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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49화 (49/420)

<49화> 이런 맛은 선 넘은거 아니냐?

심각한 표정으로 한 선원과 대화를 주고받던 알리샤가 우리를 보고 반색했다.

“갑판장, 뭐 좀 발견했나? 섬이 너무 작아서 눈에 띄는 것이 없군...”

“네, 작긴 작군요. 그런데 저건 뭡니까?”

“아 참, 닥터 롱베르,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포르데토라는 식물이라는데... 뿌리를 먹을 수 있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알뿌리 식물을 관찰하고 있던 롱베르씨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더니 알리샤의 질문에 대답했다.

“이것 참... 그냥은 못 먹습니다.”

“네? 이 친구는 먹을 수 있다고...”

“아, 일부 따뜻한 구릉 지대에서 구황작물로 먹기는 하니까 먹을 수는 있죠. 제 말은 그냥은 못먹는다는 말입니다.”

“아! 그럼 식량상황에 도움이 되겠군요!”

“그, 글쎄요? 도움은 되겠지만... 보통은 푹 삶아서 먹는 녀석입니다. 그냥 먹으면 독성 때문에 배탈이나 두통, 심하면 시력감퇴를 가져옵니다.”

그러자 알리샤는 롱베르가 왜 애매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삶는다는 조리법은 기본적으로 물과 불을 필요로 한다.

배에서 가장 권장하기 힘든 조리법이며, 식수가 간당간당 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휴우, 그렇다면 별 소용이 없... 어? 저기 저것은 뭡니까? 약초는 아닌 것 같은데?”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일부 지방에서 오타베아라고 부르는 식물의 열매라고 합니다.”

“오, 갑판장! 저 정도 크기라면...!”

“일등 항해사님, 그게... 식량으로서는 별 의미가 없고 최악의 순간에 수분 섭취용으로...”

“수분? 물이라고? 그럼 더 대단한 것 아닌가?”

하긴 지금 급한 것은 식량보다는 물이기는 했다.

막말로 밥은 며칠 굶는다고 바로 사람이 죽어나가지는 않지만, 지금 같은 여름에 뱃일 같은 중노동을 하면서 물을 안마시면, 하루만에 사람이 죽어나갈거다.

심지어 이 시대의 물은 보관 방법(보통 나무 통이다)의 문제로 금방 변질되어버렸다.

기대할만한 것은 비가 내리는 것 정도인데... 비가 내리면 또 폭풍을 걱정해야 하니, 이게 참 아이러니다.

아, 비가 올 때마다 반드시 폭풍을 동반한다는 것은 아니고, 비가 내리는 것이 그만큼 썩 달가운 현상은 아니라는 뜻이다.

“저기 그런데 이 녀석도 문제가 있습니다.”

“응? 문제라니?”

“맛이 없답니다.”

내 대답에 알리샤가 무뚝뚝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피식 웃었다.

하긴 내가 입맛이 고급(?)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니까 웃길 수도 있겠다.

“자네는 아직도 미식 타령인가? 대단하군, 여유가 넘쳐.”

“그리고 아직 닥터 롱베르가 안전성을 확인해야한답니다.”

“그래? 그럼 지금 시작하지.”

그리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오타베아 시식회가 열렸다.

롱베르씨가 가지고 있던 대거로 과육을 쪼개자 짙은 노란색의 과육이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줄 없는 수박, 아니 박?처럼 생긴 것 같은데, 박 속은 내가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대충 비슷한 모양일 것 같은데... 그런데 박 속도 옛날에 먹지 않았나?

사실 이정도 비주얼이면 기대할만 하잖아?

전생에서 봤던 박과 식물들처럼 과육 사이에 엄청난 양의 씨가 들어있었는데, 참외씨보다 조금 큰 옅은 갈색 씨가 정말, 아주 많이 있었다.

“씨가... 아주 어마무시하군요.”

“흐음, 씨를 골라내고 먹기는 힘들 것 같은데? 어떤가, 어... 자네 이름이 뭐였지?”

롱베르씨가 인상을 찌푸리며 처음 오타베아의 정체를 알려 준 선원을 지목하자, 선원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 길리엄입니다, 선의님.”

