력은 조직적인 미르바프의 군대에게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그리고 30분 후, 비밀통로를 통해 탈출하려던 총독이 결국 사로잡히면서, 총독의 반란에 대항한 미르바프 반란은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다.

총독이 사로잡힌 이유도 기가 막혔다.

사실 미르바프가 총독의 침실과 집무실을 점거했을 때는 이미 총독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분노를 참지 못하고 집무실 책상을 내리치던 미르바프가 묘하게 틀어진 바닥의 카펫과 옆에 흩어진 금화 두 개를 발견한 것이다.

바로 바닥을 뜯어낸 미르바프는 비밀통로를 찾아냈고,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10kg이 넘는 금화 주머니를 들고 낑낑거리던 총독은 결국 사로잡힌 것이다.

금화 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총독은 무사히 비밀통로를 탈출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결과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 * * * *

이제 끝이다. 때려죽인다고 해도 더 이상 못 움직이겠다.

입으로는 폐가 튀어나올 것 같고, 심박 수 200은 진작 넘은 것 같다.

심장이 아직 터지지 않은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사람이 극한까지 달리면 소변을 보게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진짜 막말로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허리는 당장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프고, 허벅지는 푸들푸들 떨리는데 무슨 마취당한 근육처럼 반쯤 비현실적이다.

나이 스물이 넘어서 바지에 오줌을 싸서 창피하냐고?

내가 소변을 질질 흘리는 것도 지금 쓰러지고 나서야 알았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판인데 창피할게 뭐가 있어?

“우르타... 우, 우리 얼마나 더 사, 살겠냐?”

“헥, 헥, 헥... 이제... 삼백? 삼백미터...... 대충 그 정도... 아직 발견은 못했나봐.”

“망할 미르바프 개자식...!”

“리, 리안, 어떻게 하지?”

“모, 몰라... 이제 더 이상 갈데도 없다...”

진짜였다. 지금 덤불 사이에 숨어있기는 하지만, 뒤는 절벽이고 우리가 온 쪽은 수색병들의 횃불이 듬성듬성 보인다.

오른쪽은... 내려갈 수는 있을 것 같다, 밤만 아니라면...

그런데 문제는 오른쪽 능선 아래도 드문드문 횃불이 보인다는 것이다.

진짜 운이 최대로 따라줘서 안 죽고 내려가도, 내려가는 사이에 생긴 소음으로 저 횃불들이 모여들기에는 충분할 것 같다.

음... 절벽으로 뛰어서 살아 남는건... 그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

그렇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5분이 흘렀다.

10분이 흘렀다.

20분이 흘렀... 응?

“야, 우르타, 일어나서 좀 봐봐.”

“리안...... 그냥 나 이렇게 죽으면 안될까?”

바닥에 널부러져서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우르타가 흙 범벅이 된 얼굴을 눈곱만큼 돌리며 중얼거렸다.

“죽을 상황이었으면 진작 죽었어, 좀 봐봐, 횃불이 안보여.”

횃불이 안 보인다는 말에 한 박자 늦게 벌떡 일어선 우르타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 진짜네? 다 어디 갔지?”

어리둥절하며 약간 얼빠진 소리를 내뱉는 우르타를 보며, 나는 그제야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긴장의 끈을 놓았다.

미르바프 이 자식...... 성공했구나.

딱 10분전만 해도 미끼로 버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미르바프가 생각보다 일을 잘 마무리 한 모양이다.

비록 축축한 바지가 찝찝하고, 땀 냄새와 지린내가 진동을 하지만... 일단 좀 자야겠다.

저 멀리서 네이선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는 한데... 환청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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