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93화 (93/420)

< <93화> 뜻밖의 선물 >

“흐음, 이것도 가져가면 좋은데 말이지···.”

나는 잠자리에 깔린 풀을 보면서 혼자서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이 풀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부드럽다.

묶어놓으면 건초더미 같아서 볼품은 없겠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솜보다 비싸게 팔리지 않을까?

물론 지금처럼 양도 얼마 되지도 않고 쓰던 것이라면 가치가 많이 떨어지겠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관두고 자리에 누우려는데 밖에 인기척과 함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선장님, 주무십니까?”

목소리를 들어보니 아인델프였다.

이 녀석이 찾아올 일은 하나밖에 없지만, 일단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일단 들어오지.”

안으로 들어온 아인델프가 순간적으로 당황해했다.

아, 임시 거주지라 이게 문제다. 손님이 앉을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잖아, 대충 거기 바닥에 앉아. 무슨 일이야?”

바닥에 대충 앉은 아인델프가 여전히 어색함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장님, 저도 돈 몇 푼보다는 살아서 돌아가는 쪽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음으로 최선을 다해도 성패를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인데, 굳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까 전에 제가 선장님께 합류하려는 것을 막으신 것은 맞습니까?”

“응, 너까지 오면 균형이 무너지잖아. 다들 불안하겠지. 우리가 힘이 더 세지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다들 엉뚱한 행동은 못 할 테니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이봐, 아인델프 소위님.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하고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아. 저놈들이 ‘우리가 불리하니까 닥치고 대가리 박고 있어야지’라고 할 것 같아?”

“그게 무슨···!”

나는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아직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한 아인델프에게 현실을 알려주었다.

“어떤 놈은 어차피 뒤질 거 다 같이 죽자고 할지도 모르고, 원래 마음에 안 들던 놈들 죽이고 와서 칭찬해 달라고 할지도 모르지. 돈은 못 받을 것 같으니 그냥 버리자는 놈이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중요한 것은, 상황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그 컨트롤을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아인델프 자네야. 자네가 저들이 튀지 않도록 잘 제어해 줘.”

“왜 하필이면 저입니까? 갑판장도 있는데요.”

음, 갑판장이 손을 먼저 들어서라고 말하면 화내겠지?

“갑판장은 항해술을 못 익혔잖아. 현재 상황에서 항해술을 익힌 두 명이 한쪽으로 쏠리면 안 돼. 자네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면 수병들은 자네 말은 잘 들을 거야. 자네는 희망을 주면 돼. ‘우리는 안 죽는다.’, ‘탈출에 성공하면 물리력을 써서라도 약속한 돈을 받아주겠다.’ 이렇게 말이지. 반대로 늘 경각심도 줘. 그쪽 인원이 줄어들면 돈은커녕 목숨도 위험하다는 식으로 말이야.”

“선장님, 하지만 그렇게 자신감이 과해지면 오히려 반기를 들자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 외부의 강력한 적 때문에 뭉쳤다고 해서 그 적에게 선공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물론 몇 명이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절대로 전원이 동의하지 않을 거고, 그러면 그냥 생각으로 그칠 거야. 걱정 마.”

내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아인델프는 굳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선장님.”

“그래, 자네에게도 나쁜 경험은 아닐 거야. 그리고 돈도 생기고 좋잖아?”

* * *

다음 날, 우리가 지내던 건물을 허물라는 내 명령에 다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제 출발할지도 모르는데 굳이 왜 그래야 합니까?”

“잘 말라서 자재로 쓰기 좋잖아?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최대한 챙길 것은 챙겨야지. 그리고 지금부터 우리가 배에서 지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선주님이 말씀해 주실 거다.”

내가 드웰에게 신호를 보내자 드웰이 말을 받았다.

“내가 관찰한 기록대로라면 열흘 내에 폭풍이 잠잠해질 거요. 그런데 폭풍이 잠잠한 시간은 예측하기 어려워. 짧으면 반나절, 길면 사흘까지 지속되거든. 그러니까 폭풍이 잠잠해지려는 순간에 바로 출항해야 한다는 말이지.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고, 괜히 몸이 조금 편하게 지내려다가는 다들 목숨을 내놔야 할 거요.”

