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극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같다
이제 꽤 여러번 방문했지만 여전히 선장실은 내게 낯설고 이질적으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배위에 있어서는 안 되는 공간이 존재하는 것 같다.
“선장님, 부르셨습니까?”
“아, 거기 앉지.”
의자에 앉아 손에 뭔가를 들고 유심히 바라보던 테일러가 고개를 들더니 미소를 지으며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조심히 앉으면서 보니 테일러가 들고 있는 것은 라이터였다.
저게 왜 저기... 아, 우르타가 뺏겼다고 했지.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미처 말을 못했군. 이 마도구(마법공학을 이용한 도구)가 자네거라지?”
“네? 아, 네... 전투 중에 급해서 우르타에게 빌려주었습니다만...”
선장님 죄송하지만 그건 마도구가 아닙니다.
그저 지금 세상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발달한 과학의 결정체죠.
사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마법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기는 하겠다마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이거 어디서 구했나?”
“그게... 조금 불법적인 경로로... 하하하...”
“물론 그렇겠지, 어딘가? 암시장? 항구는?”
아니, 자다 일어났는데 바닥에 있었습니다.
출처 따위 없는데 이걸 도대체 어떻게 말한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겨우 대답을 급조해냈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걸리더라도 대충 ‘장물아비에게 어렵게 구한 마도구’ 정도로 말하고 퉁치려고 했지, 자세하게 추궁을 당할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있잖습니까? 밀수업자, 장물아비, 뭐 그런 치들... 그쪽 친구들이 좀 있다 보니 특이한 물건들을 구할 기회가 좀 있었습니다.”
“하긴, 자네의 그 석궁, 아, 질책하는 것은 아닐세. 선내 점검 중에 선실에 눈에 띄는 무기가 있어서 그냥 살펴보았네. 하여간 그 석궁도 대단하더군. 명품이라고 할 만 했어.”
“네, 뭐 둘 다 같은 쪽에서 구한 겁니다.”
세세하게 따지고 들면 거짓말은 아니다.
그쪽 밀수업자들(전에 만났던 발레아스 아저씨를 말한다)에게 여러 가지 특이한 물건을 구할 기회가 있긴 했었다.
실제로 몇 개 구매한 것도 있고.
다만 라이터랑 석궁은 거기서 구한 물건이 아닐 뿐이지.
하지만 난 기회가 있었다고 했지, 거기서 구했다고는 안했잖아?
“흠, 본토로 돌아가면 그쪽과 연결 좀 시켜주겠나? 꽤 수완이 좋은 친구들 같군.”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그래도 그, 어둠에서 일하는 친구들인데 선장님처럼 나랏일 하시는 분들을 좀 어려워 할텐데요...”
“걱정말게, 내가 책임지고 본국 내에서만큼은 사면장을 발급해줄테니.”
아니 선장님, 그런 쪽 문제가 아닐텐데요?
테일러는 정말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맞는데, 가끔 이렇게 맹한 구석이 있다.
아무래도 귀족가에서 태어나서 자란 느낌인데, 그래서인지 하층민의 생리? 이해관계? 이런 것에 어두운 편이고,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도 약간 비틀려있는 그런 느낌이다.
테일러에게 대놓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뒷골목, 뒷거래, 뭐 이런 것들이 다들 그렇다.
위에서도 대충 알고 있지만 어차피 뿌리 뽑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적당히 눈감아 주는거다.
그렇다고 그들이 양지로 드러난다? 체면 때문에라도 반드시 박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곰팡이 같은 것들이 밝은 세상까지 오염시키게 될테니까.
그런데 그런 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고.
일단 이 자리만 모면하고 여차하면 다 망했다고 하면 되잖아?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 뒷골목의 미래니까.
“네, 일단 다시 돌아가면 연락은 취해보겠습니다.”
“오오, 고맙네. 그리고 하나 더 말인데...”
“네, 말씀하시지요.”
약간 민망한 표정으로 잠시 뜸을 들이던 테일러가 라이터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사실은 이것저것 테스트하다보니 마정석이 고갈된 모양이네.”
