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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86화 (86/420)

< <86화> 예정된 비극 >

나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한 마디가 내 심정을 대변해 준다.

“씨발··· 망했네.”

그래, 오늘이 출항하는 날이다.

원래대로라면 어젯밤에 이클로나에서 불이 났어야 하고, 나와 우르타, 네이선은 화재 중 실종이나 사망으로 처리되어야만 했던 거다.

그래서 우르타와 네이선에게도 미리 말해놓고 짐까지 다 챙겨놓은 상태다.

물론 너무 물건이 많이 빠져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중요한 물품만 챙겼다.

그런데 그런 준비가 무색하게 해가 뜨는 이 시간이 되도록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새 다가온 우르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리안, 이거 큰일 난 거 맞지?”

“어, 아무래도 제대로 엿 먹은 것 같은데.”

단순하게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고 안일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사람 일이라는 것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계획이 변경될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철두철미한 첩보 조직에서 내게 사전 연락조차 없었다는 것은, 높은 확률로 내가 용도 폐기당했음을 의미했다.

심지어 이제 와서는 내가 어떻게 손을 쓸 방법도, 시간도 없다.

고작 두어 시간 후면 나는 출항을 해야만 하고, 20일 후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일 테니까.

이건 뭐, 팔다리 묶인 채로 사형날짜 받아놓은 사형수 꼴이랑 다를 게 없었다.

부산스럽게 출항 준비가 진행되는 동안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우르타는 그냥 옆에서 종종거리며 걱정만 하고 있을 뿐이고···.

심지어 내게 연락도 못 받은 네이선은 이 상황을 혼자서 끙끙거리며 고민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내 고민과 상관없이 쏜살같이 흘렀고, 결국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이클로나 출항.”

호프만 함장의 묵직한 명령이 떨어졌고, 이클로나는 천천히 프롬힐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 * *

수평선 쪽으로 멀어지는 제국 1함대를 바라보는 아르만의 뒤로 한 남자가 접근했다.

리안의 방에 무단침입을 했던 남자였다.

“보고해.”

뒤를 보지도 않고 아르만이 차갑게 말하자, 남자가 살짝 목례를 하며 입을 열었다.

“무사히 전달했고, 대금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 절반은 애들이랑 나눠 가지도록 해.”

“네? 절반,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런 일 하면서 그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너도 애들에게 생색 좀 내고.”

“감사합니다, 부장님.”

“그리고 저기 타고 있는 애들이 몇 명이지?

“정식 요원은 세 명입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친구들은 몫은 좀 넉넉하게 해서 유가족에게 전달하고.”

“···네.”

용건이 끝났음에도 남자가 미적거리자, 아르만은 그제야 남자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뭐, 더 할 말이 있나?”

“다름이 아니라, 위에서 언제까지 현장에 계실지 여쭤보라고···.”

“이번에는 재밌어서 그랬어. 거참, 곧 돌아간다고 전해.”

“네, 그럼 이만.”

남자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떠난 뒤로도 한참 동안 멀어지는 1함대를 바라보던 아르만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즐거웠네, 리안. 부디 편안히 가시게.”

리안이라는 특이한 남자 덕분에 얻은 이익이 적지 않았으니, 마지막 인사는 해도 될 것 같았다.

만약 리안이 그의 무기인 항해일지를 조금 더 확실하게 관리했다면, 결과가 조금 바뀌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장실도 아니고 고작 부함장실 정도는 딱히 보안이랄 것도 없어서, 지난 40여 일 동안 그의 항해일지는 거의 완벽하게 필사되어 자신의 손에 들어왔다.

리안은 나름대로 잘 숨겼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손바닥만 한 부함장실에 숨길 곳은 한정되어 있었고, 함장을 제외하면 반드시 일정 시간 당직을 서야 하는 배의 특성상 필사는 어렵지 않았다.

덕분에 본국에는 제국 1함대에 대한 정보와 서해 항로 항해기록을 넘겼고, 일레드에는 항해 일정을 팔았으며, 제국의 모 백작에게는 테일러의 실책에 대한 증거를 넘기고 가외 수입을 올렸다.

나름 치밀한 준비부터 자신에게 접근하는 방법까지, 교육도 받지 않은 평민치고는 제법 재미있는 상대였지만 딱 그 정도였다.

* * *

프롬힐에서 출항한 지 벌써 열흘이 흘렀다.

