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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50화 (50/420)

<50화> 자본주의의 힘

이클로나로 복귀한 나와 알리샤, 롱베르씨는 탐사대를 해산하고 테일러에게 탐사 결과를 보고했다.

“음, 포르데토는 들어봤네. 맛도 없고 보존기간도 짧지만 우리에게는 꽤나 유용하겠군. 그런데 그 오타베아라는 것은...”

그 맛에 대한 내 열렬한 비평, 아니 비판... 아니 비하를 들은 테일러는 미간에 골을 만들며 고민했다.

처음 맛을 본 일곱 사람 중 절반이 뱉어냈다고 할 정도면 사실상 음용 불가 판정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거다.

“선장님, 물론 중간에 비가 온다면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오지 않는다면 현재 식수로는 항구까지 무사히 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당장 적재량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니 시간을 조금 투자해서라도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자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맛이 없는 것은 없는 거고, 필요하면 먹어야지 뭐.

약이 맛있어서 먹고, 훈련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는 거잖아?

싫어도 살아남으려면 필요하니까 감수하는 거지.

내가 뻔뻔하게 어깨를 으쓱 하자, 알리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갑판장의 말이 맞습니다. 일단 몸에 해롭지 않다는 것은 확인했으니 시간이 조금 들더라도 준비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정을 여러 번 왕복시켜서 선원들을 다수 투입하면 반나절이면 충분할겁니다.”

“일등 항해사, 하지만 선원들이 좋아하지 않을 걸세. 알다시피 지금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아. 특히 새로 모집한 놈들은...”

사실 이 문제는 조금 심각했다.

원래 이클로나의 선원들은 본토의 바흐카덴을 출발할 때만 해도 대부분 제국인이었고, 특히 정체를 숨긴 제국군인 출신이 많았다.

만약 그들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면 불만이 조금 생겼다고 해도 선상 반란, 탈주(?) 같은 불상사까지 우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적들과의 일전 이후, 동료함 메를리오네의 선원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1/3정도의 인원이 빠져나가고 그 손실분을 마다카트 섬에서 신규로 모집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미르바프 대위의 호의로 그나마 괜찮은 녀석들을 모집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모집한 놈들 대부분이 해적과 선원의 중간 어디쯤에 걸쳐있는 녀석들이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애초에 그 섬에 있는 녀석들이 대부분 그랬다.

그래도 막말로 방금 농장에서 아버지에게 농사짓기 싫다고 반항하다가 가출한 어리바리한 초짜들을 데리고 오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생각한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들이 나을 뻔 했다.

......아니다, 선원의 1/3이 초짜였다면 폭풍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

결론은 지금 선원들의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촉박한 시일을 까먹는 것도 모자라 익숙하지 않은 땅에서의 중노동까지 강요한다면.....

거기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본주의를 겪지 않는 사람이다.

“자원자만 받으시죠.”

“갑판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건가? 자원자는 없... 아마 없을 걸세.”

일등 항해사 알리샤가 얼굴을 붉히며 부정적으로 말했다.

아마도 선원들 대부분이 군인(?)들이라서 충성심 부족(?)을 고백하는 것이 창피한 모양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자신감있게 말했다.

이는 지구에서 증명된 방법이며, 이들이 같은 인간이라면 무조건 통하게 되어있다.

“당연히 그냥 자원하라면 아무도 안하겠죠. 보상을 제시해야죠.”

“으흠, 보상이라...”

“지금 선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식수와 식량 아닙니까? 어차피 식수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오래 못씁니다. 아껴봐야 답도 안나오니 식수와 포르데토를 포상으로 거시죠. 추가로 금화도 몇 개 거시구요.”

“그 정도로 중노동에 자원하겠나? 선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자원하지 않으면 중노동 대신 쉴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알텐데.”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가치란 상황에 따라 바뀌는 법입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식수를 한잔씩 지급 받을 때 자신은 세 잔을 마실 수 있다면, 그 만족감은 돈 몇 푼과는 비교가 안되는 법이죠.”

“흐음, 그럼 그 건은 그리하도록 하지. 그리고 선의께서 이번에 가져오신...”

보고를 마치고 나온 나는 조리장을 찾았다.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식료품 창고를 점검하던 조리장은 살짝 당황하며 나를 맞이했다.

“갑판장께서 이 시간에 무슨 일로?”

“그 이야기 들으셨죠? 뭐더라, 아! 포르데토. 혹시 아세요?”

“아, 아, 그 이야기라면 폴렌이 말해줬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예요. 포르데토가 보관기간이 짧기는 하지만 먼저 소비하면 알뜰하게 쓸 수 있을겁니다.”

“맛은... 기대하기 힘들겠죠?”

“어허허허, 사람들이 기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죠.”

배에서 할 수 있는 요리방법이야 뻔한데다, 조리장이라고 해봐야 진짜 요리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늙은 선원 중에서 뱃일에 지친 사람 중 꼼꼼하고 성실한 사람을 뽑아 놓은 것이라 기대도 안했다.

“그보다 식수는 어때요?”

“안그래도 그 일로 아침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지금 배급량이면 양은 조금 여유가 있는데... 제일 상태 좋은 녀석도 닷새 정도면 못 마시게 될겁니다.”

볼라트가 계산한 대로면 지금 속도로 움직일 때 향료 제도 북단에 있다는 섬에 도착하기까지 5일 걸린다.

오늘 반나절을 날렸고, 내일도 반나절을 날릴 예정이니까 일정이 6일이 된다.

비가 안오면 진짜 간당간당하게 되는거다.

“제일 상태 안좋은 녀석이 어느거예요?”