“그게 무슨...?”
“더 이상 불꽃이 나오지 않아.”
에이, 설마? 라이터의 액화가스가 그렇게 쉽게 금방 쓸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아니지?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켜대면 열흘이면 충분히 다 쓸 수 있을 것도 같고...?
설마하면서 라이터를 집어 버튼을 누르자 딸깍거리는 소리만 울릴 뿐 가스가 나오는 소리가 전혀 안 들린다.
내 표정이 좀 그랬나보다.
한참동안 라이터를 딸깍거리다가, 흔들다가, 불꽃이 나오는 구멍을 들여다보다가... 사실 그렇잖아?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라이터다.
다시 언제 생길지 모르는 녀석이고, 영원히 안 생길 수도 있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복제는 꿈같은 이야기이고...
라이터의 재질인 플라스틱만 분석하고 복제해 내도 이 세상의 산업은 단번에 전생에서의 백년단위로 진보할 것이다.
하지만 화학적 분석이 불가능한 이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소리지.
상황이 이런데 허무하지 않다면 거짓말 아니야?
“흠, 흠, 어렵게 구했다는 건 알겠네. 그래서 말인데... 내게 팔지 않겠나?”
“...네? 뭘 말입니까?”
“그... 마도구 말일세.”
“어... 라이터, 아니 이 마도구 말입니까?”
“이름이 라이터...인가? 특이하군.”
“아니, 그보다 이건 이제 소용이 없는데요.”
“음, 본국의 마공학자들에게 복제를 의뢰할 생각이네. 잘 된다면 자네에게도 선물하지.”
복제는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마법이니 마정석이니 그런 것은 쓰이지도 않았는데 마공학자들이 어떻게 복제를 하겠어요? 심지어 연료인 액화가스도 없는데...
“5만... 아니 10, 흠, 20만 로스를 주지.”
“라이터 구경 잘했습니다, 선장님. 여기 돌려드리지요.”
전생에서 1,000원짜리 라이터를 2,000만원 받고 팔 기회를 놓칠 정도로 난 바보가 아니다.
* * * * *
“아직은 평온하네요?”
“하하, 이번에는 운이 좀 따라주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완전히 평온하지는 않다.
이번에 새로 모집한 선원들과 기존 선원들 간에 다툼이 네 번, 그러니까 내가 확인할 정도로 피터지게 싸운 것만 그 정도 있었고, 임시직 갑판장에게 항명하다가 치아 손실이 발생한 선원, 팔이 부러진 선원, 줄에 묶여서 바다에 빠졌다가 기절해서 올라온 선원이 각각 한 명씩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항명은 선장님한테 보고하고 정식 처벌을 받게 해야 했지만, 항명한 내용이 무슨 배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일도 아니고, 그냥 나에게 소소하게 반항하는 정도라서 적당히 사적 제제를 가해줬다.
그리고 수리를 잘못했는지 오른쪽 현측 난간이 부서져서 수리했고, 선수 갑판 쪽 바닥이 꺼져서 선원이 다치고 밤샘 작업을 한번 했다.
그 외에 자잘한 일은 수도 없었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파도가 한 2m쯤 된다는 거다.
정확하게 말하면 해변에서 보는 흔히 생각하는 파도라기보다는 너울의 고점과 저점의 높이 차인데... 그냥 이것도 파도다.
“그보다 보좌관님 저쪽 보이십니까?”
“네, 안 그래도 아까부터 보고 있어요.”
나와 볼라트는 남쪽의 심상치 않은 구름을 노려보았다.
아주 새까만 구름이 하나 가득 들어찬 것이, 온 세상의 악의를 모두 뭉쳐서 만들어놓은 악의 덩어리 같다.
저런 녀석이 우리 위에 올라오면, 우리는 그걸 폭풍이라고 부른다.
“저거 이쪽으로 오지는 않겠죠?”
“으음, 일반적으로 여기까지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항로가 이렇게 잡힌것도 있죠.”
“일반적이라면?”