이미 내해에서 돌아다니는 정규 항로는 진즉에 벗어났고, 지금은 위도상으로 볼 때 대륙의 최북단에 해당하는 일레드 왕국의 북부 지방보다 더 위로 올라왔다.

선수에서 볼 때 우측, 보기만 해도 등골이 쭈뼛거리는 폭풍지대가 보인다.

아니,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기에 저런 폭풍지대가 사방팔방에 널려있는 거야?

바다가 이따위로 엉망진창이니까 원양 항해가 활성화된 지 100년이 넘도록 아직 세계지도도 못 만들고 있지.

물론 지금은 그것보다 내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기는 하다.

선두의 룸페르가 슬슬 왼쪽으로 도는 걸 보면 이제 돌아가려는 것 같거든.

제발 입항하기 전에 모터보트, 아니, 잠수용 산소통이라도 뿅 하고 생겨났으면 좋겠다.

일단 내가 살아야 우르타나 네이선도 구출해줄 것 아냐?

그때 심상치 않은 견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좌현 240도 방향, 미확인 선박 출현!”

여기까지 올라오는 배가 있다고?

우리처럼 노던테라를 발견하겠다는 모험가들인가?

잠시 후, 선회를 완료한 기함 룸페르에서 급박한 타종 소리가 은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견시수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이클로나를 긴장에 몰아넣었다.

“기함에서 신호입니다! 전 함대 전투 배치!”

뭐? 전투 배치라고? 지금 이 상황에서?

종대를 이루고 항해하던 우리 함대는 지금 대열이 엉망이었다.

선두 룸페르는 선회를 완료해서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진행 중이고, 그 뒤를 잇는 바르노스는 반쯤 선회한 어정쩡한 상태, 우리도 이제 막 선회를 시작했다.

우리 뒤에 있는 메를리오네와 후미 에펜디아는 여전히 직진 중인 상태, 그러니까 대충 대열이 지팡이 모양으로 굽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 군대 처음 온 것도 아니고.

수병들이 ‘전투 배치’를 외치며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함장실에 있던 호프만 함장도 함교로 올라왔다.

“뭐야? 무슨 일이야?”

“기함에서 전투 배치 명령이 하달되었습니다.”

“젠장, 적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견시수의 목소리가 호프만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일레드 왕국 2함대입니다! 확인된 적함, 14척!”

일레드 왕국 군함이라니, 단지 관계가 험악할 뿐이지 아직 전쟁 상황은 아니잖아?

그런데 이렇게 다짜고짜 전투 배치라고?

그리고 전투 배치를 할 게 아니고 도망을 가야지, 아무리 이쪽에 신예함이 있다고 해도 5:14로 붙자니 제정신인가?

예전의 마력포탄처럼 비장의 무기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그놈의 마력포탄은 정신 나간 가성비와 불안정성 때문에 아직 실전 배치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본 마력포탄의 위력이라는 것이 이 정도로 불리한 전세를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숙련도로 따지면 이쪽보다는 저쪽이 더 우월하다는 것은 굳이 안 붙어 봐도 불을 보듯 명확하다.

내 간절한 기도와 상관없이 두 함대는 시시각각 가까워졌고,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놈들은 이미 포까지 다 꺼내놓은 채 대놓고 ‘우린 공격 준비 다 했음’이라고 표현하는 중이었다.

저따위 상황이니 바로 전투 배치를 붙였겠지.

그리고 생각해보니 도망갈 곳도 여의치 않다.

바람 때문에 놈들이 점거한 남쪽을 뚫는 것은 불가능하고, 동쪽으로 가봐야 일레드 왕국이고, 그나마 가능한 곳이 북쪽이나 북서쪽인데, 그쪽으로 가면 진짜 운 좋게 노던테라에 도달하지 않는 이상 쫓기다가 바다 위에서 굶어 죽을 판이다.

정신 차리고 생각을 해보자.

지금까지 내가 불리한 전투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정신만 차리면 죽을 때까지 존나 무섭고 아프기만 하겠지, 젠장!

두 함대 간에 거리가 있었던 만큼 이쪽도 어떻게 횡대 포격 대형을 만들기는 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불리한데다가 저쪽은 압도적인 머릿수를 앞세워 대놓고 우리를 포위하겠다고 달려드는 판이었다.

다행히 일레드의 신예함인 엘베도라급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충 1,000톤 근처로 보이는 2급 전투함이 대다수였고, 개중 세 척은 1,400톤쯤은 될 듯한 1급 전투함이다.