드웰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불만은 쏙 들어갔고, 바로 건물 철거에 들어갔다.

대충 만들어진 가건물 수준이라 별다른 장비가 없어도 건물을 해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그곳에서 나온 나무판자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재목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선박용 목재로 건물을 지었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태가 너무 좋았다.

한참 건물에서 나온 자재를 선적 중인데, 아직 몸이 좋지 않아 일을 못 하는 네이선이 다가와서 조용히 물었다.

“리안, 그런데 너무 많지 않아? 굳이 이렇게 많이 가져갈 필요가 있나?”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급할 때는 버리면 되잖아.

“무겁잖아. 그리고 저쪽에 일부러 만든 공간은 뭐야? 왠지 익숙한데?”

“쉿!”

네이선의 입을 닥치게 만든 나는 조용히 말했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우르타랑 오펜, 그리고 갑판장보고 잠깐 나한테 들르라고 해, 몰래. 알지?”

그날 저녁 식사 전, 모두가 몸을 씻으러 간 뒤, 자재 사이의 애매한 공간에 내가 미리 준비한 뭔가가 채워졌지만, 수병 중에는 이를 눈치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제 거주지가 완전히 없어진 관계로 선원들을 모두 선실에 몰아넣고, 일등 항해사 아인델프와 모르아 갑판장, 선주 드웰, 네이선과 우르타가 선장실에 모여 앉았다.

리버티의 선장실이 이클로나의 부함장실보다 초라하고 비좁기는 한데, 어쩌겠어?

그나마 여섯 명이 앉을 공간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선주님, 어떤가요?”

“오늘은 아닌 것 같군. 아직 저쪽이 너무 맑아.”

“그럼 오늘은 최소 당직만 세우고 재워야겠네요. 갑판장, 선원들은?”

“군인이었던 녀석들입니다. 불만이 있어도 바로 꺼내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문제 생기지 않게 갑판장이 잘 좀 해줘요. 무슨 말인지 알죠?”

“걱정 마십시오.”

“일등 항해사, 출항 준비는 어때?”

“아직 닻은 올리지 않았습니다만, 명령이 떨어지면 닻을 올리고 계류색은 끊어버릴 생각입니다.”

“만약 상황이 더 급해지면 닻도 끊어. 그거 올리다가 시기를 놓치는 쪽이 더 큰 일이니까.”

“차라리 지금 올릴까요?”

“흠, 그건··· 그래, 내일 아침에 끌어 올리지.”

출항 준비상태를 확인한 나는 모두에게 해산을 명령하고 자리에 누웠다. 거친 천 아래쪽에서 부드러운 쿠션감이 나를 반겼다.

“크으, 이 맛이지. 스프링만큼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해, 암!”

“스프링이 뭐야?”

“으아악!”

“아악! 왜 소리를 질러?!”

나는 한쪽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우르타를 보고 소리를 질렀고, 그런 나를 보고 우르타가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 않아도 그 페리아 족 녀석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서 심장이 안 좋아지는 판인데 저 녀석까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이런 씨! 너 거기서 뭐해?!”

“아니, 그냥 나 아까 못 물어본 게 있어서···.”

“아오, 진짜···.

“스프링이 뭐야?”

“궁금한 게 그거야?”

“아니! 그거 말고! 오늘 그 풀은 뭐야? 응? 어디서 구한 건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풀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귀찮기는 한데 어차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할 테니, 그냥 알려주는 편이 낫다.

우르타가 말한 풀은 오늘 낮과 저녁 시간을 이용해 조금씩 옮겨놓은, 작고 검은 열매가 많이 달린 풀 더미들인데, 옮기기 좋게 잘 포장되어 있는 것을 페리아 족에게 받았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갑자기 눈앞에 페리아 족이 나타나서 얼마나 놀랐는지 원.

이 자식들은 사생활 보호라던가 그런 것이 좀 부족하··· 아니, 그냥 없다. 사생활이 없어.

사생활이라는 개념을 이해도 못 하는 종족에게 사생활 보호를 말한다고 알아들을 수 있겠냐고.