“가끔, 비정기적으로 크게 확장하고는 하는데, 이유는 잘 모릅니다. 그 외에도 여름이 한창일때는 대부분 이 위쪽까지 확장하곤 하죠. 그래서 한창인 여름 20일 정도는 이쪽 항로가 끊깁니다.”
“아, 책에서 본 것 같군요.”
“책에서 보셨으니 직접 몇 번 지나가 보시면 금방 알게 되실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솔직히 좀 불안불안 하군요.”
볼라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저 멀리 검은 구름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보였다.
“거기 베이커씨! 폭풍 항해 준비합시다!”
“예? 그 정도는 아닌뎁쇼?”
지휘체계 확립을 위해 선원들에게 강경하게 대응하기는 했지만, 이제 슬슬 풀어줄 시간이라 적당히 경력 좀 되는 선원들에게는 반공대를 하고 있다.
그보다 우리가 나아가는 선수 쪽을 힐끔거린 베이커가 고개를 저으며 의문을 표했다.
일단 배의 진행방향을 보면 베이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앞쪽은 폭풍은커녕 구름 한 점 찾기 힘들거든.
하지만 경험자의 충고는 쉽게 넘기는 법이 아니지.
그리고 폭풍 대비 했다가 아니면 선원들에게 욕 좀 먹으면 그만이지만, 대비도 안 된 상태로 폭풍을 맞이하면 진짜 끔찍한 참사가 나온다.
“저쪽에 안보여?! 저거 확장할지도 모른다잖아! 얼른 움직입시다!”
“아니 무슨... 어이구, 알겠수다, 갑판장님. 어이, 거기 다들 모여봐!”
베이커가 선원들을 모으러 움직이자, 메인 마스트의 견시대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우르타! 뒤쪽에 신호 보내자, 폭풍 주의!”
“네! 갑판장!”
대충 지시를 마친 나는 볼라트에게 살짝 목례하며 말했다.
“전 그럼 고정 작업 지휘하러 가보겠습니다. 항해사님은 선장님께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네, 걱정 마시지요. 그럼 이만.”
배가 긴박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돛 줄을 검사하고, 긴급 복구용 자재를 확인하고, 흔들리는 물건들을 고정했다.
나는 제일 먼저 교역품이 있는 곳으로 가서 상품 고정과 방수작업을 지휘했다.
선원들이 대놓고 궁시렁 거렸지만 이번에는 못들은 척 해줬다.
사실 내가 선원 입장이었어도 궁시렁거렸을 것 같다.
솔직히 익숙한 내해였다면 화를 내며 씩씩거렸을지도 모르겠네.
최소한 40km이상 떨어진 폭풍이 여기까지 올라온다는 것은 그 정도로 현실성이 없었다.
* * * * *
그래서 말인데, 난 앞으로 볼라트를 존경하기로 했다.
내가 존경의 마음을 담뿍 담아서 볼라트를 보고 있는데, 테일러의 신경질적인 질문이 선교를 울렸다.
“파고(파도의 높이) 보고!”
“현재 3미터... 3.3미터 정도입니다.”
“메인 마스트 반개! 후방에 신호 보내!”
아직 하늘은 괜찮다.
조금 어두워지긴 했지만 그건 해가 떨어질 때가 돼서 그런거다.
다행히 폭풍항해를 준비해서 아직 갑판 위는 깨끗하기는 하지만 얼굴이 썩어가는 선원들이 하나씩 보이고 있었다.
몇 놈은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향해 엄지손을 치켜 올리는 녀석도 있다.
그럴만한 것이, 만약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지금 정신없이 흔들리는 배 위에서 난리를 쳐야 했을 것이다.
일의 난이도가 열배쯤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그냥 선원들한테 욕을 먹기를 바랐다.
망할... 폭풍이라니...
암울한 눈빛으로 남쪽을 바라보았다.
어느 시점부터 급격하게 올라오던 새까만 구름 덩어리가 어느새 우리 배의 좌현에서 20km이내까지 다가왔다.
피하기는 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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