룸페르급 세 척은 몰라도 이클로나랑 메를리오네는 2급 전투함과의 1:1도 이기기 힘들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군함으로 개장을 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디자인 자체가 상선인 데다가 700톤급으로 체급도 떨어지니까 말이다.

첫 포성은 이쪽에서 울렸다.

바람이 이쪽에 불리하게 부는 만큼 저쪽이 먼저 쏠 줄 알았는데, 조금 더 완벽한 사거리를 맞추기 위함인지 일레드 쪽에서 정면으로 조금 더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두 번째 포격까지 일방적으로 날리면서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지어주기를 기도했지만, 애석하게도 이쪽 포병대의 실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가해진 세 번째 포격에서 드디어 첫 명중탄이 나왔다.

문제라면, 저쪽은 겨우 초탄인데 명중탄이 나왔다는 것이겠지.

함미 쪽에 두 발을 얻어맞은 메를리오네가 살짝 휘청거렸고, 룸페르도 한 대를 얻어맞았다.

저쪽은 대충 대여섯 발은 맞은 모양인데, 딱히 피해가 커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양쪽이 서너 번 포격을 주고받았을 때, 나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양 측면으로 우회한 네 척의 선박이 우리 뒤쪽으로 넘어가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다섯 척의 전력으로는 저놈들을 저지할 방법이 없었다.

당장 눈앞의 열 척을 상대로도 고전하고 있는데 여기서 저놈들을 견제하겠다고 한 척이라도 뒤로 돌렸다가는 단번에 밀려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애초에 이 전투는 시작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망망대해에서 지형을 이용한 것도 아니고, 사기나 무장이 유리한 것도 아니고, 전력이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길 수 있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는데 테일러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처참하게 박살 난 우현을 보던 나는 이를 악물고 호프만 함장에게 소리쳤다.

“함장님! 이대로라면 승산이 없습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이 상황에서 어쩌라는 건가?!”

그때 후방(좌현 방향이다)에서 포성이 울리고 좌현 측에 지근탄이 떨어졌다.

이대로 포위망이 완성되면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신나게 포탄을 뒤집어쓰다가 폭사하거나 배와 함께 수장되는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열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차라리 좌현 쪽으로 돌격합시다! 근접전을 유도하면 저쪽도 함부로 포탄을 퍼붓지는 못할 겁니다.”

물론 내 말에는 어폐가 많다.

돌격해오는 우리를 적들이 가만히 놔둘 리도 만무하고, 재수 없게 함수나 함미에 직격탄을 맞으면 항해 불능 상태까지 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일단 우리가 방향을 돌리기 시작하면 포격각이 안 나오니까 이쪽의 화력이 확 줄어든다.

하지만 이대로는 죽는 것이 확실하니까 차라리 모험이라도 하는 쪽이 낫지 않을까?

“부함장! 정신 나갔나?! 지금 돌격을 하자고?! 죽고 싶으면 너 혼자 죽어, 새끼야!”

그리고 그 말은 그대로 호프만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함교에 적중한 포탄이 호프만 함장의 상체 중 절반을 날려버렸으니 말이다.

사람 죽는 것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제법 많이 죽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충격적인 장면은 처음이었다.

고작 세 발자국 앞에서 사람의 상체 절반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몸에 박힌 파편이 주는 통증이나 굉음으로 먹먹해진 귀는 그 충격적인 장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포탄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졌어도 죽는 사람은 호프만이 아니라 나였다고 생각하니 그때서야 공포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 *

“부함장님! 부함장! 씨발, 정신 차려 이 새끼야!”

나는 내 뺨을 후려치는 통증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사람을 보았다.

모르아 갑판장은 왼쪽 어깨를 시뻘겋게 물들인 채 악귀 같은 표정으로 내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오른손이 올라간 걸 보니 날 때린 사람이 갑판장인 모양이다.

“······어, 갑판장?”

“아아악! 이제 정신이 드십니까? 씨발, 씨발, 함장은 뒈지고 부함장은 애송이 새끼니까 별꼴을 다 보는군. 어쩔 거요?! 네놈이 이제 지휘해야 하잖아!”

“제, 젠장! 알았으니까 좀 놔요. 이제 정신 차렸으니까.”

“하, 완전히 병신은 아니라 다행이네.”

“갑판장, 여기서 살아나가면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래요?”