각설하고, 갑자기 나타난 페리아 족은 뜬금없이 나를 한쪽으로 안내하더니 이 풀이 쌓여있는 곳을 알려줬다.

필요한 만큼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가공 방법을 알려주는데,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그리고 만난 김에 건물 부수는 것도 허락받았고 말이지.

건물을 부술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지어준 쪽이 저쪽이다 보니 조금 마음에 걸렸거든.

뭐, 그런 이유로 오늘의 긴급 작전이 실행된 것이다.

잘하면 드웰에게 강요해야만 했던 손실을 상당히 보충해 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게 사흘이 지난 날 늦은 오후, 선장실에 늘어져 있던 나는 다급한 문소리에 벌떡 일어섰다.

얼마나 급한지 노크도 생략하고 들어온 드웰이 거의 광기에 젖은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선장! 지금이야! 지금 나가야 해!”

심장에 세차게 약동하는 것을 느끼며 밖으로 뛰어나가 먼바다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먼 바다는 여전히 새까만 구름에 뒤덮여 있고, 절대 뛰어들고 싶지 않은 색을 하고 있었다.

“···어, 음, 선주님? 지금 움직여야 하는 것 맞습니까?”

“이런 멍청한! 그쪽이 아니고 저쪽을 봐야지!”

우악스럽게 내 몸을 돌리는 드웰의 손길대로 몸을 돌리자, 우리가 나가려는 바다와 반대 방향의 하늘이 슬쩍 어두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저건 그냥 비구름이잖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 빨리 출항해! 당장!”

“으음, 그러죠. 리버티 출항! 계류색 끊고 돛 올려! 견시 올라가!”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드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만약 가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면 되지만, 만약 그의 말이 맞는다면 지금 나가지 않으면 최소한 3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으니까.

드웰이 소란을 피워서인지 다들 내가 갑판에 나온 이후로 우리를 집중하고 있었는데, 내 명령이 떨어지자 미리 연습한 대로 빠르게 출항 준비에 들어갔다.

리버티 호의 몸을 구속하던 계류색이 빠르게 끊어지고, 그녀는 7년이 넘도록 머물던 만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드웰은 내 옆에 서서 자신이 파악해 둔 암초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만을 가리고 있던 암초 지대를 벗어나자 지긋지긋한 폭풍지대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함수에서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갑판장이 달려와서 물었다.

“선장님, 이대로 계속 진행합니까? 벌써 파고가 2미터를 넘었습니다.”

“으윽, 잠시··· 선주님, 정말 확실합니까?”

내가 내 옆을 지키던 드웰에게 묻자, 드웰이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채 대답했다.

“지금쯤이면 파도가 죽어야 하는데···!”

“솔직히 지금 배를 돌리지 않으면 저 폭풍을 그대로 맞아야 하고, 전 저곳을 뚫을 자신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지금 당장 배를 돌려버리고 싶다.

솔직히 저 안에 파고드는 것은 정말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그래! 그냥 가! 충분해! 이제 곧 파도가 죽을 거야!”

가만히 드웰을 보니 눈에 광기가 슬쩍 보인다.

이 사람을 믿어야 하나 싶은데 갑자기 갑판장이 중얼거렸다.

“허, 진짜···? 정말 파도가 죽고 있어?”

“갑판장, 무슨 말이요?”

“선장님, 파도가 약해집니다. 아직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약해지고 있어요.”

경력 20년이 넘은 모르아 갑판장이 그렇다면 진짜 그런 거다.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내 운을 시험할 시간이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바람의 방향을 가늠한 내가 외쳤다.

“모든 마스트 좌로 15도, 풀 세일로 풀어! 죽거나! 살거나! 둘 중의 하나다, 가자!”

암초 지대를 통과하느라고 1/3 정도만 펼쳐져 있던 돛이 활짝 펼쳐지고, 측후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으며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 <93화> 뜻밖의 선물 > 끝

작가의말

리버티는 그냥 리버티입니다.

원래 리버th(Rebirth, 환생, 부활)에서 시작된건데...

영문 그대로 쓰기는 민망해서 예쁘게 h 지우고 -y를 붙였더니

리버티가 된거예요...

영어를 잘 못하는 불량작가가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

저 아파여... 한 번만 봐주세여...

0