“네? 아, 그건 이쪽으로...”

옆에 쌓인 나무통으로 자리를 옮긴 조리장이 제일 바깥쪽 통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드셔보시면 아실지 모르겠지만...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잘해도 내일모래 저녁쯤이면 못 먹게 될겁니다.”

아니 굳이 마시지 않아도 알겠다.

통 안쪽은 미끈미끈한 물때가 눈에 보일 정도로 쌓였고, 얼굴만 들이 대도 쿰쿰한 물비린내가 올라왔다.

그래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나도 탈수증 비슷하게 오기 직전인 모양이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조리장이 은근슬쩍 건네준 컵으로 물을 떠 마신 나는 입과 코를 장악하는 물비린내에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이거 푸시죠.”

“네?”

“어차피 내일도 못 버틸 것, 그냥 선원들에게 풀죠.”

“아니, 내일까지는...”

“하하핫, 장난입니다. 내일 채취 나갈 선원들한테 풀거예요. 힘든 일 하는데 물이라도 줘야죠.”

“그렇죠, 안그래도 오늘 탐사대들에게 저녁과 식수는 평시랑 똑같이 주라는 선장님 지시가 있었습니다.”

“역시...”

확실히 테일러는 사람을 부릴 줄 안다.

이정도면 보고할 때도 이미 알고 있으면서 괜히 내가 나설 기회를 준 것은 아니가 싶기도 하다.

* * * * *

비록 절반 정도가 비었지만 100리터에 가까운 물통이 포상으로 걸리자 선원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날은 덥고, 음식은 짜고 퍽퍽한데(염장 고기와 쉽 비스킷), 물까지 적게 줘서 입술이 갈라지고 목구멍 안쪽까지 말라버리는 느낌인 상황에서 거의 50리터의 식수가 걸렸으니 눈이 돌아갈만 했다.

물론 자원자가 너무 많으면 그만큼 개인에게 떨어지는 양은 줄어들겠지만, 당장 눈앞의 시각적인 유혹이 너무 컸다.

거기에 충분한 양의 식사(대부분이 맛없는 포르데토지만)까지 약속하자 일단 자원하는 녀석이 줄을 이었다.

다음날 동이 트기도 전에 자원자 30여명이 단정에 실려 섬으로 들어갔다.

나도 관리자 명목으로 실려갔다.

뒷말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아예 포상으로 걸린 물통을 들어서 섬에 옮겨 두었기 때문에 선원들이 일을 하는 중에도 필요하다면 자기 몫의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줄 수 있었다.

허리 위로 빽빽하게 자란 풀(?)을 헤치면서 오타베아를 찾는 일은 정말 재미없고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무게도 거의 같은 양의 물만큼 무거워서 혼자서 양 손에 한 개씩 밖에 못 옮겼다.

재미없고 옮기기가 귀찮아서 였을까? 맛이 궁금하다며 채집한 오타베아를 잘라 과육을 먹어보는 놈들이 꽤 많았지만, 한 놈의 예외 없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욕을 내뱉었다.

실컷 따 놓은 것을 먹지도 않고 버리는 놈이 세 번째 나왔을 때, 버리려는 것을 뺏어서 먹고 싶은 놈은 더 이상 새것을 쪼개지 말고 있는 것을 먹으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예상했던 정오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오타베아 채집 작업과 장작용 목재 보급 작업은 별 문제 없이 마무리 되었다.

장작용 목재라고 했지만 유사시에는 수리용이나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는 녀석을 고르다 보니 나에게는 오히려 이쪽이 더 힘든 일이었다.

사람들을 끌고 다니며 직접 지시해야 했으니까.

목재건 오타베아건 쓸데없이 쌓아놓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인지라 단정을 통해 부지런히 옮기게 했더니 남은 것은 흙투성이의 냄새나는 남자들 뿐이었다.

“인원 확인, 다 모였어?”

“예, 예, 그만 갑시다, 갑판장. 더워 죽겠소.”

“아, 이걸로 힘드시면 은퇴하셔야지? 히히힛.”

“뭐요?! 그럼 젊으신 갑판장님 나랑 팔씨름 한번 해볼까? 1,000로스 내기 어떻소?!”

그렇게 쓸데없는 잡소리로 시간을 죽이며 단정에 선원들을 태우다 보니 어느새 나를 포함한 마지막 인원만 남았다.

“그런데 리안, 저건 왜 저렇게 둔거야?”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고 돌아서는데 조용히 내 옆에 접근한 우르타가 한쪽을 손가락질 하면서 물었다.

그쪽에는 알아보기 쉽도록 커다란 글자가 새겨진 나무판이 잘 고정되어 있었다.

“혹시 모르잖아, 우리 선단의 다른 배가 이곳에 올지도. 우리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이곳에 우리처럼 표류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잖아?”

“으응, 듣고보니 그렇긴 하네.”

우르타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수십번의 노질로 지칠 대로 지친 단정 운항 선원이 짜증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거, 남은 것도 없는데 그만 갑시다! 피곤해 뒤지겠소!”

“어! 지금 가!”

“가자, 우르타. 고생했어!”

부지런히 발을 내딛는 나와 우르타를 스친 바람이 나무판에 남은 이타심을 어루만지며 흩날렸다.

대륙력 2715년 8월 16일 몰로스 제국 상선 이클로나

현 위치 향료 제도 북단 오르윔 섬에서 북동 255km지점

식용 식물 2종 확인 오타베아(조잡한 그림1), 포르데토(조잡한 그림2)

대륙력 2715년 8월 17일 오르윔 섬 부에즈 항으로 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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