“X까! 지금 상황에서 살아남으면 내가 네놈한테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무릎이라도 꿇지!”

“기억했다. 갑판장, 살아서 두고 봅시다.”

“씨발, 살려주기나 하쇼.”

죽을 판이 되니까 아주 막장을 달리는구나.

그래도 아주 이성이 날아가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내분이라도 터지면··· 어, 솔직히 갑판장이 말이 안 통할 정도로 정신이 나갔거나 내 지휘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뒷목에 칼이라도 꽂아줄 생각이었다.

나는 절로 튀어나오는 신음을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타륜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함장님 전사! 지금부터 부함장이 지휘한다! 마스트 반개! 좌로 35도 틀어!”

함장이 죽었다는 말을 공식적으로 내뱉자 수병들의 동요가 심해졌지만, 지휘권 승계 순서에 따라 내가 지휘권을 행사하자 그럭저럭 내 명령에 따르기 시작했다.

그때 헐레벌떡 뛰어 올라온 일등 항해사 미치가 미친놈처럼 소리를 질렀다.

“리안 대위! 지금 뭐한 거야!”

“뭐?”

“상부 명령 없이 후퇴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리안 대위? 뭐 하는 거야? 이 개새끼가, 야! 너 미쳤어?!”

일등 항해사는 아무리 계급이 같더라도 부함장보다 서열이 아래다.

심지어 지금은 함장이 전사해서 내가 함장 대행을 맡은 상황, 미치의 막장 언사는 하극상을 넘어 항명에 해당하는 중범죄였다.

갑판장은 막말을 하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나’라는 개인에 대한 불만을 토했을 뿐, 함장 대행인 부함장에게 도전한 것은 아니기에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미친놈은 지금 부함장이라는 내 직책과 지휘권 행사 자체를 부정할 기세였기에 나는 일부러 강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이 새끼는 오늘 아주 끝장을 볼 생각인지, 결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나는 너 같은 근본도 모르는 놈의 지휘를 받을 생각 없어! 당장 지휘권을··· 컥!”

무슨 개소리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지금 그런 개소리를 들어줄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부디 이해해줘, 미친놈.

나는 목에 박힌 단검을 쥐고 바닥에서 버르적거리는 미치를 발로 밀어내고 얼빠진 표정으로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갑판장을 보았다.

“갑판장, 전투 중 항명은 즉결처분, 맞지?”

“허, 뭐, 맞긴 합니다만··· 하긴, 괜히 애들 갈라서기 전에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기는 한데, 그렇게 냅다 칼부터 꽂을 줄이야. 좋수다. 부함장님, 지휘를 부탁드립니다.”

“좋아, 이대로 우리는 북동쪽의 적을 돌파해서 직진한다.”

“네!”

기세 좋게 대답한 갑판장이 뒤로 돌아 함교를 내려가려다가 움찔하며 다시 몸을 돌렸다.

“···네?! 아니, 그, 북동쪽이면 폭풍지대···.”

“알아! 그 폭풍지대, 내가 한 번 가봤는데 최소한 거기는 살아남을 확률이라도 있지, 여기에 있으면 무조건 죽어!”

“제기랄! 큰 배 탄다고 좋아했더니, 시작부터 막장이구만. 알겠수다!”

그렇게 이클로나가 함수를 돌려 돌격을 개시하는 사이, 후미에서 우직하게 버티던 에펜디아에서 폭음이 울리며 불기둥이 치솟았다.

뒤쪽을 보니 거의 반파된 일레드 함선 두 척이 뒤로 빠지는 것이 보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서쪽의 적은 8척, 북동쪽의 적은 4척으로,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리고 우리 뒤로 다른 제국 군함들이 하나씩 뒤따르기 시작했다.

< <86화> 예정된 비극 > 끝

작가의말

리안은 언제쯤 유리한 싸움을 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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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 이.흙.살 군함(범선) 분류 기준입니다.

1급 전투함 : 1,400톤 이상, 40문 내외

2급 전투함 : 1,000톤 이상, 32문 이상

3급 전투함 :   700톤 이상, 24문 이상

호위함 : 500~700톤, 20문 내외

초계함 : 500톤 미만, 10문 내외

이클로나의 경우 기준상 3급 전투함에 해당하기는 하는데, 상선으로 건조된 선박을 개장한 것이라 기본 성능이 전투함보다 떨어져서 호위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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