“그래, 길리엄. 자네들은 이걸 어떻게 먹었나?”

“네? 어떻게라고 하셔도... 어렸을 때 동네 형님들이랑 아저씨들이 장난치느라고 먹였던 것이라... 그냥 먹었습죠.”

“어라? 가뭄이 들거나 하면 먹지 않아? 수분은 많다며? 그냥 봐도 수분 함량이 상당해 보이는데?”

내가 의문을 표하자 길리엄이 약간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가뭄이 들 상황에 이런 잡초까지 남겨 놓겠습니까? 특히나 이 녀석은 물을 많이 먹어서 가뭄이 올 것 같으면 무조건 뽑아내는 녀석이죠.”

거기에 기어들어가는 말투로 한마디를 덧 붙였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려서, 산짐승이나 가축도 잘 안먹으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녀석입니다. 굳이 누가 먹으려고 하겠습니까?”

아하? 그, 그렇긴 하네. 내가 민망함에 머리를 긁고 있는데 과육을 다 썰어 낸 롱베르씨가 우리를 불렀다.

“길리엄, 자네가 먼저 조금만 먹어보겠나? 혹시라도 자네가 고향에서 먹었던 것과 다르면 말해주게.”

롱베르의 말에 오만상을 쓰던 길리엄은 어쩔 수 없이 엄지 손가락만한 조각을 들고 잠시 망설이더니 입에 넣고 씹었다.

한참동안 얼굴을 구긴 채로 과육을 씹던 길리엄은 결국 꿀꺽 집어 삼키더니 예상과 다른 말을 했다.

“어라? 이건 훨씬 먹을만합니다. 어렸을 때는 감히 삼킬 엄두도 못냈었거든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당신도 당신이 그걸 먹을 때의 표정을 봤으면 그렇게 말 못할걸?

길리엄은 단지 기억의 오류, 추억 보정 혹은 늙은이(?)의 어린 아이보다 둔한 미각에 의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약 5분가량 길리엄의 상태를 관찰하던 롱베르씨는 미리 선발된 절반의 인원(나를 포함한 선원 6명)에게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작은 조각을 주며 먹을 것을 종용했다.

“사실 자연상태 그대로 사람을 소량으로 죽일 수 있는 독을 가진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보통은 소화불량, 발진, 발열 정도를 일으키죠. 그리고 여기 길리엄이라는 친구를 보면 독이 있다고 해도 심각한 수준의 독은 아닐 겁니다. 걱정 말고 먹어요, 리안 보좌관.”

“콕 찝어서 저를 말씀 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그런 설명을 하지 말라구요, 의사 선생.

무슨 독이 있기를 바라는 것 같잖아.

심지어 이미 먹은 길리엄의 얼굴도 팍 구겨졌다고.

나는 괜히 원망스러운 눈으로 일등 항해사 알리샤를 보았지만, 알리샤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래, 그래도 탐사대의 총대장인 알리샤가 정체모를 음식을 먹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아니긴 하다.

그렇다고 간부인 내가 이것을 먹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휴.

졸지에 불쌍한 희생양이 된 나와 선원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가 결국 동시에 작은 과육을 입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작은 조각이 손을 떠나 혀에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실수다,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입에 넣었구나, 혀에 닿기 전에 뱉는 방법은 없을까?

......

특별하게 향이 난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니 그것은 아마 오감을 벗어난 육감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우웨엑!”

“쿠에에에엑”

“어억!”

온갖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아 진짜 못 먹을 과육, 아니 과육이라는 말이 아까운 무엇이기는 했다.

시큼하고 쓴맛이 났다.

아니, 진짜로 엄청나게 쓰고 약간 비린내 같은 것이 났다.

어느 것도 미각이나 후각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든 것들인데, 이것들이 합쳐지니 먹지 말아야 할 무엇인가가 되었다.

입에서 넘쳐나는 과즙(?)에, 신맛에 자극받은 침샘이 폭발하며 침을 줄줄 흘리는 놈이 속출했고, 세 놈은 결국 삼키지 못하고 내 뱉고 말았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인내심으로 과즙을 겨우 삼켰지만, 남은 과육도 문제였다.

뭐랄까, 얇은 옥수수 수염을 씹으면 이런 느낌이 날까?

식물성 섬유가 내 혀의 미뢰를 자꾸 자극한다.

이게 먹을만 하다고? 도대체 저 길리엄이란 놈의 미각세포는 나와 얼마나 다른거지?

* * * * *

거의 1분이 지나 겨우 안정을 되찾은 우리는 방금 전투를 거친 병사들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롱베르의 간단한 진찰을 받았다.

먹지 못하고 뱉어낸 녀석들은 공포에 잠긴 눈으로 다시 그 악마의 열매를 먹어야 했다.

실험은 공정해야지! 결코 나 혼자 겪을 수 없다는 보복심리가 아니다.

“보좌관 어때요?”

“하, 닥터 롱베르, 이건 진짜... 치료용으로 써야 합니다. 확실히 물이 많기는 한데... 기절한 녀석도 깨어날 맛이라구요.”

하지만 맛과는 별개로 약간 도움이 될 것 같기는 하다.

시고, 쓰고... 왠지 익숙한 맛이잖아? 보통 비타민C라고 부르는 선원들에게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의 맛이 아닌가?

물론 시큼하다고 죄다 비타민C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전생이나 이번 생이나 똑같은 것이 바로 선원들의 비타민C 부족인데, 성분분석을 안해봐도 이 오타베아에는 비타민C가 충분히 들어있을 것 같다.

안그래도 괴혈병(광범위한 모세혈관 출혈 증상, 비타민C 결핍 증상 중 하나) 치료용 약들이 망가졌다고 롱베르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데, 비상약으로 쓸 수도 있겠다.

선원들에게 의견을 청취한 롱베르씨는 손뼉을 짝하고 치면서 주의를 모은 뒤 말했다.

“다행히 별 다른 중독 증상은 없습니다. 그럼 다 같이 저 포르데토부터 채집하도록 하죠.”

그러자 알리샤가 난색을 표했다.

“닥터 롱베르, 그게... 아무리 저 과일로 어느정도 물을 확보할 수 있다지만, 삶는 요리를 할 정도는 아니...”

“아, 일등 항해사, 내가 미처 그걸 말 못했군요. 생각해보니 물에 삶아야 할 뿐이지, 그게 꼭 식수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네? 설마...”

“네, 네, 어차피 삶은 물은 독성 때문에 버려야 하니 바닷물을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소금기가 있으니 오히려 민물보다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보다는 장작으로 쓸 나무가 충분할지 모르겠네요.”

배에서 불을 쉽게 다루지 않는 이유는 전에도 말한 것처럼 화재의 위험과 연료의 부족이다.

특히 지금처럼 반 조난상황이라면 목재 한 조각도 아껴 써야 한다.

그런데 감히 매일 불로 조리하는 음식을 먹겠다는 용감한 시도를 하려면... 아무래도 장작도 준비해야 할 모양이다.

포르데토를 채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땅은 그리 단단하지 않았고, 포르데토의 줄기는 질겼으며, 동그란 뿌리(혹은 땅 속 줄기일지도 모른다)는 줄기를 잡고 당기는 정도로도 손쉽게 딸려나왔다.

다만 광범위한 지역에 드문드문 있는데다가 지면에서 고작 15~20cm밖에 자라지 않아 매번 쪼그려 앉거나 허리를 굽혀야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다들 땅에서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포르데토 채집이 완료된 것은 해가 질 무렵이 었다.

채집 중에 틈틈히 롱베르씨가 우리의 상태를 살폈지만 배탈을 일으킨 사람도 없었으니, 오타베아의 안전성을 확인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우리가 단정에 채집물들을 옮기는 동안 롱베르씨가 포르데토를 삶아 우리에게 하나씩 주었는데, 솔직히 맛있지는 않았다.

삶았으니까 뭔가 촉촉한 맛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퍽퍽했고, 중간 중간에 질긴 섬유질이 끼어있어서 먹기에 딱히 좋지는 않았다.

오타베아나 포르데토나, 사람이 먹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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